나 빼고 다 젊은이 051화
제51화
"거절합니다."
[윈디아의 촌장 직을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윈디아의 영주 에드워드의 호감도가 눈꼽만큼 하락합니다.]
[에드워드는 그런 당신에게 더욱 집착할 것입니다.]
…촌장은 무슨, 이런 귀찮은 일은 사절이다. 사절.
"아, 왜!! 왜 또 거절인데에!"
"귀찮습니다."
에드워드는 나의 단호함에 말문이 막히는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의 단호함에 폭소를 터트립니다.]
너무 단호했나…?
내심 아직 어린 아이인 에드워드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제안을 했다.
"대신 자주 들르겠습니다."
"정말…?"
"마침 귀환석도 있고 하니 자주 올 수 있을 겁니다."
"큼,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았어.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할게."
에드워드의 표정은 어느새 생기가 넘치는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조금 풀어진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날 좋아하는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귀찮은 짐 덩어리를 하나 껴안게 된 기분이었다.
뭔가 짊어지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느낌이랄까….
사슴 같은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에드워드를 보고 있자니, 불안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잠시 후, 나는 집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케레노스가 말을 걸어왔다.
"촌장이 그렇게 싫으셨습니까?"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
"하하, 영주님께서 잭슨 님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노여워 마십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녀석의 낯짝에 차마 역정을 낼 수가 없었다.
…염병할 놈.
케레노스가 웃기 시작했다.
"큭큭…."
"웃지 마라 이놈아! 정든다."
"하하하, 농입니다. 이거 받으십시오."
"…이게 뭐냐."
나는 시큰둥한 눈빛으로 케레노스가 내민 것을 받았다.
[영주성 출입패를 획득하였습니다.]
"영주님께서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언제든지 오라고요."
피식.
꼬마 녀석. 그래도 제법 똘똘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고맙다고 전해다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곧장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르니아 숲은 꽤 우거진 곳이었다.
가는 길에 만나는 슬라임들은 가차 없이 경험치로 만들어 버렸고, 희귀한 식재료는 곧장 캐기도 했다.
나는 기다리고 있을 수정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잭슨: 수정아 별일 없지?
-크리스탈: 저는 괜찮아요! 케르가 있으니깐 심심하지도 않구요.
-잭슨: 다행이구나. 귀환석을 얻었으니 금방 가마.
-크리스탈: 귀환석이요?? 그 비싼걸 얻었다구요? 어떻게요??
-잭슨: 영주 놈이 주던데?
-크리스탈: …아버님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분이네요.
-잭슨: 뭘, 새삼스럽게.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크리스탈: 네, 조심히 오세요!
잠시 후. 나는 아까 불룡파 놈들이 돌아다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놈들은 다른 곳으로 간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른 곳으로 가서 다행이네."
그렇게 안쪽으로 더 들어서니 아까 올라온 절벽이 보였다.
나는 벼랑 끝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어후. 아찔하네.
다시는 올라오기 싫은 곳이다.
힘들게 올라왔던 것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등산 마니아인 나도 이곳은 한숨부터 나온다.
하긴, 등산이 아니라 암벽등반이니 그럴 수밖에 없나.
"그래도 내려가려면 거미줄이 편하겠는걸."
나는 주변을 훑어보며 거미줄을 걸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았다.
불룡파 놈들이 없으니 걱정은 없었다.
지금 내가 시도하려는 것은 바로 로프 하강.
군대에서 배우는 레펠과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로프 하강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설마하니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들이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튼튼한 나무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
우연히 풀숲에서 나온 육불이 녀석이 나를 보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이놈이 어째서 아직 여기 있는 거지…?
소리치지마라. 소리치지 말라고!
"여기 있다! 영감이 살아있다!!"
너 이 새끼… 이따가 보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예정된 고구마에 고개를 젓습니다.]
육불이의 목소리를 들은 불룡파 놈들이 속속 모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련의 무리들을 가로지르며 최불룡이 나타났다.
"영감!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남았지?"
"징하다. 징해. 도룡뇽 같은 놈. 내가 그걸 말해주겠냐?"
"크윽. 뭐해 새끼들아! 잡아!"
분노한 그의 외침에 수하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내가 아니었다.
인질이 없는 지금의 나는 거리낄 것이 없다.
콰아아아앙!
[살인자 '오십일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순식간에 전개된 해 오름이 그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쾅! 콰앙! 쾅!
그들이 아무리 레벨업을 했어도 나만큼 빨리 올렸을 리는 없었다.
파티 사냥을 하는 것과 혼자 사냥하는 것은 들어오는 경험치부터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파라락! 콰아아앙!
물론 완전 한방이 아닌 놈들도 있다.
방패를 가진 놈들이 그러했는데, 수정이에게 듣기론 '탱커'라는 놈들이라고 했다.
그래 봤자 두 방이었지만.
콰앙! 콰앙!
"미, 미친 내 방패가 깨졌어!"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방패를 잃어버린 녀석의 낯짝에 돌려차기를 꽂았다.
콰콰쾅!
[살인자 '오십팔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명성이 '제법하는' -> '수준높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껄껄."
-크리스탈: 아버님, 위에서 큰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잭슨: 놈들을 다시 만났다.
-크리스탈: 네? 놈들이라면, 설마?
-잭슨: 그래.
파라라라락! 콰아아앙!
-잭슨: 수정아, 아이템 분배 방식 바꿀 수 있지?
-크리스탈: 바꿀 수 있는데 그건 왜요?
-잭슨: 설명은 나중에. 우선 파티장 독식으로 바꾸거라.
현재 파티장은 김수정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아이템 분배 방식을 바꾸라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파티의 아이템 분배 방식이 '파티장 독식' 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파티장 크리스탈 님이 천둥의 하프 플레이트 아머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크리스탈 님이 카이트 실드를 획득 하였습니다.]
[파티장 크리스탈 님이 징 박힌 격투 장갑을 획득하였습니다.]
…
나는 저번처럼 어렵게 싸워 얻은 전리품을 잃고 싶지 않았다.
화염을 머금은 양발로 문워크를 하며 아이템을 줍는 내 모습에, 불룡파 놈들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며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지원군이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우르르르.
그들은 모두 하얀 수의를 입고 있었다.
나타나자마자 버프와 힐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저 녀석들 혹시…?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성직자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
아무래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나 하나 잡자고 성직자를 저렇게 많이 대동하다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사실 아이템을 몽땅 주울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다.
"어디로 도망치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거미줄을 타고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거미줄을 타라고? 놈들이 쫓아올 텐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걸 노린 거라고 말합니다.]
…뭔가 생각이 있는 모양인데. 한번 믿어볼까?
나는 주변에 떨어진 도끼 하나를 들고 사자후를 사용했다.
"저번처럼 좋은 아이템 좀 떨구지 이게 뭐냐. 도룡뇽들아!!!"
[사자후의 기운이 대상을 위압합니다.]
잔소리로 얻은 스킬치고는 꽤 괜찮은 성능을 가진 스킬이었다.
놈들은 커다란 포효에 쩌릿한지 몸을 움찔하고 있었다.
"크으윽! 영감탱이!"
"감히 우리 불룡파를 도룡뇽이라고!"
"용서할 수 없다!"
피식.
도발이 제법 잘 먹힌 모양이구만.
뒤에서 몸을 사리고 있던 최불룡도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나한테 도발의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좋다는 건 아니고.
"이제 영감도 끝이다! 얘들아 쳐라!"
"이야아아아아!!"
버프를 받은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내려앉는다.
수정이를 통해 버프라는 것의 힘을 알게 된 나는, 받기 전과 후가 얼마나 다른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잠깐만 헤어지자고.
나는 벼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또 자살인가?"
"속지 마! 또 살아날 거야!"
그들의 예상대로 나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공중에서 몸을 비튼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커다란 나무에 거미줄을 발사한 뒤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거미줄??"
"저런 스킬도 있었어?"
"이 영감 도대체 직업이 뭐야?"
쒸이이이이익!
거미줄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 942 / 1000
- 883 / 1000
- 731 / 1000
…
순식간에 줄어드는 거미줄을 보며 나는 이 벼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진짜 깊이 떨어졌었구나.
근데 이거 조만간 다시 충전해야겠는데.
순간, 거미줄을 먹어야만 충전된다고 했던 기억이 스친다.
"젠장. 거미줄은 또 어떻게 먹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의 혼잣말을 좋아합니다.]
"…미친놈."
쒸이이이익-
* * *
한편 절벽의 위에서는….
"뭐해! 얼른 따라가 새끼들아!"
최불룡은 동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사지로 밀어 넣었다.
한명씩 줄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하는 동생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때, 옆에 있던 한불이가 다가왔다.
"형님. 저 거미줄을 그냥 끊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야 이 멍청아! 그럼 영감이 들고 간 아이템들은 어떻게 되찾을 거야! 저긴 내려가는 길도 없다면서! 그리고 영감이 또 거미줄을 쏘지 말라는 법 있어? 살아날 자신이 있으니 저기로 뛰어내린 거잖아!"
구구절절 맞는 말에 할 말이 없는지 한불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최불룡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불이의 엉덩이를 밀었다.
"너도 빨리 내려가 인마!"
"으악! 형님! 떠, 떨어집니다!"
* * *
빠르게 벽을 튕기며 내려오던 나는 가장 먼저 바닥에 도착해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수정이가 말을 걸었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아무렇지 않으니 걱정 말거라. 그보다는."
나는 재빨리 돌멩이 하나를 꺼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빠르게 생성된 타원형의 블랙홀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아마 저것이 윈디아로 향하는 포탈이라는 거겠지.
"먼저 가거라."
"아버님은 어쩌시려구요?"
"생각이 있으니. 걱정마라."
그런 내 말을 믿는 것인지 김수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부터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아버님은 쉽게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강한 확신을 가지며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그럴 생각이다."
김수정은 포탈을 향해 몸을 던졌고 케르도 함께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포탈을 닫았다. 뒤를 보니 어느새 불룡파 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냐고 말합니다.]
왜 말을 듣지 않느냐….
사실 프로메테우스는 아까 전부터 계속 마을로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근데, 왠지 그게 탐탁치가 않았다.
너무 쫀 것 같잖아? 남자가 가오가 있어야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을로 가라고 말합니다.]
지랄.
"야. 내비게이션."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코딱지를 튕깁니다.]
"원래 인생은 내비게이션 따라가면 재미없는 거야."
나는 하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