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50화
제50화
띠링-!
[최초로 바람의 기사들이 잠든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이 1,000 올랐습니다.]
[바람의 축복이 하루 동안 당신의 이동속도를 5% 상승시킵니다.]
"…바람의 왕이라."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아니,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
고심해 봐도 지금의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것은 아이올로스라고 말합니다.]
"바람의 왕이 아이올로스라고?"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순간, 벙찌고 말았다.
처음 아이올로스를 마주했을 때 '위대한 존재' 라는 메시지가 뜬 걸 보며 범상치는 않다고 생각했는데,이런 비화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아이올로스의 알을 꺼냈다.
[아이올로스의 알]
등급: ?
플로라의 연인.
아이올로스가 죽어서 잠든 알.
그의 영혼은 떠나고 이제 새로운 생명이 여기에 잠들었다.
…어쩌면 내가 엄청난 것을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나중에 오는 게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래, 일단은 올라가는 게 먼저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빨리 올라가 거미줄을 묶어 다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이 처음부터 내가 생각했던 방법.
가만, 근데 수정이가 여길 올라오려면 힘들 것 같은데…?
자신은 쉽게 올라왔다지만 수정이는 올라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케르야 내 펫이니 인벤토리에 넣으면 된다지만 그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야 드는 생각에 머리가 띵하고 망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곧장 귓속말을 했다.
- 잭슨 : 수정아.
- 크리스탈 : 네, 벌써 다 올라가셨어요?
- 잭슨 : 아니다. 중간에 잠깐 마력 회복을 하려고 쉬고 있다. 근데 문제가 생겼구나.
- 크리스탈 : 문제요…?
- 잭슨 : 그래. 내가 생각했던 건 위에 올라가 거미줄을 나무에 묶어서 다시 내려오는 거였는데, 난 쉽게 올라왔지만 넌 올라오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구나.
- 크리스탈 : 음, 그럴 거 같긴 해요. 제가 그럴 체력이 안 되니깐요.
- 잭슨 : 그렇지? 그래서 말이다. 혹시 아까 얘기했던 귀환서라는 거 윈디아에 팔까?
- 크리스탈 : 그거 구하기 힘든 거라 잘 안 팔걸요? 차라리 마법사들한테 부탁해보는 게 어때요?
- 잭슨 : 음, 그것도 좋겠구나. 우선 조금만 기다리고 있거라. 금방 연락하마.
- 크리스탈 : 네, 조심하세요. 아까 그놈들이 또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 잭슨 : 그래. 그러마.
귓속말을 닫으며 다시 한번 자괴감이 들었다.
제기랄.
왜 이제야 생각이 난 거지.
나이가 드니 머리 돌아가는 게 영 시원치 않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뒤.
드디어 꼭대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아까 보았던 우거진 숲이었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나는 다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다시는 떨어지기 싫은 곳이군.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아이씨, 여기도 없네. 도대체 어디로 떨어진 거지?"
"형님, 혹시 저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게 아닐까요?"
"음, 일리가 있다. 혹시 모르니 내려가는 길을 찾아봐."
"예, 형님!"
나는 어느새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불룡파 놈들.
저 망할 놈들이 기어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거미줄을 나무에 묶지 않기로 한 것이 도리어 잘된 일이었군.
그랬다면 수정이도 위험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로써는 방법이 아예 없기 때문에, 지금은 걱정 안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윈디아로 향했다.
"코볼트 광산에 가실 파티원 구합니다!"
"킹 슬라임 레이드 가실 분 계신가요?"
"바헬 숲의 오우거 사냥하러갑니다! 모이세요!"
…언제와도 북적 북적하네.
나는 유저들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윈디아의 광장에 나타났다.
수정이의 말에 따르면, '아크스타' 는 기본적으로 파티사냥을 지향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물론 혼자 사냥하는 내가 비상식적으로 강한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더~!"
연락을 받은 드레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미스 킴은…?"
"안전하다."
"휴, 다행이에요. 굿잡!"
그가 내미는 엄지가 유독 커보였다.
굳은살이 있는 걸 보니, 바느질을 열심히 한 모양이다.
"근데 문제가 있다."
"문제요…? 미스 킴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요?!"
드레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안전해서 문제다."
"예???"
나는 그에게 낭떠러지에 갇힌 수정이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래서 귀환서를 사야 할 것 같은데 돈을 좀 빌려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오 마이 갓. 미안해요. 브라더. 사실…."
드레인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분했는지 이야기를 하며 약간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젠장. 하필 일이 이렇게 꼬이나.
"쯧. 그러게 잘 보고 사야지 이놈아."
드레인의 어깨가 축 쳐졌다.
쯧, 미안하게 시리 그런다고 삐지기는….
"기운 내라. 내가 그놈을 꼭 잡아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드레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군.
나는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보기로 했다.
드레인은 어떻게든 귀환서를 구해보겠다며, 시장으로 가버렸다.
나는 한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아가씨."
"네, 할아버지. 오우거 사냥 가실려구요?"
한손에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틴이었다.
나는 한 눈에 봐도 그녀가 마법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닐세. 자네에게 뭐 좀 물어 보려고 말이야."
"아, 네. 어떤 게 궁금하세요?"
…친절한 아가씨로구먼.
"혹시 마법사들이 포탈 마법이라는 것을 쓸 수 있다던데, 자네도 쓸 수 있나?"
"포탈 마법이요? 그건 200레벨이 넘어야 쓸 수 있는 마법이에요. 저는 아직 못 써요. 아마 여기 있는 모든 마법사들이 그럴걸요? 이곳은 100레벨이 넘는 사람도 잘 없거든요."
이런, 낭패다.
"무슨 일이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음, 사실…."
나는 그녀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미국 유저라는 것과 게임을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역시, 젊은이들은 다르다.
"방법은 세 가지에요. 죽어서 마을로 돌아오거나, 마법사가 포탈을 여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은 귀환 주문서를 얻는 건데… 아마 구하기 힘드실 거예요. 다음 마을인 무역도시 포트렌에 있는 암시장에 판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어쩌면 이곳 영주 정도 되는 사람이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영주?
순간, 머릿속으로 에드워드가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 꼬마 녀석이라면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할아버지가 영주랑 친분이 있을리 만무ㅎ…."
"고맙네. 아가씨. 또 보세나."
나는 그녀의 손에 맛있는 거미 구이를 쥐어주고, 영주성을 향해 뛰어갔다.
* * *
어느새 나는 영주성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경비병에게 말했다.
"이보게 문 좀 열어주게."
"예? 무슨 일이신지요."
랄프라는 이름의 경비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좀 성급했던 것 같다.
"여기 영주 놈한테 볼일이 있어."
"놈…?"
아차.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놈이라는 글자를 붙여버리고 말았다.
"영주님을 모욕하면 어르신이라도 용서 못합니다!"
그는 나를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큼. 미안하네. 내가 말이 헛 나왔구만. 영주님을 뵈러왔어."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이보ㄱ…."
"돌아가주십시오."
…이놈의 입방정.
순간, 벽을 타고 몰래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더 클라이밍이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하지만 곧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랬다가 걸리기라도 한다면 진짜 도둑놈 취급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정이도 그러지 않았던가.
흠. 그렇다면….
"저기 오크다!!"
"오, 오크?!"
랄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생각해도 방금 전 연기는 남우주연상 감이었다.
연륜으로만 따지면 연기대상도 노려볼 만했다.
그가 돌아보자마자, 나는 빠르게 영주성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니, 저 영감님이…!"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윈디아의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바람 마법에 능통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에는 헤이스트라는 이동속도 증가 마법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이스트!"
두두두두두두두.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기 시작하는 랄프의 신형.
나는 녀석의 속도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놈이…!"
결국 나는 따라잡히고 말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랄프를 설득했지만, 그는 돌부처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뿌리 깊은 나무 같다고나할까.
"절대 못 들어갑니다."
제기랄. 근엄하게도 말하는군.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케레노스를 떠올렸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영주성으로 찾아오라고 해놓고 먼저 가버려? 고오얀….
"무슨 일인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랄프의 뒤로 케레노스의 모습이 보였다.
상급자의 등장에 옆으로 물러선 랄프. 나는 케레노스를 보자마자 핀잔부터 늘어놓았다.
"이놈아. 왜 이제 나타나?"
"잭슨 님? 언제 오셨습니까. 연락을 주시지."
"이놈아. 내가 너한테 어떻게 연락을 하냐."
"아, 하하. 그렇군요.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랄프."
"아, 저 그게…."
랄프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마 내가 케레노스와 친분이 있는 줄은 몰랐겠지.
"별일 아니다. 그냥 영주님을 뵈러 왔어."
"알겠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케레노스가 앞장서 걸어갔다.
나는 그를 따라가며, 옆에 있는 랄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깐 미안했네."
"아, 아닙니다. 제가 더 죄송합니다. 진짜 친분이 있으실 줄은…."
"아닐세. 자넨 자네의 일을 한 것이지. 앞으로도 그렇게 하도록 하게나."
랄프는 꽤나 감동 받은 눈치였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저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니 좀 부담스러웠다.
나는 무심하게 돌아섰다.
* * *
똑똑-
"케레노스입니다."
"들어와!"
안으로 들어서자 꼬마 영주는 바쁘게 집무를 보고 있었다.
아까 기절했던 그 꼬마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옆에는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함께 있었다.
…이럴 때는 영주 놈이 맞는데 말이지.
"영주님 잭슨 님이 왔습니다."
"어?! 잭슨!"
에드워드가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이럴 땐 또 애구만.
나는 곧장 예의를 차렸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자네가 나와 윈디아의 기사들을 구해주었다지?"
"예.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겸손하게 답할까 했지만, 그러면 너무 재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참고로 '쿨' 이란 단어는 드레인에게 배운 단어였다.
나는 점점 유식해지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 자네 덕분에 기사들을 지킬 수 있었어. 하마터면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버님 때부터 이어져 오던 기사단이 없어질 뻔했지. 정말로 고마워."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네 요리사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나의 전속 요리사가 되어주지 않겠어?"
띠링-!
[윈디아의 영주 에드워드가 당신에게 전속 요리사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히든 직업 '윈디아의 요리사'로 전직하시겠습니까?]
…거참 안 한다니까.
"죄송합니다. 전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윈디아의 영주 '에드워드'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쳇,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원하는 게 있어? 뭐든지 말해봐."
마침 잘됐군.
"윈디아의 귀환 주문서가 있으면 얻고 싶습니다."
"귀환 주문서…? 정말 그거면 되? 다른 건 더 필요한 게 없어? 예를 들면 무기 같은 것 말이야."
순간, 고민이 들었다.
그냥 좋은 무기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하지만 그러면 수정이는 구하지 못할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음, 기다려봐."
에드워드가 뒤에 있는 보물 상자를 향해 걸어가더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세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받아."
"……?"
[윈디아의 포탈 귀환석을 획득하였습니다.]
…포탈 귀환석?
[윈디아의 포탈 귀환석]
등급: 영웅
윈디아로 향하는 포탈 마법이 걸려있는 귀환석. 돌 가운데 윈디아를 상징하는 바람의 각인이 새겨져있다.
-사용가능 횟수: 95/100
-쿨타임: 5분
이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인데?
그저 평범한 귀환서 한 장이 필요했을 뿐인데 무려 포탈마법이 걸려있는 귀환석을 받았다.
그것도 횟수가 95번이나 남은 아이템이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꼬마 영주의 말.
"잭슨."
"……?"
"이제부터 잭슨을 동쪽에 있는 개척마을의 촌장으로 임명할게."
"…예?"
"열심히 일해 봐! 거절은 거절할게!"
[윈디아의 동쪽. 이름 없는 개척 마을의 촌장이 되셨습니다.]
"?????"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