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49화
제49화
사실 필요 없을 줄 알았다.
이건 정말 쓸모없는 스킬이니 그냥 묵혀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이것은 유용한 스킬이 맞았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불타는 화염 검!!"
쐐애애액-!
거대한 화염의 검기가 이곳으로 날아왔다.
물론 해 오름으로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고 나서는?
막고 나서 덤벼오는 저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는 그렇다 쳐도 수정이는 힘들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어떻게?
이렇게.
확!
"어…?"
"콸…?"
김수정의 동공이 찢어질 듯 커지며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왜?' 라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라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비명이 이어졌다.
"꺄아아아아아악~!!!!"
"콰라라라라라라~!~!"
많이도 올라왔나보다.
메아리가 제법 크게 울려오는 것이 듣기 좋았다.
최불룡과 수하들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이긴, 이런 짓이지.
콰아앙!
나는 검기를 걷어차 폭연을 일으키며 절벽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펄럭이는 옷 소리가 강풍과 만나 큰 소리를 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서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파라라라라락!
…생각보다 공기 저항이 심한데?
가상현실이 이렇게 실감날 줄은 몰랐다.
나는 첸이 만들어주었던 가면을 쓰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주변을 보니, 나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콰라라라라라라~!!"
사실 미안함부터 들어야 하는데… 둘이서 저러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질 뻔했다.
비명으로 하모니를 맞추는 사람과 개라니. 웃긴 것은 제법 듀엣이 잘 맞다는 것이었다.
근데 케르야 왜 오줌을 싸고 있는거니….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폭소를 터트립니다.]
…썩을 놈.
아무래도 이놈이 날 여기로 안내한 이유는 이런 꼴을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근데, 왜 오줌이 이리로 향하지?
저리가! 저리가라고!!
네 이노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배꼽을 부여잡고 쓰러집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얼른 거미줄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안다. 이놈아아아앍!"
입을 벌리자 엄청난 공기가 들어왔다.
…제기랄. 말도 못하겠네.
다행스럽게도 오줌이 입으로 들어오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거미줄을 발사했다.
취익!
오른손에서 발사된 거미줄이 그녀의 어깨에 닿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줄을 잡아당기며 그녀를 내 쪽으로 끌고 왔다.
바람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김수정은 자신을 당기는 힘을 느꼈는지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의외로 강심장이네.
보통 여자들 같았으면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거나 몸을 제대로 못 가눴을 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역시 예비 며느리 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날 꽉 붙잡아라!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네…!"
그녀가 있는 힘껏 자신의 목을 꽉 붙잡았다.
어느새 바닥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부딪히면 100% 사망이라는 생각에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취익!
거미줄이 절벽에 있는 튼튼한 바위를 붙잡았다.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반동에 팔이 찢어질 것 같았다.
"크윽!"
"꺅!"
피핏…핏…!
거미줄도 내구성에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조금씩 끊어지기 시작하는 거미줄을 보며 이를 악 물었다.
"멈춰라!"
"제발!!"
잠시 후.
거미줄이 가까스로 멈추었다.
"…후우."
"겨우 살았네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 긴장했는지 몸에 힘이 주르륵 빠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어맛!"
"콸…?"
품에 안긴 그녀가 실수로 새장을 놓고 말았다.
떨어지는 케르를 보며 눈동자가 저렇게 컸구나 싶었다.
나는 재빨리 거미줄을 뻗어 케르를 구해냈다.
김수정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케르야~!"
* * *
"니들은 뭐하는 놈들이야!!"
최불룡이 눈에서 엄청난 안광을 뿜어내며 분노했다.
화염의 광전사를 상징하는 불타는 눈이 마치 지옥에 나오는 악귀의 눈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로써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다잡은 고기를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럴 수밖에.
"후우, 영감탱이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던 건 사실이지. 어쨌든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큰형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좀 더 잘하겠습니다!"
"그래, 우선 흩어져서 영감이랑 여자가 떨어뜨린 아이템부터 찾아보자."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고개를 숙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마라. 내 복수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렇게, 최불룡과 나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 * *
"콸!"
"아무래도 여기는 올라가는 길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음, 그런 것 같구나."
낭떠러지로 떨어진 우리들은 함께 주변을 수색하며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올라가는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립된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곳에서 나가려면 스스로 죽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난 이곳에서 나갈 수 있거든."
"네…? 혹시 귀환 주문서를 가지고 계세요?"
"귀환 주문서…? 그게 뭐냐."
수정이는 내게 귀환 주문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귀환 주문서는 지정해놓은 마을이나 장소로 이동 할 수 있게 해주는 마력이 담긴 종이였다.
찢으면 순식간에 몸이 사라지며 지정된 장소로 이동 할 수 있는 고가의 아이템이라고 했다.
"호오, 있으면 편리하겠구나."
"편리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만큼 비싸죠. 우리나라로 치면 비행기 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포탈 마법을 배울 수 있는 마법사도 인기 직업 중에 하나예요. 돈을 받고 원하는 지역이나 마을의 포탈을 열어줄 수 있거든요. 사냥도 곧 잘 하는 편이고 부수입도 올릴 수 있으니 인기가 제일 높아요."
"음, 그렇겠구나."
그럴 만도 하다.
아마 나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마법사를 택했을 지도.
제기랄.
마법사로 전직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아버님,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음? 말해보거라."
"아버님 혹시 무슨 성애자세요?"
어째 질문이 좀 야시꾸리한데….
나는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커험, 나는 그, 그러니깐 어… 스타킹이…."
"푸훕. 어떤 성호를 받았냐구요! 상태창에 나오잖아요!"
아, 이놈의 음란마귀!
순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큼! 국자 성애자라고 되어 있구나."
"세상에."
젠장. 국자 성애자라니.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참 그랬다.
근데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혹시 그런 메시지 보시지 못하셨어요? 예를 들면 전설 속에 숨겨진 진정한 전설이라던가…."
뚱딴지같은 그녀의 말에 잠시 머릿속을 헤집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직할 때 그런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봤던 것 같구나."
"와! 대박!!"
그녀는 아까보다 더 놀란 표정이 되어있었다.
"아버님 지금 사람들 사이에 엄청 유명한 거 아세요?"
"내가…?"
"네, 지금 난리에요. 유니온에서 아버님 찾으려고 혈안이에요. 현상금도 걸었다구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현상금이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얼마나 걸었는데?"
"50억이요."
"뭐??"
미친놈들이군. 50억이라니.
내가 평생을 벌었지만 아직 그만한 돈은 갖지 못했다.
근데 그런 돈이 지금 나한테 걸려있다고? 왜…?
"아버님, 지금 이 사실을 누가 또 알고 있어요?"
"지금은 너뿐이지."
"그럼 이제부터 아무한테도 얘기하지마세요. 나중에 제가 현상금 챙기게요. 호호호."
흠, 왠지 알려지면 엄청 귀찮아질 것 같은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정체를 숨기라고 말합니다.]
네놈이 간만에 옳은 소리하는구나.
"지금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구나. 나중에 너한테 기회를 줄 테니 지금은 비밀로 해다오."
"알겠어요. 약속한 거예요?"
"그래. 알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죠?"
"올라가야지."
"아까처럼 거미줄을 쓰실려구요?"
"아니. 기어서 올라갈 거다."
"네…? 어떻게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뭐, 이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니깐 놀라거나 그러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곧장 벽을 짚으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파이더 클라이밍을 시작합니다.]
턱. 턱.
"…이것도 스킬이에요?"
"그래."
"언제 얻으셨어요?"
"아까 전에."
"……."
30분 뒤.
나는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즉사를 면하기 어려운 벼랑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스파이더 클라이밍 덕분에 흔들리지 않았다.
…진짜로 이걸 쓰게 될 줄이야.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정이는 어느새 조그만 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4시간이 헛수고였다는 망발을 했던 것을 반성했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깊이 떨어 진거지?"
30분을 올라왔지만, 아직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쉴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30초당 마력을 1씩 잡아먹는 <스파이더 클라이밍> 때문이었다.
그때 이채가 어렸다.
"저게 뭐지?"
구름 낀 절벽에 붙어있는 거대한 철문이 하나 있었다.
그 앞에는 사람이 발 디딜만한 넓은 공간이 보였다.
나는 우선 급한 대로 그곳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얼른 쉬지 않으면 마력이 바닥 나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철문 앞에 이를 수 있었다.
"음."
철문에는 용감한 기사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들이 괴물들과 싸우는 용감한 모습이 양각되어 있었고, 나는 그 장엄한 모습에 잠시나마 넋을 잃고 말았다.
…대단하구만. 누가 이런 것을 만든 거지?
예전에 가족들이랑 러시아로 갔을 때 보았던 샹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조각상들이 가득 있었다.
모두 기사들의 조각상.
그렇게, 하나씩 구경을 하는데 유독 한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이건…."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한 기사의 조각상.
꽤나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이 조각상은 유일하게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조각상의 밑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 바람의 용사들 이곳에 잠들다.
"여기가 무덤이었나?"
의외였다.
이런 곳에 무덤이라니.
도대체 누가 여기에 무덤을 만들었을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깜짝 놀랍니다.]
"응? 넌 또 왜 그러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석판을 읽어보라 말합니다.]
"석판?"
나는 곧장 조각상의 밑에 새겨진 석판을 읽기 시작했다.
[이곳은 바람의 기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
잠들어 있던 바람의 왕이 깨어나 자신을 되찾는 날. 우리는 또 한 번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이다.]
"바람의 왕…?"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