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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48화 (4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48화

제48화

꽁꽁 묶인 채 나무에 매달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이가 갈렸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옆에는 새장에 갇힌 케르가 답답한지 몸부림치고 있었다.

얄궂게도, 그들의 밑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으읍! 으으읍!!"

"콸! 콸콸!"

떨어질까 봐 겁먹은 그들.

가상현실 인지라 실제 같은 고통은 없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고통은 존재했다.

나는 앞에 있는 최불룡을 노려보았다.

이놈이 감히….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구마 같은 상황을 싫어합니다.]

"원하는 게 뭐냐."

"히야~ 말이 잘 통하는데? 우리가 원하는 게 뭐겠어?"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하는 놈의 얼굴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최대한 참았다.

대화로 해결 할 수 있으면 그러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이냐?"

"그냥 죽이면 섭하지~ 우리가 당한 게 얼만데, 안 그래? 뭐 하냐 얘들아!"

부하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때보다 2배나 늘어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게 놈들의 최정예인 듯 했다.

…해 오름을 써야겠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태양의 보법을 밟았다.

해 오름이 자신의 발끝에서 발현되려 했지만,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

제법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

최불룡이었다.

녀석은 수정이가 묶여 있는 나무에 서서 밧줄을 대검으로 내려칠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 불꽃 발차기는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 여자가 활활 구워 지는 게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뿌드득.

…이 비겁한 새끼가.

오늘 몇 번이나 이를 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임플란트를 다시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읍! 으으읍!!"

"크르르르!"

몸서리치는 수정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술이 깨물려진다.

케르는 으르렁거리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최불룡이 말했다.

"한 번 잘 살아나 보라고. 뭐해 새끼들아! 공격해!"

"이야아아아아!"

빌어먹을….

놈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였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인 실력을 믿었다. 해 오름이 없어도 이런 놈들 쯤은 단번에….

[26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

빠르다. 이놈들 예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하지만 더 당황한 것은 나를 베고 지나갔던 '네불이'였다.

"영감탱이 그새 레벨 업 했나본데? 데미지가 이거밖에 안 들어가?"

그 말과 동시에 수십의 칼날 세례가 나를 덮쳤다.

나는 최대한 피하기 위해 미간에 힘을 주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0.1초 정도 느려지는 세상이 보였다.

…이건?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실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채채채채채채채챙-!

"……?!!"

무기를 내지르던 놈들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감각이라….

손에 쥔 단검을 고쳐 쥐며, 전과는 다른 감각에 전율이 흘렀다.

[사도 버프를 받았습니다.]

[30분 간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나는 폭발하는 힘을 느끼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슈슛!

[살인자 '삼십일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나는 그들의 사이를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쳐내고, 어떤 것은 피해내며, 앞에 있는 녀석들부터 사정없이 베었다.

허벅지부터 시작해 가슴의 갈비뼈까지, 사정없이 찌르고 베고, 또 베었다.

서걱!

탓. 서걱! 서걱!

팟. 푹! 푹푹! 푹!

이어지는 끔찍한 소리들.

하지만 더 큰 것은 그들의 비명이었다.

"끄아아아악!"

"아악! 내 다리!"

"젠장! 잡아!"

나는 메시지를 보지도 않고,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눈앞에 보이는 허벅지를 피아 구분 없이 찌르고, 또 베었다.

0.1초의 초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에 나는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했던 것을 반성했다.

…이건 정말 얻길 잘했군.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능력치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있음에 감사했다.

지금의 내겐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상황!

탓. 푹! 푹푹! 서걱-!

손에서 펼쳐지는 관절기와 단검술에 무자비하게 죽어나갔다.

발차기 또한 멈추지 않았다.

파라락! 빠악!

[살인자 '사십칠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살인자 '칠불이' 님을 살해하였습니다.]

멀리서 최불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새끼들아! 그것밖에 못해?! 똑바로 하란 말이야!!"

지랄하네.

이미 난전에 들어간 그들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아마 녀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나 뿐일 것이다.

초감각으로 올라간 청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영감!!"

순간 최불룡의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다시 한번 대검으로 밧줄을 끊겠다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젠장. 저놈 때문에 되는 일이 없네.

"그 칼 쓰지 마! 쓰지 말라고!! 시이벌!! 내 말 안 들려?!"

"저 망할 놈이…."

나는 벌써 세 번이나 이빨을 깨물었다.

오랜만에 열리는 뚜껑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최불룡을 노려보며 단검을 땅에 꽂았다.

"이제 순순히 잡히시지요. 영감님."

웃으며 다가오는 네불이의 얼굴.

하지만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발차기로 그들을 제압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파라라락! 빠박! 빡!

"…컥?!"

다가오던 네불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입을 떡하니 벌렸지만, 나는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관절기와 발차기를 섞으며 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사자후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워어어엉!"

[사자후의 기운이 눈앞의 대상을 위압합니다.]

"젠장! 몸이 안 움직여!"

"어서 공격해!"

"끄아아악!"

[살인자 '팔십한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살인자 '오십두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살인자 '육십육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 * *

불룡파의 부두목 한불이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단검을 쓰지 않았음에도 영감의 기세가 전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저 철저하게 훈련된 듯한 관절기와 날렵한 발차기가 충격적이었다.

'뭐하는 영감탱이야 대체? 예사 실력이 아니잖아…?'

저번에는 한방에 죽어버리니 당황해서 영감의 실력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영감의 진정한 실력을.

'이 정도 움직임이 레벨 빨이 아니라 영감 능력이라면… 현실에서는 무조건 큰형님보다 위… 아니, 대한민국 최고의 주먹이다.'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한불이가 뒤로 빠지며 최불룡을 바라보았다.

* * *

최불룡은 한불이의 신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자신과 동생들은 많은 노력을 해왔었다.

서로의 서열을 다시 한번 가려보며 조직 내에서 대련은 물론, 밖에서 실전 경험도 쌓았다.

영감탱이도 레벨업을 했겠지만 동생들의 스파르타 훈련은 당해내지 못하리라.

실전과 가상현실은 다른 법이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기술적인 측면은 우리에게 당할 수 없으리라.

그리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실력 차이가 있을 줄이야.'

"빌어먹을. 저 영감탱이 도대체 뭐하는 작자야? 사로잡아서 내가 당한 것처럼 똑같이 해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 * *

나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날렸다.

무아에 빠지며, 내 앞을 가로 막는 녀석들을 차례대로 쓰러트려갔다.

그때 또 한 번 최불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감! 싸우지 마! 싸우지 말라고!! 이 여자랑 똥개 죽는다! 어?! 진짜 죽는다고!!"

"저 새끼가 진짜…."

또 한 번 대검을 밧줄에 대며 자신을 위협하는 최불룡이 보였다.

이거 제대로 뚜껑 열리는데….

몇 십 년만이지?

나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저 새끼를 죽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수십 차례 떠올렸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림자놀이를 쓰라고 말합니다.]

그림자놀이라….

그러고 보니 그 스킬이 있다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하긴 한번 밖에 사용 못해봤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곧장 한 녀석의 칼날을 피해냈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쥐새끼 같은 영감탱이!!"

일그러지는 육불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녀석, 원래 이렇게 못생겼었나?

"모두 스킬을 써! 분노의 돌진!"

제기랄.

어쩐지 안 쓴다 싶더라니. 이제야 스킬을 쓰려는 모양이다.

한 녀석이 외치니 모두가 '분노의 돌진'을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스킬 이름을 외쳤다.

"혜안!"

[혜안은 아직 쿨타임 중입니다.]

"염병하네."

어쩔 수 없이 본능에 몸을 맡겨야했다.

화려하게 몸을 움직이고,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칼과 주먹의 틈새를 찾아 피해 다녔다.

사자후가 쿨타임이라 모두 다 피할 수는 없었지만, 급소는 빗겨 맞을 수는 있었다.

실제 현실에선 불가능한 동작들을 가상현실이 가능케 하고 있었다.

"미친…!"

"사기 아니야?"

"영감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제대로 좀 맞아라. 제발!!"

…망할 놈들 같으니라고.

나라고 무적은 아니다.

어느새 생명력은 15%까지 떨어져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때, 눈에 이채가 흘렀다.

저 멀리 그림자 단검이 보였기 때문이다.

파라라락-!

발차기로 공간을 확보한 나는, 그림자 단검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무기 쓰지 말랬잖아! 시발 내 말 안 들려?!! 죽고 싶어?!"

더럽게 시끄럽네. 진짜.

나는 단검을 땅에 꽂으며,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본 최불룡은 웃으며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하하하! 영감탱이 드디어 포기했나보구만! 크하하하!"

언제 들어도 짜증나는 목소리를 가진 놈이로군.

잠시 후에 보자고.

개새끼야.

"그림자놀이."

슈우우욱!

다시 한번 들어선 어둠의 대지.

언제 들어와도 오싹한 느낌에 발끝이 저려왔다.

나를 대신해 공격을 받고 있는 그림자 분신을 올려다보며 나는 태양의 보법을 밟았다.

화륵.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하는 양발과 동시에 최불룡의 그림자를 찾았다.

모든 것이 칠흑으로 뒤덮인 세상은 오로지 내 두 발로 헤쳐 나가야 했다.

마침내 나는 최불룡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었다.

슈우우욱-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나타난 곳은 최불룡의 뒤였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젖히며 광소하고 있었다.

"크하하하!"

"야."

"크하하하하하!"

"야!!"

"뭐, 뭐야?! 시벌?!"

"닥쳐라."

콰아아아아앙-!

"끄아아악!"

뭔가 데미지가 안 나오는데…?

"크윽! 영감탱이 정말 더럽게 강하네. 하지만 나도 이번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미친놈.

그런 준비를 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저 멀리 폭발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부하들이 보였다.

쳇, 벌써 분신이라는 걸 들킨 건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우선 도망칠 것을 추천합니다.]

…어쩔 수 없지.

생명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밧줄을 끊으며, 수정이와 케르를 품에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케르는 새장에 갇혀 있어서 달릴 때마다 덜컹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버님,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인사는 나중에. 뛰거라!"

"네!"

"콸!"

우리들은 산으로 향했다.

한참을 도망쳤지만 결국 중간쯤에 위치한 벼랑에 몰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들이 서있는 곳은 절벽의 끝자락.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낭떠러지가 있는 곳이었다.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후우, 거머리 같은 놈들."

"허억, 우리가 할 소리다. 영감. 허억. 이제 순순히 잡히시지?"

"어이, 도룡뇽파."

"불룡파다!!"

최불룡의 얼굴이 시벌개지며 노발대발했다.

"너라면 순순히 잡히겠냐? 이 돌대가리 같은 놈아?"

"이 망할 영감탱이가!!"

옆에 있던 김수정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저놈을 도발해서 어쩌실려구욧?!"

그녀는 제법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니 포기한 것 같았다.

최불룡이 말했다.

"어이, 영감. 이프리트의 팔찌 가지고 있지?"

"이쁜이들 팔찌?"

"이프리트 팔찌!!"

"그래. 이쁜이들 팔찌. 가지고 있다. 근데 왜."

"그거 주면 살려줄게."

"…지랄하네."

화가 난 최불룡이 죽일 듯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크윽. 그럼 죽어라!! 불타는 화염검!!!"

쐐애애액-!

커다란 반월을 그리며 날아오는 화염의 검기가 보였다.

수정이는 이제 끝이구나 싶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왔으니까.

"있다가 보자. 수정아."

"네…?"

나는 그녀를 절벽으로 밀어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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