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47화
제47화
한편, 나는 바닥에 앉아 라그너스에게 얻은 아이템들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어둠의 물든 구슬 조각 x4]
등급: ?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사악한 힘의 파편이 느껴진다.
*아직 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말이지…."
이것을 처음 얻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저 별거 아닌 잡동사니 정도로 생각했는데, 라그너스가 이것을 이용해 고르바를 조종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때가 되면 알려줄 테니 일단 가지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놈은 이게 뭔지 아는 모양인데… 뭐, 이유가 있겠지.
나는 반대 손에 들려진 해골 지팡이로 시선을 옮겼다.
[라그너스의 미쳐버린 해골 지팡이]
등급: 영웅
내구도: 150/150
레벨 제한: 120
착용 제한: 유저 '잭슨'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단, 1회에 한해 양도할 수 있습니다.
- 마법공격력: 520
- 지식 +50
- 최대 마력 2배 증가
- 미쳐버린 고블린 제사장 라그너스가 자신의 지팡이를 인간들의 피로 담금질하여 마력을 상승시킨 저주받은 원혼의 지팡이.
*스킬: '광란의 어둠' [쿨타임 6시간]
-지팡이를 바닥에 꽂으면 자신이 가진 모든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주변에 있는 모든 적을 향해 하나의 어둠 마법을 쿨타임 없이 난사합니다.
[현재 저장된 어둠의 마법 : 없음]
"아까 그 화살 세례가 날아 왔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만."
끝없이 나오던 어둠의 화살들을 다시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에 고개를 저었다.
"진짜 죽을 뻔했단 말이지."
누워있던 케레노스가 말을 걸었다.
"아직 멀었습니까. 영감님?"
"아직 멀었다."
"영주님께 안 가실 겁니까?"
"시끄럽다. 이놈아! 이거나 들고 있어라."
나는 케레노스에게 어둠의 물든 구슬조각을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앗쌀라 알라미꿈!"
"……."
이게 아닌가?
녀석을 향해 해골 지팡이를 뻗으며 주문을 외쳤지만, 세뇌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주문을 바꾸었다.
"으라차차 케다바라! 열려라 참깨!"
…쯧, 역시 안 되는 건가.
케레노스는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터트리며 구슬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 되겠습니다. 전 먼저 영주님께 가야겠습니다."
"벌써 가냐? 의리 없는 놈. 쯧쯧."
"영감님 어차피 한참 더 있으실 예정이잖아요."
부정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진짜 좀 걸릴 것 같았으니까.
나는 곧장 케레노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멀어지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섭섭함이 밀려온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오시면 꼭 저와 영주님을 찾아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망할 놈. 쯧.
나는 그를 향해 무심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다시 인벤토리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하나가 더 있었는데 어딨더라…."
한참이나 뒤진 끝에 마침내 찾고 있던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익숙한 손길로 정보 창을 열었다.
[자이언트 퀸 스파이더의 내단]
등급: 영웅
로크산맥의 진정한 여왕인 자이언트 퀸 스파이더의 힘이 담긴 내단. 섭취 시 거미의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능력치 초감각 생성.
- 스킬: 스파이더 클라이밍 생성.
- 거미 독에 대한 내성 +50%
"호오."
킹 스파이더의 내단처럼 거미줄을 충전해야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시간을 아꼈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상황!
"초감각…? 이건 뭐지."
이 게임, 참 어렵다.
정말이지 모르는 것투성이었다.
한참 머리를 싸맨 끝에 내린 결론은 아마 내가 가진 감각 능력치랑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뿐.
하긴, 이렇게 보기만 해서는 정확히 어떤 스킬이고 어떤 능력인지 알 길은 없었다.
나는 직접 먹어보기로 했다.
"공진단은 아니겠지…?"
하필이면 공진단이랑 같은 색깔이라니,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몸에 좋은 것이라면 먹어야 한다.
난 오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거 엄청 쓸 것 같은데….
"그래도 미도가 시집가서 증손주 낳는 것까지는 봐야 하니 어쩔 수 없지."
나는 공진단… 아니, 거미왕과 거미여왕의 내단을 빠르게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였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맛없어 보여서 인상을 씁니다.]
4시간 뒤.
내단을 섭취해 무럭무럭 건강해진 나는 어느새 윈디아의 북문에 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고작 이따위 능력을 얻으려고 4시간이나 허비했다니… 에잉!"
[고탄력 거미줄][액티브]
등급: B
자신의 몸에 고탄력 거미줄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중지와 약지로 손바닥을 누르면 발사되며 꽉 누르면 계속해서 거미줄이 발사 됩니다.
거미줄은 적을 속박할 수도 있고 자신을 구원하는 밧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미줄을 모두 소모한다면 거미줄을 직접 먹어야 충전이 가능합니다.
- 거미줄 950/1000
마력 소모: 1 / 쿨타임: 없음.
*거미줄에 맞은 적은 이동속도가 10% 하락한다.
[스파이더 클라이밍][패시브]
등급: 영웅
자신의 몸에 미세한 거미의 돌기가 자란다.
이 돌기를 이용해 어떤 곳이든 붙을 수 있으며, 붙어서 움직이는 동안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마력 소모: 30초당 1 (벽에 오래 붙어있을수록 지속적으로 마나가 감소합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림자 단검과 같은 영웅 등급이라서 꽤나 괜찮은 스킬이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걸 어따 쓰라는 건지."
직접 거미줄도 쏴보고 벽에도 올라가보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하등 쓸모가 없는 스킬이었다.
물론 없는 것 보다야 있는 게 낫긴 하지만, 도저히 쓸 만한 곳이 없었다.
말 그대로 계륵과 같은 스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대체…."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40 [제법하는] 날씨 요리사
성호: 국자 성애자(星愛者)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
칭호: 고블린 학살자, 뮬란의 영웅, 정의의 연쇄 살인마, 스파이더맨
힘114(+70) / 민첩114(+70)
건강18(+95) / 지식38(+70)
솜씨58(+0) / 초감각64(+0)
능력치 포인트: 0
*화염 속성 내성 +50%
*거미 독 내성 +100%
내단을 먹었더니 감각 능력치가 초감각으로 바뀌어버렸다.
아니, 바뀐 것이 아니라 더욱 상위의 능력치로 진화했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 초감각 : 미각, 촉각, 후각, 청각, 시각을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적의 공격이 자신의 1M 반경 안에 들어올 경우.
50의 초감각 능력치 마다 0.1초 정도 적의 공격을 느리게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좋은 거라고 해야겠지.
적의 공격을 느리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길었을 때의 얘기다.
"0.1초라니. 누구 코에 갖다 붙이라는 거야."
무려 3시간이 걸렸다.
내단을 흡수하는 동안 움직이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떴었다.
그렇게 가부좌를 튼 채 3시간이나 움직이지 못했는데 이 모양이다.
"시험해본다고 30분, 내려오는데 30분… 아깝다 아까워."
안 그래도 나이가 들어서 하루하루가 소중한데 4시간이나 헛짓거리를 했으니 이런 낭패가 없었다.
"하아…."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거대한 풍차를 보며 실망감을 털어내는데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더~!~!!"
"드레인…?"
저 멀리 드레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왜 저렇게 뛰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급해보였다.
마침내, 그가 숨을 헐떡이며 내 앞에 도착했다.
"브라더. 미스 킴이… 허억."
"수정이? 수정이가 왜?"
"납치… 헉, 납치!!"
"…뭐?"
나는 재빨리 수정이에게 귓속말을 보내 보았다.
- 잭슨 : 수정아, 어디냐.
[유저 '크리스탈' 님이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드레인의 말이 이어졌다.
"불… 헉, 불룡파라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럴 줄 알았다며 한숨을 쉽니다.]
"헉, 동쪽 숲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이놈들이 기어코….
망할 놈들이 열어선 안 되는 문을 열어버렸다.
나는 다짐했다.
이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릴 것이라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리라 다짐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나는 서둘러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의 이름은 유르니아 숲.
거대한 유르니아 산맥과 절벽을 등지고 있는 울창한 숲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끔씩 슬라임들이 튀어나왔지만, 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숲을 헤치며 도착한 곳은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영감님 잘 지냈습니까?"
육불이.
저 망할 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가 갈렸다.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시비부터 걸어왔다.
"용감하시네요? 혼자 올 생각을 다하시고?"
이놈이….
"저번에는 아주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변태로 낙인이 찍혔거든요."
어느새 다가온 육불이가 어깨를 밀치려했다.
하지만, 사람을 보고 덤볐어야지. 개자식아.
타탓. 탓. 탓. 꽈아악!
"아악! 아아악!! 내 팔! 내 팔!!"
육불이가 자신의 팔을 때리며 풀어달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난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팔에 힘을 주며 더욱 세게 조이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주변에 있던 놈들이 전부 칼을 뽑아 들었다.
스릉! 스릉! 스릉!
"이 미친 영감탱이가!"
"어서 놓지 못해?!"
"제 정신이야!!"
그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며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면상을 걷어차 참교육을 시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수정이가 인질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어디 있냐."
"……."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내 눈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살기에 그들이 꼴깍, 침을 삼키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영감, 오랜만이야?"
최불룡. 이 개자식….
"수정이 어디 있냐."
"수정이? 아, 그 여자 이름이 수정이였어? 그 여자라면 저어기 저쪽에."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이 옮겨갔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수정이의 모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