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43화
제43화
"아니, 뭔가 오해가 있…."
"오해는 무슨 오해! 받아라 이 사악한 고블린! 윈드 스트라이크!"
바로 앞에 있던 기사가 올려치기를 하는 것이 보였다.
가까스로 피해내었지만 피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 뒤이어 불어오는 바람의 검기가 팔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피피피핏.
[25의 바람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33의 바람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23의 바람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20의 바람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이놈이….
순간, 눈이 사납게 변했다.
재빠르게 접근해 한 대 때리려 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이 자는 내가 맡겠다. 너희들은 뒤에 있는 라그너스라는 고블린을 공격하도록."
"킥? 케레노스?"
"날 아는가? 고블린 주제에 제법이구나.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와 동시에, 케레노스의 창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단검을 내밀었다.
채앵!
…큭, 역시 보통이 아니군.
들고 있던 그림자 단검에서 불꽃이 튀는 것이 보였다.
하마터면 한방에 심장을 꿰뚫리며 절명을 할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법이구나. 어디 이것도 막아 낼 수 있나 볼까? 휘몰아치는 바람!"
이름 그대로 휘몰아치는 창의 세례가 나를 향해 퍼부어졌다.
십여 개로 분열한 창끝이 빠른 속도로 급소를 노려왔다.
제기랄.
말할 틈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채채채채채챙. 챙챙!
케레노스는 강했다.
예상 추정 레벨은 최소 80이상.
몬스터가 아닌 지능이 있는 NPC임을 감안한다면 체감 레벨은 거의 100이상이었다.
문제는 해 오름도 쓰지 않은 내가 녀석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핏. 피핏. 피피핏.
처음엔 어떻게 몇 번 쳐내었지만 점점 타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너무나 빠른 공격에 나는 금세 숨을 헐떡였다.
"허억… 야."
"시끄럽다. 돌개바람!"
이 망할 놈이 진짜!
* * *
한편 라그너스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킹 스파이더를 찾으러 왔는데 인간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으니 웃음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윈디아의 기사들이구나. 킥킥.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절망의 늪지대!"
주문과 함께 지팡이를 휘두르자 앞에 있던 땅이 늪지대처럼 푹푹 꺼지기 시작했다.
절망의 늪지대는 고통의 늪의 상위 마법. 범위가 더욱 넓고 광범위했다.
올라오는 검은 손들이 바닥을 수놓았다.
콰득- 콰드득-
검은 손은 땅을 뚫고 올라오며 마치 지옥에 피어있는 꽃들처럼 땅을 헤집고 있었다.
결국 제일 앞에 있던 기사가 피하지 못한 채 잡힌 것이 보였다.
"으악! 살려줘!"
쿠콰카카-
검은 손은 기사를 끌고 늪지대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스르륵 하며 닫혀버리는 절망의 공간.
그야말로 절망을 선사하는 위력에 라그너스의 얼굴엔 광소가 만개했다.
"킥킥킥킥!!"
"크윽!"
윈디아의 기사들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지만 덤벼들지 못했다.
그들은 바람을 타고나는 자들.
화염 마법에 취약하니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 뜨거운 불의 고통을 느껴보아라…!"
라그너스의 주위로 여러 개의 불꽃 덩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염의 격노!"
일제히 비산하며 쏘아지는 불꽃의 비들이 기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듣기 좋은 폭음과 함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러오자 라그너스는 더욱 신이 났다.
"캬하하하! 아주 좋구나! 아주 좋아!"
콰콰콰쾅!
"끄아아악!"
"크아악!"
"아아악!"
기사들이 불꽃에 얻어맞고 비명을 질렀다.
라그너스는 이참에 윈디아의 기사들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와라. 자이언트 퀸 스파이더…!"
* * *
쿵!
쿠웅!
쿠우우웅!
합을 주고받고 있던 나와 케레노스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싸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왠지 불길한데.
전에도 한번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예감은 단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가 불길함을 먹고 자라났고,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시이이이이잇!!!!!"
푸드드득.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고성에 놀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래, 이 소리는….
콰자자자자자작-!
-Lv.120 [챔피언]자이언트 퀸 스파이더
"우라질…."
짧지만 모든 것이 함축된 소감이었다.
제기랄.
킹 스파이더보다 더 큰 것을 보니 암컷인 것 같았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케레노스를 포함한 윈디아의 기사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어린 영주까지.
모두가 그 압도적인 크기의 거미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시이이이잇!!"
퀸 스파이더가 거대한 앞다리를 휘두르며 라그너스를 향해 달려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날아가버리는 기사들은 흉악한 얼굴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으악!"
"마, 막아!"
하지만 기사들은 막지 못했다.
퀸 스파이더가 몸을 웅크리자, 자연스럽게 거미의 등에 올라타는 라그너스가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또 한마디 내뱉었다.
"…염병하네."
이보다 더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라그나스가 말했다.
"인간들을 모조리 거미줄로 묶어버려라. 퀸 스파이더…!"
"시이이이잇!"
저번에 만났던 킹 스파이더보다 훨씬 크고 빠른 속도의 거미줄이 뻗어 나왔다.
원래 거미는 암컷이 더 강한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포효하는 거미줄이 하늘을 수놓았다.
촥. 촥. 촥.
"이, 이게 뭐야!"
"제, 젠장!"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거미줄이 붙고 있었다.
케레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윽, 제길!"
녀석은 창날로 거미줄을 끊어보려 했지만 잘 끊어지지 않는 듯했다.
퀸 스파이더는 앞발로 거미줄을 당겨버렸다.
"으아아아!"
"으아악!"
"살려줘! 아아악!"
어느새 윈디아의 식구들은 사이좋게 한곳으로 모여 있었다.
모두 같은 거미줄에 꽁꽁 묶인 것이, 마치 고무줄에 묶인 나무젓가락 마냥 우스꽝스러웠다.
그곳엔 꼬마 영주 녀석도 포함 되어있었다.
에드워드가 외쳤다.
"살, 살려줘! 누가 나 좀 살려줘!"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구마 전개에 이마를 찌푸립니다.]
…저 꼬마 놈은 대체 왜 온 거지.
여전히 시끄러운 꼬마 놈이었다.
아까는 당당하게 호통을 치는 것이 제법 영주 같더니, 이런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어린 애나 다름없었다.
하아, 짐 덩어리 꼬마구만.
"인간들은 모조리 죽어야 한다! 모두 불에 태워주마! 캬하하!"
라그너스가 광소하며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녀석의 뒤로 다시 불꽃 덩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둘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두둥실 떠다니기 시작하는 불꽃의 악마들.
아까 전 기사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화염의 격노'의 전조였다.
…구해줘야겠지?
사실 다짜고짜 자신을 공격한 게 괘씸해서 지켜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인 것 같으니 구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죽이지 않겠다. 고통스럽게 하나씩 맛 보아라…!"
라그너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첫 번째 불꽃이 한명을 향해 쇄도했다.
"제길!"
"으아아! 안 돼!"
"으아악!"
그들은 거미줄을 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꼬마 녀석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기절해버린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그들의 앞에서 춤을 추었다.
"비천기상무(飛天氣象舞)"
"……?"
케레노스와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라그너스도 마찬가지.
"지그마…?"
라그너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눈 감고도 출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춤사위가 내 몸에서 펼쳐졌고 나의 발이 자연스럽게 태양의 보법을 밟으며 타오르는 화염의 꽃잎과 함께 불꽃을 향해 날아올랐다.
"해 오름(日)"
콰아아아아앙!!!
폭연과 함께 비산하는 연기와 먼지.
이곳 미세먼지의 농도는 매우 나쁨이었다.
순식간에 불어오는 폭연에 모두가 눈을 뜨지 못했고 잠깐의 아우성 끝에 먼지가 걷히자 발에 태양을 머금은 지그마가 우뚝 서있었다.
"지그마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설마 날 배신할 생각은 아니겠지!"
시꺼먼 안광을 토해내는 것을 보니, 많이 화가 난 모양이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시끄럽다. 이놈아. 키잇."
그와 동시에 발끝에서부터 변신이 풀렸다.
드러나는 구두. 녹색의 바지. 하얀 셔츠에서 얼굴에 이르자 라그너스의 눈은 점점 휘둥그레졌다.
"네, 네놈은!!"
모두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다.
마침내, 완전한 모습이 드러나자, 케레노스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물었다.
"영감님?????"
"그래, 나다."
"아니 어떻게…."
케레노스는 어안이 벙벙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망할 놈. 고블린으로 변신해 있었는데 무턱대고 공격부터하다니. 네놈은 돌아가면 엉덩이부터 걷어차일 줄 알아라."
"하하… 영감님 맞네요. 이 말투 진짜 영감님 맞네."
라그너스가 분노했다.
"인간! 네놈, 인간이었더란 말이냐!!"
"이제 알았냐?"
라그너스의 이마가 더욱 깊게 패이며 주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피부는 좋은 편이었다.
미도랑 가끔 오이 팩을 같이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미도가 뭐라 그랬더라…?
아, 그래.
꿀 피부랬지.
"크르륵. 죽여버리겠다!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고블린 제사장 라그너스가 당신을 적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 이거지.
쏟아지기 시작하는 불꽃비의 향연.
하지만 내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롱이의 말에 따르면, 해 오름은 화염계열 최상위 속성인 태양 속성의 스킬인 바.
이깟 불꽃쯤은 내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다.
나는 날아오는 족족 신나게 불꽃을 걷어찼다.
콰앙! 쾅! 콰앙!
현란한 발차기에 넋을 잃고 쳐다보기 시작하는 윈디아의 기사들.
그들은 자신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케레노스가 중얼거렸다.
"…영감님 정정하시네."
콰앙! 콰앙! 쾅!
파라라락! 콰쾅!
"크으으윽! 퀸 스파이더! 저놈을 거미줄로 묶어버려라!"
"시이이이익!!!"
퀸 스파이더가 포효하더니 아까와 같은 넓은 범위의 거미줄을 발사했다.
역시나 엄청난 범위였다.
마치 어장에서나 쓰는 커다란 그물과 같은 느낌에 나는 고개를 저어 버렸다.
"영감님…!"
뒤에서 케레노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지 않은가.
나는 재빨리 킹 스파이더의 내단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미줄!
후룩! 후루룩!
- 977 / 1000
- 983 / 1000
- 999 / 1000
띵-!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내단이 모든 거미줄을 흡수하였습니다.]
"개꿀이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