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42화
제42화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질러 남들에게 비난을 받는 사람이 오히려 장수한다는 속담.
나 또한 이 속담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나쁜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
하지만 돌아오는 건 세상 유치한 욕들 뿐 이었다.
"바보! 멍충이! 말미잘! 똥개!"
"크흠, 영주님 진정하시지요. 체통을…."
"멍텅구리! 돼지 코! 오크 코! 고블린 코!"
옆에 있던 케레노스가 꼬마 영주를 진정시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쯧쯧, 애한테 휘둘리기나 하고 말이야.
그렇게 코 시리즈는 계속되었다.
잠시 뒤, 에드워드가 사과했다.
"큼, 미안해. 아까 들었던 말들은 모른 척해줘."
그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아직 애니까 이 정도는 어른으로서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게 맞았다.
"괜찮습니다. 귀가 안 좋아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큼, 일단 이 문제는 다음에 또 말하기로 하자고, 우선 자네가 본 오크 마을에 대해 이야기해봐!"
"알겠습니다. 현재 오크 마을은…."
긴 설명이 이어졌다.
잠시 후.
나는 약간의 퀘스트 보상을 받고 케레노스와 함께 시내를 거닐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뭘 말이냐."
"다시 한번 오크 마을에 발을 들이시는 것 말입니다. 그곳은 윈디아에서도 금역으로 속해 있는 곳입니다. 위험 할 수도 있어요."
…이 녀석, 그래도 나를 걱정했던 모양이네.
"내 걱정하는 거냐?"
"걱정이 아니라 기우입니다."
"썩을 놈. 그런 걸 걱정이라고 하는 거다. 나는 괜찮으니 내가 말한 대로 준비나 잘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최정예 병사들로 모아오지요."
"그래. 있다가 보자고."
케레노스가 고개를 숙이며 다시 영주성으로 돌아갔다.
그때 김수정이 다가왔다.
"애기는 잘 끝나셨어요?"
"그래, 아무래도 또 혼자 가야 할 것 같구나. 미안하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기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걸요."
그녀는 생긋 웃고 있었다.
품에 안겨있는 케르가 큰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짜식이 주인도 못 알아보고, 떽!
"크르릉."
젠장. 맛있는 거라도 해줘야하나?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낄낄거립니다.]
"그나저나 드레인은 아직 안 온 거냐?"
"네. 한번 연락해볼까요?"
"아니다. 애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다녀오마."
그렇게 나는 다시 로크 산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편, 그들을 몰래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맞지? 그때 그 영감탱이."
"맞는 것 같은데요?"
그들의 정체는 바로 며칠 전 홀라당 벗겨진 채 뮬란으로 가는 굴욕을 겪었던 네불이와 육불이였다.
그날 그렇게 뮬란에서 변태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그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유저가 뮬란에 변태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올린 사진이 '아.스.라 커뮤니티' 상위권에 올라 얼굴이 다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함께 뮬란을 걸어다니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도망가기 일쑤였고,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눈을 가리기 바빴다.
그렇게, 그들은 완전히 변태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다.
"큭. 우리가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영감은 모를 거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될 겁니다."
현실에서도 고통은 끊이지 않았다.
불룡파 식구들이 먹을 음식이 필요해서 마트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자신들을 알아보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 아닌가!
결국엔 그냥 장을 보러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인상이 험악해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데 이제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치스럽기만 했다.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항상 마스크도 쓰고 다녔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복수를 다짐해왔다.
반드시 복수하리라.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영감탱이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리라!
마침 큰형님의 강해지라는 지시도 있었고 계기도 있었으니, 두 사람은 밤을 새워 가며 레벨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레벨은 60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불룡은 혼자 다녀오겠다며 잠시 떠나갔다 오더니 80이 되어 돌아와 있었는데 어디서 얻었는지는 몰라도 강력한 방어구도 함께였다.
그렇게 그들은 복수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큰형님께 가자."
"알겠습니다. 형님."
그들의 눈에서 복수의 불꽃이 타올랐다.
* * *
나는 어느새 오크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오는 길에 거미들도 때려잡아 레벨업도 두 번해서 32레벨이 됐다.
내단을 위한 거미줄을 흡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이제 흡수해야 하는 거미줄도 40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채우면 내단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감이 들었다.
"지그마 변신."
슈우우우욱-!
익숙한 빛의 고리가 발밑에서 올라와 얼굴을 덮었다.
어느새 나는 오만한 표정의 지그마가 되어있었다.
"낚시를 해보도록 할까."
나는 케레노스와 바깥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2시간 전.
"사실 이번 일의 배후는 따로 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함께 걷던 케레노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크의 족장은 고르바라는 녀석이야.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강해보였지. 족장뿐만 아니라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정예병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로 보였습니까."
"나와 동급."
"……."
"헌데 그런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라그너스라는 고블린이지."
"고블린이요…?"
케레노스는 의외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고블린이 오크들을 조종하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듯 했다.
"뮬란에 있던 고블린 제사장으로 추측된다. 오크 족장을 단숨에 현혹 시키는 주술을 걸어서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어. 녀석은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
"어째서 그 얘기를 지금…."
"영주가 알았다면 전쟁을 하려 했겠지. 그렇지 않냐?"
케레노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긍정을 비쳤다.
"그럼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회상에서 돌아온 나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해보았다.
첫째, 라그너스를 밖으로 유인한다.
둘째, 몰래 매복해 있던 기사들이 라그너스를 습격.
셋째, 내가 방심한 라그너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참으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라그너스를 밖으로 유인하는 게 관건이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내겐 라그너스가 주었던 임무가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고블린으로 변신 할 거라곤 얘기 안 했는데 괜찮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오크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정경을 지나는 동안 본 것은 무기를 갈고 있는 오크들이었다.
누가보아도 전쟁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서둘러 가야겠군."
예상보다 오크들의 전쟁 준비 속도가 빨랐다.
라그너스는 고르바의 거처에 있었다.
거대한 오크 족장의 자리에 조그맣고 늙은 고블린이 앉아 있으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그마,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는 찾았나? 키익."
"예, 방금 동굴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뻔뻔하군.
나도 이렇게 거짓말을 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크스타를 즐기며 나도 별의 별 체험은 다 해보는 것 같다.
"드디어 나의 계획이 완성될 수 있겠구나. 킥킥킥."
계획? 아마 내단을 섭취 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지 궁금했다.
나도 하루 빨리 내단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띠링-!
[<라그너스가 기르는 거미> 완료.]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는 라그너스가 기르는 거미였다. 그는 내단을 섭취해 거미의 능력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미는 이미 누군가에게 죽은 뒤였다. 라그너스는 이 사실을 알면 분노하게 될 것이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고블린 제사장 라그너스의 신뢰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고생했다. 지그마. 역시 너 만한 부하가 없는 것 같구나."
"아닙니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키륵."
"아니야, 역시 너 만한 부하가 없어. 너에게 이 책을 내리겠다. 열심히 갈고닦아 나를 더욱 열심히 보좌하도록 해라. 키익!"
스륵,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낡은 책이 하나 나타났다.
그것은 두둥실 떠올라 어느새 내 손에 올려져 있었다.
[하급 어둠의 마법서 - '어둠의 화살' 을 획득하였습니다.]
"킥킥킥, 앞장서라. 지그마. 지금 당장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를 보러 갈 것이다!"
* * *
사락. 사락.
바람이 스친다.
스친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며 산 전체를 뒤 흔들었다.
가지와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작은 비명소리를 질렀고, 숨을 죽이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윈디아의 꼬마 영주 에드워드와 기사단장 케레노스를 포함한 윈디아의 정예들.
로크 산맥을 오를 수 있는 30명의 최정예 기사들이었다.
"영주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서 마을로 돌아가시는 게…."
"괜찮다니깐. 나도 아버님처럼 용감한 사람이야. 지켜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하아…."
케레노스는 사실 몰래 이곳을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에드워드가 알아버리고 말았고, 결국 따라온 것이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금역을 항상 궁금해 하셨지.'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니까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는 영주였다.
그의 목숨이 곧 윈디아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기에 케레노스는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어쩌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에드워드가 말을 걸었다.
"정말 그 할아버지가 라그너스라는 고블린을 데려올 수 있을까?"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아는 한 빈말을 하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렇게 5분이 흐르자, 누군가 나뭇잎을 밟으며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건…?'
고블린 두 마리.
앞에 있는 고블린은 건장한 키에 단검을 들고 있었고, 뒤에 있는 고블린은 해골 지팡이에 기다란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앞에는 잘 모르겠지만, 뒤에 있는 고블린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영감님이 말했던 라그너스와 완벽히 일치하는 생김새였으니까.
'정말 이곳으로 왔구나! 헌데 영감님은 어디 계시지…?'
케레노스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영감님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뭐, 어련히 잘 피하셨을라고.
금역에서도 살아 돌아오신 분이니 자기 몸은 알아서 잘 지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레노스와 에드워드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공격하라!"
"우와아아아아아!"
* * *
한편, 지그마로 변신해 있던 나는 라그너스를 동굴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오는 녀석을 보며, 나는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함성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공격하라!"
"우와아아아아아!"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윈디아의 기사들이 보이자 나는 드디어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후후. 이제 내가 기회를 봐서 라그너스 놈을 처리하면 되겠….
"이야아아앗!"
"……?!"
빠아악!
갑자기 검을 들고 자신에게 덤벼오는 기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걷어차고 말았다.
"크읏, 다들 조심해! 이 고블린 생각보다 강하다!"
그의 말에 모든 기사들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불길한데….
[윈디아의 기사들이 당신을 적대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