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40화
제40화
"크리스탈?"
김수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할 수만 있다면 '왜 네가 여기서 나타나?'라는 물음을 그에게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케레노스의 반응이 조금 더 빨랐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네가 여긴 어떻게…."
서로의 머리에 있는 물음표를 확인하는 사이 옆에 있던 병사는 땀을 흘렸다.
자신과 케레노스가 아는 사이인 것을 보고는 긴장을 한 것이다.
병사가 어거지를 쓰기 시작했다.
"기사단장님. 저 여자가 영주님 소유의 꽃밭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성한 풍차 디모르테를 망가뜨리려고 했습니다!"
…디모르테? 그게 뭐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난 그냥 꽃밭에서 화관을 만들고 있었던 것뿐이라구요! 저한테 누명 씌우는 거예요. 지금?"
"시끄럽다! 영주님을 암살하려던 것이 분명해! 넌 적국의 스파이가 틀림없다!"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하무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김수정은 자신을 데려온 병사를 노려보았지만, 그의 얼굴엔 여전히 철판이 깔려 있었다.
"그만."
케레노스가 낮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풀어주어라."
"예?!"
당황하는 병사의 모습.
케레노스가 말을 이었다.
"저 여인은 내가 윈디아로 돌아올 때까지 동행했던 사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풀어주도록 해."
"하지만…."
"너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케레노스의 말에 병사의 얼굴은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 있던 열쇠로 감옥 문을 열었다.
거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감옥을 나온 김수정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빠아악!
병사의 얼굴을 한 대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얼굴을 얻어맞은 병사가 바닥을 뒹굴었다.
"후우, 속이 다 시원하네."
힘 능력치를 찍지 않아서 강력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방심한 상태에서 맞은 거라 꽤 아플 것이다.
김수정은 그를 보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여자가!"
"그만."
"단장님!"
"그만 하도록. 윈다아에 대한 충성으로 이 여인을 데려온 일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이 여인을 때린다면 그것은 윈디아와 관련이 없으니 개인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다."
"크윽."
병사가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수정은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흥! 쌤통이다. 메~롱."
벌겋게 달아오른 병사의 얼굴.
그는 당장에라도 달려올 듯한 기세로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는 케레노스를 흘겨보며, 분노를 삼켰지만, 김수정도 한 성깔했다.
"뭐! 그렇게 주먹 쥐고 어쩔 건데? 한 대 치게? 쳐봐! 쳐보라고!"
"넌 그만해라. 날 따라오도록 해."
"알았어. 흥!"
그렇게 그녀는 케레노스를 따라 나섰다.
하지만 품에 안겨 있던 케르는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왜, 너도 복수하고 싶어?"
"콸!"
"알았어. 갔다와."
품에 있던 케르가 쏜살같이 병사가 있던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제법 비장한 케르의 뒷모습에 김수정은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야 봤어? 케르 진짜 짱 귀엽다."
"짱? 그게 뭐냐."
"최고라고. 쿡쿡."
배를 잡으며 웃는데,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아무래도 케르가 성공한 모양이다.
어느새 다녀온 케르는 위풍당당하게 돌아왔다.
임무 달성이 만족스러웠는지, 케르는 시크하게 웃었다.
"콸."
* * *
한편, 로크산맥 거미구이 프로젝트는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다.
나는 또 한 무리의 거미들을 학살하고 다리 구이를 뜯고 있었다.
어느새 거미줄은 832개가 모여 있었다.
와그작.
"흠, 오물오물. 이제 내단에 필요한 거미줄도 다 모아가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내 현재 레벨이…."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30 [제법하는] 날씨 요리사
성호: 국자 성애자(星愛者)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
칭호: 고블린 학살자, 뮬란의 영웅, 정의의 연쇄 살인마, 스파이더맨
힘58(+70) / 민첩58(+70)
건강10(+95) / 지식10(+70)
솜씨15(+0) / 감각15(+0)
능력치 포인트: 28
*화염 속성 내성 +50%
"오, 꽤 강해졌는데."
나는 능력치 포인트를 14개씩 힘과 민첩에 나누어 투자했다.
다른 능력치들은 아직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찍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이걸 쓸 수 있겠는데?
[지그마의 그림자 단검]
등급: 영웅
내구력: 150/150
레벨 제한: 30
착용 제한 : 유저 '잭슨'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단, 1회에 한해 양도가 가능합니다.
공격력: 130
치명타 확률 +10%
*스킬: 그림자놀이[쿨타임:20분]
- 1분간 자신의 몸을 그림자로 숨겼다가 다른 대상의 그림자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있던 자리에는 그림자 분신을 세워 공격을 대신 받습니다.
큰어금니 부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키르쿠가 우연히 발견한 도깨비를 잡아 그 뿔을 어둠 속에서 24시간 동안 갈아 만든 단검.
[지그마의 뼈 목걸이]
등급: 희귀
내구력: 150/150
레벨 제한: 30
치명타 확률 +10%
마법방어력 +50
지식 +30
건강 +10
고블린 부족장 어쌔신 지그마가 착용하던 목걸이.
큰 어금니 부족을 상징하는 표식이 그려져 있다.
사실 나에게 무기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단검 한번 휘두르는 것보다 해 오름으로 두들겨 패는 것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지그마의 단검을 쓰기로 했다.
'그림자놀이'라는 스킬이 제법 쓸 만할 것 같아서였다.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여기 뿐 인데…."
지도를 보니 검은색으로 된 부분이 한 곳 밖에 없었다.
아마 여기가 오크 마을이 틀림없었다.
지도 제작을 알리는 퍼센트는 90%를 가리키고 있었고 여길 둘러보고 나면 퀘스트는 완료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길 어떻게 들어간다…."
기척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킥, 킹 스파이더가 보이지 않는다."
"저번에는 금방 찾았는데 왜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키익."
고블린? 어째서 고블린이 여기에?
나는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우선 돌아가서 라그너스 님께 보고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킥."
"그래, 그게 좋겠다. 어서가자."
라그너스라. 왠지 익숙한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지그마가 말한 이름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 그래. 분명 녀석이 죽기 전 그런 이름을 읇조렸었지.
왠지 수상한 냄새가 엄청 풍기는데… 따라 가봐야겠군.
잠시 후.
"오크마을? 왜 여기로 온 거지?"
나는 생각보다 큰 오크 마을을 보며 눈이 커졌다.
입구는 녹색의 피부를 가진 성인 정도 크기의 오크 경비병이 지키고 서 있었다.
화가 나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저런 표정인지, 그들을 보며 참 못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쫓던 고블린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키륵, 마을에 도착했다."
"얼른 라그너스 님께 보고하자. 키익."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크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다가오는데도 오크들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리둥절했다.
"쟤네들 원래 사이가 좋은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들은 원래 사촌이라고 말합니다.]
"아, 그랬구만."
어쩐지 비슷하게 생겼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혹시 저기 들어갈 방법은 없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코딱지를 튕깁니다.]
"그러지 말고 말해봐. 맛있는 거 해줄게."
원래 누군가를 길들일 땐 적절한 채찍과 당근이 필요한 법이다.
지금 내겐 당근이 있었고, 녀석은 당근이 필요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기침을 하며 지그마 변신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하여간 단순한 놈.
근데 지그마 변신?
그런 스킬이 있었나?
스킬창을 뒤지던 나는 아무리 찾아도 그런 스킬이 없자, 녀석에게 투덜거렸다.
이 자식,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데, 네 녀석 거짓말 한 거 아니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 가 옷을 잘 찾아보라 말합니다.]
옷? 내 옷?
"아!"
깜빡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스킬이라 잊고 살았는데 이런데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더니, 그 말이 맞네.
"너 꽤 기억력이 좋은 편이구나. 껄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어깨를 으쓱입니다.]
"지그마 변신."
작은 목소리로 외치자 발끝에서부터 점차 고리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허리를 통과해 머리까지 도달하자 어느새 내 모습은 오만한 고블린 부족장. 지그마로 변해있었다.
"감쪽같구먼. 키륵."
지그마의 단검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니 훨씬 지그마처럼 보였다.
한 가지 옥의 티라면, 그때 녀석이 입고 있던 갑옷을 지금의 자신은 입고 있지 않은 것 정도?
그것만 뺀다면 누가 봐도 지그마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럼 가볼까."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오크 경비병들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별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잠깐. 취익."
못생긴 오크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진짜 못생겼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근데 왜 코에서 입 냄새가 나는 거지.
"왜 그러냐. 킥."
"처음 보는 고블린 같은데 이름이 뭐냐. 취익."
"내 이름은 지그마다. 키잇. 라그너스 님의 비밀 임무를 완수하고 오는 길이다."
내가 봐도 훌륭한 연기였다.
이게 바로 내가 고블린이고, 고블린이 나인 고아일체(?)의 경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에 오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군. 어쩐지 처음 보는 못생긴 얼굴이다 싶었다. 취익. 들어가도 좋다."
염병할 놈. 사돈 남말하네.
"너도 못생겼다. 키륵. 고생해라."
"고맙다. 췩."
…진짜 이상한 놈들이군.
아무튼 나는 마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크 마을 '벨리'에 입장하셨습니다.]
마을 이름이 벨리인가 보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보다 놀라운 모습이었다.
농작물을 약탈하고 인명피해도 있었다는 말에 흉터가 많고 덩치 있는 녀석들이 즐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도 윈디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놀이터도 있네.
마을의 구석에는 놀이터에서 나무로 만든 칼싸움을 하는 오크 어린이들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커다란 불을 피우며 춤도 추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평화로운 곳처럼 보였다.
근데 왜 고기는 생으로 먹는 거지.
…희한한 놈들.
그렇게 한참이나 마을을 둘러보며 구경을 하던 나에게 익숙한 메시지가 떴다.
[로크 산맥 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드디어 다됐네."
갖은 고초 끝에 완성된 지도를 보니 감동이 밀려왔다.
팔자에도 없던 거미 구이를 몇 번이나 만들었는지….
오늘 밤 꿈에 거미가 나올 것 같았는데, 이걸 보니 잠은 잘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킥. 네가 여긴 웬일이지. 지그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