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39화
제39화
콰자자자작-!
놈의 앞다리 휘두르기 한 번에 나무 대여섯 그루가 동시에 사라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혀를 내두르며 불만을 내뱉었다.
"염병하네, 더럽게 쎈 녀석이잖아."
어쩌면 덩치를 보고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도망치는 경로마다 앞다리를 찍어 내리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 오름의 남은 횟수를 확인해 보았다.
…앞으로 8번 정도인가.
저 숫자가 0이 되면 다시 쓸 수 있을 때까지 30분은 기다려야했다.
그때까지 놈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도망쳐야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결정해야했다.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일단 작전상 후퇴다."
뒤도 보지 않고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놈이 무서운 속도로 괴성을 지르며 쫒아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뒤를 보지 않았다.
만약 뒤를 돌아본다면….
"시이이이잇!!!"
젠장. 괜히 돌아봤네.
아침부터 거미 밥상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며, 저 멀리 커다란 동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선 저곳으로 들어가 숨어야겠다는 생각에 발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거처를 발견하셨습니다.]
"빌어먹을."
여긴 저 망할 거미 놈의 집이었던 모양이다.
들어가게 되면 포션도 없는 자신은 100% 죽을 게 자명한 일.
나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킹 스파이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지. 아껴두고 싶었지만 지금 쓰는 수밖에.
"솔라야."
화르륵-!
"솔라 불렀냐!"
"저기 저놈 다리 보이지? 가서 하나씩 구워버려라."
"알겠다! 조금만 기다려라!"
쐐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킹 스파이더의 다리 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솔라의 모습이 보였다.
킹 스파이더는 당황했는지 엉거주춤하며 다리가 엉키는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받아라! 후우우우우!"
어마어마한 열기.
솔라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불은 앞다리 두 개를 제외한 6개의 뒷다리를 동시에 굽고 있었다.
마치 6개의 프라이팬에 각각 삼겹살을 동시에 굽는 것과 같은 기적에 나는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시이잇! 시이이이잇!"
킹 스파이더는 자신의 다리가 구워지는 느낌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놈은 솔라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거미는 자신의 다리 밑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솔라가 잘하네.
[사도 버프를 부여받았습니다.]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건방진 놈.
이젠 내 차례란 거냐?
나는 차오르는 힘과 동시에 빠르게 돌진했다.
콰아앙!
[치명적인 일격!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가 화상에 걸렸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킹 스파이더를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한때 곤충이나 족제비를 주식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가 떠올랐다.
젠장 하필 그 기억이 떠오르다니, 열 받는군.
취이익-!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1초간 속박당해 움직이지 못합니다.]
[15초 동안 이동속도가 20% 저하됩니다.]
갑작스런 기습에 발끝을 살펴보니 거미줄이 붙어있었다.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지만 다행히 거미줄은 불에 타 사라지고 있었다.
[다리에 태양의 힘이 충만합니다.]
[거미줄이 불에 타 사라집니다.]
"휴우."
해 오름이 아니었다면, 진짜 큰일 날 뻔했을 상황이었다.
킹 스파이더의 앞다리가 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투콰앙!
놈이 찍은 앞다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주변으로 퍼졌다.
아마도 내가 거미줄에 걸렸다고 생각하겠지.
먼지가 걷히자 녀석은 내가 없다는 사실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꽈자작-!
킹 스파이더가 당황한다.
"시잇?!"
나는 어느새 녀석의 아래로 이동해 있었다.
"제법 튼튼한 다리인데 어디 이것도 버티나 보자고."
콰아아아앙!
살짝 반대쪽으로 기울어지는 킹 스파이더의 몸.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쾅! 콰앙! 콰앙! 콰아아앙!
이미 솔라가 살짝 구워두었기에 다리는 너무나 손쉽게 부러지고 있었다.
결국 남은 것은 볼품없는 앞다리 두 개 뿐이었다.
"시이익…."
킹 스파이더는 도망을 치려는 듯 앞다리 두 개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끌고 가고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콰아아아앙-!
매캐한 폭연 냄새와 함께 땅이 울렸다.
킹 스파이더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렇게 힘겹게 잡아 낸 보람을 느끼며 올라오는 메시지를 감상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거미줄을 획득하였습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산성독을 획득하였습니다.]
[태양의 비각술 - 해 오름(日)의 랭크가 올랐습니다!]
[해 오름의 새로운 능력 '썬 로드'를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최초로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를 혼자서 잡았습니다.]
[칭호: '스파이더맨'을 획득하였습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내단을 획득하였습니다.]
"3레벨밖에 안 오른 건가? 환장하겠네."
사실 3레벨이나 오른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잡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해 오름의 랭크가 올랐다라."
나는 해오름의 정보창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인 데미지가 소폭 상승했고, 태양의 에너지 최대 개수도 100개가 늘어 있었다.
소모 마력은 두 배로 늘었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았다. 근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썬 로드[액티브]
지속시간 : 15초
필요 태양 에너지: 50
-해 오름의 시전자가 걷는 길에는 화염이 충만합니다.
태양의 폭발력으로 15초간 이동속도가 2배 상승합니다.
화염은 0.5초당 마법 공격력의 100%에 해당하는 태양 데미지를 입힙니다. 대상이 상태이상 화상에 걸릴시 2배의 태양 데미지를 입힙니다.
"좋아 보이네."
스킬 이름부터가 뭔가 강해보이는 이름이었다.
썬 로드라는 새로운 스킬을 얼른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파이더맨? 이건 뭐지?"
[칭호: 스파이더맨]
로크 산맥의 왕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를 혼자 잡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칭호.
*거미 계열의 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 +50%
*거미의 내단을 섭취할 수 있게 됩니다.
"거미의 내단? 혹시 이건가?"
나는 킹 스파이더의 내단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창을 열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내단]
로크 산맥의 왕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능력이 담긴 내단. 거미줄을 충전해서 먹으면 거미의 능력이 생긴다.
-스킬: 고탄력 거미줄 생성.
- 현재 충전된 거미줄 0/1000
- 거미 독에 대한 내성 +50%
고탄력 거미줄이라.
순간, 내가 거미인간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진짜 거미로 변할지도 몰랐다.
한번 깃든 호기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일까.
나는 내단을 꺼내 살펴보았다.
"청심환 같이 생겼는데."
동그란 모양의 환약같이 생긴 내단의 크기는 사과정도였다.
색깔은 황금빛을 띄고 있었고, 아름다웠다.
나는 여태 모아둔 거미줄을 몽땅 꺼냈다.
정말 거미줄을 흡수하는 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루루루룩!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거미줄.
집에 이런 진공청소기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가 좋아하겠어.
내단의 정보를 살펴보니 329개의 거미줄이 충전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거미 놈들을 더 때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라가 말을 걸어온 건 그때였다.
"주인아!"
"그래, 솔라야. 고생이 많았다."
"고맙다. 해해! 근데 저건 왜 안 먹냐!"
"음?"
녀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무언가 벌겋게 익은 껍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꽃게 찜을 연상케해서 빠르게 걸어가 확인해보았다.
[별미! 즉석 거미다리구이!]
시간은 금이요. 시간은 생명이다!
1분 1초가 급한 요리사가 전투와 동시에 즉석에서 만들어낸 거미다리구이는 전투식량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질 것이다.
먹으며 태양의 기운을 느껴보자!
식기 전에 먹는 것이 바삭하고 맛있을 것이다.
-맛 스타: ☆☆
-유통기한: 2일
-생명력 회복: 150
효능: 이 요리를 먹은 사람은 30분간 거미에 대한 공격력 20% 증가합니다.
민첩 10% 증가.
*태양의 가호: 힘 5%, 방어력 5%, 화염 공격력 5%, 화염 내성 5% 증가.
"난 요리를 한 적이 없는데. 설마?"
"해해해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솔라가 만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허어.
실없게 웃고 있는 솔라가 갑자기 사랑스럽게 보였다.
마치 빨간 토마토가 웃는 것만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녀석을 와락 끌어안아버렸다.
"크하하하! 네가 아주 복덩이구나. 복덩이. 하하하!"
"악! 솔라. 숨 막힌다. 난 여자 품이 좋… 흐악!"
그렇게 로크산맥 거미구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한편 김수정은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풍차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아이올리아 꽃밭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꽃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님이 없으니깐 심심하네.'
사실 그녀는 마을 구경을 먼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님은 레벨업에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사냥만 주야장천 했다.
물론 나중에야 손녀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버님을 말릴 수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아버님을 따라가는 건데.'
사아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진한 아이올리아의 향기가 코끝을 아련하게 찔러왔다.
그녀는 오는 길에 아이올리아에 얽힌 사연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짓곤 했었다.
"크릉."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손등을 핥는 케르.
"고마워. 케르."
"콸."
커다란 케르의 눈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아이올리아를 하나 꺾어 자신의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화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꽃내음이 플로라와 아이올로스의 순수한 사랑처럼 기분이 좋았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거기 누구야!"
"아, 안녕하세요."
김수정이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온 병사에게 인사했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꽃이 너무 예뻐서 화관을 만들고 있었어요."
"뭐? 지금 무슨 짓을! 당신을 영주님 소유의 꽃밭을 망친 죄로 체포한다!"
"네…?"
순식간에 손에 수갑이 채워지자 김수정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무슨 말이에요! 영주님 소유의 꽃밭이라구요…?"
"그래! 몰랐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대는 스파이로 의심되거든!"
'이게 뭔 소리야.'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건 감옥에 들어가서 생각해라!"
잠시 후 그녀는 영주성에 있는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름 모를 병사는 허름한 감옥에 자신과 케르를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그녀는 매너 없는 병사를 보며 치를 떨었다.
"으…! 어떻게 여자를 이렇게 대할 수가 있어? 저 나쁜 새끼!"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느낀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케르 또한 이빨을 보이고 있었다.
분함을 느끼는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살짝 맺혀있었다.
'나가면 반드시 한 대 때려주겠어. 개자식.'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귓속말을 보낼 수 없습니다.]
"역시 귓속말은 안 되네."
자꾸만 감옥에 갇히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했다.
다음에는 감옥에 갇히지 않게 강해져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은 케르도 마찬가지.
그때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적국의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를 잡았다고?"
"예, 그러무닙죠. 하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의 중년 남자와 익숙하지만 얄미운 목소리의 남자가 대화를 하며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김수정은 침을 삼키며 과연 누가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리고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속으로 제발 착한사람이 오길 빌었다.
'착한 사람. 착한 사람. 착한 사람.'
이윽고 두 사람은 마주쳤고 김수정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어? 케레노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