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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8화 (3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38화

제38화

중년의 병사는 여인의 목소리에 손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니, 아는 얼굴인지 말 꼬리를 흐리는 것이 보였다.

"넌…."

"죄송해요! 멈춰주세요! 헉헉."

여인은 마을에서 한참을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동생을 잘 돌봐야하는데, 이 녀석이 또 말썽을 부렸어요."

이제 갓 성인이 된 듯, 보이는 여인은 꼬마의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억지로 사과시켰다.

꼬마는 억지로 힘을 써서 벗어나려했지만, 다 큰 어른을 이길 정도의 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 놔! 난 사과할 생각 같은 거 없다고!"

꼬마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강제로 사과를 하게 되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중년 병사 또한 너무 흥분했음을 깨달았는지 헛기침을 했다.

"큼, 도로시 네 얼굴을 봐서 이번엔 그냥 넘어가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벤 아저씨."

도로시라고 불린 여인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베에에!"

꼬마 녀석은 눈을 찢으며 병사에게 메롱을 했다.

하지만 꿀밤을 맞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딱콩-!

"악!"

"너, 따라와. 집에 가서 혼 좀 나야겠어."

"이거 놔! 놓으라고! 내 힘으로 걸어갈 거야!"

투닥거리며 멀어지는 두 사람.

그렇게 잠깐의 요란했던 소동은 빠르게 마무리가 되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우리들은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동생을 둔 누나는 피곤하겠네요."

"꼭 우리 둘째 놈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구나."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찾는 몬스터는 없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은 마차로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윈디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친목 길드 유니스에서 길드원 모집합니다!"

"바헬 숲의 오우거 레이드 하실 분 있습니까!"

"함께 슬라임 킹 사냥 하실 파티원 모집해요!"

왠지 익숙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뮬란이나 여기나 시장통인 건 마찬가지였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들은 윈디아를 구경해갔다. 그때 김수정이 외쳤다.

"저길 보세요! 풍차가 엄청 커요!"

그녀의 손끝에 거대한 풍차가 있었다.

마치 거인이 만든 것 같은 그 거대한 풍차는 돌아갈 때마다 짙은 황금빛을 뿌리며 주변의 곡식들과 꽃을 더욱 싱그럽게 만들고 있었다.

…예전에 가족여행으로 갔었던 네덜란드에 온 것만 같군.

윈디아는 뮬란보다 훨씬 컸다.

주변 풍경이 너무나도 훌륭해서 마을 전체가 유럽에 있는 시골 관광지 같은 느낌이 있었다.

수정이의 말에 따르면 주로 저 레벨 유저들을 제외하면 관광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연인들이 꽤 많아 보였다.

낮잠을 자던 케레노스가 일어난 건 그때였다.

"하~암. 드디어 윈디아에 도착했나보네요."

"쯧쯧, 게으름뱅이 같은 놈. 아주 평생을 자지 그러냐."

케레노스는 멋쩍은 듯 웃음을 흘리며 눈곱을 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숨밖에 안 나왔다.

내가 저런 놈을 동료로 영입하겠다고 다짐 했었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에휴.

"아버님, 어디부터 가실 거예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수정이를 보니 막상 고민이 들었다.

사실 윈디아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려 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우선 수비대장부터 만나보자."

"아, 네. 그게 좋겠어요."

나는 수비대장의 막사를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때 김수정이 물었다.

"아버님."

"응?"

"수비대장이 어딨는지 아세요?"

"……."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옆에 을 지나가는 젊은이 한 명을 붙잡았다.

"이보게, 젊은이 길 좀 묻겠네."

* * *

잠시 뒤, 우리들은 수비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크흠."

험악한 인상의 중년 남성.

그의 얼굴에 새겨진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인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가 보고 있던 종이를 접었다.

"확실히 필로스의 필체가 맞군요. 반갑습니다. 이곳 윈디아의 수비대장 칸트라고 합니다."

"잭슨일세."

"크리스탈이에요."

케레노스는 이곳에 없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며,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더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드레인은 어떤 옷감들이 있는지 알고 싶다며 시장으로 가버렸다.

칸트가 입을 열었다.

"뮬란을 구하신 영웅이라니 아주 기대가 큽니다. 하하하."

"그저 우연이었을 뿐일세. 지나가던 길이었지."

"하하하. 아주 겸손하시군요. 우연도 두 번이나 되면 필연이지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영주님께서 친히 부탁하신 일이 있었는데, 잭슨 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주가 부탁한 일…?

영주가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수정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뭐, 쉽게 애기하자면 왕이랑 비슷했다.

나는 칸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곳 윈디아는 곡식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북쪽에 있는 풍차 주변엔 아이올리아를 비롯한 풍부한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지요. 윈디아의 주민들은 그 농작물을 다른 마을에 수출해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셈이지요."

"그렇구만."

"한데 요즘 들어 북쪽의 로크산맥에 있던 오크들이 자꾸 저희 쪽 농작물들을 노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식량이 자꾸 도난당하니 영주님께서도 화가 많이 나신 상태이지요. 그래서 저에게 오크 마을이 있는 북쪽의 지형을 파악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전쟁도 불사하실 기세더군요."

…전쟁이라.

"하지만 몇 십년동안 잠잠하던 오크들이 갑자기 이렇게 난폭해진 것이 저는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듭니다. 치고 빠지는 전술도 그렇고, 마치 누군가 뒤에서 조종한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그곳을 조사해보면 되겠나?"

"그렇습니다. 지도 제작도 부탁드리려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띠링-!

[북쪽 오크 마을에 대한 조사]

난이도: B

최근 윈디아의 북쪽에 살던 오크들이 농작물을 강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영주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칸트에게 지도 제작을 명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 뒤에서 오크들을 조종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지도 제작을 부탁할 겸 그들에 대한 조사를 부탁하려한다.

-완료조건: 로크 산맥 지도 제작 0/1 (0%), 오크 마을 조사 0/1

난이도 B라니,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에 눈이 커졌다.

수정이에게 들으니 오크는 돼지코를 가진 못생긴 녀석들이라던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한번 해보겠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북쪽 성문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신분패입니다."

[윈디아의 정찰병 신분패를 획득하였습니다.]

"금방 다녀오도록 하지."

막사를 나온 우리들은 바로 북문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신기한 먹거리들을 많이 팔아서 눈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솜사탕 버섯이라던가.

코볼트 다리구이라던가.

메론맛 슬라임 국수… 이건 더럽게 맛없어 보이는군.

아무튼, 우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북문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경비병에게 신분패를 꺼내 보여주었다.

"정찰병이시군요.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근데 그쪽 여자분은 신분패가 없습니까?"

"에? 없는데요?"

"그럼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런…."

김수정은 당황한 듯 보였다.

아무래도 신분패를 받지 못한 듯 했다.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는지,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잘 된 일 일지도 모른다.

"아버님, 전 못갈 것 같네요. 케르랑 마을 구경이나 하고 있을게요."

"음, 아쉽게 됐구나.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려무나."

"네. 참, 이거 받으세요."

[빛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15분간 방어력이 66% 상승합니다.]

[성스러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2분간 최대 체력이 55% 증가합니다.]

내가 레벨 업을 한 것처럼 그녀 또한 레벨이 오르며 더욱 버프 능력이 올라있었다.

나는 더욱 충만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에게 말했다.

"금방 다녀오마."

"조심히 다녀오세요."

"콸!"

나는 수정이와 케르의 인사를 받으며 뒤돌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맥을 올려보았다.

"이곳이 로크산맥인가보군."

밑에서 올려다 본 로크산맥은 험준한 편이었다.

나도 등산을 하는 건 좋아하지만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높이로 치자면 지리산인데 고난이도 코스로 갔을 때의 느낌이랄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불길함을 감지합니다.]

…어쩌면 쉽지 않을지도.

* * *

30분 후.

나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거미들이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해 오름을 전개해, 그들을 태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콰아아아앙!

"시이이익!"

"이 썩을 놈이!"

콰앙! 콰앙! 콰콰쾅!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오염된 거미다리를 획득하였습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거미줄을 획득하였습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마비 독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고열의 태양 염에 몸통이 꿰뚫린 거미가 징그러운 비명과 함께 터져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제기랄, 저기 또 오는 건가.

"시이이잇!!"

레벨이 상승했다는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채 계속 싸워야만 했다.

눈앞에 있는 이놈들은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나는 놈들의 다리몽둥이를 하나씩 부러뜨리며 상대해갔다.

- Lv.50 자이언트 스파이더.

"시이이익!!"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놈들아!"

파라라락!

마치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얼굴로 향했다.

놈이 입을 벌려 나를 먹으려하자, 몸을 비틀어 눈을 발로 찔러버렸다.

푸욱-!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오른 눈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키에에에엑!!"

갑자기 느껴지는 뜨거움에 거미가 비명을 호소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지,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었다.

결국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103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자신보다 하등한 먹이사슬에 위치한 피식자를 보는 그 눈빛은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왔다.

"시이익! 시이익!"

…일이 왜 이렇게까지 된 거지.

"드루와. 드루와!"

"시이이이잇!!"

잠시 후.

파스스, 하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잿빛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진짜 끝도 없이 나오네. 죽을 뻔했어."

현재 내가 있는 이곳은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소굴 근처였다.

우연히 그곳을 구경하다가 알을 밟아 터트리는 바람에 그들의 분노를 사고 만 것이다.

결국 이 사달이 나버렸지만 말이다.

"아이고 삭신이야. 아이고."

나는 주변에 있던 바위에 걸터앉으며 포션을 꺼내 마셨다.

역시 이럴 때는 음료수가 최고였다.

꿀꺽- 꿀꺽-

[하급 생명력 포션을 복용하셨습니다.]

[100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하급 생명력 포션을 복용하셨습니다.]

[100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하급 생명력 포션을 복용하셨습니다.]

[100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최근 나는 물약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피가 조금 닳으면 수정이가 힐을 써서 치료해주거나 요리를 먹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함께 있지 않았다.

수정이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알았다면 억지로라도 데려왔어야 했는데….

갑자기 후회가 살짝 들었다.

요리를 하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렸다.

요리를 하는 동안 어떤 위협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냄새를 맡은 다른 몬스터들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기도 했다.

"제길, 이래서 요리사는 사냥터에서 보기 어렵단거였군."

수정이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 요리사가 사냥터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별 시답잖은 늑대 무리나 트롤 놈들이 나타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요리사는 사냥터로 나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젠장, 괜히 요리사가 됐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자부심을 가지라 얘기합니다!]

"시끄럽다. 이놈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의기소침합니다.]

"쯧, 삐지기는. 이따가 맛있는 거 해주마. 프롱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오는 길에 나는 프로메테우스를 '프롱이' 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쾅!

푸드득. 푸드득.

새들이 놀라서 떼를 지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콰앙!

점점 가까워지는 땅 울림에 모공이 송연했다.

숲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재빠르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이윽고, 거대한 형체가 숲을 가로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콰자자자작!

-Lv.100 [챔피언]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

"시이이이이익!!"

…미친. 더럽게 크네.

녀석의 앞다리에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정도 녀석이 말한 대로라면 100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내자고 하면 씨도 안 먹힐 것 같은 외모였다.

피식.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거미랑 형님 아우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바스락.

"……?"

발밑을 내려다보니, 재가 되어가는 중인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다리가 보였다.

아마 전투 도중 잔해가 여기까지 날아온 모양이었다.

근데 이게 왜 내 발밑에 있는 건데.

"시이익…?"

시발. 엿 됐다.

흉악한 8개의 눈이 나를 보며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

"…형님?"

"키이이이이익!!!!"

동생 삼기 싫은가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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