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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6화 (3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36화

제36화

드레인과 헤어진 나는 곧장 첸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망치를 두드리며 무기에 단조질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구슬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여기 아이올리아와 놀의 발톱을 가져왔네."

"오오! 고맙네. 잭슨. 정말로 고마워."

[<스실라와 아이올리아>   완료.]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000달러를 획득하였습니다.]

[명성이 200 올랐습니다.]

"이 보답을 어찌 갚아야 할꼬…."

"되었네. 이 사람아."

"아닐세. 원하는 무기가 있나? 이곳에서 가져가고 싶은 게 있으면 말을 하게. 자네 같은 용사라면 어떤 무기라도 다룰 수 있겠지."

"용사는 무슨, 잘 드는 식칼 있나?"

"식칼…?"

"자네 몰랐나? 내가 얘기 안 해준 모양이군. 나 요리사일세."

"뭐라고?!"

첸의 눈이 찢어져라 커지는 것이 보였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자네 고블린 부락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나?"

"그랬지."

"근데 요리사였다고?"

"그렇네."

"……."

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가 없군. 아마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기절초풍하고 말 게야."

"절대 말하지 말게. 지금도 피곤해 죽겠으니까."

"…알았네. 근데 정말 필요한 게 없나? 내가 보답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군. 식칼은 너무 작은 보상인데."

"흐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자꾸 거절한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다.

나는 턱수염을 만지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뭐가 좋으려나.

사실 요리도구는 잘머거스가 준 것들이 있어서 아직 큰 필요는 없었다.

무기 또한 마찬가지.

방금 전 멋들어진 옷도 하나 얻었기에 방어구도 필요치 않았다.

계속 고민해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자 나는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가면을 얻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래. 그게 있었군. 이 녀석, 가끔 쓸모 있는 말을 한단 말이지.

"혹시 다른 가면을 만들어 줄 수 있나? 자네가 준 건 이제 못쓰게 되어서 말이야."

"껄껄. 물론이네. 그 정도는 아주 간단한 일이지.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털가죽이 필요한데…."

"이걸로도 되나?"

나는 남아있는 놀의 털들을 모조리 첸에게 내밀었다.

첸은 꽤나 많은 양을 보며 놀란 듯 했지만 이내 크게 웃어버렸다.

"충분하구먼. 껄껄껄껄."

* * *

시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그동안 뮬란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다.

'아크스타'에는 사냥뿐만이 아니라 다른 즐길 거리들도 존재했는데 간단한 심부름이나 소일거리를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그것이었다.

그렇게 돈 맛을 조금 알아버린 나는 그동안 얻었던 장비들을 처분할 겸 노점을 펴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경매장이라는 시스템이 있다는 걸 늦게 알게 된 것은 뼈아팠지만… 뭐, 다음 기회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멋진 갈기가 휘날리는 놀의 가면을 쓰고 일상을 즐기던 어느 날 필로스가 찾아왔다.

"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날?"

"그렇습니다."

갑자기 왜 찾는 거지? 혹시 무슨 일 생겼나?

나는 황급히 스미르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첸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게. 이 친구가 자네를 급히 만나야 할 일이 있다는구먼."

"……?"

고개를 돌리니,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는 군용색의 후드를 눌러 쓰고 있었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자네…?"

그는 바로 케레노스였다.

꽤나 수척해져 있었지만 특유의 총기 있는 눈망울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악수를 건네며 플로라의 안부를 물었다.

"오랜만일세. 어머님은 잘 계신가?"

"실은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응…?"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눈을 감으며 탄식을 내뱉습니다.]

순간 아내가 죽던 날이 스치며 어깨가 떨려왔다.

나는 급히 표정을 갈무리하며 그를 위로했다.

"애도를 표하네. 편히 가셨나…?"

"…네. 어르신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이걸 잭슨 님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조그만 편지를 품에서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곧장 편지를 읽었다.

[잭슨 님에게.]

- 이 편지를 보고 계신다면 아마 저는 아이올로스 님을 만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겁니다.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아이올로스 님을 만난 그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아이올로스 님이 3일 뒤에 만나자라는 얘기를 하셨지요.

깨어났을 때 저는 그것이 사실임을 직감했습니다. 제 몸에 있는 생명의 시계가 째깍거리는 것이 느껴졌지요.

저는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되니 홀로 남겨질 아들이 걱정되더군요. 어디 가서 비명횡사 할 아이는 아니라서 잭슨 님께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제 아들을 거두어주시길 바랍니다.

잭슨 님의 앞날에 별들의 축복이 함께하길. - 플로라

"……."

붉어지는 눈시울과 함께 편지를 내렸다.

그녀는 정말 행복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죽기 전 아이올로스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주 행복하셨겠군."

"…네. 그러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어머니 또한 아이올로스 님처럼 빛이 되어 하늘로 사라지셨습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머니가 자네를 나에게 부탁한다는군."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하네. 케레노스."

* * *

푸르륵.

말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뮬란의 북쪽에 나타났다.

말의 뒤에는 꽤나 널찍한 마차가 있었고, 지붕은 평평한 것이 올라서기 좋아 보였다.

"고맙네. 첸.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구만."

"아닐세. 친구에게 이 정도는 해야지 껄껄."

오늘 나는 뮬란을 떠나기로 했다.

사실 좀 더 일찍 떠났어야했는데, 게임에 적응하느라 늦어지고 말았다.

나는 젊은이가 아니라서, 남들보다는 조금 느린 편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고개를 돌리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뮬란의 주민들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필로스가 다가왔다.

"언젠가 또 술 한잔할 날이 있겠죠?"

"그래. 그땐 내가 이길 테니 각오해라. 이놈아. 하하."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웃는 사이, 잘머거스와 마시스가 다가왔다.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 좋아보였다.

축제 날 내가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이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가고 있었다.

"날씨 요리술의 비기를 모두 모으실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고맙네 잘머거스. 자네도 건강하게나."

"저도 훌륭한 요리사가 되겠습니다. 잭슨 님."

"그래, 마시스. 넌 잘할 수 있을게다. 잘머거스를 부탁하마."

마시스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최근 단골손님이 생겼다던데…. 웃음꽃이 핀 걸 보니,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다.

떠나기 전 녀석이 만든 요리를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구만.

뭐, 다음에 또 오면 되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나는 북문 입구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 누구야? 누군데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와?"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한 이벤트인가본데?"

"대체 누구지?"

제길, 벌써 유저들이 몰리기 시작했나. 어서 와야 할 텐데….

사실 떠나기 전, 함께 윈디아로 가고 싶은 두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아버님! 저 왔어요!"

마침 오는군.

다행히 유저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와서 다행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나는 그녀를 놓고 가야했을지도 몰랐다.

"어서 오거라. 수정아."

"죄송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그녀는 한참을 뛰었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녀가 쉬는 날이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함께 윈디아로 가지 않겠느냐는 내 제안을 그녀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수락한 것이다.

"아니야 딱 맞춰서 왔어. 어서 마차에 오르거라."

"네, 어머. 누구세요?"

김수정이 케레노스와 케르를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만나는 건 처음이겠군.

"앞으로 함께 하게 될 동료다."

"와아, 언제 이런 동료를 만드셨어요?"

"방금 전에 만들었다."

"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사실 확인을 하고 싶은지 케레노스를 향해 물었다.

"아버님 말이 사실이에요?"

케레노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아버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NPC를…."

그녀가 놀라는 사이 케레노스는 마차에서 나와 널찍한 지붕 위로 올라가 누웠다.

그 모습을 보며 김수정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불편하신 거면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아닙니다. 전 이쪽이 훨씬 편합니다. 그러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어색한가보네.

하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데 그럴 만도 하다.

근데 둘이 동갑일 텐데… 뭐, 알아서 친해지겠지.

요즘 남녀가 유별하다는 말은 없어진 지 오래니까.

"그냥 두거라."

김수정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케레노스를 흘겨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마차 안에 들어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핥지 마!"

"콸!"

케르랑은 잘 놀아서 다행이구만.

그렇게 약속한 시간이 다 지났다.

아무래도 한 사람은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역시 무리였나, 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마차 앞에 앉았다.

나는 말고삐를 흔들었다.

"가자!"

"출바알!"

우렁찬 채찍질과 동시에 뒤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 건강하십시오. 잭슨 님!"

"뮬란의 영웅을 잊지 않겠습니다!"

"잭슨 님처럼 훌륭한 모험가가 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저도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피식.

아는 목소리도 있었고, 모르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뮬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에겐 추억을 만들어준 고향과 같은 곳.

이제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시큰해지는 코와 함께 이별의 감상에 젖어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터 최~!! 스탑! 스탑~!"

씨익.

아무래도 온 모양이군.

"아버님,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데요?"

저 멀리 하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드레인이었다.

윈디아로 향할 두 번째 사람은 디자이너 드레인이었던 것이다.

"미스터 최에에에~!"

드레인은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오지 않는 걸 보며 거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각을 했으니 벌은 받아야지. 껄껄."

나는 계속 못 들은 척하며 말을 몰았다.

그렇게 잠시 뒤, 드레인이 합류할 수 있었다.

"허억, 헉. 늦어서 미안합니다. 미스터 최. 아들에게 뮬란에 있는 가게를 부탁하느라 늦었어요."

아, 그랬군.

아무래도 그의 아들 또한 아버지의 가업을 이은 모양이다.

그렇게 어렸던 녀석이 벌써 그렇게 컸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나는 다시 말고삐를 거머쥐었다.

"자, 이제 빠르게 달릴 겁니다. 꽉 잡으세요~!"

"콸!"

"와! 신난다! 꺄악!"

"미스터 최! 잠깐, 나 멀미…!"

짜악!

히히히힝!

그렇게 우리들은 윈디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붕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케레노스는 미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당신의 바람대로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이 넘치는 세상을 이분이 진짜 만들 수 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사아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일행들을 축복하듯 포근하게 감싸 안았고, 그것은 또 다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우리들의 앞길을 간질이며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여행과도 같은 것.

지금은 헤어짐으로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더욱 큰 반가움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웃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미래도.

쭈욱.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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