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35화 (3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35화

제35화

"흠흠~ 흐흠흠~♬"

즐거워 보이는 경쾌한 발걸음.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디딤발을 딛는 한명의 노인이 있었다.

…설마하니 그리 좋은 것을 얻게 될 줄이야.

[이프리트의 팔찌]

등급: 영웅

내구력: 180/180

착용제한: 화염 내성 50% 이상인 자, 차가운 자비의 군주, 참다운 지혜의 군주.

모든 능력치 +50

*화상 상태의 적을 공격시 5% 확률로 적의 생명력 10% 감소

(단, 보스 몬스터나 유저에 한해서는 절반의 효과만 부여하거나 통하지 않기도 한다.)

*화염 속성 공격력 30% 증가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의 심장을 가공해서 만든 팔찌.

화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내성이 있는 자만 착용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자가 착용하면 불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될 것이다.

…화상이라면 나랑 궁합도 잘 맞고, 훌륭하구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곳의 모든 장비들을 수거할 수는 없었다.

떨어진 장비들을 일정시간 안에 줍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증발한 장비들을 보며 돈을 버렸다고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우연히 최불룡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발견했고, 그것을 본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껄껄, 오늘 아주 운수 좋은 날이구먼."

오늘은 왠지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저 멀리 성문이 보였고 나에게 거수경례하는 병사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귓속말이 온 건 그때였다.

- 드레인: 오우, 미스터 최. 마침 들어와 있었군요. 의뢰한 옷이 완성되었는데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시겠어요?

얼씨구. 이런 우연이 있나.

- 잭슨: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나는 드레인의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가게는 뮬란의 가장 구석에 있었고 화려함보다는 거미줄이 가득한 곳이었다.

언제나 파리만이 날렸지만 그의 열정은 언제나 활활 타올랐다.

어느새 나는 드레인의 방에 와있었다.

"오우, 내가 붸리 퐌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한 옷을 완성했는데 미스터 최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언제 들어도 유식한 말투로군.

기름칠을 한 듯 굴려지는 혀가 아주 환상적이었다.

역시 유학파라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나는 잠깐이지만 그의 말투를 따라해 보고 싶었다.

"오우, 감사합니다. 얼른 보고 싶군요. 오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이상한 말투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무식한 놈.

이게 바로 영어란 거다. 영어. 쯧, 하긴 네놈이 알 리가 있나.

나는 그를 따라 작업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역시 거미줄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안쓰러웠다.

"작업장을 좋은 곳으로 옮기시지 그러셨습니까."

"오우, 좋은 지적이에요.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이곳의 모든 옷감들을 초심으로 만져보고 싶었어요."

초심이라….

좋은 말이다. 어쩌면 나도 초심을 잃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끔씩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하얀 천막이 덮인 곳에 도착했다.

"오우, 이거예요."

그가 앞에 있는 하얀 천막을 치우자 나타난 것은 마네킹에 입혀진 하얀 요리사의 옷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데 설마 잘못된 건 아니겠지?

"이 옷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옷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시콜콜한 설명은 듣고 싶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설명 따위, 듣고 싶을 리 없었다.

나는 그가 만든 옷을 살펴보았다.

[지그마의 괴짜 요리정장 상의 - 세트(요리사 모드)]

등급: 희귀

내구력: 150/150 방어력 10

건강+5

-지그마의 괴짜 요리정장 상의

-지그마의 괴짜 요리정장 하의

-지그마의 괴짜 요리정장 구두

-지그마의 괴짜 요리정장 장갑

-지그마의 괴짜 요리정장 중절모

아직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 드레인이 고블린 부족장 지그마의 가죽을 엮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괴짜 요리정장. 안쪽에 있는 실을 잡아당기면 정장으로 변신가능하다.

*정장 모드에서 모든 아이템 능력치 2배 상승

*요리사 모드에서 모든 요리 속도 2배 상승

*세트 효과가 있는 아이템입니다.

-세트를 모두 착용 시 모든 능력치+20

-세트를 모두 착용 시 특수스킬 : 지그마 변신 사용가능.

제법 괜찮은데?

기대 이상의 옷이었다.

요리 속도가 2배로 오른다는 옵션도 마음에 들었고 실을 잡아당기면 정장으로 된다는 기능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입었을 땐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그마 변신? 이건 왜 있는 거지?

이건 잘못 나온 옵션인 모양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이제야 나는 이 지긋지긋한 '냄새나는 고블린 갑옷'과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케르에게 영역표시 당한 바지도 벗을 수 있었다.

"이 부위로 말할 것 같으면, 가죽을 뒤집어서 마감을 한 것으로…."

제길, 아직도 설명하는군.

미안하지만 나는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상의만이 아니라 하의, 구두, 장갑, 중절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 창을 확인한 나는 헛기침을 하며 그를 재촉했다.

"큼, 한번 입어 봐도 되겠습니까?"

"오우, 알았어요. 그만큼 나의 퐌타스틱한 옷을 빨리 입어보고 싶은 거군요. 후후후."

이유야 무슨 상관인가.

빨리 입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의 말에 몇 번이고 맞장구를 쳐줄 것이다.

사실 설명을 듣는 건 내겐 고역이었다.

"그렇습니다. 껄껄."

"오케이, 잠시만요."

드레인은 마네킹으로 다가가 옷을 벗기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곧장 그의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가상현실이라 벗을 필요 없이 터치 한번이면 바로 착용이 되는 건 참 좋은 듯했다.

"오우, 미스터 최의 흰 수염과 하얀 요리복이 아주 품격 있고 엘레강스해요. 오우, 뷰리풀! 오우, 이 핏! 오우… 원더풀!"

그가 위 아래로 나를 훑으며 가슴이 벅찬지 '오우' 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었다.

거울에 비쳐진 내 모습이 제법 멋지긴 했다.

나는 곧장 안쪽에 자리한 녹색 실을 당겨보았다.

촤락!

…오, 이건 더 멋진데.

거울에 비친 나는 어느새 마술사처럼 멋진 연녹색 정장을 입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여러 번 변신을 반복하고 나서야 드레인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오우…! 갓! 뎀!"

영어는 잘 모르지만 신을 '갓' 이라고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신까지 찾는 것일까.

그는 아마 신앙심이 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가보구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17 [제법하는] 날씨 요리사

성호: 국자 성애자(星愛者)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

칭호: 고블린 학살자, 뮬란의 영웅, 정의의 연쇄 살인마

힘44(+70) / 민첩44(+70)

건강10(+95) / 지식10(+70)

솜씨9(+0) / 감각9(+0)

능력치 포인트: 4

*화염 속성 내성 +50%

전체적인 능력치가 상승한 것이 보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힘과 민첩에 2개씩 능력치를 찍었다.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광대가 좌우로 씰룩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미도야. 할애비가 곧 구해주마.

"크하하하하!"

나는 아주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 * *

"으아아아아아아!! 이 멍청한 새끼들아!!"

빠악! 빠악! 빡! 빡!!

"끄윽!"

"큽!"

"억!"

수십 명의 남자들이 나란히 엎드린 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떻게 이 많은 인원으로 그 영감탱이 하나를 못 이겨! 니들이 그러고도 불룡파라고 할 수 있어!! 어?!"

"죄송합니다!! 큰형님!!!"

수십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외치자 건물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야구방망이로 사정없이 엉덩이를 때리고 있는 사람.

아까 전 자신에게 탈탈 털리며 복날처럼 두들겨 맞았던 최불룡이었다.

"니들이 그러고도 이 최불룡이의 동생들이야!!!"

최불룡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동생들의 엉덩이를 계속 내려쳤다.

'제길! 하필이면 떨어뜨려도 그걸 떨어뜨리다니! 그게 얼마짜린데!'

며칠 전, 그는 조직생활을 하며 모은 돈의 절반을 한 아이템을 구매하는데 썼었다.

그것은 바로 '이프리트의 팔찌'.

원래 그 팔찌는 화염 마법을 주로 쓰는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연하게 히든 직업인 '화염의 광전사'로 전직하게 되면서, 공격에 화염 속성을 담을 수 있게 되었고, 처음 그 팔찌를 경매장에서 보았을 때 이건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문제는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싼 것이 흠이었는데….

'어렵게 은행에서 대출을 끌어다 산 거였는데… 으으으!!!'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당장 대출 이자를 갚으려면 더 좋은 아이템을 팔아야하는데… 어떡한다.'

그동안은 동생들을 시켜서 뮬란을 지나다니는 초보자들을 기습해 희귀한 아이템이 있으면 빼앗아오게 시켰었다.

그렇게 얻어온 아이템들은 경매장에 팔지 않고 다크 게이머 홈페이지인 다크 나라에 올려 수수료를 떼지 않고 현금으로 거래해 대출 이자를 막아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쉽지 않아졌다.

'크윽. 안 그래도 무각회 놈들이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버려서 열 받는데 이런 일 까지 생기다니… 이렇게 되면 이 방법뿐이다.'

"일어서라."

우르르르.

50명이 넘는 인원이 동시에 일어서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최불룡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각자 개인 돈으로 장비를 구매해 레벨업에 집중한다."

"예? 그럼 저희들은 이제 어디서 작업을…."

"윈디아. 그곳으로 간다."

최불룡의 불타는 눈빛이 창밖으로 향했다.

'망할 영감. 기다려라. 반드시 이프리트의 팔찌를 되찾아주겠다!'

* * *

똑똑.

"김지수입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하이힐을 신은 매혹적인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김지수.

유민석의 비서였다.

"그래, 진철이는 히든 전설을 얻은 사람에 대한 실마리는 찾았데?"

"아니요. 아직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 이것 참 난감하군."

유민석은 요즘 골머리를 앓았다.

어서 히든 전설의 주인공을 찾아야 야근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고레벨 랭커들을 뒤져도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레벨 제한을 낮추어 200레벨대도 찾아보았지만 똑같았다.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거냐. 국자 성애자.'

아려오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는데 김지수가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쿵.

"이게 뭐야…?"

"지금까지 쌓여있던 유저들의 문의랑 건의사항입니다."

산더미 같은 서류더미를 보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확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만큼이나 쌓여있다니… 유민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김 비서. 그거 다음에 하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지금까지 밀린 것만 해도 1만 개가 넘습니다."

"제길, 알았으니까 나가봐."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도도하게 나가는 김지수.

그녀는 훌륭한 재원이었지만 일적으로는 너무 냉정해서 탈이다.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 되는데….

"에휴, 그래도 미뤄둘 수는 없지. 어디 한 번 읽어볼까?"

사락. 사락.

"흠…."

유민석은 진중하게 유저들의 소리를 읽어 내려갔다.

그래도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고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 이게 뭔 말이야?"

[이노ㅁㄷㅡ라 저ㄴ지ㅣㅣ기 안 댄다.화기s해바. 개이므재미다. 아프로도재미께 마ㄴ드라라. 여ㅓ시ㅁ ㅣ하게. 고맙다.]

-만 68세 최춘택(잭슨)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그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마지막에 있는 고맙다는 글자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가 고맙다는 내용을 전한 것이리라.

"할아버지…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도저히 못 알아보겠어요."

유민석은 한숨을 쉬며 책상 밑에 있는 세절기를 향해 종이를 넣어버렸다.

드르르르르!

"좋아! 할아버지 응원 받고 힘내서 더 읽어보자고."

손바닥으로 양볼을 찰싹 때리며 기운을 북돋는 유민석.

그렇게 그가 찾던 국자 성애자는 허무하게도 세절기에 의해 갈려지고 있었다.

드르르르르르륵!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