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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9화 (2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29화

제29화

갑자기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설마 놀들은 아니겠지…?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직 식사 전이라 밥이라도 먹고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풀숲은 한 번 더 좌우로 흔들리더니 건장한 남자 둘을 뱉었다.

"분명 여기 어디쯤 맛있는 냄새가 났는데."

"그러게요. 여기 어디쯤인데."

…사람?

인적이 드문 이런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은 킁킁거리며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인사를 해왔다.

"오! 안녕하십니까!"

멀대 같은 남자가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멸치처럼 삐쩍 마른 사람도 함께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그들은 NPC가 아닌 유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이름이 안 보이는군.

"그래, 젊은이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숲에 있는데 갑자기 맛있는 냄새가 나지 뭡니까."

"저런, 배가 고팠나보구만. 자네들도 이리와 앉게."

나는 옆에 있는 통나무를 가리키며 그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곧장 국을 떠서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많이 들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들이 국을 뜨려는 순간.

솔라가 입을 열었다.

"많이 먹어라! 예쁜 인간들아!"

"헉! 부, 불이 말을…!"

"뭐야 저게?!"

그들이 놀라 자빠질 기세로 엉거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하마터면 국을 흘릴 뻔했다는 사실에 그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긴 하지. 껄껄.

"난 불이 아니라 태양이야!"

"태, 태양…?"

솔라의 말을 들은 그들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많이 놀랍긴 하겠지만, 뭐, 자꾸 보다 보면 적응도 되고, 나름 귀여운 구석도 있는 녀석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솔라의 몸에 빙의합니다.]

뭐야 이 녀석. 갑자기….

"영감."

어느새 푸른빛이 형형하게 어린 솔라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번에 말을 걸어왔을 때도 그랬는데 아마 솔라를 통해서 말을 할 때 마다 푸른 불꽃이 눈에 어리는 모양이었다.

이 자식. 그래도 깜빡이는 키고 들어올 것이지.

"저놈들 여기서 죽여야 해."

"뭐…?"

잠깐이지만 '그게 무슨 개소리야?' 라고 녀석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고깃국을 먹던 두 사람이 흠칫, 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인데… 뭐지?

"정체를 드러내라."

솔라의 푸른 눈이 형형하게 그들을 쏘아 보자, 땀을 흘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결국, 일이 벌어졌다.

쨍그랑-!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체를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지."

"저 냄비랑 불덩어리 펫은 우리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지. 이 자식들, 지금 솔라를 펫이라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은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단검을 꺼내 쥐었다. 그들도 어느새 각자의 검을 뽑고 있었다.

솔라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 무고한 사람들을 협박하거나 죽여서 가진 것을 빼앗는 놈들이야."

"……."

"뭐, 영감 알아서 잘할 테지. 난 이만 소환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 돌아갈게."

화륵-!

불꽃이 흩어지며 솔라가 사라졌다.

…이 망할 놈이. 사고는 지가 쳐놓고 수습은 내가 하라 이거냐?

눈앞에 있는 한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영감님 펫을 숨긴 겁니까?"

"저 녀석 펫 아닌데?"

"거짓말 마쇼!"

젠장. 왜 믿질 못하는 거냐.

한 녀석이 달려오며 검을 부딪쳤다.

츠카카칵.

한손 검과 단검이 부딪히며 작은 불꽃이 튀었다.

한쪽 입 꼬리를 음흉하게 올린 마른 녀석이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쉽게 당할 내가 아니었다.

재빠르게 뒤로 빠지며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옆에서 또 다른 검이 날아들었다.

나는 왼팔을 베이고 말았다.

"…이놈들이."

흘러내리는 피를 보는 순간 나의 얼굴은 흉신악살의 악귀가 되어 있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궁리했다.

"크하하, 이제 그만 순순히 항복하시지요. 딱 보니 생산직인 요리사 같이 보이시는데 저희들을 당해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Lv. 18 육불이 (살인자)]

…살인자.

이름이 왜 안보이나 했더니 가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 방송에서 본 기억이 난다.

살인자라는 존재들은 <허상의 날개>  라는 아이템을 이용해 이름을 가리고 다니니 조심하라고. 근데 그건 굉장히 비싼 아이템이라고 들었는데… 이 녀석들, 부자인가?

"그냥 순순히 내놓으시죠. 우리 불룡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Lv.21 네불이 (살인자)]

네불이란 녀석은 이제 정체를 감출 생각이 없는지, 그냥 이름을 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비천기상무'를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비천기상무 - '해 오름'의 쿨타임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젠장. 그럼 단검으로….

"으하하하!"

챙! 챙! 챙! 서걱-!

네불이의 검이 또 한 번 팔을 스쳤다.

"이 썩을 놈들이…."

[사도 버프를 받았습니다.]

[30분 간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진작 좀 이렇게 해주지, 이제 와서 줄 건 뭐람.

하여튼 성격 이상한 놈이라니깐.

나는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탓, 타탓, 탓! 빠악!

"뭐, 뭐야!"

"이 미친 영감탱이가!"

곧장 육불이도 반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그도 똑같은 건 마찬가지였다.

타탓, 탓 탓. 서걱!

파라락! 빠아악!!

각종 관절기와 공중 돌려차기로 네불이를 날려버렸다.

그 모습에 네불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이 영감, 도대체 정체가 뭐지…?"

두 사람이 동시에 침을 꼴깍 삼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니들 같은 놈들 때려잡는 저승사자다."

순간 뒷다리에서 힘이 터져 나오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두 사람의 당황하는 표정과 동시에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사도 스킬: '혜안'을 사용합니다.]

[1분간 적의 공격 경로를 볼 수 있습니다.]

적색의 이채가 눈에 감돌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다음 움직임이 잔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탓, 타탓. 푹! 서걱-!

파팟! 서걱! 푸욱-!

"끄아아악!"

탓, 서걱! 푹푹! 푹! 서걱! 빠악!

"이, 미친!!"

그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다른 얼굴로 물들고 있었다.

처음엔 기쁨에서 환희로, 당황에서 분노를 거쳐 공포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그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바아알!! 왜 안 맞는 건데!!"

"크으윽, 분노의 돌…."

빠악!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네불이가 턱주가리에 공중 돌려차기를 맞으며 날아가버렸다.

멀리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네불이의 고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내겐 닿지 않았다.

…귀가 안 좋아서 안 들리는군.

"이야아아앗!"

이놈은 지치지도 않나.

나는 다시 덤벼드는 육불이의 온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탓, 사삭! 탓, 서걱-!

푹푹! 서걱-! 서걱-!

다리를 부러뜨리고.

검을 들고 있는 팔도 비틀어버렸다.

우드득.

"으아아아악-!"

잔인한 비명소리가 개울가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육불이는 어느새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불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그에게서 터질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쿠콰카카-

"분노의 돌진!"

스킬을 쓴 건가….

수정이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스킬을 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소감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형편없구만. 쯧쯧."

네불이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혜안을 쓴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찔러오는 검을 가볍게 빗겨내며, 그의 오른팔과 어깨를 크게 베어버렸다.

"끄아아아악!"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또 할 게 남았냐?"

"큭…."

힘의 차이를 깨달았는지 녀석들은 더 이상 덤벼오지 않았다.

그들의 전의는 완전히 상실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난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힘겹게 일어서는 네불이의 다리에 있는 힘껏 단검을 던졌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겁에 질려있는 육불이를 보며 말했다.

"꿇어라."

잠시 후.

두 사람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것도 가릴 곳만 가린 반나체 상태로.

나는 지금 그들에게 잔소리를 쏟아 내는 중이었다.

"네놈들은 노인공경도 모르냐?"

"……."

"왜 대답이 없냐!!!"

대답이 시원치 않자, 호랑이 같은 고함을 질러버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일정 데시벨 이상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히든 스킬: 사자후를 배웠습니다.]

…응?

[사자후][액티브]

등급: 희귀

쿨타임: 5분 / 마력 소모: 50

위압감을 주는 한 마디로 적을 잠깐 멈추게 만듭니다. 특정조건을 계기로 위압감이 더 강해집니다.

염병하네.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져 나올 뻔 했다.

'이렇게도 스킬을 얻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잔소리로 스킬을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자후의 기운이 눈앞의 대상을 위압합니다.]

…생각보다 잘 먹히는군.

"죄, 죄송합니다!!"

그들은 갑작스런 위압감에 오싹했는지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겨 보거라."

"살려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내가…? 왜 그래야하지?"

"그, 그건…."

대답은 네불이에게서 들려왔다.

"저희를 살려주시면 저희 큰형님이 어르신을 쫓지 않을 겁니다!"

"너네 큰형님이 누군데."

"최불룡입니다."

"그래서?"

"예…?"

"최불룡인데 어쩌란 말이냐."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 불룡파는…."

푸욱!

"끄아아아악-!"

"잘 들어라. 한 번만 더 상황 파악이 되니 안 되니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면 네놈들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찢어발겨 버릴 것이다."

꿀꺽.

두 사람의 목울대를 삼키는 소리가 내 귓가에까지 들려왔다.

"그러니 앞으로는 노인을 보면 예의바르게 대답을 하는 법부터 배우도록 하거라."

"……."

"대답."

"예!!"

"알겠습니다!"

…후레자식 같은 놈들.

잠깐 뚜껑이 열렸었지만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목을 따버릴까 했는데… 이렇게 쫄보처럼 있는 모습을 보니 김이 다 새버렸다.

제길. 이렇게 짜증나는 건 오랜만이군.

[Lv21. 네불이]

[생명력: 12/814]

[Lv.18. 육불이]

[생명력: 16/775]

뭐, 그래도 이 정도 생명력이면 다시 덤비진 못하겠지.

마침 핵핵거리며 다가오는 불독이 보였다.

나는 이참에 이 녀석의 이름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이 녀석의 이름을 한 번 지어 보거라."

"예…?"

"이름."

"아, 예!! 케, 케르베로스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지, 지옥을 지키는 개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쁘진 않군.

좀 긴 것이 흠이었지만, 그래도 불독의 얼굴과 꽤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었다.

나는 손을 핥고 있는 녀석을 들어 올리며 얼굴을 마주보았다.

"가르르릉."

…귀여운 녀석.

"좋다. 가봐라."

고개를 까딱거리자 두 사람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길잡이 녀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저들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얘기합니다.]

"그래…?"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냥 없애버릴 것을 추천합니다.]

순간 고민이 들었다.

그동안 이 녀석의 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이 녀석의 조언은 빛을 발했었다.

수정이가 이 녀석은 예언자라고 그랬었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케르."

"크르릉?!"

케르베로스라는 이름은 너무 길어서 그냥 '케르'라고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도망치는 녀석들을 가리켰다.

"물어라."

"콸!"

밥을 먹여서 그런지 힘이 철철 넘치는 케르. 근데 설마하니 진짜로 가버릴 줄은 몰랐다.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잠시 후. 케르가 돌아왔다.

입에는 피를 한가득 묻힌 채로.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웃으며 내게 보고했다.

"콸."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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