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28화
제28화
놀을 잡는 것은 순조로웠다.
확실히 20레벨의 능력치를 가진 녀석들이라 재빠르고 날렵했지만, 나에겐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하긴, 고블린 족장도 때려잡았는데, 이런 멍멍이들 쯤은 내겐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놀의 발톱 22/50]
이제 절반쯤 된 건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개울가에 이르고 있었다.
유저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는데, 여기까지 들어오고 만 것이다.
꽤나 정겨운 물소리라서 눈을 감는데, 괴성이 들려왔다.
"콸!"
"……."
또 놀들인가….
"콸콸!"
음? 어째 내가 알던 놀이 짖는 소리가 아닌데…?
오히려 강아지에 가까운 그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콸!!"
…불독?
그렇다. 저것은 분명 불독이라는 품종의 강아지였다.
예전에 '동물농장'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래, 저것은 불독이 맞았다.
더욱이 알 수 없는 것은 불독의 뒤로 놀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르르르-
그 숫자가 자그마치 50에 가까웠다.
"이게 무슨…."
"컹! 컹컹!! 커엉!"
놀들이 떼거지로 울부짖었다.
"…환장하겠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불쌍한 강아지를 구해주길 원합니다.]
구해줘야하나…?
잠깐 고민이 들었지만, 어차피 놀을 잡긴 해야 했으니, 구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천기상무(飛天氣象舞)"
팟. 팟팟. 팟.
오만한 고블린 부족장을 태워버린 태양의 비각술이 발끝에서 펼쳐졌다.
이윽고 양발에 불꽃이 만개하듯 타올랐고, 첫 대상은 불독을 물어뜯으려는 놀의 아가리였다.
콰아아아앙-!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놀의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놀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머리가 터지며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학살에 이곳은 각종 개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깨갱!"
"끼이잉!"
"꺄우!"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몬스터였다.
그리고 나는 몬스터에겐 자비가 없는 사람이었다.
콰아앙!
불타는 발에 몸통을 꿰뚫린 놀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주변에 있던 놀들이 동시에 울부짖는 것이 보였다.
"컹-! 컹컹-!"
"그래. 드루와. 드루와!"
파라라락-!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쓰러져갔다.
그게 놀이든 고블린이든 중요치 않았다.
나는 그저 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쾌감을 느낄 뿐이었다.
마침내 나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썩을 놈들."
주변에 있던 놀들은 모두 잿빛으로 산화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각종 잡동사니들과 아이템들을 두둑이 내뱉었는데 확실히 고블린들보다는 주는 아이템이 좋은 것 같았다.
그때, 밑에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핵핵핵핵."
귀여운 녀석이네.
불독은 꽤나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오래 달렸는지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던 녀석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두발로 서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껄껄."
생각지도 못한 애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혼자 다니기 심심했었는데… 잘됐군.
그때 창이 떴다.
띠링-!
[길 잃은 강아지]
이름 모를 강아지가 바람의 언덕에서 길을 잃었다. 주인을 찾아주면 작은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몬스터들의 위험에서 강아지를 구해 주인에게 인도하자.
- 완료 조건: 이름 모를 강아지의 주인 만나기.
- 강아지가 사망 시 퀘스트는 실패합니다.
"길을 잃었던 게로구나."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이름 모를 강아지]
[□□□□□□□□□□]
- 현재 상태: 배고픔
"핵핵핵핵."
"배고픈가 보네."
나는 이름 모를 강아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침 강아지도 배가 고팠고 나 또한 포만감이 슬슬 떨어지고 있었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주변의 지형은 밥을 해먹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이름 모를 강아지와 나는 개울가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 요리술."
화아아아악-!
언제 봐도 신기한 광경이다.
작은 불씨도 없는 이곳에서 불꽃이 휘몰아치는 광경은 정말이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할 뿐.
그 어떤 것도 나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콸! 콸콸!"
이름 모를 강아지는 불꽃이 몰아치니 놀란 듯했다.
점멸하는 불꽃의 사위와 함께 솔라가 나타나자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제법 겁이 많은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솔라가 인사했다.
"안녕하냐! 주인!"
이놈이 말버릇하고는….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인자한 미소를 짓습니다.]
쯧쯧. 네놈이 자꾸 그렇게 끼고 도니깐 이렇게 버릇이 나빠지는 거다.
"또 보는구나. 솔라야."
"이번엔 무슨 일이냐! 해해!"
"요리를 하자."
"알았다. 기대하겠다!"
반말을 찍찍 해대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일단 냄비를 공중으로 던졌다.
둥실둥실 떠오르는 냄비를 보며 감회에 젖었다.
…언제 봐도 놀랍단 말이지.
재질이 부유석이랬나?
그나저나, 뭘 만든다.
고민 끝에 나는 고깃국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재료로는 그것이 최선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아지도 먹을 수 있고, 나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설마하니 남을 위해서 하는 첫 요리가 개밥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야채를 구해야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야채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근처 풀숲을 뒤져야했다.
이곳 '아크 랜드'에는 많은 채소와 야채들이 야생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부락을 소탕하며 보았던 것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내심 먹을 만한 것이 있기를 바라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오호,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우람하고 알록달록한 콩버섯]
등급: 일반
독버섯 같이 생겼지만 식용 버섯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향이 더욱 깊어진다.
…크고 아름답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버섯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용 무풀을 획득하였습니다.]
[양파 잡초를 획득하였습니다.]
[민들레 꽃씨 소금을 획득하였습니다.]
정보창에 식용이라고 적힌 것들은 모조리 채취했다.
이왕 재료를 얻는 것이라면 다음에 먹을 것까지 챙기면 좋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다.
물론, 꽝도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것은 먹지 않길 추천합니다.]
…식용이라고 다 먹을 순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
근데, 이 녀석은 이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지?
수수께끼 같은 물음이 돌아왔지만, 우선은 냄비가 있던 곳으로 돌아 와야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라야, 물을 끓여다오."
제법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솔라는 비실비실 웃으며 냄비 밑으로 움직였다.
금세 끓기 시작하는 물을 보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역시 화력 하나는 발군이라니까.
"깍둑썰기!"
재료들을 공중에 던져 휘두르자 숙련도가 상승했다는 창이 보였다. 야채들이 모두 깍둑 모양으로 냄비에 들어가는 것이 제법 환상적이었다.
모아둔 능력치를 모두 민첩에 투자한 보람이 있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렸다.
사실 지그마와의 전투 이후 경각심을 갖게 되어 찍게 된 능력치였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 편리성, 이젠 새삼 놀랍지도 않다.
후우우우-
조미료가 없어서 급하게 구한 '소금 맛 민들레 꽃씨'를 꺼내 후 하고 불었다.
꽃씨가 공중에 휘날렸고 모두 들어가면 너무 짤 것 같아서 조금씩 넣고 맛을 보았다.
꽃씨가 국에 녹아들어가는 모습이 꽤나 진풍경이었다.
후릅.
"…조금 싱겁네."
야생에서 자란 천연 소금이라 그런 모양이다.
옆에 있던 불독 녀석이 핵핵거리며 달려들었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솔라에게 말했다.
"솔라야, 냄비에 조금 더 가까이 붙어보거라."
"알겠다. 주인!"
치이이이익-
고깃국이 빠른 속도로 졸여지기 시작했다.
역시 태양 불이라 졸이는 속도 또한 남달랐다.
나는 순식간에 졸여진 고깃국을 다시 맛보았다.
후릅.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어떤 맛일지 궁금해합니다.]
"썩 괜찮구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꼬르륵거립니다.]
아니, 이놈은 배에 거지가 들었나.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신이 맞는지 의문이다.
어째서 이런 놈이 내게 붙었는지. 에잉. 쯧쯧.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잘머거스가 준 국자로 천천히 국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띠링-!
[진국! 고블린 고깃국!]
배고픔은 최고의 소스이다.
자신과 이름 모를 강아지를 위한 정성이 들어간 요리는 맛이 없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름 모를 강아지는 이 요리를 보며 침을 흘리게 될 것이고 당신을 더욱 잘 따르게 될 것이다.
-맛 스타: ☆☆
-유통기한: 3일
-생명력 회복: 100 / 마력 회복: 100
효능: 이 요리를 먹는 사람은 하루 동안 강아지와의 호감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생명력 회복속도 20% 증가.
이동속도 5% 증가.
모든 개 종류 몬스터에게 선공을 당하지 않습니다.
*태양의 가호: 30분간 힘10%, 방어력10% 화염 공격력10% 화염 내성10% 증가합니다.
[날씨 요리술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솜씨 능력치가 6 올랐습니다.]
[감각 능력치가 4 올랐습니다.]
[태양의 정령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불 조절을 좀 더 세심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호오."
고블린 고기가 조금 남아있어서 재료로 쓴 것이었는데, 제법 성공적인 것 같았다.
앞에 있는 정보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더 좋은 것은.
"버프가 좋아졌군."
아무래도 저 '맛스타' 라는 것이 음식의 등급을 나누는 척도인 듯했다.
별이 많을수록 더 좋은 요리가 나오고 더 좋은 버프가 나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배꼽시계가 울린 건 그때였다.
꼬르륵.
…나도 제법 배고팠나보네.
"핵핵핵핵!"
찰거머리처럼 다리에 붙어 점프를 하는 불독.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것이 보니, 코끝을 찔러오는 냄새가 제법 참기 힘든 모양이다.
"껄껄. 조금만 기다리거라."
나는 그릇에 고기를 듬뿍 담아 불독의 앞에 내려다놓았다.
"많이 먹거라."
"해해! 많이 먹어라! 예쁜 강아지야!"
"콸!"
불독은 기분이 좋은지 우리들을 향해 씩씩하게 짖고는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이 맛에 요리하는 거지.
이럴 때가 가장 요리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 그것은 요리사에게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다.
설사 그것이 작고 미약한 강아지라 해도 기쁨은 감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쾁 쩝쩝 쫩쫩. 쾁… 촵촵촵촵."
근데, 이 녀석 진짜 맛있게 먹네.
눈앞에는 녀석의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호감도가 올라가는 건지 신기하기도 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침을 질질 흘립니다.]
에휴, 알았다 이놈아.
나는 고깃국을 담아 솔라에게 건네주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전언이 있었는지 솔라는 곧바로 불의 제물을 사용해 고깃국을 기화시켜버렸고, 다시 봐도 신기한 광경에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 가 흡족한 미소를 흘립니다.]
맛있나 보네.
그럼 나도 먹어볼까?
"맛있게 먹어라! 예쁜 주인아!"
나는 활기찬 솔라의 목소리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깃국을 뜨려 했다.
그런데.
스슥. 스슥.
옆에 있는 풀숲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