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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7화 (2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27화

제27화

파티창을 보며 생각보다 높은 그의 레벨에 눈이 뜨여졌다.

31이라… 아무래도 그는 나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 사람인 듯했다.

근데 '왓더 박'이 무슨 뜻이지?

"큼, 미안합니다. 미스터 최. 제가 너무 당황하는 바람에 무례를 범했군요."

"괜찮습니다. 제가 영어를 못해서 못 알아들었습니다."

…영어를 좀 배워둘 걸 그랬군.

시간이 난다면 드레인에게 배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다들 이렇게 시작하는 거지 뭐. 껄껄.

"그나저나 이런 가죽도 괜찮습니까?"

나는 그에게 또 다른 가죽을 내밀었다.

[지그마의 가죽]

등급: 희귀

큰 어금니 부족의 족장 고블린 어쌔신 지그마의 가죽이다.

이것으로 옷을 만들면 탄력적이고 날렵한 옷을 만들 수 있다.

*낮은 확률로 지그마와 관련된 스킬 생성 가능.

고블린의 가죽이라고 하니, 혹시나 싶어서 한번 내밀어보았다.

…뭐, 고블린은 맞으니까.

내가 내민 가죽을 보며,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드레인은 연신 뒤집어보고 만져보며 가죽이 얼마나 질긴지 확인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반응은 꽤 성공적이었다.

"오 마이 갓, 오 쉣, 오 갓. 쏘 원더풀. 쏘 뷰리풀. 쏘 퍼펙트!"

…음, 진짜 유식해 보이는군.

역시, 그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이 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나중에 왓더 박(?)도 무슨 뜻인지도 물어봐야지.

"미스터 최, 이건 정말 놀라운 가죽이에요. 이건 어디서 얻은 건가요?"

"족장 놈을 때려잡아서 얻은 겁니다."

"족좡? 때려잡아…?"

드레인이 미심쩍은 눈으로 날 흘겨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믿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믿게 만들어줘야겠지.

와르르르-

"이, 이게 다 뭔가요. 미스터 최!"

"고블린 가죽입니다."

"이게 다 고블린 가죽이라구요?"

"네."

와르르르-

"그, 그만! 스탑!"

"아직 멀었습니다."

와르르르-

* * *

30분 뒤, 나는 뮬란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드레인에게 줄 수 있는 가죽이란 가죽은 몽땅 내어주었고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었기에 아깝단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는 내게 연신 고마움을 표하며 나중에 재료만 가지고 오면 무료로 옷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새삼 한국인의 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한국인들끼리 돕고 살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껄껄."

그렇게 놀이라는 몬스터를 물어보기 위해 첸에게 가는 중이었다.

물론 가면은 벗고 있었기에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오, 잭슨 님 아니십니까. 하하!"

…저 망할 놈.

다가오는 필로스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건강한 혈색으로 걸어오는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여튼 간은 싱싱한 놈이라니까.

"속은 괜찮냐. 이놈아."

"하하하. 거뜬합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필로스를 보며 간을 부여잡습니다.]

"마침 잘되었군요. 잭슨 님께 드릴 것이 있었는데."

"……?"

줄 것이 있다는 녀석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블린 부락을 토벌하라!>   완료]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0,000달러를 획득하였습니다.]

[뮬란의 수비대장 필로스와의 호감도가 이미 최대치입니다.]

…아, 까먹고 있었군.

사실 급하게 나가느라 퀘스트를 받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귀찮게 막사로 갈 필요가 없으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필로스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이게 뭐냐."

"제가 적은 추천서입니다."

[필로스의 추천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실은 어제 전해드리려 했었는데 제가 술을 마시느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하하하."

…알긴 아네.

"잭슨 님의 실력이라면 곧 이곳을 떠나 윈디아로 향하실 테지요. 그곳의 수비대장에게 이것을 보여주면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뭘 이런 것까지. 아무튼 고맙다."

"하하, 뮬란의 영웅에게 이 정도밖에 해드릴 수 없어서 죄송할 뿐입니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이만.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한잔하시죠."

"그래, 그러자고."

대답과 동시에 속에서 술 냄새가 올라왔다.

당분간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할 것 같았다.

빌어먹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간의 통증을 호소합니다.]

이놈도 어제 술 마셨나…?

신이란 놈이 술이나 퍼마시고 다니고 하여튼, 쯧쯧.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스미르 산을 향해 걸어갔다.

* * *

"이제야 자네랑 이렇게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게 되었구만. 허허."

"내가 뭐라고 이러나 이 사람아."

"우리 마을을 구해준 영웅이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 귀한 차를 대접하면 아주 기분이 좋다네. 껄껄. 자, 사양하지 말고 마셔보게나."

나는 첸이 권해주는 차를 마셔보았다.

…맛있네?

누런빛이 감도는 차는 향은 물론이고 그 맛 또한 아주 일품이었다.

사실 기대도 안 했는데 집에 가져다 쟁여놓고 먹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궁금해져서 첸에게 물어보았다.

"차 맛이 아주 일품이구만. 이건 뭘로 만든 차인가?"

"늑대의 소변을 우린 것일세."

푸우우웁-!

"이보게 괜찮은가? 이런, 사레가 아주 심하게 들린 모양이구먼."

…우라질.

"콜록! 자네는 이걸 자주 먹나?"

"음? 그래, 나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까지 이것을 자주 먹곤 한다네. 왜, 입에 안 맞는가?"

"그, 그럴 리가."

"껄껄, 많이 들게.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야."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직도 많은 늑대소변 차(?)가 한가득 남아 있었다.

젠장, 맛있어서 더 열 받는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을 보며 낄낄거립니다.]

…웃지 마라.

"그나저나, 자네 딸은 어디 갔나?"

"딸…?"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딸이라면 서현이밖에 없는데 누구를… 아, 혹시?

"크리스탈 말하는 건가?"

"그렇네. 허허."

"일이 조금 바빠서 아마 당분간은 오지 못할 게야."

"음, 그랬구만."

첸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 보였다.

나는 찻잔의 주둥이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설마 수정이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리 늦장가를 가고 싶어도 그건 아니었다.

그래, 아닐 거야. 아니겠지.

"죽은 내 딸이랑 참 많이 닮았어. 자네 딸 말이야."

순간 어깨가 들썩여졌다.

젠장. 그런 이유였을 줄이야.

잠깐이지만 그를 의심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나는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참 예쁘고 순수한 아이였지. 아마 그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자네 딸 정도 되었을 게야."

"…그랬구만."

"그 아이의 이름은 '스실라' 라네. 자네가 아까 말했던 놀이라는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지. 그 아이가 좋아했던 '아이올리아' 꽃을 내게 가져다주기 위해 멀리 나갔던 것이 화근이었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만약 내 딸이, 손녀가 그런 괴물 녀석에게 잡아 먹혔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지금의 그처럼 태연하게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장 복수하겠다고 찾아가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리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안타까운 이야기에 눈물을 훔칩니다.]

"매년 딸아이의 기일이 되면 나는 바람꽃 아이올리아를 그 아이의 무덤에 갈아주곤 하네."

"딸아이가 좋아하겠구먼."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만, 이 가슴의 울분을 털어낼 길이 없어. 당장에라도 저 놀들을 찢어죽이고 싶은데 내겐 그럴 힘이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네."

"……."

"자네, 놀들을 잡으러 간다고 했나? 부탁함세. 내 딸의 복수와 함께 아이올리아도 가져다 줄 수 있겠나? 곧 그 아이의 기일이거든."

띠링-!

[스실라와 아이올리아]

난이도: D+

뮬란의 촌장 첸의 딸 스실라는 생전 아이올리아를 가지러 가다 안타깝게도 놀들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스실라의 기일에 맞춰 그녀의 무덤에 바칠 아이올리아가 필요한 첸. 북쪽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에 놀들을 잡아 복수하고 아이올리아를 가져오도록 하자.

*완료 조건: 바람꽃 아이올리아 0/10, 놀의 발톱 0/50

찰나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어찌 그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두 주먹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놀들을 찢어버리고 오겠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아닐세. 친구끼리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잠시만 기다리게."

"……?"

첸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몇 분 뒤에 나타나 들고 온 것은, 고운 비단에 올려져 있는 5개의 무기들 이었다.

칼, 창, 도끼, 단검, 활.

한눈에 보아도 정성스럽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는 무기들은 날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이걸 다 주는 건가…?

"큼, 난 활이랑 도끼는 필요 없는데."

"뭔 소린가. 하나만 가져가게.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망할 자식.

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르자, 재빨리 단검을 거머쥐었다.

[늑대 송곳니 단검]

등급: 희귀

공격력: 60

내구력: 200/200

뮬란의 촌장이자 대장장이인 첸이 늑대의 이빨을 특유의 담금질로 한계까지 끌어올려 강도를 올린 단검.

- 찌르기 데미지 10%증가

"고맙네. 안 그래도 자네가 준 무기가 깨져버렸었는데 말이야."

"그랬나? 하긴, 오래 쓰기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었을 걸세."

사실 나에겐 단검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그마를 잡고 얻었던 그림자 단검.

하지만 착용 레벨 제한이 30이나 되어서 지금은 쓸 수가 없었다.

해 오름으로 계속해서 사냥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곤란했는데…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놈들의 심장을 찍어버리고 오겠네."

나는 곧장 그와 헤어져 북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았다.

어제 축제에서 보았던 마을 사람들이 한명씩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충!"

"잭슨 님을 뵙습니다!"

"이거 좀 드셔보세요!"

…이거 참, 부담스럽네.

병사들은 지나갈 때마다 내게 예를 취하기 일쑤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 좀 먹어보라며 계속 먹을 것을 내밀어 왔다.

누군가는 손수 딴 과일을, 누군가는 손수 만든 무기를, 누군가는 손수 만든 늑대 소변 차를… 아니, 이건 필요 없는데.

마을 사람들은 저 차에 대한 무료 시음회를 하고 있었다.

유저들이 이 사실을 알면 꽤나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1면에 나겠군.

헤드라인으로 딱 좋았다.

[뮬란, 유저들에게 늑대 소변을 먹여.]

자극적이고 좋구만.

"에휴, 빨리 새로운 가면을 하나 구하든가 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나는 어느새 북쪽으로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처음 오는 것 같은데."

남쪽 스미르 산과 동쪽, 서쪽은 가보았지만 북쪽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새로운 모험이 기다릴 것 같다는 생각에 저절로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런 생각을 품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슴 트이는 정경.

싱그러운 나무들.

저 멀리 보이는 드넓은 초원에 피어있는 하얀 꽃들이 내 가슴을 포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꽃구경을 와도 괜찮겠어."

일직선으로 이어진 길목에는 유저들이 떼를 지어 걷고 있었다.

마치 내가 걷는 이곳이 길이라는 듯 그렇게.

무리지어 걸어가는 그들을 보며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어오는 꽃내음이 향긋하게 코를 간질이는 것이,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나를 만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현실은 아직 추운 겨울이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봄날의 청춘처럼 하늘거렸다.

하지만 여유는 이어지지 못했다.

스슥. 스슥.

"……?"

조금 떨어진 풀숲이 살짝 흔들리며 몸을 떨었다.

한 번 더 흔들린 풀숲은 이윽고 개의 머리를 가진 두 발의 짐승을 내뱉었다.

[Lv.20 놀]

"크르르르."

"그래. 네놈이 놀이로구나."

벌건 눈을 가진 개의 머리는 나를 노려보며 낡은 창을 겨누고 있었다.

곧장 달려올 자세를 취하는 것이 금세 공격을 해올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첸이 만들어준 단검을 장착했다.

"컹!"

"성미가 급한 녀석이군."

나는 휘둘러오는 창을 살짝 피해내며 녀석의 팔을 베어버렸다.

서걱-!

푸슈슈슛.

무기를 들고 있던 팔이 고꾸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잘려나간 팔을 붙잡으며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놀이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단호한 남자였다.

"어이."

"끼잉…?"

"엄살 피우지마라."

그래. 엄살 피우지마라.

이 개자식들아.

스실라는 이것보다 몇 배는 고통스러웠을 테니.

"간다."

파아아앙-!

터져 나오는 파공음과 함께, 첸을 위한 나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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