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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3화 (2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23화

제23화

[지그마의 그림자 단검을 획득하였습니다.]

[지그마의 뼈 목걸이를 획득하였습니다.]

[지그마의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어둠에 물든 구슬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더 주울 건 이게 다인가.

곧장 아이템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뒤에 있는 감옥에서 어서 꺼내 줬으면 좋겠다는 시선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휴, 간다. 가."

나는 무릎에서 딱! 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꺄아아아악-!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대단해요!"

"저 사인 좀 해주세요!"

"……."

뭔가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그냥 풀어주지 말까, 이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수정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아까 내게 모욕감을 주었던 자물쇠 앞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고얀 자물쇠 같으니라고.

이걸 보니깐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단검이 부러지지만 않았으면 이들을 금방 탈출시켜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아."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뒤로 물러나 있거라."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콰아앙-!

자물쇠가 불꽃 발차기 한 방에 부서져버렸다.

제일 먼저 감옥을 나온 것은 역시나 김수정이었다.

"그런 스킬은 또 언제 익히신 거예요?"

"뭐… 어쩌다보니. 껄껄."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으려 했지만 주변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유저들을 발견하곤 곧장 얼버무려야했다.

…제발 그냥 지나가.

하지만 그럴리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진짜 멋있어요! 할아버지!"

"발차기는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저도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방금 그거 무슨 스킬인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사인 하나만 해주세요!"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억지로 해맑게 웃으며 그냥 너털웃음으로 질문들을 무시했다.

"허허허. 허허허허…."

아, 빠져나가고 싶다.

구름처럼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나를, 누군가는 부러워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좋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면 귀가 빨개지며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큼, 커흠. 험험!"

기여코 헛기침이 나오는군.

그렇게 내가 곤경에 처해있을 때, 나를 구원해주는 한줄기의 목소리가 있었다.

"아니! 고블린들이 없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저 녀석은.

필로스였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기회는 이때였다.

"수정아, 도시락 먹자꾸나."

"네…?"

슈우욱-!

나는 도망을 치듯 로그아웃을 했다.

* * *

유니온. '아크스타' 전략 기획실.

그곳의 팀장으로 있는 유민석은 밤새 야근을 하고 사무실에서 눈을 붙이는 중이었다.

드르렁-! 푸우.

드러러러렁-! 푸우우.

코까지 골면서.

하지만 그런 꿀잠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으니.

벌컥-!

"팀장님!"

언제나 익숙하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차진철 대리였다.

"으어어!!! 꺼져!! 꺼지라고!!!"

갑자기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눈을 부릅뜨는 유민석.

아무래도 악몽을 꾼 모양이다.

"……."

"……."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입까지 내려온 차진철을 발견한 유민석은 민망함에 기침을 두어번했다.

"크흠!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또? 뭔데? 이번엔 또 뭐야?!"

유민석은 어제 터졌던 코드제로 이후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였다.

잠을 못잔 것은 기본이요. 계속된 회의와 모니터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라 야근하는 것도 서러운 그에게 차진철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차진철이 입을 열었다.

"코드 제로가 드디어 직업을 얻었습니다."

"코드 제로는 원래 직업을 얻을 예정이잖아. 뭐가 문젠데?"

"그게… 일단 직접 보시는 게…."

'뭐야, 또 불길하게….'

CODE-0(코드 제로).

그것은 '아크 스타'의 시나리오를 이끌어 갈 새로운 스타 프루츠의 주인을 알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진철의 반응은 유민석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잠시 후.

두 사람은 함께 모니터링실로 내려와 있었다.

"이걸 좀 보십쇼."

차진철은 자신의 노트북에 띄워진 한 메시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System. CODE-0가 전설 속에 숨겨진 전설이 되었습니다.]

'…뭐?'

전설 속에 숨겨진 전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아크스타 시나리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드디어 나타났단 말인가…?"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기존의 전설들을 뒤엎어버릴 진정한 전설이.

* * *

그 무렵.

"드디어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군… 그 행운의 주인공이 누군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음, 최대한 빨리 알아봐.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윽고 보고를 하던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회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의자를 크게 뒤로 젖혔다.

그의 이름은 이건명.

가상현실 게임 '아크스타'를 탄생시킨 유니온 그룹의 회장이었다.

그는 의자를 돌려 뒤에 있는 넓은 창문으로 광활한 도시의 햇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이아. 너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반드시."

* * *

세계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

'아크스타' 의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전 세계 유저들을 위한 팬사이트.

이름하여 '아크스타 라이프.'

줄여서 아.스.라 커뮤니티.

그곳은 지금 엄청난 화젯거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역시나 가장 메인은 아침에 있었던 예언에 관한 이야기였다.

- 얘들아, 진정한 왕이 깨어났다는 건 무슨 뜻일까?

- 글쎄, 하지만 확실한 건 스타 프루츠랑 관련이 있다는 거지.

- 엥? 무슨 일 있음??

- 윗님 아직 모르시나보네. 예언 끝나자마자 스타 프루츠 먹은 사람들 폭주했는데 모름?

- 헐…? 왜 그럼?

- 우리도 모르니깐 이러고 있지.

- 어쩌면 새롭게 나타난 전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함.

- 그럴 수도 있겠다.

- 인정하는 각.

그렇게 한참이나 예언과 진정한 왕에 대한 추측이 난무할 때, 갑자기 등장한 한 사람의 말로 인해 각종 논란들은 빠르게 종식이 되며 혼돈 속에 빠지게 된다.

- 대박사건.

- 뭔 일 있음?

- 방금 월드 메시지 봄?

- 뭔데.

- 아 말해봐 빨리.

- 궁금. 궁금.

- 전설 속에 숨겨진 진정한 전설이 깨어났다고 월드 메시지 떴음. 근데 성호가 국자 성애자임.

- 미띤ㅋㅋㅋㅋ 국자 성애자.

- 개웃기다 ㅋㅋㅋㅋㅋ

- 그래도 그냥 전설이 아닌데??

- 히든 전설 아니냐 저거???

- 몇 등성의 스타 프루츠였을까?

- 누굴지 궁금하네ㅋ

- 아~ 부럽다. 나도 스타 프루츠 먹어보고 싶은데.

그렇게 또 불거지는 논란 속에 히든 전설이 된 사람의 정체에 대한 각종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몰랐다.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한편, 나는 드디어 캡슐에서 탈출 할 수가 있었다.

탄산이 가득 찬 콜라가 김이 새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캡슐의 뚜껑이 열렸다.

치이익- 위이이잉- 철컥.

"아이고, 아이고, 하도 오래 누워있었더니만 온몸이 쑤시는구만."

목을 돌리며 뚜둑, 소리를 낸 나는 급히 허리를 두드리며 뉘인 몸을 반쯤 일으켰다.

동시에.

푸쉬이이익-

옆에 있던 김수정의 캡슐 또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아."

"네."

"도시락 먹을래?"

잠시 후.

우리들은 방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사이좋게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김수정이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그래? 많이 먹거라. 껄껄."

"역시 미경 언니 요리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깐요."

"안 그래도 며느리가 언제 한번 들르라고 하더구나."

"언니가요?"

김수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언제 시간나면 우리 집에서 같이 식사나 하자꾸나."

"……."

김수정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밉지 않으세요?"

"……?"

"어머님이 죽고 그렇게 홀연히 떠나버려서 저는 가족분들이 저를 미워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 이유였나.

"수정아."

"네."

"그런 적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어. 언제나 널 그리워하곤 했다."

"…정말요?"

"그래."

미약하게 끄덕이는 고개를 본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울상을 짓고 있었다.

옆에서 툭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얼굴.

설마 우는 건 아니겠지…?

"흑흑…."

…젠장.

나는 재빨리 옆에 있는 화장지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세상 3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여자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여자의 마음. 그것은 내겐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 * *

도시락을 먹은 우리들은 곧장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백수가 되었다.

음, 이제 뭘 한다…?

백수 짓도 참 쉽지 않다.

할일이 없으면 이거만큼 괴로운 게 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시간만 죽이기 아까웠던 나는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이럴 땐 역시 친구밖에 없지.

뚜르르르-

3번의 신호음이 울렸을까.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오랜만이네. 춘택이.

"껄껄. 잘 지냈냐. 무열아."

백무열.

나와 40년 지기인 오랜 친구다.

20대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해온 그야말로 요즘 말로하자면… 그래. 베프다.

정도 녀석이 최고의 친구를 그렇게 말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 나야 잘 지내지. 그나저나 전화를 한 거 보니 보통 심심한 게 아닌 모양이야.

"음, 들켰나? 껄껄. 어때 소주 한잔할래?"

- 좋지, 이따 저녁 시간에 하는 게 어때. 우리 나이에 낮술은 힘들지 않겠어? 하하하.

저녁이라….

"그래. 집에 갔다가 오면 딱 맞을 것 같네. 그때 보는 걸로 하지."

- 그래. 그럼 있다가 보자고.

전화를 끊은 나는 곧장 흰둥이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덜컹! 덜컹!

…아무래도 조만간 카센터를 한번 가야겠는 걸.

빠르게 달리지는 못했다.

흰둥이의 건강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분을 달려 대로변으로 들어서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음악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 네~ 이번 신청곡은요. 까만 핑크의 '휘파람' 들려 드리겠습니다.

피식.

"선곡 좋고."

이 곡은 미도가 좋아하는 걸그룹이 부른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를 귀가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익숙한 전주와 앞부분이 지나가고, 드디어 내가 아는 부분이 흘러나왔다.

셋.

둘.

하나.

여기!

- 빠라바라빠라밤~♬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악셀을 세게 밟아버렸다.

부아아아앙-!!

잠시 뒤, 엔진이 퍼져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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