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18화
제18화
"잭슨 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설마, 또 요리를 먹어달라는 겐가? 껄껄."
실없는 농담에 잘머거스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아닙니다. 다름이 아니라, 잭슨 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음…?"
주고 싶은 게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도대체 뭘 주려는 거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잘머거스는 방에 걸려 있는 액자를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집안은 가문 대대로 요리사 집안이었습니다."
그가 벽돌을 살짝 옆으로 밀자 나타난 것은 비밀 금고였다.
잘머거스는 세밀하게 금고를 열수 있는 버튼을 조작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희 조상님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가장 위에 계시는 분이 바로 '알렉서스'라는 분이시지요."
알렉서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서 들었더라?
"그분을 지칭하는 말은 많았습니다. 대 요리사, 천재 요리사, 또는 괴짜 요리사 등등 많았지요. 하지만 그분의 업적 중 가장 마지막을 칭하는 말이 있습니다."
철컥-!
단단한 강철 금고의 문이 열리며 그는 낡은 책을 꺼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엇인가?"
"요리왕."
"……."
"그 옛날. 태초의 신이신 가이아님에게서 내려온 신탁이 있었습니다."
…가이아라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인간을 이롭게 하는 자.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그분의 한마디에 많은 영웅들이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죠. 누가 선행을 더 많이 베풀었느냐를 따지며 결국 세력을 나누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
"그것은 곧 전쟁으로 이어졌지요. 많은 사람들이 죽고, 굶주렸다고 합니다. 그때 나타나신 분이 바로 이 일기장의 주인이신 알렉서스 님이시지요."
그는 내게 책을 건네주었다.
나는 손에 쥐어진 낡은 일기장의 겉면을 쓸며 읽어 내려갔다.
[요리사 알렉서스의 첫 번째 일기]
그는 다시 내 옆에 앉으며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알렉서스 님은 전쟁에 고통 받으며 신음하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요리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셨지요."
"대단한 사람이었구만."
"하하, 그렇습니다. 후에 백성들은 그런 알렉서스 님을 새로운 황제로 추대했지요."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 일기장의 주인이 그런 사람의 것이라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 짓습니다.]
"저와 마시스는 그분의 후손입니다."
…몰락한 왕족인가.
"제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로는 정말로 평화로운 나라였다고 합니다. 그분이 다스리던 나라는 그야말로 태평성대였다고 하더군요."
그는 그런 사람의 후손이라는 게 자랑스러운 듯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500년 전 있었던 대홍수로 인해 왕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미간을 찌푸립니다.]
"동시에, 그분의 요리비기들 또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요. 저희 후손들은 그분의 요리비기를 모으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 잘 모르겠군."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갸웃 거려졌다.
"원래 태양의 정령은 생명을 담보로 소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주인에게 귀속되는 것이지요."
…귀속? 대체 어디에 귀속이 된다는 거지?
"저희들은 그 방법을 모른 채 이 비기를 전수하기 위해 대대손손 생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이야기를….
"저는 쓰러지기 직전 보았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태양의 정령이 잭슨 님의 손에 각인되는 것을요."
"뭐…?"
순간 반사적으로 양손을 들어 살펴보았다.
그런 게 있을 리… 있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 번째 손가락에 태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곧, 진정한 주인을 찾아갔다는 이야기."
잘머거스가 갑자기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요리왕 알렉서스 님의 비기를 지켜온 13대 당주 '잘머거스.' 오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분의 진정한 후계자를 만나 뵙습니다."
"……!"
* * *
잠시 후, 나는 옥상으로 올라왔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햇살 가득한 봄바람을 한가득 느끼며 밝은 해를 기쁜 얼굴로 마주보고 섰다.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귓가를 간질이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와 왁자지껄해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까 전 잘머거스와의 대화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네도 나를 왕이라고 부르고 싶은 겐가. 하지만 난 왕이 아닐세.'
'그것은 백성들이 결정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 백성들 중 하나이지요.'
'하지만 알렉서스의 후손은 내가 아니라 자네일세. 자네가 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는 이미 많은 생명의 불꽃을 태웠습니다. 왕이라는 자리에 연연할 시기는 지났지요. 그리고 제 손자도 더 이상 생명의 불꽃을 태우지 않아도 되니,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늘에 있는 제 아들도 미소 짓고 있겠군요. 껄껄.'
기억에서 돌아온 나는 내 손에 쥐여져 있는 한 낡은 일기장을 바라보았다.
표지에는 찬란한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 요리술의 첫 번째 비기…?'
'그렇습니다. 날씨 요리술의 비기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요. 부디, 모두 모으셔서 알렉서스 님이 이루셨던 그 광활하고 태평성대했던 대제국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말이지요.'
회상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왕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위에 군림한다는 것.
그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20대 시절의 나는 많은 사람들의 위에 잠깐 군림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후회로 다가왔고, 나는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그것을 어렵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두웠던 뒷골목 세계를 벗어나, 나는 아내에게 정착해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누군가 다시 나에게 왕을 해보라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후우…."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은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짜식. 고맙네.
그래도 내 편 하나는 생긴 듯한 기분이다.
뭐하는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유난히도 구름이 맑았다.
어쩌면, 가이아는 내게 이런 것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것도 운명이라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걸 읽어도 직업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그때도 시스템이란 것이 나를 막는다면 더 이상 방법은 없었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아크스타를 즐길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꽤 정들었는데….
제발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기장을 열기 위해 표지를 잡았다.
띠링-!
[요리사 알렉서스의 첫 번째 일기를 열어보시겠습니까? Y/N]
[일기장을 모두 다 읽게 된다면 직업을 가지게 됩니다.]
역시 운명인가.
시스템이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 이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열어보겠다."
찌이잉-!
일기장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책은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하며, 내 눈높이에 맞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펼쳐지기 시작하는 첫 페이지.
- 후인이여…!
이 책은 나 요리왕 알렉서스의 비기를 담은 첫 번째 일기이다.
이 책에는 날씨 요리술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비기.
태양의 레시피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 새겨들으라.
그대는 이것을 열심히 갈고 닦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데 써야 할 것이다.
나의 비기는 하나가 아니니.
하늘에 있는 해와 달, 별과 바람, 비와 구름, 눈과 벼락 총 8가지의 비기가 있다.
그대는 이것을 모아 하늘을 요리하라! 땅을 감동시켜라!
숨겨져 있는 나의 요리 무구들을 찾아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
만물의 모든 시작은 인간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자.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떠나라 후인이여! 그리고 찾아라!
세상 모든 것을 그곳에 두었으니.
나의 모든 것을 잇는 자.
백성의 왕이 될 것이다!
- 알렉서스. A -
"……."
그리고 이어지는 태양의 정령을 이용한 각종 요리 비법들.
그는 정말 괴짜였다.
일기에는 자신이 왜 태양의 요리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유가 적혀있었고, 자신이 시도했던 다양한 요리들에 대한 고뇌가 담겨 있었다.
알렉서스는 평범한 요리 복장도 입지 않았다.
읽어 내려갈수록 그는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뒤로 이어질수록 그는 어느새 흥미로운 인물이 되어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장.
…이건.
그곳엔 내가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무지갯빛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밑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 국자 자리
나의 업적을 찬양한 최고 신 유피테르가 북두칠성에 '국자 자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더욱 정진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힘을 쓸 것이다.
띠링-!
[요리사 알렉서스의 첫 번째 일기를 모두 읽으셨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얻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숨겨진 직업 '날씨 요리사'로 전직하였습니다.]
[솜씨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감각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솜씨와 감각 능력치는 오직 요리를 통해서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솜씨: 요리의 대성공 확률이 증가합니다.
- 감각: 요리에 필요한 미각, 촉각, 후각, 청각, 시각이 발달합니다.
[World : 전설 속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전설이 깨어납니다! 그의 성호는 바로 '국자 성애자' 입니다!]
[성호, '국자 성애자(星愛者)'를 획득하였습니다.]
파아아앗-!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태양의 레시피를 얻었습니다.]
[이제부터 뜨거운 불에 강한 내성을 가지게 됩니다.]
[요리사는 불과 친근합니다. 입에서 불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몬스터를 잡으면 식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몬스터의 식재료로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스킬: 날씨 요리술을 습득하였습니다.]
[스킬: 깍둑썰기를 습득하였습니다.]
[스킬: 채썰기를 습득하였습니다.]
…
…
"염병하네."
더럽게 많았다.
나는 대충 확인하고 깜빡이는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12 [이름없는] 날씨 요리사
성호: 국자 성애자(星愛者)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
칭호: 고블린 학살자, 뮬란의 영웅
힘28(+20) / 민첩1(+20) / 건강1(+20) / 지식1(+20) / 솜씨1(+0) / 감각1(+0)
-화염 속성 내성 +50%
능력치 포인트: 16
나는 드디어 직업이 생기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성애자라니. 어감이 좀 그렇구만.
어디 스킬도 한번 살펴볼까?
[날씨 요리술][액티브]
등급: 전설
현재 가지고 있는 레시피: 태양
전설의 요리왕 알렉서스의 비기 날씨 요리술이다.
해와 달, 별과 바람, 비와 구름, 눈과 벼락으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깍둑썰기][액티브]
등급: 일반
각종 식재료들을 깍둑 모양으로 썰어버립니다.
-솜씨가 높을수록 정교하게 썰 수 있습니다.
-민첩이 높을수록 빠른 칼질이 가능합니다.
[채썰기][액티브]
등급: 일반
각종 식재료들을 채 썰기로 썰어버립니다.
-솜씨가 높을수록 정교하게 썰 수 있습니다.
-민첩이 높을수록 빠른 칼질이 가능합니다.
-도마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씨익.
날씨로 요리할 수 있다니.
자신도 요리사로서 정말 탐이 나는 요리비법이었다.
아무래도 은퇴했지만 또 한 번 식칼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새로운 목표, 새로운 꿈. 꽤나 늦은 나이에 얻은 꿈이지만 그것은 초라하지 않았다.
언젠가 죽기 전까지 꼭 이 비기들을 모두 요리해보고 말리라.
그렇게 웃으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려했다.
그런데,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숨겨진 페이지를 읽길 원합니다.]
…숨겨진 페이지?
나는 다시 닫으려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두껍네.
마치 여러 겹으로 접혀있는 듯한 그런 모양.
그것은 마치 숨겨진 비밀을 감추고 있으니 '제발 열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그것을 펼쳤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그림?
나는 그것을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에게 코딱지를 튕깁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