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17화
제17화
한국 속담 중에 이런 속담이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하지만 나는 이 속담을 이렇게 고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도 몰아 맞는 게 낫다.
태양의 미트볼 4개를 남겨둔 나의 짧은 소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감을 과감하게 실천하기 시작했다.
푹푹푹푹.
"안 돼!"
"어르신!"
"아버님?!"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이 포크에 찍혀있는 4개의 미트볼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는,
아웁.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쿠구구구구-
아… 올 것이 오고야 마는구나.
밀려온다. 불타는 화염이.
떨려온다. 뜨거운 내 몸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마그마 같은 미트볼이 위장에 닿았고, 그것은 이내 큰 고통과 함께 입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이곳에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필시 물줄기가 쏟아졌으리라!
그와 동시에 눈앞에는 고통 수치를 알리는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했다.
[태양의 미트볼을 시식하셨습니다.]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고통을 느낍니다.]
[50의 태양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남아있는 태양의 미트볼 3/6]
[남아있는 태양의 미트볼 2/6]
[남아있는 태양의 미트볼 1/6]
[남아있는 태양의 미트볼 0/6]
[<히든 퀘스트 - 요리사 잘머거스의 부탁> 이 완료되었습니다.]
[생명력이 0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당신의 순결한 용기가 기적을 부릅니다.]
[사망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생명력 1을 남기고 기절합니다.]
[12시간 뒤에 접속 가능합니다.]
[5초 뒤에 화면이 꺼집니다.]
[아크스타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가슴에 용암이 들끓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발견한 순간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쓰러지기 직전 잘머거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잘머거스… 잘먹었ㅇ…."
털썩.
삐이이이-
* * *
푸쉬이익-
"으어어어어!!!!!"
나는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까의 느낌이 정말 생생했는 듯.
가슴을 더듬으며 고통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후우, 정말 엄청난 미트볼이군."
식은땀을 흘렸는지 등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그 생생함을 더해주었다.
나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버님!!!"
"……."
"……."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며느리였다.
"괜찮으… 세요?"
"후우. 아가."
"네…?"
"얼음물 있냐?"
5분 뒤.
벌컥- 벌컥- 벌컥-
"캬하아아!!!"
마치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 것처럼 상쾌하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벌써 5잔째 얼음물.
나는 제법 호쾌한 목소리를 내며 외쳤다.
"크하하!! 이제야 좀 살 것 같구나!"
"아버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크하하하! 있었지. 아주 엄청난 일이 말이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시원하게 웃어 젖혔다.
"아주 엄청난 일이요?"
"그래. 아주 엄청난 일이지. 하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성한 사람처럼 크게 웃어 젖혔다.
문득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는 며느리에게 물었다.
"궁금하냐?"
"네…!"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
"네. 아버님."
"혹시 태양을 맛본 적 있냐…?"
"네?????"
갑자기 뚱딴지같은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며느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는 진짜 실성한 사람처럼 탁자를 치며 웃었다.
"크하하하하!!"
며느리는 동그래진 눈으로 내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마 지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치매가 온 건 아닐까하고 말이야.
그렇게 마지막 6잔째 얼음물을 비우고 잔을 내려놓은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방에서 핸드폰 소리가 울려왔기 때문이다.
따르르릉-!
…모르는 번호로군.
"여보세요."
- 아버님, 저예요!
"아, 수정이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길래 보험이나 들라는 그런 전화인줄 알았는데 수정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번호를 교환했었지.
-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듯 살갑게 물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괜찮다. 얼음물 좀 마시니 끄떡없구나. 하하하."
- 휴, 다행이네요. 갑자기 로그아웃되셔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게임 속에서 죽는 건데 뭔 걱정이냐."
- 그래두요. 입에서 불을 뿜어내시는데 안 놀랠 수가 없더라구요.
…하긴 그렇긴 하군.
할 말이 없다.
만약 수정이가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면 나라도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을 테니까.
"넌 바로 나온 거냐?"
- 네, 아버님 나가시자마자 저도 나왔어요.
"좀 더 즐기지 그랬냐."
- 아버님 없으면 왠지 좀 심심할 거 같더라구요. 호호.
그렇게 한 시간이나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던 우리들은 내일 만날 것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침 그녀도 휴가 중 이었기에 시간이 괜찮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럼 내일보자꾸나."
- 네, 내일 봬요. 아버님!
전화를 끊자 바로 며느리가 말을 걸어왔다.
"아버님, 누구랑 그렇게 오래 통화를 하셔요?"
"수정이다."
"수정이요? 혹시…?"
"그래."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의 생각이 맞다는 듯.
"어머, 수정이랑 만나셨어요?!"
"직접 만난 건 아니고 게임하다가 만났다. 우연히 말이다."
"어머, 진짜 사람 인연 신기하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껄껄."
* * *
다음 날.
오늘도 새벽운동을 다녀왔다.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지경이라 습관이 되어버렸다.
평화로운 오전과 함께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수정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현관에서 며느리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마."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버님."
나는 집을 나서자마자 바로 애마 흰둥이에 올라탔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아버님, 저예요!
"오, 그래. 안 그래도 이제 막 출발하려던 참이다."
- 저도 지금 가는 중이에요. 아버님 그곳 위치는 어딘지 아시죠?
"그래 알다마다. 평소 자주가곤 했던 곳이다."
- 그럼 조금 있다가 봬요!
"오냐."
뚝.
전화가 끊어지자, 나는 곧장 안전벨트를 하고 천천히 출발했다.
그렇게 30분을 달렸을까.
문득 고개를 드니 하늘이 보였다.
오늘은 유난히 햇빛이 쨍쨍한 것 같았다.
구름이 지나다니고 눈부신 태양이 이글거렸다. 드넓은 창공이 더욱 푸르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날씨 좋구먼."
나는 계기판에 있던 선글라스를 썼다.
"오늘도 뜨겁게 달려보자고."
부우우우우웅-!!
* * *
서울 시내 한복판.
그곳에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오래된 차 한대가 섰다.
덜컹- 덜컹-
그것은 바로 무모한 레이싱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흰둥이.
아무래도 오래된 차이다 보니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흰둥이에게서 내려 수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하자마자 곧바로 받는 그녀.
- 아버님 도착하셨어요?
"그래. 캡슐방 앞이다."
- 네. 지금 갈게요!
그렇다.
나는 지금 며느리에게 들었던 그 캡슐방이라는 곳을 가기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가게의 이름은 바로 '신세계 캡슐방'.
이 근방에선 가장 유명한 곳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잠시 후. 김수정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나도 그녀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군. 1년만인가?
"아버님. 건강하시죠?"
"그래. 너무 건강해서 탈이지. 직접 봐서 알지 않나? 하하하."
"그럼요. 아버님은 진찰 안 해도 믿을 수 있어요."
"껄껄. 그래. 우선 들어가자꾸나."
딸랑-!
"어서오세요~"
이제 막 40대 정도로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익숙한 듯 우리에게 물었다.
"두 분이세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슈우우욱-!
이제는 익숙한 몸이 붕 뜨는 느낌.
잠깐 사이 눈을 감았다 뜨자, 보이는 것은 허름한 방안이었다.
왠지 익숙한 곳이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어르신, 정신이 좀 드세요?"
마시스…?
"여기가 어디냐."
"저희 가게 2층이에요. 2층이 저희 집이거든요. 어르신께서 쓰러지셔서 제가 업고 올라왔어요."
아, 그랬구만.
살며시 떠올랐다.
어제 나는 생명력 1을 남기고 기절했었다는 것을.
욱신.
뭔가 화상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찔하게 쓰라린 것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요리로군.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상태창을 불러왔다.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10 [이름없는] 모험가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
칭호: 고블린 학살자, 뮬란의 영웅
힘28(+20) / 민첩1(+20)
건강1(+20) / 지식1(+20)
능력치 포인트: 8
…정말 가까스로 살아남았구나.
생명력 1,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너에게 신세를 졌구나. 마시스."
"아니에요. 신세는 저희가 졌죠. 할아버지도 어르신께서 일어나시면 꼭 말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 잘머거스님은 어디계시냐."
"그게…."
"왜, 무슨 일 있는 게냐?"
미간을 찌푸리는 마시스의 표정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사실 그날 할아버지께서도 같이 쓰러지셨어요. 원래 몸이 조금 안 좋으셨는데 이번에 무리를 해서…."
"…미안하구나."
진심이었다.
잘머거스의 부탁을 거절했었다면 아마 그가 쓰러질 일은 없었을 테니까.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아니에요. 당치도 않아요. 할아버지께서 원하신 일인걸요."
"잘머거스 님에게 가봐야겠구나."
나는 아픈 몸을 이끌며 자리에서 일어서려했다.
귓속말이 온 건 그때였다.
- 크리스탈 : 아버님 어디세요?
- 잭슨 : 마시스네 집이다. 넌 어디냐?
- 크리스탈 : 접속하니 광장 쪽이네요. 어디서 만날까요?
- 잭슨 : 음… 미안하지만 잠시만 시간을 좀 줄 수 있겠니?
- 크리스탈 : 무슨 일 있으세요?
- 잭슨 : 잘머거스가 아프다는구나. 아무래도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
- 크리스탈 : 어머, 저도 그럼 그쪽으로 갈게요.
- 잭슨 : 아니다. 금방 끝날 거야. 너 먼저 사냥하고 있으려무나.
- 크리스탈 : 알겠어요. 그럼 끝나시면 연락주세요!
- 잭슨 : 허허. 그래. 내 곧 뒤따라가마.
- 크리스탈 : 네! 출발하실 때 연락주세요!
- 잭슨 : 오냐. 몸 조심하거라.
금세 대화를 마친 나는 마시스에게 말했다.
"그의 방이 어디냐."
* * *
마시스의 안내로 잘머거스의 방에 도착한 나는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아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 듯했다.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하루 종일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곁을 지키던 나날들.
나도 모르게 그때 생각이 나자 잘머거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이놈이.
왠지 모르겠지만 오해가 하나 쌓인 느낌이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잭슨… 님."
잘머거스가 살며시 눈을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깨어났구먼, 껄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는 금방 잠을 깨서 그런지 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옆에 있던 물컵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벌컥- 벌컥- 마시더니 내게 안부를 물었다.
"후우…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난 괜찮네. 나보단 자네가 더 걱정이야 이 사람아."
생사를 함께해서 그런 것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그를 좀 더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허허,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마시스는…."
"내가 잠시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했네. 단둘이 있고 싶어서 말이야."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야. 오해하지 말라고.
"그랬군요."
"왜 그러나, 다시 불러줄까?"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밉지는 않으십니까…?"
"내가…? 왜 그래야하지?"
"저는 잭슨 님을 위험에 빠트릴 뻔하지 않았습니까."
…죄책감을 느끼는 건가.
나는 잘머거스와 눈을 마주쳤다.
"난 자네가 해준 요리에서 자네의 신념을 보았다네. 그건 정말 놀라운 요리였지. 물론 맵기는 했지만… 정말로 맛있었어."
"정말… 입니까?"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이어서 대답했다.
"그래. 자넨 정말 최고의 요리사일세. 그런 요리는 난생 처음이었어. 고맙네. 나에게 그런 훌륭한 요리를 해주어서 말이야."
같은 요리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그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분명 맵기는 했지만 맛있게 매운 느낌이었다.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할 정도로 나는 어리숙한 요리사가 아니었다.
그런 나의 진심을 느낀 것일까.
잘머거스가 눈시울을 붉혔다.
"크흑. 고맙습니다. 잭슨 님."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눈물을 훔치는 잘머거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그런 그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되었기에 그러했으리라.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두 사람의 사이를 응원합니다.]
아니, 오해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