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16화
제16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불꽃이 하나로 모이더니 강렬한 태양이 되어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조그만 태양이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해해! 솔라 왔다!"
"…대박."
손녀가 가르쳐준 대박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만큼 지금의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불이 말을 하다니.
아니, 이상한 건 아닌가?
이곳은 가상현실 세계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긴 하군.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태초의 불을 보며 미소 짓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말하는 불을 이 녀석이 훔친 거랬나?
마침 '솔라'라는 이름을 가진 하늘의 겁화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알렉서스 님 살아계셨군요!"
…엥?
"뭐라고?!"
"허어?!"
잘머거스와 마시스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찢어지는 건지….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흘깃 쳐다보고 있었다.
솔라가 말했다.
"음, 아닌가? 외모는 비슷한데 머리길이가 조금 다르네. 해해. 미안해!"
잘머거스와 마시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 놀랐습니다."
"어르신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네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잘머거스가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솔라야. 내 요리를 도와주지 않으련?"
"알겠다! 해해!"
잘머거스의 말에 솔라는 둥실거리는 몸을 움직여 공중에 떠있는 냄비의 아래로 이동했다.
그리고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냄비를 데우기 시작했다.
"아버님, 괜찮을까요?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괜찮을 거다. 걱정 말거라."
잘머거스는 냄비에 기름을 넣고 끓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가게에 있는 도마에서 고기를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스슥!
스슥스슥!
다지기도 하고 칼집을 내기도 하며 철저히 고기를 부수는 모습.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요리가 나오게 될지 속으로 유추했다.
…고기를 다지는 걸보니 너비아니 같은 산적을 만들려는 건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갑자기 고기에 튀김가루를 묻히더니 그것을 기름이 있는 냄비에 넣는 것이 아닌가!
치이이이익-!
…엄청나군.
그는 꽤나 노련한 요리사였다.
자신 또한 요리의 길을 걸었기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손에 있는 화상 자국과 칼에 베인 자국이 그것을 증명했고, 그의 눈빛은 자신의 눈과 닮아있었다.
장인정신.
옛날에 제자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요리하기 전과 후가 눈빛이 다르다고.
…그게 이런 느낌이었던 건가.
지금 잘머거스의 눈은 아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는 진정한 장인이었다.
어떤 장군의 결사항전 같은 의지를 엿본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물론 꼬르륵 거리는 소리도 함께.
…윽, 배고파.
잘 튀긴 고기를 건져 올린 잘머거스는 동그란 탁구공 같은 모양이 된 그것을 하나씩 솔라에게 가져다 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렇게 하면 탈 텐데?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까맣게 타버릴 줄 알았던 그것은 활활 타오르며 또 다른 태양이 되어 있었다.
잘머거스가 빠르게 그것을 접시에 담으며 뚜껑을 닫아버렸다.
"완성."
"……."
그야말로 엄청난 요리였다.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빛나던 그것.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걸 먹는다고…?
어떤 맛일까 궁금하긴 하지만 저건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먹으면 분명 화상을 입을 텐데….
"화상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
순간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큼. 그런 걱정 안 하네."
* * *
우리들은 자리를 옮겨 제일 가운데 있는 커다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엔 단 하나의 요리가 뚜껑이 덮인 채 올라와 있었다.
긴장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얼굴.
나는 잘머거스에게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시지요."
"하지만…."
"정성을 담은 요리가 아닙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그래 별일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장인 정신과 요리에 쏟아 붙는 열정을 보았다.
그런 요리가 잘못될 리 없다는 사실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고맙습… 콜록-! 콜록-!!"
잘머거스가 가쁜 숨을 내쉬며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마시스는 빠르게 손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잘머거스는 그것을 받아들며 계속해서 기침을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의 입을 가린 하얀 손수건에서 새빨간 토혈의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김수정이 다가와 그에게 슬로우 힐을 걸었다. 하지만.
"소용없을 거예요."
"그게 무슨…?"
"실은, 저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옆에 보이는 태양의 정령을 소환해야 해요."
그의 말에 나는 활활 타오르는 솔라를 바라보았다.
솔라는 주인이 걱정스럽다는 눈빛을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솔라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태양의 정령의 소환 조건이 바로 시전자의 생명이에요."
…뭐?
그럼, 저 요리가 그의 생명을 담보로 만들어 낸 요리라고?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잘머거스에게 물었다.
"잘머거스. 어째서 이런 짓을…."
"제 목숨보다는 오명을 벗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어차피 곧 썩어 문드러질 몸. 죽기 전 손자에게 사람 죽이는 요리를 만드는 할애비를 뒀다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
뿌드득.
나는 양손의 주먹을 부서져라 꽉 쥐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내가 만든 요리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마음이 아려왔다.
그 압박감. 중압감. 두려움.
요리를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건 지옥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를 위로해주고 싶다.
어떻게든 이 악물고서라도 먹어주고 싶다.
먹어서 그의 요리가 괜찮다고.
괜찮으니 다시 요리하라고.
엄청 맛있었다고.
같은 요리사로서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나는 요리가 담긴 스테인리스 뚜껑을 잡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먹고 얼마나 맛있었는지 얘기해드리겠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침을 삼켰다.
나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화아아아악-!
갑작스런 불길이었다.
"…음?!"
우당탕!
놀라서 넘어진 나를 마시스가 일으켜 세워주었다.
"괜찮으세요. 어르신?"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할 새도 없이 눈앞에 있는 요리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름답군.
그저 이 말 밖에는 떠오르는 수식어가 없었다.
그 이상의 수식도 그 이하의 수식도 필요치 않은 듯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모골이 송연했다.
"이 요리, 이름이 무엇입니까?"
"태양의 미트볼이라고 합니다."
"태양의 미트볼…."
나는 요리의 이름을 되뇌며 접시에 담긴 그것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완벽한 이름이군요."
그것 말고는 표현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이름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후우…."
나는 길게 심호흡을 뱉으며 경건하게 자리에 앉았다.
…긴장되는군.
어쩌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불이라면 분명 화상은 100프로….
"화상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믿어도 되겠지?
접시에 있는 미트볼의 개수는 6개였다.
한 개당 한 입씩 6번을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긴장 어린 표정으로 제일 가까이 있는 미트볼을 입에 넣었다.
"후우… 잘 먹겠습니다."
오물오물.
첫 맛은 화끈했지만 참을 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맛은 고기의 향이 짙게 배어 있어서 특유의 훈제 향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음, 뭐야. 이거 되게 맛있….
"읍!"
가슴이 뜨겁다.
누군가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 같은 느낌.
그 위에 누가 기름을 뿌리며 춤을 추는 듯.
활활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끄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미친. 화상 안 입는다며?!
[태양의 미트볼을 시식하셨습니다.]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고통을 느낍니다.]
[50의 태양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남아있는 태양의 미트볼 5/6]
나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엄청난 매운맛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온몸의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느낌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끄윽… 끄흑…."
"어르신! 괜찮으세요? 잭슨 님!"
"스, 슬로우 힐!"
마시스가 내 등을 흔들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미 정신이 몽롱해서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슬로우 힐도 무용지물이었다.
[슬로우 힐이 통하지 않습니다. 태양의 미트볼이 너무 강력합니다.]
"이, 이럴 수가!"
김수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5분이 흘렀고, 조금 괜찮아진 나는 고개를 들어 잘머거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꼭 감은 채 자리를 지킬 뿐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급히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지만, 역시나.
[하급 생명력 포션을 복용하셨습니다.]
[포션의 효과가 없습니다.]
[태양의 미트볼이 너무 강력합니다.]
힐이 안 통하는데 포션이 되라는 법은 없었다.
"제길!"
나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어렵게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잘머거스를 노려보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뜰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 영감탱이가.
분명 화상은 입지 않았다.
데미지를 입었을 뿐.
"하아."
잠깐이지만 머릿속으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하지만 약속을 했으니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시 뜨겁게 타는 듯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두 번째 미트볼을 포크에 찍었다.
"아버님,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걱정 마라. 아직 괜찮아."
괜찮긴 개뿔.
아직도 혀가 얼얼하게 아려온다.
이거 아무래도 마비된 거 같은데….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썩을 놈, 갑자기 더럽게 고맙네.
그렇게 두 번째 미트볼 또한 곧장 입속으로 직행했다.
"크아아아악-!!!!"
입에서 뿜어져 나온 불이 천장을 그을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천장이 왜 까만색인가 했는데 이것 때문이었구나…!
나는 잠깐이지만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아내의 얼굴을 엿본 것 같은 맛에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양의 미트볼을 시식하셨습니다.]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고통을 느낍니다.]
[50의 태양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남아있는 태양의 미트볼 4/6]
"끄으으윽… 으윽…!"
"잭슨 님!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요!"
…너라면 괜찮겠냐.
나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물… 무울…ㅁ…."
냉큼 알아들었는지 마시스는 주방에서 물을 가져와 나에게 건네주었다.
김수정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꿀꺽- 꿀꺽-
[물을 마셨습니다.]
[효과가 없습니다.]
[태양의 미트볼이 너무 강력합니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제기랄.
오늘 일진이 왜 이렇게 사나운지 모르겠다.
미도의 하트를 봤을 땐 기분이 좋았는데…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내 오늘의 일상을 듣는다면 놀라 자빠지리라.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나는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해했다.
내 총 생명력은 300.
그중에서 지금 100의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불 데미지가 딱 50인 게 너무 마음에 걸리는데.
앞으로 남은 미트볼은 4개.
하나당 불 데미지는 50이다.
그런데 남은 생명력은 200뿐.
아마 이걸 다 먹게 되면 자신은 죽게 되리라.
하지만.
…진짜 죽는 건 아니니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건강 능력치도 찍어보았다.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능력치를 찍을 수 없습니다.]
"지랄."
아무래도 이놈의 게임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 같다.
아까 직업 선택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어쩌면 내가 죽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잘머거스는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작은 눈물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도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인에게 이런 요리를 대접해야하는 그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그 또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응원하고 싶었다.
"잘머거스… 맛있군요… 쿨럭!"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전우애에 감동합니다.]
잘머거스의 눈은 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접시 위에는 아직 광오하게 피어오른 불꽃이 4개나 남아 있었고,나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잘머거스가 참지 못하고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잭슨님!"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을 보며, 어쩌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결단을 내려야했다.
나는 눈앞에 있는 미트볼 4개를 동시에 찍었다.
푹푹푹푹!
"안 돼!"
"어르신!"
"아버님?!!"
아웁.
"크아아아아아아아!!!!!!!"
입에서 불꽃이 포효한다.
오늘 밤. 나는 핫한 남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