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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5화 (1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15화

제15화

나는 마시스 할아버지의 이름을 듣는 순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ㅍ… 잭슨 이라고 합니다. 큼!"

…크크크크 이름이 이게 뭐야.

입술을 꽉 깨물었다.

NPC의 이름을 지은 개발사의 센스에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험험!"

웃음을 참기위해 억지로 헛기침도 해보았지만 힘들었다.

그런 나를 마시스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큼! 난 괜찮다 마시ㅅ…."

…풉.

손자는 '마시스' 할아버지는 '잘머거스'.

나는 또 한 번 두 사람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눈이 마주친다면 웃음이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최후의 방편으로 다시 가면을 꺼내 쓴 나는, 그제야 조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군. 킄킄킄킄킄킄킄 이름이, 크킄크크킄

한참을 소리 없이 입을 벌리며 웃던 나는, 갑자기 뜬 한 메시지를 보며 정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자신이 훔친 것의 기운을 느낍니다.]

뭐…?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이 그것을 되찾기를 원합니다.]

…미친놈.

어이가 없다.

내가 왜 남이 훔친 것을 되찾아온단 말인가.

이 자식 설마 나한테 도둑질을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안녕하세요. 크리스탈이에요."

"할아버지, 이분도 절 구해주시는데 도움을 주셨던 분이세요."

"오오, 그렇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크리스탈 님."

그렇게 잠깐 동안 우리들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가까운 식탁을 향해 자리를 잡았다.

잘머거스가 손자를 구해준 은인들에게 한사코 식사를 대접해야겠으니 가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차마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어서 결국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자신이 훔친 것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그것은 당신의 것이라 말합니다.]

…이 자식이 자꾸 뭐라는 거야?

녀석이 훔친 게 이제는 내 거란다. 강도도 이런 강도가 따로 없다.

"도대체가 이해 할 수 없는 녀석이네."

"네…?"

"불도둑 녀석 말이다."

"아, 아까 나타났다는 성좌 말하는 거죠? 뭐래요?"

"나보고 도둑질을 하라는구나."

"네…? 갑자기요?"

김수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짓고 있는 표정이 내 표정과 같았다.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자, 음식 대령입니다."

마시스의 미소와 함께 푸짐한 요리가 식탁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한상 가득 코를 찌르는 맛있는 냄새가 오감을 자극 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에 한껏 취하려 할 때, 잘머거스가 주방에서 나왔다.

"어떻게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콜록! 콜록!"

그는 아까의 그 기이한 복장이 아닌, 요리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옆에 있던 김수정도 마찬가지.

그런 우리들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잘머거스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껄껄껄."

그때였다.

팟-!

"……?!"

나와 수정이는 동시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잘머거스가 입고 있던 하얀 요리복장이 안쪽의 실을 잡아당기자 갑자기 처음 보았던 그 기이한 정장으로 변해 있었던 것!

그 마술과도 같은 광경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우리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하하하!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님의 '괴짜 요리정장'입니다. 이렇게 실을 잡아당기면 다시 요리사가 될 수 있지요."

팟!

다시 한번 실을 당긴 그는 어느새 다시 깔끔한 모습의 요리사가 되어있었다.

"오오…!"

왜 애들이 변신 로봇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그 기분을 살짝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차마 달라고는 할 수는 없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것을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탐나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입맛만 살짝 다셨다.

…쩝, 설마 주겠어.

그런데 그 설마가 일어났다.

"껄껄. 이 옷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이걸 드릴 수는 없고… 제작법이라도 알려 드릴까요?"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마시스를 구해주셨는데요."

이게 웬 떡이냐!

나는 잠깐이지만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생일날 아빠에게 장난감을 선물 받기로 약속을 받아낸 아이마냥 그렇게.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 * *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계속해서 식탁에 앉아있었다. 잘머거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또 시간을 뺏는 건 아닌지…."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말씀해보시지요. 저에게 따로 하시고 싶은 부탁이 무엇인지요?"

"음, 그게…."

…왜 저러지?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불길함을 감지합니다.]

"할아버지, 설마."

대답이 들려온 건 옆에 있던 마시스에게 서였다.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잘머거스를 만류하려 하고 있었다.

마치 위험한 일을 하려는 것을 다급하게 말리는 사람처럼 마시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할아버지, 안 돼요. 그 요리는 이제 하지 않으시기로 했잖아요!"

나는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요리?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하려고 하길 래 마시스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한때 요리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의 궁금증이었다.

"실은, 잭슨님께 한 가지 요리를 더 해드리고자 합니다."

"할아버지, 안 돼요!"

잘머거스와 마시스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

김수정은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머거스가 말했다.

"전 이 요리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할 생각입니다. 제 마지막 혼을 담은 요리를 먹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띠링-!

[히든 퀘스트 - 요리사 잘머거스의 최후의 만찬]

난이도: S

- 뮬란의 좁은 골목. 그곳에 살고 있는 요리사 잘머거스와 그의 손자 마시스. 잘머거스는 손자를 구해준 은인인 당신에게 꼭 이 요리를 대접한 후 은퇴하고 싶어 한다. 그가 만들어주는 최후의 요리를 전부 먹도록 하자!

-완료 조건: 잘머거스의 요리 시식 0/1

-10레벨의 유저만 가능한 퀘스트 입니다.

-요리를 다 먹지 못할 경우 퀘스트는 실패하게 됩니다.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난이도 S라니.

지금까지 해왔던 퀘스트 중에 가장 난이도 있던 게 D+였던 것을 생각하면 난이도 S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요리 길래 이런 난이도가 나온 거지…?

또 한 번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떤 요리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대답은 마시스가 했다.

"실은 음식이 많이 매워요. 아니 뜨겁다고 해야 할까요. 잭슨님께서도 여길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식당엔 사람이 찾아오질 않아요. 그 이유가 바로 몇 년 전 할아버지의 요리 때문에 죽은 사람 때문이지요."

"사람이 죽어…?"

도대체 뭘 넣었길래 요리를 먹고 사람이 죽는단 말인가.

나는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저 말이 사실입니까?"

"네… 먹다가 업혀서 가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망설이는 것도 잭슨 님이 위험하실까봐 그렇습니다. 몇 년 전 이곳에서 가장 매운 음식에 도전해 사람이 죽은 이후 이곳은 더 이상 사람들이 오지 않는 가게가 되었지요…."

나는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저는 은퇴하기 전 이 오명을 어떻게 해서든지 꼭 씻고 싶습니다. 제가 만든 요리를 먹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잭슨 님!"

그가 양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먹어주시겠다는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 일어서지 않겠습니다!"

…나 원 참.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기세가, 비장함이 내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선택을 지켜봅니다.]

흠. 그래도 가상현실인데 설마 진짜 죽기야 하겠어?

"먹어보지요."

"정말이십니까?!"

"어르신!"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용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잘머거스는 꽤나 기쁜 모양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고는, 이내 부엌을 향해 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김수정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가상현실이라 진짜로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그녀는 조금 걱정스러워 보이는 듯했다.

아마 내가 어떤 난이도의 퀘스트를 받았는지 확인한 거겠지.

우당탕탕-!

부엌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때 마시스가 다가왔다.

"어르신,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다. 안 될 게 없지."

"…정말 감사합니다."

마시스는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히자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마,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사람을 죽이는 요리를 했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질 했을 것 같았다.

아마 티는 안냈지만 내심 속이 많이 상했으리라.

하지만 이제 내가 그 오명을 벗겨줄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청년 마시스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잘머거스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저게 뭐지?

그가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커다란 낡은 냄비였다.

사용을 안 한 지가 오래되었는지 살짝 벗겨진 부분도 보였지만, 냄비에서 뿜어져나오는 고유의 아우라는 내가 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냄비도 당신의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 자식은 자꾸 왜 이래.

"미친놈."

"……?"

옆에 있던 마시스가 어리둥절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당신의 말에 상처받았습니다.]

소심한 놈 같으니, 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니까 욕이나 처먹지 쯧쯧.

그때였다.

휙-!

"……?!"

순간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그가 들고 있던 냄비를 공중으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곧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릴 거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둥실둥실.

"음…?"

"어머!"

"……."

냄비가 공중에 떠 있었다.

우리들은 놀란 표정으로 냄비를 보고 있었고, 마시스는 참 오랜만에 본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착잡하게 보고 있었다.

잘머거스가 입을 열었다.

"날씨 요리술."

…뭐?

화아아아악-!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가게 안에 불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꺄악!"

"이게 무슨?!"

"아, 결국…."

마시스가 한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려버렸다.

이윽고 한곳으로 모인 불꽃들은 이내, 어떤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저건…."

…태양?

그래, 저것은 내가 알고 있는 태양이 맞았다.

찬란하게 타오르는 오만한 하늘의 겁화가 내 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사도, '앞을 보는 불도둑'이 자신이 훔친 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립니다.]

[위대한 태초의 불을 최초로 감상하셨습니다.]

[명성이 1,000 올랐습니다.]

화륵-!

태양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솔라 등장!"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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