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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7화 (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07화

제7화

"재밌군."

잠깐이지만 기분이 고양되는 것 같았다.

분명 캡슐을 설치해줄 때 자신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아마 이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평범한 일반인이 이런 혜택을 받게 되면 형평성에 큰 문제가 생길 게 뻔했으니 말이다.

"키익. 인간, 죽인다!"

자신의 동료가 죽자 다짜고짜 달려오는 고블린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어디 실력을 좀 볼까?

고블린들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한 놈은 칼을, 한 놈은 창을, 어떤 놈은 도끼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맨손이었다.

그것도 뒷짐을 진 채로.

"키익. 죽어라!"

조금은 엉성하지만 꽤 날카롭게 찔러오는 한손 검.

아무리 봐도 튜토리얼 때 상대했던 고블린들보다는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Lv.3 고블린]

…이놈들은 3살이군.

옆에서 도끼를 든 녀석도 합공해오자, 나는 재빠르게 점프해 양다리를 찢으며 두 녀석의 얼굴을 동시에 때려버렸다.

빠아악-!

"으악!"

"악!"

두 녀석 모두 양 옆으로 나가떨어지며 한 바퀴를 굴렀다.

그와 동시에 녹슨 창이 정면으로 찔러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손바닥으로 창을 흘리며 녀석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창을 잡은 손을 빠르게 붙잡았고, 관절을 향해 팔꿈치를 내려찍었다.

빠각-!

"끄아아악!"

무언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오자 나는 뒤로 돌아가 놈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우드득.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공포에 질린 것인지, 조금씩 주춤하기 시작하는 다른 고블린들의 모습.

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안 오냐?"

"키익…."

"그럼 내가 가야지."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뛰어간 나는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파라라라락!

빠박-! 빡-!

발차기를 얻어맞은 고블린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는 그대로 착지해 녀석들의 온몸을 난타하고 때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있는 관절을 걷어차고, 관자놀이를 때리고, 명치를 때렸다.

그야말로 중국의 유명한 무술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깔끔한 동작.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의 초보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야, 우리가 지금 뭘 본거냐?"

"몰라, 나도 모르니깐 묻지 마."

"저 할아버지, 초보자 맞아? 복장은 분명 전직도 안 한 게 맞는데…."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이 해괴한 광경에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힘이 넘쳐났다.

갑자기 나타난 황금빛이 내 몸을 휘감으며 포근하게 감쌌고,

마치 온천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따스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것을 보며,

정도 녀석이 알려주었던 레벨업이라는 것의 전조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이 정도 속도면 금방 10레벨이 되겠는데…?

나는 떨어진 장비 아이템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고블린들의 몸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얻은 것은 그저 쓸모없는 손톱과 가죽들뿐. 장비라는 것이 안 나와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첫 사냥치곤 꽤 괜찮은 시작 같았다.

그렇게 다른 고블린의 몸을 뒤지고 있을 때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 그러고 보니 여기 마을 근처였지.

순간, 너무 시선을 끌었다는 생각에 재빨리 아이템을 수거하고 자리를 떠났다.

고블린들은 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 잎처럼 잿빛으로 흩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 * *

숨 가쁘게 움직이는 사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

그야말로 혼돈과 같은 이곳 모니터링실엔 아이러니하게도 적막만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코드 제로 CODE-0]

그것이 가져온 후폭풍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볼 시간마저 아깝게 만드는 마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눈앞에 있는 대형화면을 보던 유민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코드 제로의 주인공은 찾지 못한 건가?"

뒤에서 이석준 부장이 걸어와 말을 걸었다.

"네,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게 어찌 자네 탓이겠나."

유민석과 이석준은 다시 한번 대형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수십, 수백 개의 모니터들이 각기 다른 유저들을 비추고 있었다.

모두 꽤나 이름이 알려진 랭커들만이 화면에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잦은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반드시 찾아야하네. 이건 회장님의 명령이기도해."

"회장님의 명령이요…?"

이건명 회장.

40년이나 중소기업을 벗어나지 못했던 유니온을 말년에 들어서야 지금의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든 대기만성형의 인물.

지금 서비스 중인 가상현실 게임 '아크스타'를 만드는데 자신의 돈을 아끼지 않고 전 재산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제 거의 칠순을 넘어 팔순이 되어가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뒤늦게 피어난 하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회장은 왜 코드 제로만 뜨면 관심을 가지는 거지…?'

작년에 개최된 월드 대항전이 열렸을 때도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을 하곤 했던 이건명 회장이었다.

아크스타와 관련된 어떠한 행사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회장이었기에 유민석의 입장에서는 코드 제로에 대한 회장의 관심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코드제로… 대체 저기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거지?'

* * *

퍼억-!

"꾸에엑!"

[고블린 49/50]

퍼억-!

"키엑!"

[고블린 50/50]

띠링-!

[퀘스트 <촌장 첸의 부탁>  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후우, 드디어 다 잡았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상태창을 열어 레벨과 남아있는 경험치를 살펴보았다.

3레벨에 50% 정도인가….

"제법 많이 올랐군."

아직 10레벨까지는 멀고도 험했다.

어느 정도 레벨이 오르자 고블린들이 주는 경험치가 턱없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뭐, 촌장에게 다른 녀석을 잡고 싶다고 말하면 되겠지."

그렇게 한참을 걸어 뮬란의 성문 앞에 다시 도착했다.

여전히 왁자지껄한 마을.

"하루 종일 풀타임 사냥 하실분 구합니다~!"

"오늘 하루만 장비들 50% 세일합니다~! 싸요~ 싸~"

"뮬란의 특제 맥주가 무려 10달러!"

맥주도 있나…?

순간, 맥주를 사서 맛을 좀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에게는 오늘 10레벨을 찍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레벨이란 걸 올려 손녀에게 찝쩍대는 그 호랑말코 같은 놈들을 감시해야만 했다.

…그래, 강해지는 게 먼저다. 미도 레벨이 150이랬지 아마?

발걸음을 재촉한 나는 서둘러서 첸의 대장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바깥까지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가 꽤나 거침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역시나 땀을 흘리며 무기를 두드리고 있는 첸의 모습.

비슷한 동년배로 보이는데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정진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열정이 끓는 것 같았다.

"제가 방해했습니까?"

"껄껄, 아닐세. 막 쉬려던 참이야."

"말씀하신 고블린 토벌을 완료하고 왔습니다."

"오, 정말인가? 고생했네! 자넨 정말 믿음직한 사람이구만!"

[<촌장 첸의 부탁>   완료.]

"고생했네. 이건 사례금일세."

[500달러를 획득하였습니다.]

[첸의 신뢰도가 상승합니다.]

[2인 권유 퀘스트를 혼자 클리어함에 따라 보상 경험치가 1.5배 상승합니다.]

[경로 우대 혜택으로 인해 보상 경험치가 2배로 증가합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수 개의 메시지가 보였다.

그것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나는 마지막에 레벨이 올랐다는 2개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그토록 오르지 않던 경험치로 인해 레벨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보상으로 무려 2개의 레벨이 올랐으니 당연했다.

어느새 나는 기분 좋은 듯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큼, 아닙니다. 그보다 좀 더 강한 녀석을 잡고 싶습니다만."

"음, 그것도 좋지만 자네 슬슬 포만감이 떨어졌을 텐데, 먼저 배라도 채우고 오는 게 어떻겠나."

…포만감?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눈에 거슬릴 정도로 깜빡이는 것이 보인다.

혹시 이건가…?

[포만감 18/100]

역시, 이거였군.

"포만감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10% 이하가 되면 모든 능력치가 50% 감소하게 된다네. 그리고 0이 되는 순간 굶어 죽게 되지. 그러지 않도록 포만감은 항상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게나."

"명심하겠습니다. 포만감은 어디서 채울 수 있습니까?"

"껄껄. 마을로 내려가면 음식점들이 많지. 내가 준 돈으로 배를 채우고 오게나. 그런 뒤에 새로운 일을 맡기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산을 내려온 나는 곧장 첸이 알려준 음식점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엔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었다.

NPC들이 요리하는 냄새가 바깥까지 코를 찔러오는 것 같았다.

"오오, 이리도 다양한 요리들이 있다니!"

한때 요리사의 길을 걸었던 나에게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호기심들이 생겼고, 가장 맛있는 냄새가 나는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이 나를 안내하며 메뉴판을 보여주었다.

"정말 많은 메뉴들이 있군."

그곳엔 평생 먹어보지 못했던 요리들이 가득 있었다.

나는 모두 먹어보고 싶어서 400달러짜리 코스 요리로 주문을 했다.

잠시 후.

나는 음식을 흡입하고 있었다.

"아웁. 이거… 아웁. 맛있는데…?"

입에 청소기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옆에 있던 여직원이 접시를 내려놓자마자, 음식을 먹어치우는 나를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손님을 보고 저런 표정은 좀….

"아웁. 이거 한 접시만 더 주게!"

여직원은 옆에 쌓여있는 접시를 한번 흘낏 보더니 물었다.

"더 드신다구요…?"

"그래, 한 접시만 더 부탁하지."

[포만도가 100이 넘었습니다.]

[120이 넘어갈 경우 상태이상 '배탈' 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동속도가 12% 감소합니다.]

[현재 포만도 112/100]

"고블린 볶음밥 하나 추가요~"

여직원이 큰소리로 주방장에게 외치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이름은 바로 고블린 볶음밥!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내가 때려잡았던 고블린으로 만든 요리라고 생각하니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코스요리에는 고블린 볶음밥과 늑대 고기 스프가 나왔고, 아직 보진 못했지만 코카트리스라는 몬스터로 만든 닭볶음탕도 올라왔었다.

새로운 식감에 새로운 맛.

그리고 새로운 식재료들까지.

이곳은 요리사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블루오션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것은,

…나 또한 예외는 아니지.

한때 요리사의 길을 걸었던 나는 이 세계의 요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더욱 좋았던 건 가상현실이라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다는 것!

맛을 느낄 수 있고, 먹을 수도 있지만 배가 차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일이었다.

"앞으로 먹어야 할 게 많겠어."

물론.

…돈도 많이 벌어야겠고 말이야.

식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첸에게서 받은 500달러는 어느새 100달러가 되어있었다.

"그나저나 화폐 단위가 왜 달러인거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할뿐.

그렇게 혼잣말을 떠들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온 여직원이 계산서를 내밀었다.

"여기 계산서예요."

[오블리에 식당 계산서]

고블린 볶음밥 50$ x6

코카트리스 닭볶음탕 100$ x2

늑대고기 수프 25$ x2

***************

총합: 550$

"음? 왜 50달러가 더 나왔지?"

"방금 하나 더 시키셨잖아요."

"…미안한데 취소 되나?"

"죄송해요. 그건 불가능해요. 이미 요리가 나오고 있거든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요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런.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내 앞에 고블린 볶음밥을 내려놓았다.

향긋하게 피어오르는 잘 익은 고기 냄새가 내 코를 유혹하듯 찔러오고 있었다.

결국,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래, 우선 먹고 보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지.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내쫓기나 하겠지.

그렇게 나는 다시 고블린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썩 나가시오! 에이, 재수 없어서."

…우라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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