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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5화 (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05화

제5화

바람이 불었다.

고요하게 불어오는 그것은 내 전신을 훑으며 오싹한 소름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얼굴, 목, 어깨, 다리부터 시작해 등허리까지.

팔에 있는 솜털이란 솜털은 모공이 송연한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는 메시지들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최초로 일곱 별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북두칠성이 당신을 진정한 왕이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천성(天星) '찬란한 약속의 군주'를 얻었습니다.]

[모든 능력치 +20이 올랐습니다.]

나를 진정한 왕이라고 칭하는 시스템 메시지들.

그와 함께 귀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쩌렁쩌렁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인간들이여….]

이제는 별의 제단이 된 '명도' 안에 존재하던 인도자의 목소리.

[북두의 일곱 별 아래, 진정한 왕이 깨어났으니 새겨들으라.]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뒤섞여있는 그 괴기한 목소리는, 마치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자라도 되는 양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고독하고도 험난한 일곱 개의 길을 동시에 걷는 분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지금 바람에 이는 잎새와도 같은 상태. 들은 자들은 들은 것을 감추고, 본 자들은 본 것을 감추어라. 그분이 스스로 왕으로 우뚝 설 때까지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마치 예언과도 같은 신성하기까지 한 그 목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빛나기 시작하는 별의 제단.

쿠구구구구-

"……."

어느새 바닥에 착지한 나는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일곱 개의 북두칠성은 각자의 존재감을 발산하듯, 무지개 빛깔로 영롱하게 포효하며 울부짖었고, 마치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빛을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음…?"

제일 왼쪽에 있던 별부터 하나씩 겹쳐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든 별들이 뭉쳐져 하나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그 순간 빛이 터졌다.

파아아아앗-!

지독한 눈부심.

잠깐이었지만 신이 내리쬐는 햇살처럼 눈부신 찬란한 광채는 금세 잠잠해졌고, 나의 앞에는 웬 무지갯빛을 띤 형상이 두둥실 떠 있었다. 또한,

"태초 신 '가이아' 님의 예언을 지키는 시간의 파수꾼이 존귀한 일곱 별의 주인을 뵙습니다."

…누구지?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길게 늘어트린 하얀 수염과 하얀 백발. 고목나무 같은 지팡이.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한 노인이 나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태초신 '가이아' 님이 예언하신 존귀한 일곱 별의 왕을 뵙습니다."

프시케 또한 한쪽 무릎을 굽히며 내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왕이라고…?

뜬금없이 나타나 왕이라고 칭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사람을 본 채 우두커니.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건넨 것은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일어들 나시게. 이러면 내가 정말 무안하다네."

두 사람의 한 팔을 동시에 잡아 그들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

울고 있다.

그러나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이제야 무언가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의 눈물처럼 보였다.

"많은 것이 궁금하실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군요. 명도가 사라지며 이곳을 지탱하던 시공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쩍. 쩌저적!

위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 아니, 이 공간 전체에 균열이 번지고 있었다.

"앞에 있는 빛을 향해 손을 뻗으십시오."

나를 보며 말하는 노인의 말에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빛의 끝에 무언가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봉인된 스타 프루츠를 획득하였습니다.]

…이게 뭐지?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프시케가 말을 걸었다.

"스타 프루츠를 잃어버리지 않게 소중히 다뤄주십시오. 지금은 바람에 이는 잎새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 어떤 난관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전진한다면 그 끝에는 반드시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탓일까.

조금 슬퍼 보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동시에 옆에 있던 노인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내 뒤에 검은 형체의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드리려는 겁니다."

그가 검지와 중지를 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나는 아까 그 블랙홀 같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사방이 어두운 칠흑의 공간.

내 주변은 온통 어둠의 구체들로 가득했다.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만 빛 속에 프시케와 노인이 서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입술을 달싹이며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내가 들은 것은 단 하나의 말.

"별들의 가호가 함께하길."

그것을 마지막으로.

스르륵….

빛은 점차 사라지며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점차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나른한 목소리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튜토리얼이 완료되었습니다.]

* * *

유니온.

세계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인 아크스타를 만든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그룹.

최근 10억 명의 전 세계 가입자 수를 달성한 그 꿈의 회사에 전략기획실 팀장으로 있는 유민석은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며 크게 하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암. 어우, 날씨가 왜 이렇게 좋아."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권태로운 듯.

그는 의자를 돌려 얼굴을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하며 여름 휴양지에 온 것만 같은 일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흠흠~♪ 흠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옆에 놓인 믹스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려는 그때 누군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팀장님!!"

"야, 이 미친! 하아. 뜨뜨…."

순간 놀라는 바람에 들고 있던 믹스 커피를 옷에 쏟아버리고 말았다.

유민석은 며칠 전 쇼핑을 하며 할부로 비싸게 산 셔츠가 젖은 것을 보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왜 찾아!"

"큰일 났습니다."

유민석은 옆에 있는 화장지로 급하게 셔츠를 닦으며 물었다.

"아, 이거 비싼 건데… 무슨 일인데. 뭐, 게임에 오류라도 생겼냐?"

"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뭐…?"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차진철 대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실수가 없었던 아크스타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알기로 아크스타는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으로 알려진 슈퍼컴퓨터 '가이아'가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더욱이 믿을 수 없는 것은, 가이아가 일반적인 슈퍼컴퓨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존 슈퍼컴퓨터 성능의 100억 배에 해당하는 성능을 내기 위해 양자역학의 기술이 도입된 그야 말로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였다.

기존의 슈퍼컴퓨터가 150년 걸려서 계산해야 할 것을 단 4초 만에 계산할 수 있기에 가이아는 CIA나 NASA에서도 눈 여겨 보고 있는 최고의 인공지능이나 다름없었다.

오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버그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슈퍼컴퓨터가 오류를 냈다?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유민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진철에게 농담하지 말라는 투로 물었다.

"헛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이야?"

"일단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진짜 뭔 일이 있나? 에이 설마.'

두 사람은 빠르게 밖으로 나가 지하에 위치한 거대한 모니터링실 앞에 도착했다.

"유 팀장 어서와."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그는 눈앞의 이석준 부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은 차진철에게 물었다.

"야, 진짜 오류가 발생한 거야? 부장님까지 여기 왔다고…?"

차진철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노트북에 영상을 하나 띄워 보여주었다.

"보십시오."

영상에 띄워진 건 어떤 외국인 유저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

꽤나 화려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레벨이 높은 랭커로 보였다.

근데 조금 익숙한 것이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세계 랭킹 1위, 미국 유저 마이클의 플레이 영상입니다."

"아, 그래! 어쩐지 눈에 익더라. 근데 얘, 스타 프루츠 능력자 아니야? 이렇게나 강했나? 사냥속도가 엄청 빠른데? 근데 설마 이런걸 보여주려ㄱ…."

그때였다.

"…뭐야."

영상이 멈추었다.

아니, 영상이 멈춘 게 아니었다.

오직 몬스터들만이 멈추어 있었다.

마이클은 당황했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이클도 움직여지지 않는 모양.

유민석은 그것을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들이여…]

[북두의 일곱 별 아래, 진정한 왕이 깨어났으니 새겨들으라.]

세계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 같은 비장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유민석은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고독하고도 험난한 일곱 개의 길을 동시에 걷는 분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지금 바람에 이는 잎새와도 같은 상태. 들은 자들은 들은 것을 감추고, 본 자들은 본 것을 감추어라. 그분이 스스로 왕으로 우뚝 설 때까지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마지막 말을 끝내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파아아아앗-!

영상 속 마이클의 주변으로 붉은 빛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유민석은 매의 눈으로 유심히 그 모습을 관찰했다.

이제야 사태가 조금 심각한 것을 인지한 유민석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져 있었다.

'이게 대체…?'

붉은 색의 빛들은 이내 점점 커지더니 기둥이 되어 하늘을 향해 찬란한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이클의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은 빛에 닫자마자 잿빛으로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미친."

차진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또 다른 영상을 틀어주었다.

또 다른 스타 프루츠 능력자로 알려진 스페인의 토레즈.

그는 짙은 보라색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유저들의 영상 또한 마찬가지였고, 모든 영상을 감상한 유민석의 얼굴은 살짝 굳어져 있었다.

"진짜 큰일은 이것입니다."

차진철은 노트북을 몇 번 두드리며 조작하더니 시스템 메시지를 관리하는 창을 열었다.

마우스 휠을 돌리며 화면을 내리던 차진철은 이내, 어느 한 곳에 멈추며 유민석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유민석의 첫 마디는.

"돌겠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것.

단 한 줄의 메시지였지만,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는 아려오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누르며 이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System. CODE-0 발동.]

"…제기랄. 또 야근하게 생겼네."

조용한 그의 한마디가 모니터링실을 비장하게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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