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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화 (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03화

제3화

새하얀 햇살이 밝게 비추는 아침.창가로 스며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녹차의 깊은 풍미가 아침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아침에 미도가 적어준 조그만 쪽지였다.

그곳에는 제법 빼곡하고 예쁜 글씨체로 알아보기 쉬운 글들이 적혀있었다.

[할아버지를 위한 미도의 아크스타 능력치 설명♡]

피식. 하트라니.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모양이다.

로또라도 사야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드는 군.

나는 쪽지로 시선을 옮겼다.

[아크스타 기본 능력치]

힘: 물리 공격력과 기본 공격력을 올려준다.

민첩 : 공격속도와 이동속도를 올려준다.

건강 : 생명력과 물리방어력을 올려준다.

지식 : 마법공격력과 마법방어력, 그리고 마력을 올려준다.

※그 외 직업을 얻으면 얻는 능력치들은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되실 거예요!

할아버지 화이팅!

우리 나중에 같이 게임해요♡

"홍홍홍♡"

미도와 함께 하는 상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졌다.

쓰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살며시 내려놓은 나는 기지개를 키며 캡슐이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이제 한 번 해보도록 할까."

오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직장으로, 학교로, 유일하게 자주 보던 며느리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나간 상태였다.

오늘 늦게 들어온다고 그랬는데, 그야말로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오늘 목표는 10레벨."

어제 정도 녀석이 해준 말에 따르면 10레벨이 되면 전직이라는 걸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하니 우선 그것을 목표로 열심히 전진할 예정이다.

나는 지갑에서 '가상현실 게임 허가증'을 꺼내 ATM 같이 생긴 그 곳을 향해 집어넣었다.

우웅-!

차가운 심장과도 같았던 캡슐에 알록달록한 빛이 맴돌더니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꽤나 웅장한 모습.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여길 들어가면 되는 거겠지…?

고개를 돌리니 아내의 초상화가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여보, 가족들을 부탁해요. 당신, 강한 사람이잖아.'

문득,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왜일까.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천천히 즐기다가 와요.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다하고 와요. 내가 위에서 지켜볼 테니까. 그리고… 우리 다음 생에도 부부 맞죠…?'

"그럼, 당신이 최곤데."

작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캡슐을 향해 몸을 뉘었다.

미도가 알려준 대로 빨간 버튼을 누르자 닫히기 시작하는 캡슐.

잦아드는 어둠과 함께,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크스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작되었구나.

이 빌어먹을 모험의 일대기가.

* * *

슈우욱-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짙은 어둠이 날 집어삼키는 것 같았고, 끝없는 고요와 함께 붕 뜨는 느낌에 온몸이 관망당하는 것 같았다.

잠깐 사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는 창공에 홀연히 서 있었다.

"이건…."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에는 오직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내 몸은 가벼운 티 하나와 낡은 바지 하나만을 입고 있는 상태.

가볍게 볼을 꼬집으며, 나는 이것이 현실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아프군. 가상현실이라더니 진짜 아픈데?

[홍채를 인식합니다.]

[신규 이용 대상자입니다.]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이거구나. 정도 녀석이 말했던 것이.

"생성한다."

[외모를 바꾸시겠습니까?]

"아니."

[왕국을 선택해주십시오.]

1. 오르카 왕국

2. 연맹국가 그란.

3. 파르타 공국

"오르카 왕국."

그 말과 동시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눈알이 나타났다.

그 괴생명체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로 내 몸을 훑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캐릭터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게임 상에서 사용하실 이름이나 별명, 아이디를 말씀해주십시오.]

"음…."

이름을 짓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아들 녀석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그랬고, 미도와 정도의 이름을 지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제 정도가 미리 만들 아이디나 별명을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라는 말에 염두 해두었던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잭슨."

['잭슨'이 맞습니까? 한번 결정한 것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사실 비밀이지만, 나는 마이클 잭슨의 오래된 광팬이다.

내가 서른 살 즈음, 'Billy Jean'이 유행할 때 얼마나 따라 췄던지.

그의 현란한 문 워크를 정말 미치도록 좋아했다.

지금도 말이다.

"그래."

[반갑습니다 '잭슨'님. 가상현실 세계 '아크스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다채로운 빛깔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로라와 무지개가 뒤섞인 것 같은 그것은 이내 내 몸을 감싸 안더니, 조그만 폭죽 같은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 * *

잠시 뒤, 내가 나타난 곳은 어느 울창한 숲속이었다.

정답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다.

5살 때까지는 이런 시골에 살았었는데… 요즘 같은 도심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기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가끔 그립긴 하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이거 진짜 신기하네."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기도 하고, 내가 잘하는 발차기도 여러 가지 해보았다.

실제 현실에서 움직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한편 충격도 받았다.

이 정도로 다른 세상이 잘 구현 되어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아크스타'라는 거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할지도….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귀신…?

"제가 말을 걸었어요. 후훗."

머리 위에 있던 푸른빛이 두둥실 내려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지만 이내 현실임을 직감했다.

빛이 조금씩 사그라지더니 나비 날개가 달린 조그만 여자아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인가…?"

아니,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긴 하늘도 날았는데, 사람이 아니라도 놀랄 일은 아니지.

"후훗, 재밌으신 분이시네요. 전 초보 모험가들을 돕는 요정 프시케라고해요. 제가 지금부터 이곳 아크 랜드에 적응하실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알려 드릴 거예요. 기대되시죠?"

…귀여운 녀석이구만.

"그래. 많이 알려다오. 껄껄."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프시케라는 아이에게 기대 어린 눈빛을 쏘아 보냈다.

프시케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듣고 싶은 설명이 있으시면 이 중에서 골라주시겠어요?"

가루 같은 빛이 흩어지며, 눈앞에 여러 가지 문장이 띄워졌다.

[생명력과 마력이란 무엇인가.]

[레벨업 하는 방법은?]

[전투를 하는 방법]

[직업의 종류는?]

[…]

[…]

"음…."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건너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제 손주들에게 대충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째 것을 골랐다.

"전투를 하는 방법을 알려다오."

"좋아요. 지금 바로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프시케가 다시 한번 지팡이를 흔들자 눈앞의 글자가 흩어지고, 주위에 무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칼, 창, 도끼, 해머, 활 등등 여러 가지 무기가 내 주변을 맴돌며 선회하자, 프시케가 말했다.

"지금부터 모험가님은 별의 시험을 받으실 거예요."

"별의 시험…?"

"태초 신 가이아님이 예언하셨던 기본적인 의식 중에 하나랍니다? 후훗."

동시에 위쪽에서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이 속속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저건 또 뭐야…?

코가 길쭉하고 온몸이 녹색으로 되어있는 생명체.

허리쯤 오는 키를 가진 그들의 위에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Lv.1 고블린]

"레벨 1…? 저 녀석들 전부 한 살인가?"

어제 정도 녀석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즉, 저 녀석은 이제 갓 태어난 한살 정도의 녀석이라는 뜻.

손자 놈의 말에 의하면 레벨이란 건 나이와 같다고 했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가장 약한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저 몬스터의 이름은 고블린이에요. 초보 모험가들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몬스터이기도 하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모험가님은 저 녀석들100마리를 쉬지 않고 상대하시게 될 거예요."

…뭐?

"건투를 빌어요!"

"아니, 그게 무ㅅ…."

내가 말을 붙이기도 전에 프시케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고블린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르르르르-

"갑자기 이렇게 몰려온다고?"

이유라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지만, 프시케는 이미 내 앞에 없었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변에 있던 무기 중 단검을 집어 들었다.

중학생 정도 되는 키를 가진 놈들이 각자 무기를 하나씩 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캬아아악!"

"이놈이…!"

푸욱!

가볍게 팔로 공격을 차단한 뒤 고블린의 목에 단검을 쑤셔 넣었다.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다른 녀석들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순식간에 고블린 두 마리가 사라지자, 나는 고블린의 생명력이 20정도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 마리당 두 대씩이면 되겠군.

…옛날 생각나는데?

옆에서 또 한 놈이 덤벼오자, 그대로 뒤돌려차기를 날려버렸다.

앞에서 두 명의 고블린이 달려왔고, 나는 오른쪽 놈의 얼굴을 밟으며 왼쪽 놈의 얼굴을 까버렸다.

그렇게 나와 고블린 100마리의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퍽퍽-! 우드득!

첫 번째 고블린을 제외하고는 칼은 쓰지 않았다.

발차기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고, 젊은 시절 이런 난관은 수도 없이 헤쳐 왔기에 이 정도 수준은 내겐 애들 장난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전투가 끝나고, 나는 어깨를 돌렸다.

"오랜만에 몸을 푸니까 좋구만. 시워언하다!"

발목도 돌리고, 목도 돌렸다.

허리에서 뚜둑 하며 소리도 냈다.

내 앞에 있던 고블린들은 잿빛으로 휘날리고 있었고,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상쾌함을 가득 만끽했다.

"이, 이럴 수가."

"껄껄."

"진짜 초보 모험가 맞으세요?"

"맞는데?"

"……."

프시케의 입은 떡 벌어져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조금 놀란 듯 보였다.

아니, 조금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놀란 건 맞는 것 같았다.

"대단하시네요. 지금껏 시련을 모두 물리치신 분은 처음이에요.

과연 어떤 별의 선택을 받게 되실지 궁금한데요?"

"별의 선택…?"

"이것 또한 별의 운명이라면."

프시케가 또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르자, 눈앞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일렁이며 조그만 형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딱 봐도 엄청 수상한 것이 나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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