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01화
프롤로그
- 아~!! 말씀드리는 순간 한국의 최미도 선수가 황금 깃발을 쟁취합니다!
- 이로써 한국이 5점을 얻어 현재 1위로 올라섰습니다!
- 하지만 이제부터 모든 나라들이 한국을 집중 공격할 텐데요…!
"여보, 우리 미도… 괜찮겠죠?"
"괜찮을 거요, 믿읍시다. 우리 딸 잘 할 거요. 강한 아이지 않소."
미경과 강현,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긴장이 되는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화면에 나와 싸우고 있는 젊은 여인이 바로 두 사람의 딸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아버님이 계속 안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겠죠?"
"음, 아마 여기저기 손녀 자랑하느라 늦으시는 거겠지."
"그래도 화장실 갔다가 오신다고 한지가 벌써 몇 시간짼데…."
"아마 무슨 일 있으시면 전화하시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엄마."
옆에 있던 아들 정도가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미경은 싱긋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후훗. 하긴, 그렇지…?"
- 아!! 큰일입니다! 한국 팀이 브라질 팀의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 브라질의 악명 높은 카를로스가 최미도 선수를 향해 달려갑니다!
- 기수인 최미도 선수 위기입니다!
- 한국 팀 역시 이대로 탈락하고 마는 걸까요!
"어머, 안 돼!"
"미도야…!"
"누나…!"
모두가 숨을 죽이며 위험에 빠진 그녀를 걱정했다.
이젠 끝이구나. 오래 버텼지만 잘 싸웠다.
그리 말하며 딸을 위로할 생각에 안타까움 마저 들었다.
그 순간,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한국팀의 조커가 등장합니다.]
위우우웅-!
- ……?
- ???
- 뭐지…?
해설진들이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경기를 관람하던 관객들도 마찬가지.
한국팀의 조커로 등장한 것은 이상한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가 갑자기 허공에 발차기를 하기 시작했고, 마치 한 마리의 학이 춤을 추는 듯 유려한 선을 그리며 이어지던 발길질에 모두가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 한국에 저런 선수가 있었나요?
- 처음 보는 선수인데 누구죠…?
- 아니, 그보다 왜 가면을…?
해설진들이 떠드는 사이 가면의 남자가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 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울려 퍼지는 카를로스의 비명소리.
- …….
- …….
- …….
해설진들이 모두 입을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ㅇ…."
"우와아아아아!!!!!"
경기장 가득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 크윽, 네놈은 누구냐? 대체… 정체가 뭐지?
카를로스는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자신을 공격한 남자에게 묻고 있었다.
가면을 쓴 남자는 대답했다.
- 나 말이냐…?
스윽.
마침내 그가 가면을 벗었다.
새하얀 백발이 드러나고 멋진 흰 수염을 가진 남자.
그가 고갯짓으로 미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 이 아이 할애비다. 썩을 놈아.
"아버지??"
"아버님???"
"할아버지?!"
* * *
2018. 아크스타 월드 대항전
나는 화려한 데뷔를 했다.
그리고 전설이 될 예정이다.
제1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한국 속담의 유명한 격언중 하나다. 하나, 이 격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사람에 불과했으니까.
요컨대 정치인이라던가, 유명 연예인이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미약하지만 이름도 남기고 가죽도 남겼다.
물론 진짜 가죽이 아닌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는 방법이었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나는 그런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우우웅-!
갑자기 울리는 진동소리.
"그래. 나다."
- 아버지, 어디세요?
"추모공원에 있다."
- 또 어머니 보러가셨어요?
최강현.
아내인 선영이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다.
녀석은 조그만 개인 이비인후과를 운영 하는 의사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최강 이비인후과'라고 지었는데…. 가끔 내가 촌스럽다고 놀리기도 한다.
"점심시간 맞춰서 갈 테니 너무 걱정 말거라."
- 알겠습니다, 아버지. 조심히 들어오세요.
"오냐."
전화가 끊어지자 곧장 엉덩이를 털고 돗자리를 접었다.
눈앞에는 아내 유선영의 사진이 빙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마주보며 함께 웃었다.
"또 오리다. 여보."
미련 없이 돌아선 나는 저 멀리 오래된 흰색 소나타를 향해 걸어갔다.
저 차의 이름은 흰둥이.
나의 애마라고 할 수 있겠다.
너무 오래되어서 가끔 덜컹거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아직은 쓸 만한 편이다.
뒷좌석의 문을 연 나는 곧장 돗자리를 던져 넣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우르릉-!
나의 이름은 최춘택.
50년생에 범띠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다.
고아인 탓에 어렸을 때부터 거친 삶을 살아왔고, 우연히 아내를 만나 과거를 청산한 후 깨끗한 삶을 살고 있는 편이다.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어른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지도.
일찍이 나의 재능을 알아보신 장인어른께서는 나에게 요리의 길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식당 중 하나인 월운정(月雲停)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지금은 제자 녀석에게 몽땅 물려주고 은퇴를 했다.
덜컹덜컹! 덜컹!
돈이 많을 것 같은데 차는 왜 이 모양이냐고?
글쎄, 사실 차에는 취미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남은 게 별로 없다.
첫째 녀석 의대 학비를 대느라 뼈 빠지게 고생을 했고,
둘째 녀석은 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그거는 그거대로 돈이 많이 들어갔다.
막내딸은 이번에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결혼자금으로 쓰라고 통장을 내밀었는데….
그곳엔 그동안 모아둔 돈의 90%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 수중엔 돈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꼬박꼬박 월마다 나오는 연금으로 먹고사는 월급쟁이 인생 같다고나할까?
30분을 달려 집에 도착한 나는 내리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칙칙-!
"후우…."
지금 도착한 이곳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물론 내 집은 아니고, 1년 전 아내가 죽고 첫째 녀석의 제안으로 함께 살고 있는데, 그 녀석의 집이었다.
사실 가장 걱정되었던 건 며느리와 손주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피던 담배가 짧아지자, 불을 끄고 도어락으로 다가섰다.
띡띡띡띡-! 띠리링-!
"오셨어요. 아버지."
"아버님, 오셨어요?"
강현이 내외가 함께 입구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제일 반겨 주는 건….
"할아버지~!"
"어이쿠. 욘석아 다칠라. 허허허."
내 품에 달려와 뽀뽀를 마구해대는 손녀 미도였다.
아름다울 미(美)에 길 도(道) 자를 써서 항상 아름다운 꽃길만 걷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주었던 이름.
미도는 그런 나의 바람대로 아주 잘 자라주었다.
마치 아내의 젊은 시절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닮은 외모와 성격은 내 말년의 축복이었고, 신앙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 또 담배 폈죠?"
"음…? 험험…."
또 들키고 말았다.
1년 전 아내가 죽고 다시 피기 시작했는데, 역시 손녀의 코는 못 속이겠다.
젊어서 그런가…?
"자꾸 담배피시면 뽀뽀 안 해드릴 거예요?"
"음…?!"
순간 멈칫했다.
뽀뽀를 안 해준다니….
갑자기 어깨가 축 처지며 머릿속으로 전자담배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미도는 그것도 안 된다고 할 텐데… 어떻게 하지?
"쿡쿡. 농담이에요. 우리 얼른 밥 먹으러가요!"
"호호, 얼른 들어오세요. 아버님."
"큼, 그래, 정도 녀석은 어디 갔냐?"
"오늘 오전 자율학습 있다고 하고 나갔어요."
"그래…?"
최정도.
둘째 손자의 이름이다.
바를 정(正), 길 도(道) 자를 써서 항상 바른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진짜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워낙 말썽쟁이 녀석인지라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부하러 나갔다니 조금은 대견하다.
나중에 보면 용돈이라도 좀 챙겨줘야지.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가족들과 점심을 먹은 후, 다 같이 거실에서 TV를 보는 중이었다.
- 가상현실 게임. '아크스타'가 오픈한지 드디어 1년이 넘었습니다. 최근 이용자 수가 10억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입니다.
"요즘 저 '아크스타'라는 게 기세가 대단하구나."
나는 옆에서 함께 뉴스를 보고 있던 강현이에게 말했다.
"네, 저도 해봤는데 재밌더라구요."
"그래?"
흥미가 동하진 않았다.
그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게임 같은 것이겠거니.
그렇게 막 엄청 궁금하고 그러진 않았다.
저런 것들은 그저 잠깐의 유흥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저거 안 해보셨어요? 엄청 재밌어요. 저도 대학 선배들이랑 자주 하곤 하는걸요?"
자주 즐기곤 한다는 미도의 말에 순간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대학 선배? 혹시… 남자냐?"
나는 매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네, 저 빼고 다 남자예요."
우르르 쾅쾅-!
그날, 내 머릿속을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내가 '아크스타'를 시작해야 될 이유를 얻은 날이었다.
* * *
짹짹-!
다음 날 아침.
오늘은 일요일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쉬라고 정해놓은 빨간 날.
물론 오늘 같은 날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꼭 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나처럼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팟-! 팟팟-! 파팟-! 팟-!
"후우… 몸이 예전 같지 않네."
확실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발차기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예전엔 공중에서 네 번까지 차고 그랬는데… 요즘은 두 번이 한계다.
그래도 이것도 어디인가.
하루도 빼먹지 않는 운동 덕에 나는 평범한 동갑내기들과 차원이 다른 건강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턱-! 턱-! 턱-!
그래. 저기 나무 밑에서 등치기나 하고 있는 저 사람보다는 말이다.
그는 내 공중 발차기에 많이 놀랐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런 시선이 싫어서 사람이 없는 새벽에 올라온 거였는데….
하필 이 시간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야~ 발차기 실력이 아주 대단하십니다. 혹시 무술하시는 분입니까?"
"예, 뭐 약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때는 좀 거칠게 날리긴 했으니 말이다.
나는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을 슥 한번 훑고는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그렇게 이번에 향한 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최춘택 님~ 들어오시면 되세요."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섰다.
눈앞에 보이는 의사의 건너편에 앉으니 그가 말을 걸어왔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 가상현실 게임을 하시고 싶으신데 허가증이 필요하시다구요?"
그렇다.
나는 지금 '아크스타'라는 것을 하기 위해 건강검진이라는 것을 받으러 온 상태였다.
열 받게도, 정부에서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허가증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법안을 만들었는데,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이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것은 굉장히 얻기 힘들다고 하던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해야 할 검사들을 말해주겠나? 난 건강하니까 후딱 해치우고 가고 싶구먼. 껄껄."
"하하. 그건 천천히 검사를 해봐야 아는 일이라서요. 우선 뇌파검사부터 해볼게요."
"그러지 말고 그냥 주면 안 되나? 나 정말 건강한데 말이야."
"정부 방침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염병하네.
이제 막 40대 정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 의사 녀석은 잘난 척을 하듯 흰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기더니 그것을 간호사에게 건넸다.
"할아버지, 저 따라오세요. 우선 뇌파검사를 한 뒤에 각종 혈액검사와 내시경을 할 거예요. 그리고 초음파 검사를 할 거구요. 또…."
이 자식이….
나는 망할 의사 놈을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무관심한 태도를 일관하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예의 없는 놈 같으니라고.
아무래도 오늘 일찍 가기는 그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눈을 돌린 나는 간호사를 따라가 각종 검사들을 받기 시작했다.
* * *
꿀꺽. 꿀꺽.
"크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오후 5시쯤이 되어서야 나는 병원 밖을 나올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은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 응급실 근처.
아무래도 피를 뽑아서 그런지 수분 보충이 조금 필요했다.
나는 제법 시원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카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가상현실 게임 허가증]
이름 : 최춘택
나이 : 67세
건강 등급 : S
위 사람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데 무리가 없는 건강한 사람임을 정부와 병원에서 인증합니다.
*경로우대 서비스를 이용 하실 수 있습니다.
*캡슐 구매 50% 할인. 월 이용료 50% 할인.
"썩을 놈들. 건강하다니깐 왜 자꾸 검사하는 건지."
너무 건강한 것이 문제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의사들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눈을 껌뻑거리며, 아무래도 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것 같으니 다시 해보는 게 좋겠다고 요구했었다.
아무래도 내가 다른 노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건강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두 번째가 끝나고 세 번이나 반복하려하자, 나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폭발한 나는 사람을 못 믿는 거냐며 그들에게 역정을 내었고, 그들에게서 어렵사리 S등급의 건강 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망할 놈들."
다시 한번 끓어오르는 분노를 식히기 위해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챙그랑-!
"꺄아악!"
"……?"
갑자기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응급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 아프다고!! 시이벌!! 마취해달라니깐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뭐야! 누가 우리 형님 아프게 했어. 누구야!!"
나는 응급실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검은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딱 봐도 조폭이로군.
"당신이야? 엉? 당신이냐고오!"
덩치 좋은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여의사를 협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밀려온다.
요즘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더니 진짜였네.
"이거 어떡할 거야. 엉? 우리 형님 팔뚝에 드래곤이 삐뚤하잖아~ 이거 어떡할 거냐고!"
"어, 어쩔 수 없어요. 상처가 너무 벌어졌어요. 그리고 아픈 건 마취가 풀려서 그런 거니깐 진통제를…."
레지던트로 보이는 여의사는 떨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의 할 말을 어김없이 내뱉고 있었다.
제법 강단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절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뭐? 아니 이 여자가 말이면 단 줄 아나…!"
남자가 거친 손을 들어 손찌검을 하려는 순간.
"그쯤 하지 젊은이."
결국 나서고 말았다.
안 그래도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는데… 잘됐지 뭐.
"앙? 늙은이는 빠지쇼. 괜히 나서다가 다치지 말고."
역시 말로는 안 통하는 모양이다.
요즘 젊은 것들은 왜 이렇게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건지.
나는 옆에서 도시락 통을 든 채 식사 중이던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아가씨. 잠깐 그것 좀 빌려주겠나?"
"예…?"
"숟가락 좀 잠깐 빌려주게."
"아… 네?"
간호사가 알겠다고 말할 틈도 없이 나는 숟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조폭들이 있는 곳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어이, 영감. 나서면 다친다니까?"
말단 수하로 보이는 녀석이 다가와 어깨를 손으로 밀치려했다.
…못난 놈들.
나는 번개처럼 손을 뻗었다.
파파팟! 팓. 팓. 퍽!
"……."
"이게 무슨…."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있었다.
나는 조폭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은 조용히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젊은이들."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에 제일 뒤에 있던 녀석이 고함을 질렀다.
"큭. 뭐 해! 제압해!!"
"이야아아아아앗!"
조폭들이 순식간에 한명씩 덤벼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덤빈 건 바로 뒤에 있던 거한이었다.
나는 곧장 뒤돌려차기로 놈을 날려버렸다.
"크억…?!"
거구의 남자는 그대로 공중으로 뜨더니 각종 의료기구들이 있는 곳에 부딪혀버렸다.
와장창-! 하는 걸 보니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숟가락을 짧게 거머쥐었고, 앞에서 덤벼오는 두 명을 향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팓- 파파파팓-
"윽…."
"이게 무ㅅ…."
"시끄럽다."
팓! 팓! 팓!
숟가락 하나에 힘없이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며 뒤에서 보던 남자가 외쳤다.
"아니 뭐, 저런 영감탱이가… 야! 뭐해 한꺼번에 덤벼!!"
남은 6명이 동시에 덤벼왔다.
그들은 나를 에워싸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보였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이번에는 숟가락을 길게 쥐었다.
놈들이 덤벼왔고, 나는 숟가락의 둥근 밑 부분으로 이마를 사정없이 때려버렸다.
"크윽… 아씨!"
6명이 모두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덤벼왔지만, 나는 한명씩 빈틈이 보일 때마다, 사정없이 숟가락으로 놈들의 급소를 찔러버렸다.
팓- 파파팓-
파파팓- 팓팓팓-
파팟- 팓팓- 팓-! 팓-!! 팓-!!
5분의 사투 끝에 조폭들은 전부 바닥에 누워서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으윽… 크윽… 아윽…!"
칼에 찔린 건 아니었지만 급소를 공격당해서 그런지 기어 다니는 녀석들의 모습.
나는 그들의 대장처럼 보이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어이, 용대가리. 떠나라. 여기서 경찰을 마주치면 네놈들도 입장이 곤란할 테지?"
이들을 경찰에 넘겨도 되었지만 아직 젊은 놈들의 앞길을 막기는 좀 찝찝했다.
그리고 만약 붙잡히게 되면 조사다 뭐다해서 귀찮게 할 게 뻔했으니, 그냥 쉽게 해결하는 게 내 입장에서도 속 편했다.
"크윽. 두고 보자. 망할 영감."
대장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황급히 부하들을 이끌고 응급실을 떠났다.
잠시 후.
웅성웅성.
수군대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둥,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을 피해 황급히 응급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섰다.
그냥 나서지 말걸 그랬나…?
아, 숟가락은 돌려주었다.
끝이 다 뭉개져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밥은 먹을 수 있겠지.
나는 아까 피지 못했던 담배를 다시 태웠다.
칙-!
"후우…."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평온하게 내리쬐며 미소 짓고 있었다.
망연하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보며, 나는 정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은 최춘택.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다.
믿지 못하겠다고?
그래, 믿지 마라.
지금부터 펼쳐질 나의 이야기는 절대 평범하지 않을 테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