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장. (2)
두 번째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헌터협회 본사 건물을 포함해서 그동안 몬스터들의 침공으로 인해 거의 박살이 났던 건물들도 점차 수복되어 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불안에 떨던 사람들의 마음도 차례차례 고쳐졌다.
레드 드래곤이 사라진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1차 레이드 시대부터 남아 있었던 몬스터들이 가끔, 아주 가끔 출몰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이렇다 할 특이 현상은 없었다.
게이트는 당연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로 인해 부득이하게 피해를 보게 된 곳이 있었다.
바로 헌터훈련소였다.
그럼에도 고설중 교관의 얼굴은 2차 레이드 시대가 열렸을 때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이전에 고설중 교관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평화가 제일이야.”
다시 한번 훈련소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고민거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고설중 교관은 이 얼마나 좋은 세계냐면서 하하 웃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훈련소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 이전처럼 헌터들의 훈련 과정을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때도 나름 돈벌이는 잘됐어. 너는 몰랐겠지만.”
고설중 교관의 말대로였다.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많이 몰렸을 줄은 몰랐다.
그만큼 몬스터, 게이트, 아이템, 그리고 헌터를 향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엄청나다는 것을 뜻했다.
이쯤에서 나는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굳이 훈련소를 유지할 필요 없이, 다른 일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요?”
고설중 교관이라면 충분히 다른 직종을 업으로 삼아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일단 기본적으로 각성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앞세워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헌터 생활에서 은퇴한 각성 능력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특수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단 그게 훨씬 건전한 방향으로 능력을 사용하는 거니까.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도 헌터들의 인생 2막을 열심히 지원해 주고 있었다.
각성 능력자들이 품고 있는 잠재 능력은 각 나라별로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이 연장선으로 고설중 교관에게 이런 비슷한 제안을 하려고 했었지만.
고설중 교관의 말에 나는 이 생각을 접기로 결심했다.
“언제 또 지난번처럼 게이트가 열리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는 훈련소를 지키고 유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바로바로 새로운 헌터들을 훈련시키고 현장으로 투입시킬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고설중 교관의 이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깊게 와닿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드 드래곤이 약속을 파기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약속은 레드 드래곤과 했기에, 다른 드래곤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하면서 약속이 있든 없든 내 알 바 아니라는 태도를 취할 수도 있으니까.
어떤 일이든 항상 대비를 해 두는 게 좋다.
고설중 교관처럼 말이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재정난에 휘말릴 경우가 생기면 언제든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저도 도울 테니까요.”
“그래. 고맙다, 태오야. 오랜만에 봤는데 밥이나 먹고 가는 건 어떠냐?”
“저, 바로 약속 있어서 그쪽으로 넘어가야 돼요.”
“무슨 약속?”
고설중 교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궁금해하는 그를 위해서 나는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이렇게 대답해 줬다.
“오늘, 우리 그룹 컴백 날이거든요.”
* * *
두 번째 평화의 시대를 내 입으로 직접 선언하고.
동시에 나는 HTB 멤버로서 잠깐 멈췄던 컴백 작업을 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우리는 바로 컴백 무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정된 시간은 오후 5시.
이때부터 거의 2시간 가까이 생방송으로 컴백 스테이지가 송출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내오고 있었다.
인류를 지킨 영웅.
나라를 구한 톱스타
, 강태오가 속한 HTB의 컴백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덕분에 나와 HT 엔터테인먼트 모두가 다 오늘 무대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이번 무대는 두 번째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처음으로 가지는 HTB의 무대니까.
그래서 더 의미가 남달랐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오늘 무대만큼은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있었다.
생방송 시간이 다 되었다는 스태프의 말에 따라 우리들은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갈 준비를 서둘렀다.
그 전에.
“형들! 우리, 그거 해야죠!”
준서가 갑자기 손을 앞으로 모았다.
무대에 올라서기 전, 우리는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가는 편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그룹 활동이라 그런지, 잠시 잊고 있었다.
피식 웃던 데이브가 준서 다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니암 그리고 딜런의 손이 그 위로 차곡차곡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손을 뻗었다.
“열심히 무대 즐기고 오자고, 알았지!”
“네!”
“HTB, 가자!”
기합을 바짝 넣은 뒤.
우리들은 두 번째 평화의 시대의 서막을 알릴 무대를 위해 힘 있게 걸음을 옮겼다.
* * *
수많은 카메라들과 조명들이 우리에게 쏠렸다.
이번 컴백 쇼케이스는 이전 무대들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기자들, 혹은 관계자들만 객석에 앉혔다면.
이번 컴백 쇼케이스는 콘서트처럼 아예 장소 하나를 대여해서 우리 팬들을 다수 초대했다.
우리가 무대에 올라서자, 마음속에서 잠깐 사라졌던 팬들의 우렁찬 외침 소리가 현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
이 소리.
어쩌면 내가 바랐던 게 바로 지금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무대는 ‘지지 않는 태양’으로 꾸몄다.
오랜만에 옛날 안무를 떠올리면서 무대를 펼치자, 팬들의 환호성은 점점 더 커져 가기 시작했다.
립싱크 없이, 라이브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여긴 전장도 아니고. 몬스터들도, 게이트도 없다.
단지 우리의 무대를 즐기기 위해 온 팬들뿐이다.
이 환경이 나를 더욱 신나게 만들었다.
마이크를 든 손을 높게 추켜들자, 사람들이 더 큰 환호성으로 보답했다.
이철민 소장이 내게 선물해 준 바로 그 마이크였다.
그래서인지 여타 다른 마이크보다 음질이 더 깔끔하게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HTB 멤버들 모두가 다 이철민 소장이 만들어 준 마이크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나와 마법을 이용해 우리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니, 받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호응도 훨씬 좋았다.
첫 번째 무대를 마치고 난 뒤, 나는 관객들과 최대한 가까이 거리를 좁히면서 물었다.
“여러분, 저희, 오랜만에 보죠?”
“네에-!”
콘서트장이 크게 울릴 정도로 엄청난 대답 소리가 돌아왔다.
몬스터들이 만약 우리 팬들의 함성 소리를 들었더라면, 놀라서 다시 숨으러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저희도 팬 여러분들 보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었다는 말에 팬들의 반응은 더욱 격해졌다.
레드 드래곤의 출현.
그리고 2차 레이드 시대의 시작.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무대에 서서 다시 노래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불안감은 이내 사라졌다.
몬스터 앞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피로 샤워를 하는 나보다.
이렇게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훨씬 좋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아지게 될 것이다.
“오늘은 다들 집에 갈 생각 하지 마세요. 알았죠?”
팬들의 함성 소리에 따라 우리들 역시 덩달아 신이 났다.
* * *
컴백과 동시에 HTB라는 그룹명이 붙은 곡들이 전부 다 음원 순위에 랭크되기 시작했다.
이전 노래들도 역주행이라는 이름의 돌풍을 일으키면서 순위권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그야말로 HTB의 시대가 오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우리들의 방송 출연 문의가 끊이질 않았다.
원래부터 인기가 있었던 그룹인데, 내가 레드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우리 HTB 그룹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1차 레이드 시대에 이어서 2차 레이드 시대까지, 두 번이나 인류에게 평화의 시대를 가져다준 내가 있는 그룹인데, 사람들이 관심이 안 생길 리가 없을 것이다.
연예계, 대중가요 쪽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HTB가 누구인지 정도는 다 알 정도가 되었다.
오늘도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승훈이 형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나를 잠시 불러세우며 말했다.
“아침부터 고생했다, 태오야. 숙소는 내일부터 들어갈 거지?”
“어, 그래야지.”
원래는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숙소 생활을 하려고 했었는데.
잡다한 이유들 때문에 부득이하게 나는 아직도 내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면 매니저들도 불편할 테고. 그래서 내일 당장 멤버들이 거주하고 있는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같은 숙소에 있어야 멤버들이랑 오늘 방송은 어땠는지,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지적해 주면서 자체 피드백을 나눌 수 있으니까.
내가 헌터로서는 정점을 찍은 인물이긴 하지만, 아직 방송만 놓고 본다면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사람이다.
나보다 먼저 가수 생활을 시작한 선배들이 도움이 될 만한 조언 같은 것들을 많이 해 주고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말을 듣고 알게 되는 것보다 나, 우리가 스스로가 깨닫는 경우가 훨씬 더 와닿곤 한다.
그게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서라도 숙소 생활은 꼭 필요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아직 다 못 끝낸 짐 꾸리기에 돌입했다.
짐이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 금방 끝낼 수 있었다.
따로 이삿짐센터를 부를 일도 없고 말이다.
‘이거 가지고 내일 승훈이 형 차에 싣기만 하면 되겠네.’
짐 정리는 이것으로 다 끝났고.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거실에 배치되어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리모컨을 들고서 TV를 틀었다.
화면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우리 HTB가 무대 위에 서서 노래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채널을 불문하고 모든 방송국에서 우리 HTB의 활동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HTB는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다.
헌터들이 모여서 결성한 그룹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속한 가수팀이라 그런지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기삿거리처럼 다뤄지고 있었다.
오늘 내가 아침에 뭘 마셨는지. 이런 것조차도 기사로 나올 정도였다.
아예 사생활이라는 게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스타의 숙명이니까.
충분히 감안하기로 했다.
텀블러에 담아 둔 커피를 한 모금 음미했다.
화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문구.
[.]
이제는 이 호칭이 나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