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46화 (246/250)

제63장. 최후의 전투 (2)

내가 레드 드래곤한테 선전포고를 직접 하긴 했지만, 내심 궁금한 게 있었다.

과연 녀석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접근하려고 할까.

이렇게 말이다.

드래곤 정도면, 협회의 방범 시스템을 뚫는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쉬울 것이다.

녀석은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다.

인류를 아득히 초월한 능력을 지닌 자가 설마 협회의 방범 시스템에 가로막혀서 나를 만나러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만약 녀석이 나와 거래할 의지만 있다면.

녀석은 언제, 어디서든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직 24시간도 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편.

내 말에 단발머리 여성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드래곤이라니요? 설마…… 저보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어, 그래.”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이템 하나를 쥐었다.

작은 단검 아이템을 들고서, 그것을 냅다 녀석에게 던졌다.

일반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응 못 할 속도다.

아마 데이브가 저 자리에 서 있어도 쉽게 반응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진심을 다해 여직원에게 아이템을 이용해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내가 던진 나이프 아이템은 여직원의 바로 코앞에 정지되었다.

마치 모든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그저 공중에 둥둥 떠 있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벽에 푹 박혀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데이브조차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공격을 가했는데.

여성은 보란 듯이 내 일격을 쉽게 막아 냈다.

이것만으로도 여자가 드래곤이라는 크나큰 증거가 된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하자, 여성은 다시 한번 웃었다.

아까의 미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나에게 처음 보여 줬던 미소는 당황스러움과 어색함이 묻어 나오는 미소였다면.

지금은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냉소였다.

여성은 나를 보면서 대놓고 물었다.

“내 정체를 어떻게 바로 알아차린 거지? 나름 꼭꼭 숨긴다고 노력했는데.”

“네가 실수한 게 하나 있다.”

“뭐지?”

레드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꼭 들어 보고 싶다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많이 궁금해하는 거 같으니까.

내가 친히 알려 주기로 했다.

“일단 우리 협회장님은 고작 방 정리 도와주라고 직원을 파견하지 않거든.”

여기서부터 너무 수상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사람이 한번 수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어색한 면모가 눈에 저절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저 계기가 중요할 뿐이다.

단발머리 여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네.”

갑자기 여성의 외형이 바뀌었다.

협회에서 수배령을 내린 여성의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딱히 없어 보였다.

아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미 내가 여성의 정체를 알아차렸고.

그리고 이곳에는 지금 나와 레드 드래곤, 단둘뿐이다.

“네가 나한테 보내는 도발 영상, 잘 봤어. 설마 이런 식으로 나한테 메시지를 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나도 그래.”

내가 약간 ‘관종끼’가 있다는 건 나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드래곤을 도발하는 일에 방송을 이용할 생각을 하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고는 나조차도 예상 못 했다.

그래도 뭐, 효과는 탁월했으니까.

딱히 후회는 없다.

“아주 화려하게 준비해 준 덕분에 너희 인간들이 나와 네 만남에 아주 많이 주목하고 있는 거 같던데.”

“밖에 있는 기자들이라도 봤나 보네.”

“그렇지, 뭐.”

여성은 태연하게 소파에 자리를 잡으면서 답했다.

다리를 꼰 뒤에 본격적인 이야기에 대해 언급했다.

“일대일로 붙어 보자고?”

“어. 서로 시간 낭비할 필요 없잖아. 너도 이런 걸로 오래 시간 끄는 거, 별로 안 좋아할 테고.”

우리 말고도 다른 차원 일들도 있으니까. 괜히 여기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

내 예상대로, 여성은 내 제안을 꽤나 흥미롭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네가 쓰러뜨렸던 그자와는 달라.”

레드 드래곤이 나에게 경고했다.

이미 그건 미국에서 직접 맞붙어 본 적이 있었기에 잘 안다.

레드 드래곤은 내가 1차 레이드 시대에 쓰러뜨렸던 드래곤보다 훨씬 강하다.

얼마나 강한지는 정확히 가늠이 안 되지만, 혼자서 상대하기 버거운 적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녀석과의 승부에서 이길 자신 말이다.

내 눈빛을 주시하던 여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의지가 꺾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는 거 같아서 좀 당황스럽긴 해.”

자리에서 일어난 여성은 나를 향해 물었다.

“미리 확인해 두지만, 네가 쓰러지면 인류는 우리에게 굴복하는 거다. 여기에 문제는 없겠지?”

“어, 오히려 내가 더 걱정이다.”

“뭐를?”

“내가 너를 쓰러뜨리면, 지금처럼 또 다른 녀석이 게이트를 열고 활개를 치러 올까 봐.”

1차, 그리고 2차 레이드 시대가 펼쳐졌는데.

3차 레이드 시대라고 없으란 법은 없다.

기왕이면 난 이것까지 확실하게 예방을 해 두고 싶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차원은 건드리지 마라.

이런 약속까지 확실하게 받아 내고 싶었다.

레드 드래곤은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감이 아주 넘치네?”

“애초에 자신감이 없었으면, 너한테 이런 도발도 안 했겠지.”

“하긴, 말이 되네.”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좋아, 그러면 나와 계약을 하지.”

“계약?”

“언령술로 상호 간의 계약을 맺는 거지. 네가 말했던 대로, 너와 내가 동등한 여건에서 대결을 펼치고. 어느 한쪽이 쓰러지게 되면 그쪽이 건 조건이 이행되도록 계약을 맺으면 무조건 이루어질 거야.”

“믿어도 되나?”

“믿기 싫으면 말든가.”

“…….”

살짝 짜증 나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금은 여성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들은 자긍심이 높은 존재다.

계약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적어도 이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만약에 내가 이기면 인류는 우리 종족에게 절대복종한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겠지?”

“어.”

“반대로 내가 만약 너한테 진다면, 나 이후로 다른 동족이 이곳을 침공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나와 여성의 몸 주변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방대한 양의 마나가 나와 여성을 빠르게 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내가 언급한 내용, 확실하게 인지했겠지?”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드래곤이 말한 것처럼 일종의 계약 마법을 거는 듯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푸른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끝났어.”

“끝났다고? 뭐가?”

“너와 나 사이의 계약 말이야.”

“벌써? 이렇게 빨리 끝난다고?”

“이 정도야 일도 아니니까. 대신 어느 한쪽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 당사자의 목숨을 내놓는다는 조건이 걸려 있으니까 도망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목숨이 담보인가.

뭐, 이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레드 드래곤과 싸우게 되면 어느 한쪽은 죽어야 싸움이 끝이 날 테니까.

아마 레드 드래곤도 이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계약을 맺을 때 자신의 목숨조차 쉽게 담보로 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계약도 끝났으니까.

“이제 일대일 벌일 날짜만 정하면 되나?”

날짜라는 말에 레드 드래곤이 갑자기 웃었다.

“굳이 날짜를 다시 정할 필요가 있어?”

그 순간.

레드 드래곤의 몸에서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이 녀석.

여기서 당장 싸울 생각이라고.

이 생각이 들자마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 * *

협회 건물 일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내렸다.

레드 드래곤이 인간의 모습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꾸면서 벌어진 여파였다.

협회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레드 드래곤이 튀어나오니, 사람들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승훈이 형과 데이브도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대체…….”

“어, 어떻게 된 일이냐, 태오야!”

당혹감을 감추며 각자 무기를 드는 헌터들.

레드 드래곤이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우리가 한 계약 내용에 대해 알고 있지? 마치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알다마다.’

여기서 갑자기 레드 드래곤과 싸우게 될 거라는 건 계산 못 했는데.

이미 일대일 대결이 성사된 이상, 계약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방송에서 했던 말, 다들 기억하지?”

내 목소리가 헌터들의 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자 드래곤을 공격하려고 했던 헌터들의 행동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내가 레드 드래곤에게 일대일을 신청한 건에 대해 모르는 헌터들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굳이 내용을 상세하게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아서 레드 드래곤을 향하는 공격을 자중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가장 큰 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공격을 멈춰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한편, 레드 드래곤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깝네. 만약 한 명이라도 나를 공격했더라면, 그대로 계약이 파기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노린 거냐?”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고. 여기서 내가 갑자기 등장하면 이런 방법으로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즉흥적으로 악독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니.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참 골치 아픈 녀석들밖에 없나 보다.

‘드래곤인지 여우인지 모르겠네.’

갑작스럽게 펼쳐진 일대일 전투.

레드 드래곤이 입을 쩍 벌리면서 브레스를 발사할 준비를 마쳤다.

마나를 끌어모아 급하게 배리어를 펼쳤다.

배리어에 녀석의 브레스가 맞닿은 순간, 묵직한 감각이 온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엄청난 중력이 내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여기서 싸우면 내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지키면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장소를 이동할까?’

그러나 레드 드래곤이 과연 쉽게 협조해 줄지 알 수 없다.

나는 녀석을 공격할 수 있지만, 다른 헌터들은 레드 드래곤을 공격해선 안 된다.

반면, 레드 드래곤은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공격해도 상관없다.

일대일이라고 말했을 뿐이지, 나 이외의 사람에게 공격하지 말라는 규칙까지 정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협회장님! 저 도마뱀 녀석이 사람들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무기 아이템 말고 방어 아이템으로 둘둘 말아서 저 대신 사람들 보호해 주세요!”

“알았다!”

협회장의 지시에 따라 헌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배리어에 튕겨 나간 브레스 일부가 지상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데이브를 비롯한 헌터들이 MML 버프를 이용해 나처럼 마나 배리어를 만들어 녀석의 공격을 튕겨 버렸다.

“전투에 개입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저 정도는 상관없지?”

내 말에 레드 드래곤의 눈썹이 꿈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