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45화 (245/250)

제63장. 최후의 전투 (1)

일대일로 대결해서 레드 드래곤이 나를 이기면, 지난번에 나에게 했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겠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와 레드 드래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이걸 아는 사람들은 협회 내에서도 극소수다.

내가 직접 이 사실을 알려 준 이들 말고는 웬만한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것이다.

심지어 지금의 내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있는 카메라맨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고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묻지 못했다.

지금 생중계로 전 세계에 내 모습이 나가고 있는데, 여기서 ‘그게 무슨 말인가요?’라고 말을 붙이는 건 그야말로 방송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송은 방송이니까.

물어보는 건, 이 방송이 끝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다들 일부러 조용히 있었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잘 생각해 봐라. 너도 최근에 깨달은 바가 많이 있을 테니까. 이건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제안이다. 어느 쪽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고 현명할지, 똑똑한 너라면 잘 알 거다.”

레드 드래곤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말.

“서로 가급적이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해결을 보자고. 계속 게이트를 열면서 차원 괴물들을 이곳에 쏟아 내는 건 너한테도 손해가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물론 어떤 손해가 있을지, 구체적으론 잘 모른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해 본 말이다.

어차피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래서 레드 드래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말들은 죄다 쏟아 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레드 드래곤이 과연 반응을 해 줄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른다.

잘 안 되면 그냥 지금까지 해 왔던 그대로 다른 헌터들과 같이 협조해서 게이트를 최대한 막아 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러다가 레드 드래곤이 지난번처럼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때를 노려서 단번에 녀석을 제압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안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변수를 툭 던져 보기로 한 거였다.

촬영감독이 나에게 수신호를 줬다.

슬슬 방송을 끊을 타이밍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다. 아, 어떻게 연락할지는 너한테 알아서 맡길게.”

나도 딱히 녀석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단은 없었기에 그냥 레드 드래곤보고 지난번처럼 불쑥 나를 찾아오든 뭘 하든, 편한대로 알아서 하라고 말을 건넸다.

촬영이 모두 끝났다.

이제 내가 방금 전에 촬영한 것들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반복 재생될 것이다.

물론 24시간 내내 반복되는 건 아니고.

각국의 방송국별로 시간을 정해서 계속 내가 한 말들이 나갈 것이다.

마치 프로그램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광고처럼.

촬영이 끝나자마자 승훈이 형이 나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태오야.”

“고생이랄 것도 없는데, 뭐.”

사실 이 말이 맞다.

이미 정해진 대본을 그냥 카메라 앞에 서서 읊기만 하면 되니까.

게다가 내가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래 봬도 카메라 앞에 서서 춤추고 노래하고, 심지어 최근까지는 영화에 출연해서 연기까지 펼칠 정도였다.

이쯤 되면 있던 카메라 울렁증조차 사라질 정도의 활동량이지 않을까 싶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내 예상대로 스태프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드래곤하고 뭔가 오고 간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약속이라니,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한테도 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이었다.

뭐, 이 자리에 스태프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해도 똑같은 반응이 나왔을 거라 예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에게 내가 들려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끝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레드 드래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게 우리들에게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다.

* * *

방송이 나간 지 하루도 안 돼서 사람들이 내가 레드 드래곤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에 대해 추측하는 글들이 수도 없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었다.

기자들도 나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오면서 어떻게든 해답을 듣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내가 방송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많이 기자들에게 시달렸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내 집에 가서 머물면, 지난번처럼 또 기자들이 집을 거의 포위하다시피 할 게 뻔하고.

그래서 나는 레드 드래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방송을 촬영하기 전에 미리 대책을 하나 세워 뒀다.

바로 협회 쪽에 내 개인 짐들을 모조리 옮겨 둔 거였다.

어차피 레드 드래곤이 계속 게이트를 열고 다니면, 언제 어느 때라도 바로 출동을 해야 하니까.

그러면 내 집에서 긴급 출동을 하는 것보다 협회에서 바로 출발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쪽이 이동하기도 쉽고.

그리고 출발 전에 어떤 몬스터들이 출현했는지, 어떤 형태의 게이트가 나타났는지, 이런 정보들을 협회에서 바로바로 수급한 다음에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다.

이런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협회 쪽에 당분간 거주하면서 지내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자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고.

여러모로 나에겐 도움이 되는 장소다.

협회 근처에는 기자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기자들은 그저 손가락만 빨며 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협회장 사무실을 찾은 나는 바깥에 가득한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엄청 많이 모였네요. 제가 저번에 드래곤 쓰러뜨렸을 때보다도 더 많이 몰린 거 같은데요?”

내 말에 협회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유명한 녀석이 더 유명해졌구만.”

“드래곤 말하시는 거죠?”

“아니. 너 말이야, 너.”

협회장이 나를 가리키면서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방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영상으로 기록에 남을 만큼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레드 드래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나가기 시작한 지 하루째.

협회장이 내게 물었다.

“아직 녀석한테서 소식은 없지?”

“네.”

만약에 내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면, 어떤 수단으로라도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해 올 것이다.

나는 협회에 머물면서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협회장이 잠을 깨기 위함인지 직접 탄 커피를 들이켜면서 말했다.

“녀석이 과연 미끼를 물려고 할까?”

“물게끔 만들어야죠.”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말도 안 되는 쇼를 펼치게 된 것이다.

설마 이런 걸로 TV 쇼를 꾸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지금은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레드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어떻게든 2차 레이드 시대를 종결지어 다시 평화의 시대를 되찾는다.

이것이 나와 헌터협회, 그리고 모든 헌터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협회장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감감무소식이면 어쩌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죠.”

지금은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고개를 끄덕인 협회장이 알겠다고 말하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 줬다.

“가서 쉬어라.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너한테 알려 줄 테니까. 조금이라도 눈 붙일 수 있을 때 쉬어 둬야지.”

“알겠습니다.”

협회장이 마련해 준 방을 찾아 이동했다.

협회가 비록 숙박 시설로 등록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생활하기 좋게끔 시설들은 전부 갖추고 있었다.

타국에서 넘어온 헌터들이 협회에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런 시설들을 완비해 둔 거였다.

주로 데이브가 이곳을 많이 이용했던 것으로 안다.

참고로 데이브도 나와 같이 협회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레이드 시대가 다시 시작되었으니까. 나나 데이브처럼 랭크가 독보적으로 높은 헌터들이 즉각즉각 출동해 줘야 최대한 빨리 게이트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브도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인해 협회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아이리스하고 나빈이도 오늘내일 중으로 협회로 온다고 했었지?’

두 사람뿐만 아니라 MML 버프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력 S랭크를 유지하고 있는 헌터들은 거의 다 협회로 모일 예정이다.

내 방으로 들어가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짐들과 아이템들.

시간 날 때 협회장의 말마따나 눈이라도 붙이면서 좀 쉬려고 했는데.

‘그 전에 정리부터 먼저 해야겠네.’

내가 비록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이 어질러져 있는 환경 속에서 쉬려고 하면 잘 안 쉬어지기 때문이었다.

머무는 환경이 깨끗해야 나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다.

환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템 정리는 필수다.

출동 명령 떨어지면 필요한 아이템을 들고 바로바로 현장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정리하려던 찰나.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예, 누구세요.”

내 방을 찾으러 올 사람이라고 해 봤자 승훈이 형이나 협회장, 아니면 이철민 소장 정도뿐이다.

데이브나 아이리스, 나빈이도 있긴 하지만, 데이브는 나에게 볼일이 있으면 그냥 전화나 톡 메시지 같은 걸로만 남기지 굳이 내 얼굴 보겠다고 걸음을 자처하는 성격은 아니다.

아이리스하고 나빈이는 아직 협회에 오지도 않았고.

그래서 누굴까 싶은 생각에 먼저 물었다.

밖에서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협회장님한테서 태오 씨 짐 정리 도와주고 오라고 부탁받았습니다.”

협회장님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이 녀석, 분명 짐 정리 안 하고 있겠지.

이렇게 생각해서 일부러 나를 도와줄 직원을 보낸 것 같다.

“괜찮습니다.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협회장님께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오라고 하셔서…….”

협회장과 나 사이에 끼어 버린 여직원의 입장이 많이 난처할 것이다.

작게 한숨을 삼킨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직접 문을 열어 줬다.

그러자 단아한 단발머리 스타일의 젊은 여직원이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여성이 내 방 안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폈다.

“많이 어질러져 있네요.”

“이제 막 도착해서요.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그냥 조금만 도와주시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가셔도 상관없습니다. 그쪽도 많이 바쁘실 테니까요.”

“아니요. 크게 바쁘진 않습니다. 당장 게이트가 열려서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은 레드 드래곤이 언제 또 저번처럼 태오 씨 집에 불쑥 나타날지 모르잖아요?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하니까요.”

“그렇긴 하죠.”

여성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여성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딱히 웃길 만한 부분은 없는데, 왜 내가 웃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설마 이런 식으로 나한테 접근해 올 줄은 몰랐다, 드래곤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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