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2차 레이드 시대 (7)
승훈이 형과 함께 다시 한번 헌터협회로 향했다.
회의가 끝난 지 단 하루 만에 내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말을 듣고서 허겁지겁 사무실로 출근을 서두른 협회장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어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들고 왔길래 그러는 거냐.”
협회장뿐만 아니라 연락을 받고 사무실로 집합한 이철민 소장도 아까부터 내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같이 불려 나온 데이브도 마찬가지였지만, 녀석은 반대로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데이브보다 먼저 선수를 쳤으니까.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명을 들려주기 전에.
먼저 레드 드래곤에 대해 확인하고 넘어갈 게 있었다.
“1차 레이드 시대에 나왔던 드래곤하고, 지금의 레드 드래곤하고 혹시 크게 다른 점이 뭔지 아십니까?”
내가 역으로 협회장에게 물었다.
협회장의 고민이 길어졌다.
협회장뿐만 아니라 이철민 소장, 그리고 데이브. 이렇게 셋은 레드 드래곤을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레드 드래곤과 둘이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녀석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인지, 또 어떠한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성향 같은 것을 얼추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도 내가 대충 레드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준 적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을 거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만 아는 것하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경험을 몸소 체험했던 것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생각에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녀석은 오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우리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행동하고 있죠. 그렇지 않다면, 저한테 먼저 싸우기도 전에 투항을 권유할 이유가 전혀 없을 테니까요.”
내가 조금만 능력을 발휘하면, 너희 인류 정도는 금세 이 차원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
이것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기에 나한테 먼저 와서 항복을 권유했던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알아서 기어라.
이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단칼에 거절해 버렸기 때문에 레드 드래곤의 이런 제안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를 통해서 나는 녀석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녀석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많이 생겼을 겁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인류가 훨씬 강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깨달았을 때, 이때가 타이밍입니다.”
“무슨 타이밍인데?”
“역으로 우리가 제안을 하는 거죠. 녀석에게.”
데이브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드래곤에게 먼저 백기를 들라고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냐.”
“마음 같아선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빤히 보이는 도발이라서 레드 드래곤이 안 넘어올 거야.”
미끼도 그렇다.
너무 노골적으로 미끼라는 티를 내면, 물고기들이 관심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살살 꾀어내는 작전이 필요하다.
“레드 드래곤에게 일기토를 제안할 겁니다.”
“뭐? 일기토라고?”
협회장이 기겁을 했다.
반면, 이철민 소장은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당황하는 협회장과 데이브를 대신해서 나에게 물었다.
“레드 드래곤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하실 생각입니까?”
“네. 아까도 말씀드렸죠? 우리 인류는 1차 레이드 시대보다 강해졌다고. 그리고 그걸 레드 드래곤도 확실하게 깨달았을 거라고.”
MML 버프가 많은 힘이 된 덕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헌터들의 모든 전투력 평균치를 올렸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이전에 내가 혼자서 드래곤과 싸웠던 것과는 다른 전투 양상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다.
작전을 잘 펼치기만 하면 다수의 헌터들과 함께 손쉽게 드래곤을 제압하는 것도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레드 드래곤도 자기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내 일대일 제안이 손해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어떤 걸로 일대일을 제안하실 겁니까?”
이철민 소장이 마침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지닌 맹점에 대해 정확히 지적했다.
일대일을 하고 싶다고 무대가 저절로 형성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나 그리고 상대방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무대인 만큼 레드 드래곤의 마음을 혹하게 만들 만한 제안이 필요하다.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쪽이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말하면 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전혀 없었다.
그러나 가볍게 말하는 나와 달리, 협회장의 표정은 상당히 무거웠다.
“설마, 인류 전체를 걸고서 하겠다고?”
“네.”
“미친…….”
협회장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인류 전체의 목숨을 담보로 미지의 생명체한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하겠나.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리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상식을 뛰어넘는 위기 대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는 쪽은 모든 것을 내놓는다. 심지어 목숨마저도. 이러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아니…… 그건 잘 알겠는데. 협회장으로서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군.”
협회장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사실은 승훈이 형과 함께 협회를 찾을 때부터 이미 예상하고 있던 거였다.
협회장의 소임은 헌터들을 잘 컨트롤하면서 인류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레드 드래곤을 무대 위로 올려보내기 위해서 인류 전체의 목숨을 걸겠다고 하면, 협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바로 승낙하겠나.
천만에.
당연히 반대의 목소리를 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의 지원군이 등장했다.
바로 이철민 소장이었다.
“저는 태오 씨 작전에 찬성합니다. 아니, 찬성 이전에 태오 씨가 생각한 아이디어 말고는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만한 방법이 마땅히 없다고 봅니다.”
이 소장의 냉철한 분석이 이어졌다.
“협회장님도 이미 1차 레이드 시대를 겪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소모전으로 가면 갈수록 결국 우리만 손해입니다. 드래곤 쪽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여기저기에 게이트만 열어 두면 되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마디로 녀석은 손가락만 쪽쪽 빨면서 차원 너머로 건너온 몬스터들이 알아서 우리 인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온라인 게임으로 치자면 소환 몹들이 알아서 자동 사냥을 하는 듯한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보니까 갑자기 열 받네.
누구는 개고생을 하면서 싸워 가고 있는데.
누구는 그냥 쉬면서 멀찍이 떨어진 채 구경만 하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이철민 소장이 말을 이어 갔다.
“물론 드래곤도 게이트를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껏 열고 달고 할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분명 뭔가가 소모되는 건 틀림이 없습니다만, 아직 밝혀진 것들로만 따졌을 때에는 드래곤에게 큰 지장을 줄 만한 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마법 중에서 몇몇은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한다.
그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마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드래곤에게 있어서 ‘게이트를 연다’라는 건 이런 희생 조건이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드래곤의 수명은 우리보다 훨씬 기니까. 그 여유로운 수명을 담보로 마음껏 게이트를 열고 있을지도 모르고.
뭐,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추측에 불과하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다음이다.
“소모전은 우리에게 있어서 많이 불리합니다. 어차피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할 바에야, 차라리 일찌감치 담판을 짓는 게 낫겠죠. 대신에 전제 조건이 하나 필요합니다.”
이철민 소장이 나를 가리켰다.
“태오 씨가 레드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테니까.
이철민 소장이 나에게 부담되는 말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확신을 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로 안 집니다.”
드래곤과의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던 그 일이 지금의 나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 줬다.
이철민 소장의 의견에 협회장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데이브,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혹시나 이철민 소장과 반대되는 뜻을 가지고 있는지 묻기 위해서 데이브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오랜 고민 끝에 데이브가 무거웠던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저도 이번만큼은 강태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유는 이철민 소장님과 같습니다.”
데이브가 내 편을 들어 준다니까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표는 압도적으로 나에게 쏠렸다.
그럼에도 협회장의 고민은 길어졌다.
고민하는 협회장을 향해 내가 마지막 말로 어필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협회장님.”
협회장의 허락이 떨어진다면, 바로 판을 까는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협회장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레드 드래곤에게 어떻게 이런 뜻을 전달하려고 그러지? 그 녀석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딱히 없잖아.”
“왜 없습니까? 아주 훌륭한 수단이 있는데.”
“있다고? 뭔데?”
나는 연예인 활동 덕분에 부쩍 친해진 TV를 가리켰다.
“방송으로 내보내면 됩니다.”
* * *
생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협회장은 ‘이건 미친 짓이야.’ 하고 혼잣말을 흘렸다.
처음에 내가 ‘방송으로 내보내면 됩니다.’라고 말을 할 때 당시의 협회장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아니,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목숨을 걸고 일대일로 한판 뜨자!’라고 도발하는 내용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송으로 송출하면, 과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미쳤냐고. 우리가 왜 이런 도발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냐고 엄청난 항의가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레드 드래곤만 알 수 있는 신호를 주기로 했다.
방송이 시작되자,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나는 미리 준비했던 멘트들을 머릿속으로 상기시켰다.
“아아. 들리냐, 드래곤 녀석아.”
TV 채널뿐만 아니라 인터넷 영상 플랫폼 등. 생방송 송출이 가능한 모든 매체에 지금의 내 모습이 송출되고 있을 것이다.
드래곤 녀석은 분명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 인류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매번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TV와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이다.
그래서 나는 이쪽으로 영상을 송출할 수 있게끔 최대한 신경 써서 준비를 마쳤다.
“저번에 나한테 네가 말한 게 있었지? 그 제안 말이야.”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하고 일대일로 싸워서 이긴다면, 네가 했던 그 제안을 들어주겠다.”
드래곤을 향한 선전포고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