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41화 (241/250)

제62장. 2차 레이드 시대 (4)

나와 데이브가 각각 두 마리씩을 맡기로 했기 때문에 아직 보스 몬스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사실 데이브가 나보다 한 마리 더 가져가긴 했었는데.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잡몹이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진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게 할당된 저 마지막 한 마리가 보스 몬스터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마릿수와 상관없이 내가 내기에서 이기는 거니까.

‘어디 한번 볼까.’

일단 속도를 높여서 녀석과 가까이 거리를 좁혔다.

외형으로 봤을 때에는 녀석이 잡몹인지, 아니면 저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핵심 키를 지닌 보스 몬스터인지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힘들다.

보스 몬스터는 보통 다른 일반 잡몹과는 뭔가 외형적인 차별점이 있게 마련이었다.

여태껏 내가 상대했던 대부분의 보스 몬스터는 그래 왔다.

그러나 미국에 오는 동안 이철민 소장이 우리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번 2차 레이드 시대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단정 지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보인다.

상식이라는 틀에 갇혀 있으면, 자기 스스로 천장을 만드는 꼴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전투에 임해야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녀석의 눈동자가 나에게 고정되었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몸을 뒤로 뺐다.

놈이 갑자기 몸을 비틀면서 커다란 날개를 내쪽으로 휘둘렀다.

여러 개의 깃털이 마치 하나하나의 작은 나이프들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었다.

만약에 내가 녀석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녀석의 날개짓에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의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아예 궤도를 틀어서 내 쪽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군.’

녀석의 공격 스타일을 보고 나서야 나는 우리가 마주친 몬스터가 어떤 식의 공격 스타일을 가졌는지 모든 분석을 완료했다.

‘근접전이 특기인가 보네.’

저 날개가 핵심이었다.

비행을 가능하게 만들어 줌과 동시에 주 무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움직임도 꽤나 날카롭다.

하지만 녀석은 내게 큰 실수를 저질렀다.

날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전투 스타일을 보여 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날개만 없애 버리면 그만이지!’

석궁 아이템을 허리에 꽂은 채 다른 무기 아이템을 꺼냈다.

벨트에 착용해 뒀던 작은 단검을 꺼내고서 마나를 주입했다.

검기가 맺히면서 기다란 검날을 만들어 냈다.

녀석의 움직임이 꽤나 날카롭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다른 헌터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지.

‘나한테는 안 통해!’

놈의 등 뒤를 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비행 타입의 몬스터와 속도전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속도만으로 놈을 제압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위치가 중요하다.

녀석의 사각지대를 이용하기로 했다.

내 모습이 잠시 사라지자, 몬스터는 나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틈을 타서 나는 놈의 등 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나이프를 거꾸로 추켜든 채 녀석의 날개를 잘라 냈다.

공중에 녀석의 파란 피가 흩뿌려졌다.

한쪽 날개를 잃은 몬스터의 무게중심이 크게 무너졌다.

몬스터의 배가 완전히 드러났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나이프 끝을 놈의 심장에 푹! 박아 넣었다.

확실한 사살.

이와 동시에 작은 규모의 게이트가 흔들리더니,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저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확신했다.

‘당첨이군.’

내기는 내가 승리했다.

* *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중간까지 비행기에 탑승한 채로 우리와 같이 미국으로 건너온 승훈이 형과 협회장이 빠르게 다가왔다.

“몬스터들은?”

“잘 처리했어. 게이트도 닫혔고.”

“고생했다. 그나저나 미리 행동하기 전에 나한테 말이라도 좀 해 주면 안 되냐. 갑자기 데이브가 비행기에 구멍을 내길래 나는 순간 ‘데이브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니까.”

승훈이 형의 불평불만에 데이브는 쓴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긴 했어도, 데이브가 즉각적으로 행동해 준 덕분에 우리는 비행기가 몬스터들에게 당하기 전에 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됐으니까.

큰 문제는 없다.

한편, 데이브 입장에서는 문제가 잘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속이 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기는 내가 이겼지?”

데이브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데이브는 이런 내 질문마저도 아니꼬운 모양인지 짧게 혀를 차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네가 이겼다.”

이미 결과가 명확하게 정해졌는데, 데이브의 성격상 아니라고 잡아떼진 않을 것이다.

내 예상대로 데이브는 스스로 패배를 시인했다.

한편, 나와 데이브가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던 승훈이 형이 무슨 일 있었냐고 내게 물었다.

“아까 데이브하고 같이 누가 먼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게이트를 닫느냐 내기했었거든.”

“그래서 네가 이긴 거야?”

“어.”

“그 와중에 내기할 생각을 다 했냐.”

승훈이 형은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내기에서 이기면, 진 사람이 뭐 하기로 했는데?”

“그건…….”

딱히 정한 게 없었다.

그냥 내기를 하자는 말만 했고, 이기면 뭘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건 논의한 적 없었다.

단지 내기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쏠린 탓이었다.

“뭐로 할래?”

데이브한테 뭐 해 줄 수 있는지 먼저 물었다.

원래 평소의 나였더라면 일방적으로 정했을 텐데.

그래도 나와 같은 그룹 소속의 멤버니까.

리더로서 멤버에 대한 배려 정도는 해 줄 의향이 있었다.

데이브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알아서 해라.”

“알아서? 뭐든 한다고?”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라면.”

1회 소원권 같은 개념이었다.

내가 데이브에게 뭘 해 줬으면 하는 순간이 오긴 할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했는데.

“그래, 뭐, 알았어.”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보험용으로 킵해 두기로 했다.

* * *

공항에서 벗어난 우리들은 미국 지부가 준비해 둔 차를 타고 빠르게 현장으로 이동했다.

미국에서 다수의 게이트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의 바로 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넘어왔는데.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미국 쪽의 대응이 부실해서가 아니었다.

미국 헌터들은 나름 준수하게 잘 대처했다.

평화의 시대로 인해서 경각심이 많이 사라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적재적소에 헌터들을 배치하면서 아직까지는 큰 피해 없이 잘 막아 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HT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헌터들에게 지급했던 MML 버프를 얻을 수 있는 노래 파일들을 잘 이용하면서 효과적으로 몬스터들의 침공에 대응했다.

전투력이 최소 2단계 상승한 헌터들 덕분에 인명, 재산 피해는 크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런 대치 상황이 계속해서 장기화되면 결국 미국 쪽 피해도 만만치 않게 될 것이다.

게이트가 열려 있는 한 몬스터들은 계속 쏟아질 테고.

이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헌터들의 숫자와 에너지는 무한이 아니라 유한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결국 우리의 편이 아니라 레드 드래곤이 열어 놓은 게이트의 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를 없애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존재하듯, 우리들에게도 비슷한 개념이 정의되어 있다.

다행히도 아직 미국은 이 시간대를 넘기지 않았다.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는 캘리포니아로 온 우리들은 가장 큰 게이트가 열린 지역부터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나와 데이브가 온 것만으로도 사태는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고전을 면치 못했던 헌터들은 우리들의 등장에 강한 자신감을 얻은 모양인지 없던 기운까지 끌어모아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다른 헌터들이 나와 데이브를 뒷받침해 준 덕분에 우리는 훨씬 수월하게 게이트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었다.

이런 일정이 3일 정도 반복되었을 때.

나와 데이브는 임시로 작전본부를 세운 협회장이 있는 미국 지부로 향했다.

협회장과 협회 관계자 몇몇이 나와 데이브를 맞이해 줬다.

“오늘도 아침부터 고생 많았네.”

“자네들 없었으면, 우리 미국은 지도상에서 아예 사라졌을지도 몰라.”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미국 지부 관계자의 생각이 아예 틀린 건 아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시간은 절대로 우리의 편이 아니다.

이 싸움이 지속되면 제아무리 미국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와 데이브의 활약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상황을 보고받기 위해 나와 데이브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지부장이 직접 우리 앞에 섰다.

“미국에 열린 12개의 게이트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게이트의 숫자는 총 2개뿐입니다.”

12개 중 2개.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였다.

사실 더 빨리, 더 많은 게이트를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크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3일은커녕 이틀 안에 12개의 게이트들 모두를 다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땅 크기가 작고, 교통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든 금방 이동하는 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면 괜찮은 결과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약간 아쉽게 느껴졌다.

데이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었더라면 이미 상황 정리 다 끝났을 텐데.”

요즘 데이브가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가 나와 비슷해졌다.

재미있는 변화였다.

데이브를 보면서 나는 작게 이런 말을 흘렸다.

“한국인 다 됐네.”

“……시끄럽다.”

데이브가 나를 향해 눈길을 찌릿 흘겼다.

옆에 앉아 있던 협회장이 우리 둘을 향해서 회의 중이니까 조용히 있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마치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지적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 와중에 지부장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직 남은 두 개의 게이트는 건재합니다. 하나는 애리조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텍사스인데…….”

둘 다 꽤나 어려운 등급의 게이트라고 한다.

이 중에 텍사스 쪽 게이트는 던전까지 있다고 말했다.

이러니까 클리어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는 거였다.

내가 데이브에게 먼저 물었다.

“너하고 내가 하나씩 나눠서 갈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 둘이 몰려가는 건 전력 낭비다.

차라리 하나씩 맨투맨식으로 집중 마크하는 게 더 효율적으로 보였다.

“그럼 텍사스 쪽은 내가 맡을게.”

내가 먼저 찜하자, 데이브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손사래를 쳤다.

우리 둘이 가볍게 결론을 내리자, 지부장은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른 마무리 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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