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2차 레이드 시대 (3)
지금까지 2차 레이드 시대가 시작되고 난 이후에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게이트가 열린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게 참…… 1차 레이드 시대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건 절대로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게이트라는 건 당연히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 같은 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세 번의 게이트가 열린 게 오히려 이상한 현상이다.
그러나 드래곤이 자의적으로 게이트를 열고 닫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 말은 더 이상 이상한 게 아니게 되어 버렸다.
드래곤이 어느 한 나라가 마음에 안 든다면, 그 나라에만 집중적으로 게이트를 열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건 다르게 말하면, 헌터들이 그 나라에 몰려들어서 방어하기 용이해진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전에 내가 쓰러뜨렸던 드래곤 녀석은 한곳이 아닌 전 세계 곳곳에 게이트를 열곤 했었다.
그래야 우리들의 전력을 분산시킬 수 있으니까.
수비 진영이 넓으면, 그만큼 병력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
병력이 분배되면, 두꺼운 수비벽이 얇아지게 될 테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걸 잘 알기에 드래곤 녀석은 굳이 어느 한 나라를 지정해서 그곳에 몬스터들을 집중 소환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것이 1차 레이드 시대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2차 레이드 시대를 알리는 게이트들은 1차 때와는 다른 흐름을 보였다.
한국에만 세 번 연속 게이트가 열렸으니까.
그래서 미국에 열린 게이트가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미국에 위치해 있는 헌터 지부가 보내 준 몬스터들 관련 영상을 면밀히 살폈다.
팔이 네 개 달렸고, 다리는 두 개 달린 2족 보행의 몬스터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습격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번 역시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협회장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철민 소장에게 물었다.
“이 소장은 이 몬스터, 본 적…… 없겠지?”
이철민 소장은 말해 무엇 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김새는 파워맨하고 비슷하게 생긴 거 같은데. 같은 종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하긴. 태오 말대로라면, 2차 레이드 시대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1차 때하고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괴물들이라고 했으니까.”
드래곤마다 게이트를 여는 차원이 각각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레드 드래곤이 우리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다른 차원의 게이트를 여는 건지. 여기까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아무튼 이번에 등장한 몬스터들 역시 우리가 모르는 놈들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게다가.
“한 놈 한 놈이 꽤나 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헌터들은 전부 B랭크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한 마리 제압하기도 버거워 보이네요.”
이철민 소장의 눈썰미는 굉장히 날카로웠다.
역시 두뇌파. 별다른 자료 조사가 없어도 눈으로 한 번 봤을 뿐인데 충분한 정보량을 뽑아냈다.
몬스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이나마 가늠해 두면 우리야 편하다.
그래야 몇 명의 헌터가 조를 이뤄서 몬스터를 제압하면 좋을지, 대충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뭣도 모르고 어설프게 덤볐다간 죽기 십상이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두 번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의 신중한 공격과 작전이 중요하다.
이철민 소장이 내게도 의견을 구했다.
“태오 씨는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마법 공격은 안 통하는 거 같네요. 면역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물리적인 공격이 효과적이라는 느낌도 안 들고요. 기본적으로 방어력 자체가 엄청나게 높은 녀석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상대하기 아주 싫어하는 부류의 녀석들이기도 하다.
나는 단단한 녀석이 싫다.
차라리 우격다짐을 나눌 수 있는 몬스터가 좋지, 일방적으로 두드려 패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단단하기까지 해서 쉽게 쓰러지지도 않는다.
그것만큼 지루한 전투도 없을 것이다.
이건 데이브도 같은 생각처럼 보였다.
내 말을 듣자마자 짧게 혀를 차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자마자 바로 MML 버프부터 켜야겠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다 동원하는 게 좋다.
2차 레이드 시대가 열린 만큼,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유를 부리면 안 된다.
그것은 곧 방심을 낳고, 방심은 곧 자기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용기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지역은 바로 캘리포니아였다.
조금이나마 체력을 비축해 두기 위해서 잠을 청하긴 했는데.
전장으로 향하는 길이라서 그런지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공항까지는 아직 10여 분 정도가 남은 상황.
이때,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승훈이 형이 창문 밖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거, 몬스터 아니야?”
승훈이 형의 말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커다란 날개를 가진, 익룡처럼 생긴 몬스터 두 마리가 우리가 탄 비행기 쪽으로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어어!”
“아니, 하필이면 이때……!”
비행기를 타고 있는 우린 무방비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나와 데이브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승훈이 형에게 물었다.
“형, 그거 가지고 있지?”
“그거? 뭔데!”
“방패 말이야. 마나 배리어 스킬 붙어 있는 거.”
“혹시 이거 말하는 거냐?”
얼마 전, 내가 경매장에 다녀왔을 때 심심풀이로 낙찰받았던 소형 방패가 하나 있었다.
마나를 불어 넣으면, 원하는 크기만큼 방패 형태의 마나 배리어를 칠 수 있는 옵션 스킬을 지니고 있다.
승훈이 형이 현역에서 은퇴한 헌터였기에 혹여나 몬스터들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일부러 내가 선물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내 누나의 남자 친구고. 잘 풀리면 매형이 될 사람인데, 다치면 큰일이지 않은가.
승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억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거 말하는 거지?”
배낭 안에서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소형 방패를 꺼내 들었다.
“나하고 데이브가 밖으로 나가면, 그 방패 스킬로 구멍 막아. 알았지?”
“뭐? 밖으로 나간다고? 여기서?”
“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이브가 창 아이템을 꺼내면서 우리와 같이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에게 미리 경고했다.
“천장에 출입문 하나 만들 테니까, 벨트 꽉 붙잡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협회장은 데이브가 한 말이 뭔지 바로 이해한 모양인지 양손으로 벨트를 꽉 붙잡았다.
데이브가 들고 있던 창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푸른 마나 덩어리가 창끝에 맺혔다.
그것을 비행기 천장 쪽으로 겨누더니.
퍼엉-!
사람 하나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만큼의 구멍을 뚫어 내 버렸다.
나하고 데이브가 밖으로 나가서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 건데.
그렇다고 비행기 출입문을 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과격한 방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1차 레이드 때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도 우리는 비행기에 이렇게 구멍을 낸 뒤에 그곳으로 빠져나가서 몬스터들을 피해 무사히 도주한 적이 있었다.
구멍이 뚫리자마자 마치 블랙홀처럼 기내에 있는 모든 것들이 천장 쪽으로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전에 나와 데이브가 먼저 몸을 날리면서 비행기에서 빠져나왔다.
“형!”
타이밍에 맞춰서 승훈이 형을 불렀다.
승훈이 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리 꺼내 둔 소형 방패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구멍 막기용으로 냅다 던졌다.
텅! 소리와 함께 투명한 마나 배리어가 방금 전 데이브가 낸 구멍을 순식간에 메꿔 버렸다.
여기까지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투명한 마나 배리어 뒤로 보이는 승훈이 형과 승객들을 향해 나는 엄지를 추켜올려 보였다.
나와 데이브의 몸은 어느새 공중에 붕 떠 있었다.
미리 부유 아이템을 챙겨 온 덕분에 우리들은 낙하하지 않았다.
한편, 갑자기 비행기에서 사람 둘이 불쑥 튀어나와서 그런지 몬스터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승훈이 형이 창문을 통해 확인한 두 마리의 비행 타입 몬스터 말고도 추가로 세 마리가 더 있었다.
다 합해서 총 다섯 마리.
하늘에는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작은 게이트 하나가 열려 있었다.
게이트를 통해서 나온 몬스터가 다섯.
그건 다시 말하자면…….
“저 다섯 마리 중 한 놈이 보스 몬스터인가 보군.”
데이브가 내 말을 가로채 버렸다.
여기서 살짝 심기가 불편하긴 했지만, 데이브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확률은 5분의 1.
“데이브, 내기할래?”
“무슨 내기?”
“우리들 중에서 누가 먼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나.”
“이 상황에서 잘도 내기 이야기가 나오는군.”
“내가 아니면 네가 먼저 하려고 했잖아.”
“…….”
데이브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내 일침에 한 방 먹은 모양인지, 데이브는 피식 웃으면서 부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겠다는 대답 대신에 데이브는 자신의 주 무기를 있는 힘껏 투척했다.
마치 유도미사일처럼 빠르게 날아가더니, 몬스터 한 놈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렸다.
방금 전에 만들어 냈던 비행기 천장의 구멍보다도 훨씬 더 큰 크기였다.
몬스터는 우리들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힘을 잃고 아래로 낙하했다.
데이브가 나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이제 네 마리니까 두 마리씩 맡아서 없애면 되겠지?”
자기 딴에는 나름 공평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한 행동 같은데.
뭐,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저놈들을 맡으마.”
“알아서 해.”
데이브에게 먼저 선택권을 줬다.
데이브가 지목하지 않은 나머지 몬스터 두 마리는 자연스럽게 내가 맡기로 했다.
데이브는 아까 몬스터를 쓰러뜨렸을 때처럼 자유자재로 창을 원격 조종하면서 몬스터들을 유린했다.
나는 석궁 아이템을 이용해서 놈들을 없앨 생각이었다.
데이브가 사용하고 있는 창만큼 위력이 엄청 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도 성능은 확실하다.
수십 발의 크로스보우 화살이 한 녀석의 뒤를 쫓았다.
푸욱! 푹! 푹!
여러 발의 화살들이 몬스터의 날개를 꿰뚫어 버렸다.
비행 타입에게 있어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 부위는 바로 날개다.
날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녀석들의 전투력의 80퍼센트 이상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헌터 훈련소에서 배웠던 공략 방법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실전에 녹일 수 있었다.
한 녀석은 비행 능력을 잃고 지상으로 빠르게 낙하했다.
저 정도면 죽었다고 보는 게 좋고.
다른 한 녀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데이브와 내가 쓰러뜨린 몬스터들을 보면, 생각보다 너무 허무하게 죽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보스 몬스터는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인데.’
과연 내 몫으로 남은 저 한 마리가 그 목표 대상일지 어떨지.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