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2차 레이드 시대 (2)
2차 레이드 시대가 열림으로 인해 헌터들 역시 많은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훈련 풍경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전투를 너무 등한시하는 삶을 살아왔다.
물론 간간이 몬스터들이 출몰한 덕분에 아예 전투를 등지고 살아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1차 레이드 시대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화롭게 살아온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조금이나마 현역 시절의 감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헌터들은 예전에 자신들이 훈련을 받았던 헌터 양성소를 찾았다.
고설중 교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 쇠구슬 하나 못 들면 어떻게 몬스터들하고 싸울 거야! 어? 지금 장난해?”
“죄, 죄송합니다!”
“이상하다……. 현역 시절에는 이런 쇠구슬 정도는 우습게 들었는데.”
“우스운 정도가 아니라 이걸로 막 저글링도 하면서 놀고 그랬잖아.”
“미쳤네, 미쳤어. 우리가 실력이 많이 안 좋아지긴 했나 보다.”
헌터들 본인들도 놀랐을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리가 각성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니까.
늘 항상 완벽한 신이 아니다.
현업을 떠나서 평화의 시대에 유유자적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차 레이드 시대에 길러 왔던 그 날카로운 감각들이 전부 말짱 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는 훈련을 꾸준히 해 온 덕분에 여전히 현역 시절에 보여 준 강함을 뽐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수 활동이 나의 강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보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친 짓을 했었다.
헌터 훈련을 그대로 보컬 능력 기르는 수단으로 녹여 냈던 것이다.
고설중 교관도 그때 당시의 나를 보면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게 은근히…… 아니, 대놓고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고.
헌터로서의 감각도 계속 유지하는 게 가능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행동들이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많은 도움이 될 줄이야.
고설중 교관의 쓴소리가 다시 한번 훈련소 내에 울려 퍼졌다.
그럴수록 훈련병들…… 아니지, 이미 양성 과정 다 수료하고 현역들로 활동했던 사람들이니까.
아무튼, 훈련을 받기 위해 다시 이곳을 찾은 헌터들은 고설중 교관의 불호령에 황급히 앞으로 집합했다.
막 입대한 이등병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고설중 교관과 내 앞에 섰다.
몇몇 헌터들은 내 모습을 보고서 그제야 내가 이곳을 찾아왔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특별히 헌터들에게 알은척을 하지는 않았다.
아는 얼굴이라고 해 봤자 나빈이밖에 없고.
그리고 지금은 한창 훈련 중이다.
이 와중에 아는 얼굴 있다고 ‘안녕?’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훈련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아낀 채 고설중 교관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슬쩍 몸을 뺐다.
고설중 교관의 묵직한 목소리가 훈련병들의 귀를 때렸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평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부터 2차 레이드 시대가 본격적으로 선언되었는데, 니들이 이렇게 약해 빠져 있으면 어떻게 시민들의 목숨을 지켜 줄 수 있겠나! 어?”
“죄송합니다!”
“절대로 방심하지 말고 안심하지 마라. 그리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마음속에 늘 품고 있어라. 지금 너희들에게 필요한 건 육체적인 능력을 기르는 게 아니라, 평화에 찌들어 물렁해진 그 정신머리를 다시 단단하고 날카롭게 단련하는 것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고설중 교관이 옳은 소리를 했다.
몬스터와의 싸움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개인의 전투력이 아니다.
바로 정신, 멘탈이다.
싸워야겠다는 의지조차 없는데, 어떻게 몬스터와 효율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을까?
그래서 고설중 교관은 내가 이곳 헌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정신력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 가르침의 방침은 2차 레이드 시대가 열린 와중에도 계속 고수하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고설중 교관이 마음에 든다.
우리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 그리고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곳을 찾은 헌터들도 그걸 알기에 다른 헌터 훈련소가 아닌, 이곳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헌터들이 동의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 생각은 그렇다.
헌터들의 훈련이 계속 이어졌다.
나빈이도 오랜만에 헌터들과 아우러져서 훈련을 받는 게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열심히 훈련 과정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고설중 교관이 내게 작은 말을 흘렸다.
“최악의 상황이다.”
“갑자기 왜요?”
나는 처음엔 고설중 교관이 헌터들의 훈련받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런 말을 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레이드 시대가 열렸잖냐. 내가 방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레이드 시대보다는 역시 평화의 시대가 계속 유지되어서 헌터들이 목숨 잃을 걱정 없이 평화에 찌들어 사는 게 가장 좋긴 하지. 나도 그걸 바라고 있고.”
훈련소가 다시 활기차지기를 바랐던 고설중 교관이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활성화되는 걸 바라진 않았다고 한다.
“훈련소나 아이템, 헌터협회. 이런 건 이제 구시대 유물로 자리를 잡았어야 해. 그런데 그것들의 중요성이 다시 높아졌으니까. 그 말은 몬스터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씁쓸할 수밖에 없지.”
고설중 교관이 쓴 입맛을 다셨다.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헌터라는 존재도 사실은 역사의 일부로 남았어야 했다.
그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중간에 레드 드래곤이라는 트롤이 난입한 탓에 이 평화 시나리오는 완전히 박살 나게 되었다.
“그 드래곤을 직접 봤다고 했지?”
“네, 교관님.”
고설중 교관에게도 레드 드래곤이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이에 대한 걸 모두 공유해 줬다.
고설중 교관이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한 말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만한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그에게도 일부러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해 줬다.
어차피 데이브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리고 고설중 교관처럼 안목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기도 했다.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고설중 교관이 자신의 생각을 슬쩍 내비쳤다.
“그 빨간 도마뱀이 너를 많이 두려워하고 있나 보네.”
“저를요?”
“어. 그렇지 않고선 너한테 ‘설득하러 왔다.’라는 말을 꺼낼 리가 없잖아. 나보다도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드래곤이라는 놈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지 잘 알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내가 직접 드래곤과 대판 싸웠던 적이 있으니까.
싸울 때마다 녀석의 오만함에 헛구역질이 몇 번이나 날 뻔했었다.
아니, 나보다 약한 주제에, 강한 척은 더럽게 잘해요.
물론 이번 레드 드래곤은 내가 기존에 상대했던 녀석과는 꽤나 스타일이 다르다.
신중하다고 해야 할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타입이다.
실제로 일부러 나하고 몇몇 헌터들을 방송국으로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려 하기도 했고.
1차 레이드 시대를 열었던 드래곤의 경우에는 레드 드래곤처럼 이런 함정 작전 같은 걸 펼친 적이 없었다.
그냥 전 세계적으로 마구 게이트를 열고. 물량 공세를 펼치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직접 모습을 드러낸 케이스였다.
덕분에 나는 녀석과 싸웠고, 그리고 승리했다.
그래서 이번 레드 드래곤과의 싸움이 꽤나 골치가 아프다.
책략가 타입의 녀석을 어떻게 끌어올 수 있을지, 이게 고민이다.
고설중 교관이 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말이 있잖아. 적을 상대하려면 나도 그 적의 타입에 맞춰 따라가는 게 좋다고.”
고설중 교관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놈이 똑똑한 척하는 녀석이라면, 우리도 주먹만 내세울 게 아니라 머리로 싸우는 게 좋지.”
“머리라…….”
틀린 말은 아니다.
힘이 모든 걸 해결하는 수단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을 해결해 주는 게 맞긴 하지만, 힘을 쓸 수 있는 기회와 장소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뒤에 꼭꼭 숨어 있는 레드 드래곤을 앞으로 억지로 끄집어내야 한다.
고민에 싸여 있던 찰나.
갑자기 헌터들에게 지급된 통신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귀에 통신기를 꽂자, 헌터협회 측에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해 왔다.
[미국 지역에 다수의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빨간 도마뱀 녀석.
기어코 시작한 모양인가 보다.
* * *
한국과 미국과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차라리 일본이나 중국이었더라면 그냥 비행기나 배 타고 바로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
나 그리고 데이브, 기타 랭크가 높은 헌터들과 함께 전용기에 오른 협회장이 좌석에 착석하면서 이런 말을 흘렸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나마 게이트가 열린 지역이 미국이라서 다행이다.”
협회장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나와 헌터들은 알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 헌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국가의 국방력이 달라진다.
미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2순위다.
참고로 1순위는 우리나라다.
숫자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SSS랭크라는 유일한 전투력을 지닌 내 존재 때문에 미국이 2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약하냐? 그건 절대로 아니다.
드래곤처럼 강한 몬스터 한 마리가 나타났을 경우에는 나 같은 헌터가 필수적이지만. 지금처럼 다수의 게이트가 발생해서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경우에는 미국처럼 다수의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들의 침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회장이 ‘미국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공식 석상에서 이런 말을 하면 절대로 안 되겠지만.
승훈이 형도 내 옆에 타면서 미리 챙겨 온 아이템들을 살폈다.
“형도 싸우려고?”
“어쩔 수 없지. 신규 각성자들이 아직 전투 현장에 나서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조금이라도 싸울 줄 아는 사람들이 나가는 게 좋잖아. 안 그래?”
맞는 말이다.
2차 레이드 시대가 시작됨으로 인해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각성자들도 탄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에 기용하기에는 아직 햇병아리들이다.
방금 전에 들렀던 훈련소에서 일하는 고설중 교관을 비롯해서 여러 조교, 교관 들이 신규 각성자들을 열심히 병사로 만들 때까지.
그동안 현역으로 활동했다가 은퇴했던 우리들이 최대한 힘을 내야 한다.
이륙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말에 협회장이 우리들에게 외쳤다.
“곧 출발한다니까 각오 단단히 해 둬!”
“예!”
전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