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장. 원흉 (1)
첫 번째 게이트가 열렸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긴가민가했었다.
드래곤도 사라지고.
이제 차원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존재도 없어졌으니까 완전히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게 아니냐고.
그래서 다시 첫 번째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 사람들은 많은 혼돈에 휩싸였다.
그래도 겨우 하나 게이트가 열렸을 뿐이니까. 혹시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연 게 아니라 레이드 시대의 후유증 같은 걸로 자연스럽게,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한 번 열린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첫 번째는 그렇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그건 필연이다.
두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는 사실이 공개되자마자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의심할 이유가 없어졌다.
평화의 시대가 깨지고.
레이드 시대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건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상하게 왜 한국에서만 게이트가 두 번 열렸나, 이거겠지.”
협회장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흘렸다.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게이트의 위치를 대한민국으로 설정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드래곤 녀석이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인 것일 수도 있어요.”
“왜?”
“그건 모르죠.”
일단 나는 드래곤의 소행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드래곤을 찾아서 없애면 그만이다.
문제는 녀석이 어디에 숨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 내가 드래곤의 형상을 본 것 말고는 드래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어떤지 밝혀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협회 측이 대대적으로 드래곤 수색 작전을 펼치기도 애매했다.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온통 헌터협회에 모여 있는데.
여기서 헌터협회가 드래곤을 찾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지금의 혼란은 배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작전을 펼치려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여야 한다.
협회장이 고민에 빠져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 하나를 들려줬다.
“의심 가는 존재는 있습니다.”
“누군데?”
협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최대한 많은 증거와 증언 들이 필요하다.
그게 이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힌트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비슷한 마음으로 협회장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공개했다.
“제이커, 알고 있죠?”
“내가 모른다고 하면 큰일이지.”
우리들에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줬던 특수 범죄자.
테러리스트 제이커와 같이 행동했던 사람이 있었다.
“예전에 제이커한테서 사주를 받고 반헌터연대 시위 총책임자로 활동했었던 남자 있잖아요.”
“김두정?”
“예. 그 김두정을 죽였던 장신의 여자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제이커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 여자는 잡히지 않고 있었다.
수배 중이긴 하지만, 정확한 생김새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신원이 파악되질 않는다.
분명 각성 능력자인 건 확실한데도 말이다.
“제가 보기엔 그 여자가 드래곤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간 모습으로 둔갑이라도 하고 다니는 건가?”
“예. 그래야 자신의 정체를 꼭꼭 숨길 수 있을 테니까요.”
드래곤은 마법의 종족이라 불리는 존재다.
그렇기에 게이트를 열고 닫고 하는 일 정도는 우습게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외형을 바꾸는 일 정도는 드래곤에게 있어서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것이다.
“골치 아프네.”
협회장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철민 소장도, 그리고 그 여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어쩌면 그 사람이 게이트를 열지 않았을까 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제이커와 협력했던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잡히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 여자니까.
“알았어. 그러면 그 여자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봐야겠구만. 아무튼 언제 또 게이트가 열릴지 모르니까 일단은 각 지부에 연락해서 헌터들 다시 소집하라고 해야겠어. 그리고 추가로 각성 능력자가 새롭게 생겼는지 어떤지도 알아보고.”
그것도 중요하다.
만약에 첫 레이드 시대처럼 오랜 기간 동안 게이트가 비정기적으로 생성된다면, 지금 있는 헌터들만으로는 계속해서 몬스터를 막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유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나라고 평생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면서 현역으로 활동할 수는 없으니까.
시간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내가 신도 아니고. 각성 능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를 대신할 헌터들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길러 내야 한다.
미래를 대비해서.
“태오, 너는 당분간 연예계 활동은…….”
“네,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자중할게요. 그래도 앨범 작업은 계속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MML 버프를 위해서라도요. 만약에 그때가 되면, 협회장님한테는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몬스터 토벌하랴, 앨범 작업하랴 이래저래 힘들겠지만, 네가 고생 좀 해 줘야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내가 고생할 거 알고 있다.
알면서도 각성했을 때 일부러 헌터로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였으니까 말이다.
* * *
갑작스러운 연예계 활동 중단으로 인해 나는 졸지에 할 일 없는 백수가 되어 버렸다.
HT 대표 업무까지 간부들한테 분담해서 잠시 동안 맡기기로 했으니까.
정말 백수가 된 기분이다.
물론 냉정하게 따지면 백수는 아니다.
다시 본업인 헌터로 돌아온 거니까. 오히려 이전만큼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이트가 언제 또 열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그리고 이전 레이드 시대와 비교해서 이번 사태는 그렇게까지 게이트가 자주 열리지 않았다.
‘그때는 전 세계에서 무차별적으로 막 게이트가 열리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고작해야 딱 두 번에 불과했다.
내가 죽인 드래곤에 비해서 그 여자 드래곤은 아직 게이트를 확실하게 열고 유지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든지.’
협회장이 말했던 게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통산 두 번 생성된 게이트가 왜 하필 한국에만 나타났을까.
한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처럼 땅덩어리가 엄청 넓은 나라도 아닌데 말이다.
확률로 따지면 굉장히 낮은 확률을 뚫고 두 번이나 연속으로 당첨된 셈이었다.
이것 때문에 나는 게이트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 여자가 일부러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 중이었다.
심증은 있다.
하지만 물증이 없어서 문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여자를 찾기 위해 헌터협회가 지금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나는 추가로 또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때 가서 활약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내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연예계 활동을 임시로 중단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HTB, 그리고 HTG 멤버들과 더불어서 아이리스까지.
모두가 다 잠시 연예계 활동을 접고 게이트 사건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헌터가 아닌, 일반 각성 능력자에 불과한 슬혜의 경우에는 전투에 참가하진 않고, 다시 HTG가 연예계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전투 능력이 아예 없는 슬혜까지 전장으로 몰아세울 순 없으니까.
그리고 두 번의 게이트가 열리긴 했지만, 아직까지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아직까지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물론 다른 헌터들이 봤을 때에는 다르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강하게 태클을 걸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른 법이니까.
내가 연예계 활동을 중단함에 따라 승훈이 형 역시 일반 매니저가 아니라 헌터들을 서포트해 주는 헌터 매니저로 직종을 바꾸기로 했다.
헌터 매니저라고 뭔가 복잡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지난번처럼 내가 필요한 아이템을 챙겨 주고, 때에 따라선 현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운전을 맡아 주면 된다.
그 밖에 다른 잡무들이 있으면 그런 걸 주로 해결하는 일을 업무로 삼고 있다.
오랜만에 헌터 매니저로 돌아온 승훈이 형은 지금의 상황이 영 어색한 모양인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집에서 챙겨 온 짐들을 내 집에 하나하나씩 쌓아 두기 시작했다.
“너하고 이렇게 같이 살게 된 것도 오랜만이네.”
“그러게.”
“어떠냐. 형 오니까 좋지?”
“좋을 리가 없잖아.”
형이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형이 내 집에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는 건, 레이드 시대 때문에 그런 거니까.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매니저의 경우에는 굳이 담당 연예인과 같은 집에 살 필요까진 없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여서 연예인들 숙소에 들러 픽업하고, 그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터 매니저는 다르다.
1분 1초가 급한 데다 연예계 스케줄처럼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갑자기 벌어지는 상황에 최대한 발 빠르게 대처해야 했기에 웬만하면 헌터와 같이 사는 게 좋다.
헌터 매니저가 우리 집에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어디 보자, 예전에 내가 썼던 방이 여기였지?”
“어, 아직 비어 있으니까, 형 원하는 대로 써.”
“왜 비워 뒀어?”
“어차피 집 공간은 남아도니까. 굳이 그쪽 방을 채워 넣어야지 하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
승훈이 형은 피식 웃으면서 ‘그렇구만’이라고 짧게 답했다.
“우리 누나하고 데이트하는 날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집 비워 줄 수도 있으니까.”
내 말에 승훈이 형의 얼굴이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무, 무슨 헛소리야!”
“사귀는 사이잖아.”
“아니, 아무리 사귄다고 해도 그렇지, 아직 진도도 안 나간 사람들한테 그런 소리를 하냐.”
“뭐야, 키스도 안 했어?”
“어.”
“손은? 잡았지?”
“…….”
이 형 봐라.
손 정도는 당연히 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첫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다.
“그런 건 남자가 먼저 밀어붙여야지, 형.”
“알고 있어, 인마. 나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고.”
이거 참.
내가 일일이 붙어 다니면서 두 사람의 연애 코치가 되어 줄 수도 없고.
난감하다.
“아무튼 형이 열심히 노력해 봐. 우리 누나, 의외로 남자다운 사람한테 약하니까.”
“진짜냐?”
“어.”
그래도 친동생이니까, 누나의 취향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대충 감이 잡히긴 한다.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승훈이 형의 짐 정리를 돕고 있을 무렵.
갑자기 이철민 소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태오 씨, 지금 집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당장 TV 틀어 보세요, 어서!
이철민 소장답지 않게 목소리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TV를 트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 여성이 싱긋 웃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안녕, 인류 여러분.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여성.
헌터협회가 미친 듯이 찾고 있는 그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