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장. 불길한 징조 (4)
맨몸일 줄 알았는데.
투명화 옵션이 붙어 있는 아이템까지 두르고 있을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만약에 갑옷이 아니었더라면, 데이브의 창이 놈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을 시원하게 뚫어 버렸을 것이다.
그게 무산이 되어서인지, 데이브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가 도끼를 휘두르면서 데이브를 공격했다.
이미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순간부터 추가 공격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데이브는 반격 대신 뒤로 물러서며 다시 거리를 두는 쪽을 택했다.
그사이, 몬스터가 든 대형 도끼의 틈이 벌어지면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와 데이브가 던전 탐험을 위해 사용했던 구체 아이템처럼 단순히 빛만 뽐내는 그런 용도가 아니었다.
빛은 점점 더 그 밝기를 키워 가더니.
이내 대형 도끼의 날에 스며들었다.
“파워 업이라도 했나 보네.”
아이템을 사용할 줄 안다는 건, 저 몬스터 역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다.
이러면 더 까다로워진다.
헌터의 강함의 원천이 마나 운용법인 만큼, 몬스터 역시 마나를 다룰 줄 알면 그만큼 더 강해질 수 있다.
데이브는 침을 ‘퉤!’ 하고 뱉으면서 두 손으로 창을 붙잡았다.
“그래 봤자 괴물 녀석일 뿐이지.”
이번에는 데이브가 먼저 공격에 나섰다.
데이브의 기다란 창끝이 놈의 머리를 노렸다.
데이브도 알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의 약점이 머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놈들은 재생 능력이 뒤떨어진다.
머리를 베어 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한다.
나하고 같이 던전 내부로 들어오면서 데이브도 이러한 정보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입력해 뒀을 것이다.
놈들의 우두머리니까, 약점도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깔끔하게 녀석만을 제거하기 위해 데이브가 창을 날려 봤지만.
깡!
이번에도 녀석은 도끼를 이용해서 데이브의 창을 막아 냈다.
“성가신 녀석……!”
데이브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이래저래 공격을 가해 봤지만, 녀석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한 번도 먹이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데이브는 초조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 몬스터는 오히려 데이브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이 데이브에게는 확실한 도발 요소로 작용했다.
“괴물 녀석 주제에 감히!”
도발에 넘어간 데이브가 창을 앞으로 크게 내질렀다.
창끝에서 ‘화르륵!’ 하며 불길이 튀어나왔다.
“물리 공격이 안 먹힌다면, 이건 어떠냐!”
저렇게 즉석으로 화염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는 헌터는 그리 많지 않은데.
데이브는 이 어려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성격만 좀 이상할 뿐이지, 실력 하나는 확실한 놈이다.
그러나 몬스터가 두르고 있는 갑옷은 물리 공격뿐만 아니라 마법 공격에 대한 내성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데이브의 불길에도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투명화가 걸려 있다 보니, 갑옷으로 감싸지 않은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 틈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까와 마찬가지로 데이브의 창이 놈의 머리를 공략했다.
그러나 투웅!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약간 휘청였을 뿐.
머리가 날아가는 일은 없었다.
데이브가 짧게 혀를 차면서 말했다.
“갑옷에 이어서, 이번에는 투구냐.”
아주 중무장을 제대로 했다.
그럼에도 몬스터의 움직임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데이브의 일격을 막아 낼 정도면, 보통 갑옷은 아닐 텐데.
얼추 두께만 봐도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몬스터는 아무것도 안 걸치고 있는 상태처럼 빠른 몸놀림을 선보이면서 점점 데이브를 몰아붙여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데이브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내가 한 방 한 방의 강력한 공격으로 몬스터를 때려눕히는 스타일이라면, 데이브는 기교가 섞인 전투 기술을 이용해서 몬스터들을 유린하는 전투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압도적인 힘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 보니 저렇게 완벽하게 자기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는 몬스터가 등장하면, 제아무리 데이브라 할지라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데이브가 SS랭크에 계속 머물고 있는 거였다.
너무나도 명확한 약점이 있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나는 데이브 같은 눈에 띄는 약점은 없었다.
그래서 유일무이한 SSS랭크 헌터가 된 거였다.
“교대해 줄까?”
내 말에 데이브는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아니, 이놈은 내가 찜해 뒀으니까 나설 생각 하지 마라.”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데이브의 말을 아예 무시해 버리고 전투에 참가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같은 HTB 그룹이지 않은가.
멤버 간의 불화는 기자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괜히 연예계를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조용히 데이브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녀석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이번 전투의 승리 방정식이 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게 쉽지 않다는 거겠지.’
나였더라면 갑옷이든 투구든 뭐든 그냥 박살 내 버렸을 텐데.
데이브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니까.
본인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다시 한번 녀석과 거리를 벌린 데이브가 갑자기 무선 이어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굉장히 눈에 익은 그런 이어폰이었다.
MML 버프를 받기 위해 헌터협회에서 특별히 제작해서 헌터들에게 지급했던 바로 그 이어폰이다.
이어폰을 몇 번 터치하자, 데이브의 전투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MML 버프의 힘을 빌리는 것도 데이브한테 있어서 오랜만일 것이다.
요즘 MML 버프를 사용할 만큼 빡센 전투는 없었으니까.
“후우.”
데이브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180도 달라진 데이브의 모습에 몬스터는 아주 잠깐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몬스터는 데이브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매섭게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지면을 울리는 듯한 묵직한 발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 어느 순간 데이브 앞에 와 있는 몬스터.
‘빠르네.’
묵직한 일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행동도 빠른 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몬스터를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보다 ‘어렵겠는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특히나 이런 경우는 정말 극소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데이브가 이 녀석을 어떻게 공략할지가 궁금해졌다.
바로 앞에 등장한 몬스터가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순간 데이브의 눈빛이 변했다.
데이브는 옆으로 한 걸음 정도 이동하며 몸을 뺐다.
데이브가 서 있던 자리에 정확히 몬스터의 도끼가 꽂혔다.
이때.
데이브가 짧게 한마디를 외쳤다.
“가속.”
데이브의 말에 따라 창의 형태가 변했다.
창끝에 여러 개의 가시 같은 것이 돋아났다.
여기에 더해서 데이브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여기저기서 창이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를 노렸다.
투명 갑옷을 치자 깡! 깡! 깡! 하고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했다.
귀에 굉장히 거슬릴 정도로 이 소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럼에도 데이브와 몬스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전투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는 데이브의 이런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방어는 완벽하니까.
그러나 세상에 완벽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푸욱!
몬스터의 왼쪽 옆구리에서 푸른 피가 흘러내렸다.
색깔로 보건대, 당연히 데이브가 흘린 피는 아니었다.
가속화를 멈춘 데이브의 입꼬리가 위로 향했다.
“거기였군.”
투명화가 걸려 있는 갑옷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서 데이브는 아주 무식한 방법을 동원했다.
창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다 찔러 보기로 한 거였다.
찌르다 보면, 갑옷에 보호받지 못하는 신체 부위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데이브의 이 아이디어는 놀랍게도 성공적이었다.
실패 확률이 더 커 보였지만, 그 작은 확률을 그냥 오기로 뚫어 버린 것이다.
‘미친 녀석.’
욕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 딴에는 칭찬으로 한 말이었다.
저 정도 독기는 있어야 내 뒤를 이어 2인자의 자리를 굳힐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데이브는 갑옷의 빈틈을 확인하자마자 집요하게 약점을 공략했다.
창을 몸 깊숙이 꽂아 넣은 데이브가 마나를 불어 넣었다.
내부에서 불길이 펑! 하고 폭발했다.
몬스터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녀석의 몸이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다 좋은데.
“마무리가 좀…… 거시기 한데?”
사방에 몬스터의 살점이 가득했다.
냄새도 별로 좋지 않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데이브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본인과 호각을 다투던 몬스터의 피를 전부 뒤집어쓴 상태였다.
데이브는 창을 회수하면서 짧게 답했다.
“이겼으면 된 거지.”
“하긴.”
저 말이 맞다.
* * *
나와 데이브의 활약 덕분에 별다른 인명, 재산 피해 없이 게이트는 무사히 닫혔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협회장이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고생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이번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같이 물었다.
“어떤 녀석이었나?”
“아주 굉장한 놈이었습니다. 그렇지?”
내가 데이브에게 묻자, 데이브는 불쾌함이 가득 느껴지는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였다.
최종 승자는 데이브가 되었지만,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을 것이다.
압도적으로 몬스터를 때려잡아도 부족한 판국에, 이름도 모르는 몬스터와 대등하게 겨루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데이브의 자존심이 잔뜩 상했을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긴 하지만, 전투의 여운은 아직 지속되고 있었다.
사태가 해결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관련 자료들을 업데이트하고 정리할 때 털어놓기로 했다.
협회장에 이어서 현장을 찾은 이철민 소장이 완전히 엉망이 된 익산의 시내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거, 전부 수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군요.”
그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근처에 나뒹구는 몬스터 사체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던 이철민 소장이 어디서 꺼냈는지 핀셋과 돋보기를 들고서 사체를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협회장이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연구는 나중에 서울로 올라가서 진행하는 게 어떤가?”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
제아무리 협회장이라 할지라도 이철민 소장의 연구 열정은 쉽게 막지 못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했으니까. 협회장도 이때쯤 되면 슬슬 알 것이다.
바빠 보이는 이철민 소장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방금 전 게이트가 열려 있었던 익산 상공을 바라봤다.
“이번이 두 번째인가?”
협회장이 쓴 미소를 머금으면서 혼잣말을 흘렸다.
두 번째 게이트.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는 게 말이다.
또다시 찾아온 레이드 시대.
여러 사람의 피로 일궈 낸 평화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깨지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