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장. 불길한 징조 (3)
게이트를 닫으려면, 몬스터들 중에서 가장 강한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려야 한다.
엘리트 몬스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던전의 경우에는 엘리트 몬스터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라는 존재를 쓰러뜨려야 무사히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게 된다.
던전을 클리어하면,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게이트는 알아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즉, 좋든 싫든, 던전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익산에 형성된 던전은 전형적인 동굴형을 취하고 있었다.
안에는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어둠만 가득한 세계가 펼쳐졌다.
데이브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의 던전이군.”
“어두운 거 싫어하냐?”
“싫다기보다는 시야가 차단되면 그만큼 괴물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까다로워지잖아.”
데이브는 순전히 전투를 펼치는 데에 있어서 단점이 생기니까 어두운 환경을 싫어하는 거였다.
나는 또, 어울리지 않게 귀신 같은 거 무서워하는 타입인 줄 알았네.
생각해 보니까 데이브는 이런 거에 대한 내성이 매우 강한 편이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데이브의 말대로, 어두운 시야는 전투를 펼치는 데에 큰 불편함을 초래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이 있다.
비비탄 크기의 작은 구체들이 담긴 봉지를 꺼냈다.
마나를 불어 넣자, 구체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들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내 발광을 하면서 우리 근처를 밝은 빛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이거 챙겨 오길 잘했네.”
던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1순위로 챙겨 와야 하는 게 바로 이 조명 아이템이다.
데이브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사용해서 빛을 더했다.
마치 대낮처럼,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이번 익산에서 벌어진 게이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임시로 차려진 작전 본부 쪽에 우리들의 위치를 알렸다.
“아아. 강태오, 데이브, 무사히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는 통보. 수신 양호한지.”
-수신 양호.
우리들의 위치 정도는 작전 본부에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정리해 줄 수 있는 중심 역할이 있어야 우리도 혼선 없이 몬스터들을 효율적으로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던전 내부로 진입했으니까.
밖에 돌아다니고 있는 잡몹들은 다른 헌터들이 맡아서 없애면 될 것이다.
나하고 데이브는 던전 어딘가에 있을 보스 몬스터만 찾아서 제거하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던전 안에 보스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겠지만 말이다.
사방에서 잡몹들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빛까지 강하게 밝히면서 다니고 있으니까, 나하고 데이브가 던전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몬스터들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놈들은 우리를 없애기 위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었다.
아까처럼 나는 검을 거꾸로 세우고 지면에 박아 넣었다.
푸슉! 팍!
딱히 녀석들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머리가 잘려 나가거나 터졌다.
데이브는 내가 아이템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짧게 혀를 찼다.
“언제 또 그런 사기 아이템을…….”
“사기 아니야. 이거 옵션 스킬 한 번 쓰려면, 엄청나게 많은 마나가 소모된다고.”
나 정도니까 여러 번 쓸 수 있는 거지, 만약 일반 헌터가 나 정도 횟수만큼 이 아이템을 쓰려고 했다면 이미 혼절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마나가 감당이 안 될 만큼 많이 잡아먹는 기술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러 잡몹들을 상대할 때에는 이것보다 좋은 아이템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챙겨 왔다.
데이브는 짧게 혀를 차면서 자신이 주로 애용하는 화염창을 꺼내 들었다.
아주 간혹, 내 공격에서 벗어나 빈틈을 노리고 공격을 가해 오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이런 몇몇 놈들은 데이브가 직접 나서서 처리했다.
몬스터들 입장에선 산 하나를 겨우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의 산과 마주한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렇게 나와 데이브는 나름 호흡을 맞춰 가면서 천천히 전진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던전 내부 지도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선발대인 만큼, 우리가 직접 두 발로 뛰면서 던전 내부를 수색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보스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게 몇 분이 걸릴지, 몇 시간이 걸릴지, 아니면 며칠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더라면 먹을 거라도 챙겨 올 걸 그랬네.”
“지금이라도 가서 사 가지고 오든가.”
데이브가 내게 이제는 희미하게 보이는 던전 입구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귀찮아. 그냥 빨리 던전 클리어해 버리고 나가자.”
데이브도 귀찮다는 내 말에 동의하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 곳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이런 정보는 없지만, 그동안 우리가 클리어해 온 던전들의 데이터는 머릿속에 남아 있다.
대충 어떤 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을지 알 수 있었다.
대체로 던전 가장 깊숙한 곳에 보스 몬스터가 살고 있다.
계속해서 안쪽을 향해 들어가다 보면, 언젠가 보스 몬스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막다른 길이라고?”
데이브의 눈썹이 꿈틀했다.
길은 막혀 있는데.
지나오면서 보스 몬스터라 불릴 만한 존재는 만난 적이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는 던전이라고?
여태껏 들어 본 적 없다.
분명 어딘가에 녀석이 숨어 있을 것이다.
손으로 벽을 짚었다.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데이브가 내 행동에 관심을 보였다.
“뭔데?”
“안에 빈 공간 같은 게 있는데.”
“뭐라고?”
“잠깐만 기다려 봐.”
이런 게 있으면 그냥 못 넘어가지.
검을 잠시 거둬들인 나는 왼쪽 주먹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신체 일부를 강화시킨 나는 전방을 향해 크게 주먹을 내질렀다.
우르르!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벽면이 예예 산산조각 났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바로.
-크르르…….
“찾았다, 보스 몬스터.”
마침내 타깃을 발견했다.
* * *
그렇지.
역시 내 예상대로, 보스 몬스터는 존재했다.
단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여기에 꼭꼭 숨어 있었구만.”
데이브가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이면서 몸을 풀었다.
“네가 상대하려고?”
데이브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몬스터들 너한테 전부 양보했으니까, 이번에는 나한테 양보해라.”
“뭐, 상관없지.”
데이브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근데 저 몬스터 녀석, 뭔가 좀 이상했다.
내가 여태껏 쓰러뜨려 왔던 잡몹에 비해서 외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일반 잡몹에 비하면 덩치가 크다는 점일까.
키는 한 2미터 정도 되는 거 같다.
여기에 더해서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바로 아이템을 사용한다는 거였다.
의자에 앉아 있던 녀석은 근처에 꽂혀 있던 커다란 도끼 하나를 들었다.
도끼뿐만 아니라 소형 방패도 같이 거머쥐었다.
아이템을 사용하는 몬스터라.
물론 아예 이런 몬스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간혹 있긴 했는데.
마치 우리 인간처럼, 본격적으로 아이템을 장비처럼 사용하는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저 녀석도 인간급 지능을 가진 몬스터인가.’
혹시 몰라서 데이브에게 주의를 줬다.
“방심하지 마라, 데이브. 여차하면 MML 버프 사용하고.”
“너한테 걱정 따위를 받고 싶어서 저 녀석을 상대하겠다고 말한 거 아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라.”
“그래, 인마. 알았어.”
하여간 저놈의 자존심은.
그래도 차라리 잘됐다.
저 녀석이 어떤 몬스터인지, 멀찍이 떨어져서 분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말이다.
대형 도끼와 소형 방패를 각각 한 손으로 거머쥔 보스 몬스터가 먼저 데이브와의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데이브는 설마 몬스터가 먼저 공격을 해 올 줄은 몰랐는지, 처음에는 살짝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데이브가 누구인가.
헌터 랭킹 2위에 빛나는 인물이다.
그래 봤자 내 밑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헌터들에 비하면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닌 헌터라고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몬스터가 공격해 온다 할지라도 전혀 대처 못 할 만큼 실력이 없진 않다.
내 예상대로, 데이브는 무난히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문제는 이다음부터였다.
녀석이 휘두른 대형 도끼가 데이브의 창에 가로막히자, 녀석은 갑자기 소형 방패를 이용해서 데이브를 밀쳐 냈다.
순식간에 뒤로 나가떨어지는 데이브.
공중에서 바로 자세를 잡은 데이브가 창을 고쳐 잡으면서 놈을 노려봤다.
“단순히 힘만 앞세워서 전투를 벌이는 스타일은 아닌데.”
나름의 전투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 때문에 놀란 거였다.
다른 몬스터들은 데이브가 방금 말한 것처럼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맹신해서 적만 보이면 바로 들이대던데.
녀석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데이브가 어떤 헌터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의도로 간단한 공격만을 날렸다.
충분히 강하게 일격을 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브가 어떤 스타일의 격투술을 구사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움직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머리가 뛰어난 몬스터는 듣도 보도 못 했다.
그래서일까.
“데이브! 방심하지 마라. 저 녀석, 왠지 느낌이 안 좋다.”
데이브에게 방심하지 말고 싸울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데이브는 나보다 더 신중한 성격이다.
상대가 아무리 약하다 할지라도 경각심을 가지고 매번 최선을 다해 몬스터들을 토벌한다.
나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래서 일부러 이런 조언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데이브는 짜증을 냈다.
“나도 다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라.”
내가 계속 떠들면 전투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데이브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몬스터와 데이브, 둘의 전투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몬스터는 체력 소모도 훨씬 덜한 모양인지, 데이브와 다르게 계속해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차례 호흡을 몰아쉰 데이브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생긴 건 대충 생겼으면서, 실력은 전혀 그렇지 않군.”
보스 몬스터는 마치 데이브의 말을 이해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웃던 얼굴과 달리, 녀석의 몸은 굉장히 빨랐다.
순식간에 데이브의 뒤에 나타난 몬스터.
데이브는 무릎을 굽히면서 자세를 낮춤으로써 놈의 공격을 완전히 흘려 버렸다.
데이브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면에서 서로 아이템을 들고 치고받고 싸워 봤자 기나긴 경합만 계속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데이브는 녀석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대신에 일부러 놈에게 일격을 가할 기회를 줬다.
공격이 들어왔을 때.
데이브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피 동작을 취하면서 녀석의 급소를 노리려고 했다.
그러나.
깡! 소리가 나면서 오히려 데이브의 검이 튕겨 나왔다.
데이브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 녀석…… 투명 갑옷까지 걸치고 있네.”
그래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건가.
몬스터 녀석이 참 가지가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