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장. 불길한 징조 (2)
두 번째 게이트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나와 승훈이 형의 표정이 달라졌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승훈이 형이 인상을 팍 구겼다.
“일단은 밖에 있는 기자들부터 대피하라고 할 테니까, 태오 너는 바로 현장으로 출동할 준비부터 해라. 이동은 차 말고 아이템으로 할 거지?”
“그러고 싶은데, 거리가 좀 있어서 중간까지는 차 끌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서울이라면 차라리 승훈이 형이 말한 것처럼 아이템을 사용해서 이동하는 게 훨씬 편하겠지만,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의 경우는 그렇다.
이번에 게이트가 열렸다고 하는 지역은 전라북도 익산이었다.
그곳까지 내가 아이템의 힘을 사용해서 뛰어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순간 이동 아이템이라도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러나 우리가 발견한 아이템들 중에서 아직까지 순간 이동이 가능한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내 튼튼한 두 다리로 이동하든, 아니면 방금 말한 것처럼 중간까지 차를 타고 가든 둘 중에 하나를 통해서 이동해야만 했다.
승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았어. 그러면 차는 내 거 타고 가자. 밖에다 세워 뒀으니까 바로 타고 갈 수 있을 거야.”
“알았어.”
“하여간 진짜…… 첫 번째 게이트 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번째 게이트가 열리고 X랄이래.”
승훈이 형의 입에서 걸쭉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헌터이긴 하지만, 소방대원이나 구급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출동할 일들이 웬만하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게이트나 몬스터가 평화의 시대처럼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면 강제 실직이라는 인식이 들어서 싫어하는 헌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단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차라리 실직 상태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생명보다 값어치 있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
승훈이 형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침 기자들도 우리들처럼 두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식을 막 전달받은 상황이었다.
“재난 문자 보셨죠?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죽기 싫다면요!”
승훈이 형의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인지, 기자들은 나를 취재할 생각을 벌써부터 단념하고 도망치느라 바빴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슨 일이든 결국 자기 목숨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기자들도 당연히 죽긴 싫을 것이다.
게이트가 열린 위치가 익산이라 할지라도, 서울에 게이트가 또 추가로 열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어떤 이유에서 게이트가 열리는지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익산에 게이트가 열렸으니까 서울은 안전하겠지?’ 같은 생각은 기자들도 안 할 것이다.
연예계 기자들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눈치가 빠른 편이다.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내 예상대로, 승훈이 형이 경고하자마자 기자들로 북적이던 내 집 앞이 순식간에 한산해졌다.
밖으로 나온 나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흘렸다.
“진작 이렇게 할걸.”
게이트가 열린 게 꼭 나쁜 영향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 * *
승훈이 형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이, 나는 협회장과 빠르게 통화를 나누면서 이번에 열린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지난번처럼 서울에 열렸던 단순한 게이트가 아니라 던전 타입이라고 한다.
-그래도 규모가 큰 던전은 아니니까, 네가 가면 금방 클리어할 수 있을 거다.
“글쎄요. 그건 가 봐야 알겠죠.”
나름 오랫동안 헌터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절대로 방심하지 말자고.
던전 규모가 작다고 해도, 게이트가 소형에 속한다고 해도.
방심은 무조건 금물이다.
몬스터들보다 방심이 더 큰 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다른 헌터들은요?”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헌터들은 이미 현장으로 출동했다. 몬스터 정보들도 들어오고 있는데, 지난번처럼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타입인 거 같더구나.
“새로운 몬스터라는 뜻이군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강한 놈들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말고.
C랭크 헌터 한 명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잡몹 수준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던전 안에 아직 어떤 강력한 몬스터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는 방심은 하지 말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보스 몬스터는 아직 안 나왔죠?”
-어. 던전 내부로 진입해서 끌어오든가 해야겠지.
무슨 ‘이불 밖은 위험해!’도 아니고. 던전 내부에 꽁꽁 숨어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까 참 답답하다.
-지원 병력 최대한 보낼 테니까, 너도 도착하는 즉시 바로 토벌 작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협회장이 보내 준 몬스터들과 던전 정보를 빠르게 살폈다.
외형이 고블린과 상당히 흡사한 그런 몬스터들이었다.
키는 작고, 코는 길고.
“더럽게 못생겼네.”
내 말에 승훈이 형이 쓴 미소를 흘렸다.
“잘생기고 예쁜 몬스터가 어디 있겠냐.”
그리고 우리가 외모 보면서 몬스터를 잡고 안 잡고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사실 생김새는 크게 상관없다.
놈들의 전투력이 어떤지. 이게 가장 중요하다.
“몬스터 말고, 다른 정보들은 없어?”
“아직.”
“그러고 보니 처음 열렸던 게이트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우리가 상대해 본 적 없는 몬스터들만 나오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레이드 시대 당시에 열렸던 게이트들이 상당하다.
그만큼 몬스터들의 종류도 다양했지만, 중복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기에 데이터를 쌓는 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나름 많은 자료들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 연달아서 처음 보는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다른 차원하고 게이트가 연결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승훈이 형이 나름의 추측을 꺼냈다.
차원 이론은 아직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이철민 소장을 포함해서 학회에 여러 개의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무엇 하나 확실하다고 단정 지을 만한 결과물은 없었다.
게이트와 더불어서 다른 차원의 존재 유무, 기타 여기에 관련된 정보들은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승훈이 형의 추측이 맞는지 어떤지, 나도 정확하게 대답하기가 애매모호했다.
그리고 나는 차원이 어떠니 뭐니 하는 머리 쓰는 거엔 별로 큰 관심이 없다.
내가 할 일은 몬스터 때려잡고, 던전 클리어하고, 그렇게 해서 게이트를 없애 버리는 거니까.
머리 쓰는 건 이철민 소장 같은 사람들이 알아서 잘해 줄 것이다.
승훈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들은 현장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게이트 하나.
그리고 그 아래에, 협회장이 말했던 던전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익산도 엄청 작은 도시는 아닌데.
시내 한복판에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 사이로 던전 입구가 마치 거대한 동물의 입처럼 쩍 벌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태오야!”
승훈이 형이 내 집에서 미리 챙겨 온 아이템들을 하나씩 건넸다.
“땡큐, 형!”
몬스터 하나하나만 놓고 봤을 때에는 그렇게까지 강한 놈들은 아니지만, 숫자가 많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인구가 수도권에 모여 산다.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고.
지방에 거주 중인 헌터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지방 도시에 게이트가 열리면 피해가 막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레이드 시대 당시에는 지역별로 헌터들을 배치하곤 했었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는 딱히 이런 거주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이 사달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아 보이네.’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곧장 대피한 덕분이었다.
잡몹 여러 마리들이 나를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었다.
승훈이 형한테서 받은 검 한 자루를 검집에서 뽑아 들었다.
스릉!
검날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와 동시에 나에게 달려들었던 키 작은 인간형 몬스터들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약하긴 하네.”
재생 능력도 거의 없는 모양인지, 발버둥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죽어 버렸다.
사방에 몬스터들이 흘린 피들이 퍼졌다.
오랜만에 맡는 피비린내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동료들이 나한테 순식간에 죽임을 당해서일까.
내 주변으로 몬스터들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 오히려 잘됐네.”
이런 식으로 나한테 어그로가 형성되면, 다른 헌터들이 위기에 몰릴 상황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나야 놈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몰려든다고 해도 목숨을 위협받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다시 한번 검을 빼 들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검 아이템에는 아주 유용한 옵션이 달려 있었다.
굳이 검을 휘둘러서 녀석들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주지 않아도, 마나를 이용해서 일정 범위 내의 적들을 전부 베어 낼 수 있는 스킬이 붙어 있다.
대량 학살에는 참 유용한 아이템이다.
그래서 일부러 집에서 이 아이템을 챙겨 온 거였다.
검을 빼 든 나는 그것을 거꾸로 들고서 그대로 아스팔트 지면에 푹! 하고 박아 넣었다.
그러자 내 주변에 몰려들었던 몬스터들의 정수리가 뭔가에 꿰뚫린 듯 뻥! 소리와 함께 커다란 구멍이 생성되었다.
여러 마리의 몬스터들이 피를 분수처럼 흘리면서 쓰러졌다.
놈들의 약점이 머리라는 걸 방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놈들의 머리만 공략한 거였다.
꽂았던 검을 다시 뽑은 다음에 검집에 넣었다.
아이템에 몬스터의 피가 묻을 일이 없어서 참 좋다.
일일이 닦아 낼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일부러 놈들의 어그로를 나에게 끌기 위해서 천천히 던전 쪽으로 걸어 나갔다.
놈들이 모여들면 베고.
또 모이면 베고.
몇 마리나 베어 버렸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학습 능력이 없는 놈들이구만.’
이쯤 되면 아무리 녀석들이 힘을 합쳐도 나 하나 못 쓰러뜨린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는 게 정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똑같은 과정에 똑같은 결과만 반복될 뿐이었다.
슬슬 이것도 지겨워지려고 하던 찰나였다.
“치사하게 혼자서 재미있는 거 다 독점하고 있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4층짜리 상가 건물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데이브가 어느새 내 옆에 착지했다.
“언제 왔냐?”
내가 데이브에게 먼저 물었다.
“10분 전에. 몸 좀 풀려고 하니까, 네 녀석이 여기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싹 다 도륙 내 버려서 몸풀기도 못 하게 되었잖아.”
그 말에 나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늦게 온 사람의 책임이니까, 뭐.
나는 잘못이 없다.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일 때였다.
갑자기 던전 안쪽에서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던전을 가리키면서 데이브에게 말했다.
“아직 먹잇감 많이 남아 있나 보네.”
데이브가 내 말에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