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27화 (227/250)

제59장. 다시 열린 게이트 (2)

우두머리 녀석이 고개를 몇 차례 까딱까딱 움직였다.

마치 나를 상대하기 전에 몸을 풀려는 듯한 그런 의도처럼 보였다.

아니면.

‘나를 얕잡아 보는 것일지도.’

얼굴에 절로 쓴웃음이 번졌다.

녀석은 이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아까처럼 강철 날개를 휘둘렀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불과하지만, 매섭고 날카롭다.

다른 헌터들한테는 이 기습 공격이 먹혔을지 모르지만.

까앙-!

“나한테는 안 통한다.”

검을 들고서 정확히 녀석의 일격을 맞받아쳤다.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우리 주변을 에워쌌다.

녀석은 설마 내가 아이템을 들고서 자신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아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모양인지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헌터들의 전투력을 랭크로 나누는 것처럼, 몬스터들 역시 우리와 몇 번 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헌터가 어떠한 강함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동물적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이 새 대가리 녀석들의 우두머리 역시 한 번의 공격으로 내가 보통 헌터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챈 듯했다.

녀석이 나와 거리를 벌렸다.

놈의 깃털 공격 범위 안에는 들지만, 내가 휘두르는 아이템의 범위는 닿지 않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뒤로 물러선 거였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들이 이래서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헌터들도 약한 헌터가 있으면 강한 헌터가 있는 것처럼, 몬스터 역시 잡몹이 있으면 보스 몬스터가 있게 마련이다.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녀석처럼 말이다.

놈은 다시 한번 강철 깃털을 빠르게 휘둘렀다.

정확히 내 목을 노렸다.

그러나 얌전히 당해 줄 내가 아니다.

몸을 살짝 뒤로 빼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나는 녀석의 일격을 가볍게 흘려 버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녀석은 어떻게든 나를 쓰러뜨리겠다는 일념을 드러내면서 무자비하게 깃털 달린 자신의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움직임은 빠르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다른 새 대가리 몬스터들보다 훨씬 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데.

‘그게 끝이야.’

‘내가 과연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단계까진 아니었다.

계속해서 회피 동작에만 집중했다.

저렇게 큰 동작을 지속적으로 펼치면, 분명 언젠가 한번 크게 빈틈이 생길 것이다.

나는 그 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몬스터들은 우리처럼 체계적이고 정교한 훈련을 받은 존재가 아니다.

놈들의 공격과 방어는 항상 거칠다.

아무리 강한 놈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나처럼 기회를 엿보면서 침착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몇 번째인지 모를 놈의 공격이 내 뺨을 살짝 스쳤다.

얼굴에 상처가 생기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헌터이자 연예인인데, 얼굴에 흉터가 남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

보기 좀 그럴 테니까 말이다.

녀석의 몸이 살짝 헛돌았다.

제풀에 지쳐 버린 탓이다.

내가 기다렸던 그 기회가 왔다.

들고 있던 검의 날을 바짝 세우고서 놈의 겨드랑이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잡몹들을 때려잡으면서 나는 놈들의 신체적 특성이 뭔지 자체적으로 머릿속에 데이터를 쌓아 뒀다.

놈들은 깃털 달린 앞발을 무기이자 방어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다.

즉, 저거 말고는 나머지는 볼품없다는 뜻이다.

강한 재생력도 없고.

피부가 검을 튕겨 낼 정도로 단단한 것도 아니다.

놈의 몸에 박힌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의 궤적에 따라 녀석의 피가 흩뿌려졌다.

동시에 오른쪽 팔이 잘려 나갔다.

팔 하나를 잃은 우두머리 녀석은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야 알겠냐?”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이트가 열리니까 좋다고 날뛰는 놈들에게 오랜만에 참교육을 시켜 주기로 했다.

우두머리 녀석이 필사의 항전을 하듯 남은 팔 하나를 휘둘렀다.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간 탓에 녀석은 자신의 공격 중에도 제대로 무게중심을 잡지 못했다.

이 이후부터는 아주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남은 팔 하나마저 도려낸 나는 쓰러진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탔다.

“잘 가라.”

짧은 작별 인사를 남기고서 녀석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우두머리가 죽자, 하늘에 새겨진 균열이 서서히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게이트가 닫혔다.

남은 몬스터들은 전부 헌터들의 사냥감이 되었다.

몬스터들의 피로 얼룩진 서울 도심의 거리.

전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헌터들은 다시 게이트가 열렸다는 사실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지독한 악몽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건 현실이다.

* * *

몬스터들을 쉽게 제압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 이후부터가 문제다.

게이트가 열렸다. 이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의 모습이, 사람들이 촬영한 영상 그대로 인터넷에 올라갔다.

이 영상들은 국경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접어들었다.

게이트가 다시 열렸다는 건.

한마디로 말해서 평화의 시대도 끝났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세계 각지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연일 서울 상공에 열린 게이트에 대한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이에 대해 헌터협회는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문을 내지 않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반 시민들한테는 정말 미안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헌터협회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헌터협회도 어떻게 해서 게이트가 다시 열리게 되었는지 아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가는 욕만 더 먹을 게 뻔하다.

그래서 일부러 아직까지 입장 발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의 정부에서도 계속해서 연락을 해 오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협회장의 미간에 주름만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었다.

협회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몇 번째 한숨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다.

협회장이 우리와 함께 사무실을 찾은 이철민 소장에게 물었다.

“이 소장도 원인은 모르지?”

“예. 대신에 심증만 있을 뿐입니다.”

“태오가 봤다던 그 드래곤의 형상?”

“네, 그것 말고는 게이트가 다시 열리게 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철민 소장의 말이 맞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드래곤의 형상을 목격한 게 아니라, 오직 나 혼자만 봤기 때문에 신빙성은 많이 떨어질 것이다.

내가 헛것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당시에는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게이트가 열리게 된 이상.

의도치 않게 내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나도 이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차라리 내가 헛것을 보고 끝났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적어도 지금처럼 게이트가 다시 열리는 일이 발생하진 않을 테니까.

게이트로 인해서 증명된 게 하나 있다.

드래곤은 살아 있다.

문제가 있다면.

“애초에 드래곤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는 뜻이 되는 건가.”

협회장이 깊은 고민에 빠져들면서 혼잣말을 흘렸다.

내가 쓰러뜨린 드래곤 말고 다른 드래곤이 있다는 가설이 현재로서는 제일 정답에 가깝다.

이때, 이철민 소장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을 드래곤이 아닌 다른 존재도 가지고 있었다……라는 가설은 어떻습니까?”

“드래곤 말고도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존재가 또 있다고?”

“어디까지나 제 가설일 뿐이지만요.”

제이커 사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제이커는 자기가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었다.

그게 온전히 본인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제3자의 힘을 빌려서 가능한지에 대한 것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자료가 상당히 부족할뿐더러.

진실을 알고 있는 본인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춰진 속사정을 밝혀내는 데에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머리 좋은 이철민 소장도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정도니까.

어려운 퍼즐임이 확실하다.

계속해서 입장 발표를 미루는 건 의미가 없고.

뭐든 발표를 하긴 해야 한다.

조용히 있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불안감만 더 가중될 테니까 말이다.

“일단은…… 그래, 알았다. 슬슬 기자회견 준비해야겠어.”

“어떻게 말씀하시려고요?”

“우리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현재 조사 중이니 잠시만 기한을 달라. 이런 식으로 말해야지.”

드래곤의 존재는 아직 확인 안 됐고.

이철민 소장의 말대로 드래곤이 아닌 다른 존재에 의해서 게이트가 열렸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협회장의 결정이니까.

나는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기로 했다.

실제로 우리들이 아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건 맞는 말이니까.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먼저 사무실을 벗어나는 협회장.

이철민 소장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화의 시대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몰랐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벌써부터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잃어버린 평화는 다시 찾으면 되니까요.”

여태껏 그래 왔듯이, 우리는 어떻게든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 * *

협회장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무엇 때문에 게이트가 다시 열리게 되었는지, 해결 방안은 뭔지. 속 시원하게 밝힌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협회장의 발표 이후에 나에게도 여기저기서 연락이 날아들고 있었다.

혹시 아는 거 있냐고.

협회 측에서 발표한 거 말고 내가 아는 정보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은 기자들이었다.

나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연예부 기자들조차도 이번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인류 전체에 관한 사건이니까.

연예부니 뭐니 할 것 없이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도 아직 들은 바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참 어려운 문제야.’

나도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해 주고 싶은데.

뚜렷하게 밝혀진 사실이 없는데, 단순히 추측만으로 정보를 흘릴 수는 없었다.

나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내 말 한마디가 지닌 영향력이 얼마나 센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기로 했다.

잡혀 있던 일정 대부분도 취소했다.

앨범 작업 준비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결과다. 게이트가 다시 열렸는데, 한가하게 앨범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로 인해 계획되어 있던 숙소 입주도 물 건너가게 되었다.

계단을 올라 내 집 옥상으로 향했다.

머리 위에 가득 펼쳐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평화롭기만 했던 하늘 위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게이트.

“이번엔 또 어떤 녀석이냐?”

낯짝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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