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26화 (226/250)

제59장. 다시 열린 게이트 (1)

게이트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 인해 인류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만큼 게이트는 레이드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게이트가 다시 서울 상공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날아온 긴급 재난 문자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담당자가 꾸벅꾸벅 졸다가 내용을 잘못 보낸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럴 때에는 역시.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연 대표한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 대표가 내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방금…….”

-안다. 재난 문자의 내용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네, 게이트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뜸을 들이던 연 대표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드래곤이 사라졌는데.

갑자기 게이트가 또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평화의 시대의 종결을 뜻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설마 내가 죽인 드래곤이 살아 있을 리는 없고.

문득 어떤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크라겔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동했을 당시.

구름 너머로 얼핏 보였던 드래곤의 형상이 다시금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연 대표도 내가 드래곤을 봤다고 주장했던 일을 떠올린 모양인지, 침음을 흘리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네가 봤던 게 맞는 거 같구나.

“…….”

망할.

연 대표와 통화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일단은 게이트가 열린 건 맞으니까, 얼른 출동해라. 장소는 협회에서 알려 줄 거다.

“예, 알겠습니다.”

연 대표의 말대로, 통화를 마치자마자 헌터들이 사용하는 전용 통신기를 통해 게이트가 열린 좌표가 날아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나한테 정말로 게이트가 열린 게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질문에 일일이 반응해 줄 시간이 없었다.

만약 연 대표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네.’

잊고 지냈던 긴장감과 떨림이 오랜만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 * *

차를 끌고 이동하면 현장에 도달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안 그래도 서울의 교통 체증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이 지옥 같은 도로 사정을 뚫고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현역 때 자주 사용했던 아이템들을 몇 개 챙기고서 이것을 이용해 현장까지 빠르게 이동하기로 했다.

아이템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기능이 활성화되자마자 내 몸이 공중으로 크게 치솟았다.

거의 날다시피 폴짝폴짝 뛰어오르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을 개시했다.

현장이 가까워지자, 서울 상공에 떠 있는 보랏빛을 띠는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바로 그 게이트다.

‘미친…….’

연 대표 말이 사실일 줄이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정할 수가 없다.

믿고 싶지 않아도 믿어야 한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해 봤자 나만 손해라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헌터들 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바로 나빈이었다.

“선배님!”

나빈이도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인지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째서 게이트가…….”

“정확한 건 나도 몰라.”

내가 그때 봤던 드래곤의 형상이 진짜였는지 어떤지.

아직 확실하게 판명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게이트까지 나타나니까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게이트는 다시 열렸고.

저 안에서 곧 쏟아질 몬스터들을 퇴치하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다행히도 몬스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나와 헌터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는 다짐을 품으면서 몬스터와의 싸움에 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게이트 안쪽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포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걸 바로 눈앞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고역이 따로 없었다.

몬스터들이 우리 인간처럼 정갈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녀석이 있는 반면, 괴상망측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 녀석도 있다.

이런 것들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맨정신으로 버틸 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게이트 현상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멘탈이 나가 버릴 것이다.

그래서 헌터들의 존재가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나 그리고 나빈이와 같이 현장에 출동한 헌터들은 각자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서 나와 우리 HTB, HTG 노래를 통한 MML 버프를 받기 위해 서둘렀다.

나는 아직까진 딱히 버프의 도움이 필요가 없어서 굳이 준비하진 않았다.

몬스터 중에서 몇몇은 이전 레이드 시대에 상대해 봤던 놈들이었다.

그러나 전부 다 낯이 익은 녀석들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도 있었다.

“이놈의 몬스터는 대체 종류가 몇이나 되는 건지 모르겠네.”

수년 동안 지겹도록 봐 왔던 몬스터들인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녀석들이 존재할 줄이야.

“온다, 준비해라.”

“네!”

헌터들이 무기를 손에 쥐고서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편, 게이트를 막 통과한 몬스터들은 몸에서 열기를 뿜어내며 자신들이 건너온 차원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파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 모양인지 눈빛이 달라졌다.

미친 듯이 날뛰는 야수 떼들.

이 녀석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녀석을 향해 나는 미리 챙겨 온 롱소드 형태의 아이템을 크게 휘둘렀다.

녀석의 거대한 몸집이 정확히 정수리를 기준으로 2등분 되었다.

사방에 몬스터 피가 튀었다.

비릿한 냄새도 상당히 오랜만이다.

기분 나쁜 느낌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뒤이어 다른 몬스터들도 나를 먹어 치우기 위해 몸을 날렸다.

앞발은 새의 날개처럼 깃털이 달려 있는데. 정작 날지는 못하고 네발로 뛰어다니면서 헌터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녀석들.

움직임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이 녀석들이 뭐로 불리는지, 이름도 알 수 없었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서 처음으로 접하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정보라고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면, 헌터들 입장에서는 고역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녀석을 상대하면 좋을지. 이런 거에 대한 방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가 부족하면, 그 부족한 것을 헌터들이 직접 몸으로 때워 가면서 메꿔야 한다.

“아아악!”

녀석 중 한 마리가 부리를 세우면서 헌터 한 명을 입안으로 꿀꺽 삼켰다.

녀석을 보자마자 나는 지체 없이 놈의 머리를 베고, 몸을 갈라 버렸다.

역겨운 냄새가 올라오면서, 방금 전에 몬스터 배 속으로 직행했던 헌터 한 명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정신 차려. 아직 싸움 안 끝났다.”

내가 이런 식으로 모든 헌터들을 구해 줄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누구한테 도움을 받기 위해서 전장으로 투입된 게 아니니까.

밑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또 한 차례 혀를 찼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어.’

몬스터들을 상대로 소모전을 펼치면, 우리들만 고생이다.

게이트를 닫기 위해서는 놈들의 우두머리 격인 존재를 해치우거나.

아니면 던전의 경우에는 던전 핵을 파괴해 버리면 된다.

놈들의 우두머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잡몹들이 하도 많이 섞여 있는 탓에 우두머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달려드는 새 녀석들을 베고, 베고, 또 베었다.

이때, 어느 한쪽에서 나빈이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빈이의 사각지대를 이용해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새 녀석을 향해 들고 있던 검 아이템을 날렸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던진 검이 정확히 녀석의 미간을 갈랐다.

쿠웅! 거대한 몸집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자욱한 흙먼지 구름을 만들어 냈다.

의외의 습격에 크게 당황했던 나빈이가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신경 쓰지 마.”

내가 오른손을 들자, 몬스터의 미간을 꿰뚫어 버렸던 롱소드가 알아서 내 손으로 다시 복귀했다.

나니까 놈들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거지, 사실 따지고 보면 녀석들은 결코 약한 몬스터들이 아니다.

내가 봤을 때에는.

‘A랭크 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할 거 같은데.’

그 이상의 헌터라면 나처럼 혼자서 여러 마리를 상대할 수 있겠지만, A랭크에 딱 걸리는 헌터라면 비슷한 실력을 가진 헌터들과 뭉쳐 다니면서 놈들을 상대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게이트가 열려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네.’

민간인들의 대피도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레이드 시대가 한창이었을 때에는 이런 문제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일들이 거의 일상생활이었으니까.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끌고 온 차라든지 자신이 가진 모든 미련들을 버리고 일단 살고자 하는 생각에 대피소로 뛰어가곤 했었다.

그러나 평화의 시대가 오래 지속된 탓에 이런 것들이 무뎌지게 되었다.

방심했다……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

나도 이렇게 평화의 시대가 계속 지속될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하물며 다른 일반인들은 어땠을까?

지금의 상황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느껴질 것이다.

또 한 놈의 머리를 베었다.

그 와중에 유독 한 녀석이 눈에 띄었다.

다른 새 대가리 놈들은 네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유독 한 놈만이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지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헌터 세 명이 가장 먼저 녀석과 조우했다.

헌터들이 무기를 쥐고서 동시에 녀석에게 달려들었지만.

당한 쪽은 녀석이 아닌 헌터들이었다.

순식간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깃털로 꾸며진 팔을 그저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헌터 셋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 가 버렸다.

이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장소를 이동해 녀석의 앞에 자진해서 마주 섰다.

“네놈이 여기 우두머리지?”

새 대가리는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사실 몬스터 중에서 인간의 정도의 지능을 가진 녀석들은 결코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욕지거리와 함께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인간의 지능을 가진 몬스터는 그만큼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조건 경계 대상 1순위다.

게이트가 갑자기 열린 것도 당황스러운 판국에.

초반부터 이런 강적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