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25화 (225/250)

제58장. 휴식 (4)

일정을 마친 뒤에 나는 승훈이 형한테 들은 이야기를 확인할 겸 누나에게 연락을 취했다.

누나의 ‘여보세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승훈이 형하고 사귀기로 했다면서?”

우리 누나는 뭐든 적극적이고, 누구보다도 성실히,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연애 쪽에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나는 이번이 첫 연애니까.

적어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

대뜸 승훈이 형과의 관계부터 묻는 내 말에 누나가 순간 헛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승훈 씨가…… 말했어?

“아니, 승훈이 형이 먼저 말하기 전에 내가 물어봤지.”

승훈이 형이 입이 가벼워서 나한테 사실을 실토했다는 인식을 심어 줄까 봐, 일부러 ‘내가 먼저’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사귀기로 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괜히 나 때문에 이상한 오해가 쌓여서 벌써부터 싸우면 큰일이지 않은가.

내 누나하고 승훈이 형 사이를 응원하기로 했는데,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두 사람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일을 제공하면 큰일이다.

그래서 승훈이 형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누차 강조했다.

다행히 이런 내 의도대로 누나가 승훈이 형을 탓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진 않았다.

-그렇게 됐어. 설마 나 놀리려고 전화한 건 아니겠지? 그러면 화낼 거야.

“내가 누나를 왜 놀려. 축하해 주려고 전화한 건데. 아무튼 용기 내느라 고생했어, 누나.”

내 솔직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누나가 작게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들려줬다.

“승훈이 형한테도 말했지만, 당분간 기자들 눈은 피하고. 스캔들 한번 터지면 이래저래 귀찮아지니까.”

-경험자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체감이 확 되네.

아이리스와 스캔들 기사가 한번 터졌던 내가 하는 말이기에 누나는 내 조언이 더 와닿는 거 같다.

뭐, 원인이야 어떻게 되었든간에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잘 전달된 거 같으니까 그걸로 나는 오케이였다.

“다시 한번 축하하고. 승훈이 형, 저번에도 말했지만 좋은 사람이니까 누나 힘들게 하진 않을 거야.”

-알고 있어, 승훈 씨 좋은 사람이란 거.

나처럼 엄청 가까이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나 역시 승훈이 형을 오랫동안 봐 왔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어쩌면 내가 못 본 승훈이 형의 일면을 누나는 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승훈이 형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은 것일 수도 있다.

연애라는 게 참 복잡하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사람과 사람 관계라는 게 참 알 수가 없다.

뭐랄까,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게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통화를 끊은 나는 내일 있을 일정에 대해 정리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HTB 멤버들이 다시 한자리에 뭉쳐서 다음 앨범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회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일 회의 시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누나하고 승훈이 형이 사귄다는 생각 때문에 솔직히 업무에 집중할 자신이 없었다.

* * *

내 우려와는 달리.

정작 회의에 들어가니까 앨범 제작에 관한 것에만 오롯이 몰두할 수 있었다.

공과 사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니까.

언제까지 누나와 승훈이 형 일에만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연애라는 거에 제3자가 깊게 개입해서 잘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사자들끼리 잘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

그동안 나는 내 일에 충실히 임하기로 했다.

최용하 프로듀서가 이번에도 우리들에게 어떤 식으로 앨범 콘셉트를 잡을지에 대해 순차적으로 물었다.

이번에는 의외로 데이브가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세비올라 때처럼 후크송 어떻습니까?”

세비올라. 우리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의 제목이다.

당시에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얻었던 곡이기도 하다.

HTB가 발표했던 음원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켰던, 의미 깊은 곡이다.

데이브도 그 노래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네 번째 앨범 콘셉트 회의 때 이와 비슷하게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용하 프로듀서는 데이브의 이런 의견을 나쁘지 않게 보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아직도 세비올라가 가끔씩 역주행 기미를 보이면서 차트에 올라올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나도 얼마 전에 최용하 프로듀서가 말한 걸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뜬금없이 세비올라가 메이저 스트리밍 플랫폼 주간 차트 순위 88위에 랭크된 걸 봤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한창 앨범 활동을 하던 기간도 아니었고.

전국 투어 콘서트를 막 마쳤던 때에 갑자기 옛날에 발표했던 곡의 순위가 급속도로 올라서 좀 놀랐었다.

전국 투어 콘서트의 영향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래도 몇 년 전의 곡이 다시 순위에 올랐다는 것은 꽤나 의미 깊은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들이 발표했던 곡 중에서 세비올라라는 곡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는 것을 뜻하는 결과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멤버들도 데이브의 의견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용하 프로듀서가 마지막으로 내게 의견을 구했다.

“대표님은 어떠십니까?”

“저도 오랜만에 데이브 의견에 한 표 넣겠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채용이다.

데이브가 낸 의견이니까 무조건 반대한다? 이런 건 없다.

나하고 데이브는 헌터로서 현역으로 활동할 때에도 서로 간의 작전이나 몬스터 토벌에 관련된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찬성하는 쪽으로 태도를 굳히곤 했었다.

나와 데이브는 적이 아니다.

적은 몬스터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둘은 이 공통된 적을 두고 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 동료다.

단지 사이가 좀 안 좋을 뿐.

가수로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그룹이니까. 대중에게 얼마나 더 좋은 곡을 선물할지, 이런 걸로 협업 관계를 따져야 한다.

만장일치로 곡 콘셉트가 정해지자, 최용하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침 잘됐다는 어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제가 후크송 콘셉트로 준비했던 곡이 몇 개 있거든요. 바로 준비할 테니까 한번 들어 보실래요?”

“네, 좋죠.”

마치 우리들이 세비올라 같은 후크송을 다음 타이틀곡으로 원할 걸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최용하 프로듀서는 노트북을 펼치고서 빠르게 세팅에 돌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세팅이 완료되었다.

“노트북 스피커라서 음질이 좀 안 좋을 수 있는데, 그냥 멜로디만 들어 보시고 어떤 느낌인지만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준비성 좋은 최 프로듀서 덕분에 우리는 콘셉트 회의를 넘어서 어떤 느낌의 멜로디로 하면 좋을지, 이에 대한 것까지 정할 수 있었다.

최용하 프로듀서가 준비한 곡은 총 다섯 개.

이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곡은.

“두 번째하고 마지막 다섯 번째 곡 좋네요. 뭐라고 하면 되나…… 느낌이 있어요.”

“어? 형! 저도요!”

나하고 준서의 의견이 100퍼센트 일치했다.

니암과 딜런, 그리고 데이브는 약간씩 서로 간의 의견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다섯 명 다 공통으로 좋다고 선택한 게 있었다.

바로 다섯 번째 곡이었다.

이것도 만장일치로 선정된 셈이었다.

최용하 프로듀서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오늘 회의, 느낌이 좋네요. 다섯 분 전부 다 의견이 일치하시고.”

처음에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서로 각자의 취향이 있다 보니까 누구는 어떤 곡이 좋고, 또 누구는 어떤 안무 시안이 좋고. 이런 식으로 의견이 중구난방으로 갈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의견은 점점 일치되기 시작했다.

부부는 서로 닮아 간다는 말이 있듯이,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도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서 그런지 취향이 맞아떨어져 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역시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 듯했다.

니암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의견이 일치한다는 건 좋은 현상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죠.”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 서로 갑론을박을 펼칠 일도 없어지고.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최용하 프로듀서가 우리들의 취향을 접수한 뒤에 노트북을 덮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 곡하고 비슷한 느낌의 멜로디로 몇 개 더 뽑아 보고, 최종적으로 괜찮을 것 같은 곡을 골라 보도록 하죠. 작사는 이번에도 제가 할까요?”

마치 우리들에게 작사하고 싶은 의향을 가진 멤버가 있는지를 묻는 듯했다.

요즘 가요계에는 의도치 않게 작곡, 작사를 하는 아이돌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본인이 곡을 쓰고, 가사를 적고. 이런 거 말이다.

사실 작곡, 작사라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돌 활동을 이어 가면서 작곡, 작사까지 한다는 건 배로 어려운 일이다.

요즘 아이돌들은 점점 만능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부쩍 들고 있었다.

그러나 괜히 다른 그룹한테 위축될 필요가 없다.

우리 HTB도 이미 작곡, 작사 능력을 두루 갖춘 멤버가 있기 때문이다.

“니암, 네가 한번 해 볼래?”

랩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서 본인의 능력을 120퍼센트 발휘했던 니암.

이번에 니암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니암도 생각이 있는 모양인지, 내 제안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작사만 맡으면 되는 거죠?”

“어, 작곡은 최 프로듀서님이 해 주실 거니까.”

“그러면 더 쉽죠. 맡겨 주세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이후부터 니암의 자신감이 부쩍 상승했다.

리더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곡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고.

최 프로듀서에게 발언권을 넘기면서 물었다.

“혹시 또 하고 싶으신 이야기 있나요?”

“아니요. 오늘 정할 건 다 결정했습니다. 이제 작업실로 가서 열심히 일해야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집에 가서 숙소로 짐 옮길 것들 챙기려고요.”

앨범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숙소 생활부터 먼저 준비해야 했다.

오늘 하루도 바쁘게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 *

집에 오자마자 숙소에서 사용할 개인 짐들을 하나하나씩 꾸리기 시작했다.

어딜 다닐 때마다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백팩 하나 정도면 충분히 다 꾸릴 수 있다.

“읏차!”

빵빵해진 캐리어 하나를 현관문 근처에 놓아뒀다.

내일 아침에 바로 숙소로 짐을 옮길 예정이었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고 싶었다.

‘또 챙길 거 있나?’

혹시 내가 잊어버린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재난 경보 알림이 울렸다.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가벼운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했으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재난 경보가 울린 것은 몬스터의 등장 때문이 아니었다.

“게이트가…… 열렸다고?”

평화의 시대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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