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장. 휴식 (2)
사실 양심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수집한 아이템들, 소재들을 테마로 박물관을 개장하기로 했는데, 정작 나는 여기 내부를 거의 육안으로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내가 얼마 전까지 전국 투어, 그리고 특별 콘서트 준비로 인해 바빴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콘서트 준비를 해야 하다 보니, 박물관 개장 준비에 많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작업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이건 대리인을 통해서 사진, 영상을 이용해 원격으로 확인하기만 했다.
나머지는 알아서 잘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나와 오랫동안 일해 온 곳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박물관 안에 들어와서 내부를 살피는 게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주 놀랍게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네. 잘 꾸며 뒀어.”
바로 옆에서 내가 흘린 혼잣말을 들은 모양인지, 아이리스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도 여기 처음 들어와 보는 거예요?”
“뭐, 그렇지.”
확실히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확인하는 것과 이렇게 내 눈으로 보는 건 느낌이 많이 달랐다.
콘서트도 그렇지 않은가.
영상으로만 봤을 때에는 느끼지 못하는 현장감이라는 게 있다.
박물관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줬다.
사람들이 박물관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자처하는 이유가 있었다.
박물관은 각기 다른 콘셉트마다 섹션이 분리되어 있었다.
무기류, 방어구류, 그리고 몬스터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소재들까지.
여기에 있는 건 95퍼센트 이상 내 개인 소유물이다.
나머지 5퍼센트는 내가 박물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위탁을 받은 물건들이다.
그렇다 보니 안에 있는 물건들은 거의 다 내가 봤던 것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다르다.
내 소유물이 많다 보니 방송에 공개될 일도 없었고.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아이템, 소재 들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일반인들은 아이템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아이템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약간의 위화감 정도는 들 것이다.
그것을 실체화한 게 우리 헌터들이 다루는 마나다.
아이템은 마나를 원동력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확실히 다른 박물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묘한 감각들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몇몇 예민한 사람들은 이유 모를 한기에 몸을 짧게 부르르 떨기도 했다.
혹시 몰라서 박물관에 늘 안전 요원을 배치하고 있으니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안심이다.
앞서 걸어가던 아이리스가 손으로 어느 한 아이템을 가리켰다.
“저거, 옛날에 저하고 오빠하고 같이 잡았던 몬스터에게서 나온 소재죠?”
“맞아.”
기리프라고, 발이 여섯 개 달린 사자 비슷한 몬스터가 있었다.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우리가 상대법을 몰라서 고전을 면치 못했었는데.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이고 나서부터는 토벌하는 게 생각보다 크게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달랐다.
“저 때, 저는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랬어?”
“네, 기리프를 상대할 때에는 제가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였기도 했으니까요.”
“아, 맞다.”
개구리도 올챙이 시절은 있게 마련이다.
나도 그렇고.
아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적으로 몇 없는 S랭크를 자랑하는 아이리스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신인 시절은 있었다.
훈련 과정을 수료하고 한 달쯤 되었을까.
기리프 토벌 작전에 투입된 아이리스는 당시에 참 고생을 많이 했었다.
“저 때도 오빠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오빠가 제 목숨을 많이 구해 주셨네요.”
“서로 돕고 돕는 거지, 뭐.”
헌터들은 대부분 그렇다.
그럼에도 아이리스의 눈에 깃든 반짝임은 여전히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나중에 꼭 은혜 갚을게요.”
괜찮다고 말을 해 보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아이리스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이럴 때는 그냥 알겠다고 대답하는 게 가장 속 편한 일이다.
* * *
박물관 개장 이후, 그곳은 때아닌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덕분에 지역 상권도 많이 살아났고, 이로 인해 내 쪽으로 고맙다는 연락이 쇄도했다.
서울이 아닌 외곽 지역에 박물관을 개장하기로 결정한 건 딱히 의도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정부 관계자도 아니고, 지역 발전에 힘을 쏟기 위해 노력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왜 서울 외곽 지역으로 골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원래 아이템 창고가 있던 자리가 거기였으니까.
굳이 다른 쪽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새로 짓고. 그러면 오히려 비용만 더 들 뿐이다.
기존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싶었기에 지금의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어쩌다 보니 사람들에게 ‘지역 발전까지 생각하는 강태오 헌터!’라는 식으로 보기 좋게 포장되어서 그랬을 뿐이지.
그냥 얻어걸린 거였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본전치기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박물관을 개장하기로 했는데.
첫 정산 보고를 받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용돈 벌이 정도는 하겠네.”
용돈 벌이라는 말에 나와 같이 촬영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승훈이 형이 관심을 보였다.
“얼마나 벌었는데?”
“얼마 안 돼. 한번 볼래?”
“어디 보자.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야야! 공이 몇 개가 붙어 있는 거야! 이게 용돈 벌이 수준밖에 안 된다고?”
“나한테는 그렇지.”
내가 지금 벌어들이고 있는 돈이 얼마인데.
연예계에서 받고 있는 수익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데. 여기에 헌터 수당까지 더하면 박물관 운영으로 인해 거둬들이는 수익은 용돈 벌이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승훈이 형의 생각은 나와 많이 달랐다.
“이 정도면 웬만한 중소기업 뺨치는 수준인데…… 부러워 죽겠네.”
내가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승훈이 형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를 향한 승훈이 형의 부러움은 나날이 갱신되고 있었다.
“형도 아이템 모은 것들로 박물관 한번 차려 보면 어때?”
“내가 모은 게 얼마나 된다고. 그리고 나는 내가 자주 사용했던 것 말고는 가지고 있는 거 거의 없어.”
“왜?”
“다 팔았으니까. 너처럼 땅 사고 창고 짓고 보관할 만큼 양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다가 얌전히 보관해 두기에는 공간을 너무 차지하는 거 같아서 그냥 팔아 버렸지.”
“레이드 시대 끝난 다음에 팔았지?”
“물론.”
유명 화가가 죽으면 갑자기 그가 그렸던 그림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아이템도 게이트가 닫히자마자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템을 수급할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마이스터들이 직접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콜렉터들의 마음은 늘 튜닝이 아닌 순정을 향했다.
다른 사람의 손을 타면, 상품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헌터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이스터들이 튜닝을 해 준 아이템이 더 사용하기 편하고 능력 발휘도 쉽지만, 이건 헌터들 입장에서 그런 거고. 콜렉터들은 우리와 다르니까 가치를 매기는 기준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승훈이 형이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처럼 아예 개인 박물관을 따로 낼 만큼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헌터는 아마 없을걸. 고작해야 데이브 정도겠지.”
“근데 데이브는 그런 거에 관심 별로 없어 보이던데.”
본인이 싫다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박물관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거 같으니까 나도 기분이 좋네. 축하한다, 태오야.”
“고마워, 형.”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부수입 경로가 하나 생긴 건 나쁘지 않다.
“콘서트 일정도 끝났고. 방송 스케줄도 이제 오늘하고 내일만 끝내면 없잖아. 뭐 하면서 쉴 거냐?”
승훈이 형의 물음이 내게 고민거리를 던져 줬다.
일단 쉴 거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글쎄.”
뭐 하면서 쉴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며칠 깔짝 쉰 다음에 바로 방송 출연 일정 잡고 연예계로 뛰어들었으니까.
거의 쉴 틈 없이 달리기만 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슬슬 쉬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가 딱 전국 투어 끝날 때쯤이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라.”
“여행이라…… 그러고 보니 누나하고 같이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없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워낙 가난했고, 그리고 누나도 돈 버느라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여행이라는 건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치에 불과했다.
누나 이야기가 나오자, 승훈이 형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송 씨하고 같이 가게?”
“왜, 형도 따라오려고?”
“아, 아니! 가족 여행인데, 내가 거길 어떻게 끼냐.”
“왜, 가족이 되면 되잖아.”
“이 녀석이, 아송 씨가 들으면 큰일 날 말을…….”
승훈이 형은 아직도 우리 누나를 좋아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가 있다면.
‘용기가 없다는 거겠지.’
그런 승훈이 형을 위해서 내가 조언을 하나 해 주기로 했다.
“형, 유명한 말이 하나 있는데.”
“뭐?”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그거, 너 자신한테 하는 말이냐?”
“나? 왜?”
“아이리스 말이야.”
“여기서 아이리스 이야기가 왜 나와.”
물론 아이리스가 미인인 건 맞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상대는 아이리스가 아니라 우리 누나다.
“아무튼 내 말 꼭 명심하고. 나중에 결심이 서거든 눈 딱 감고 한번 크게 질러 봐. 혹시 모르잖아, 누나가 오케이 할지도.”
“에이, 설마.”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생각해 봐. 누가 이 시대에 게이트라는 존재가 튀어나올 줄 알았겠어?”
“…….”
아무도 모른다.
내 말에 강한 설득력을 느낀 모양인지, 승훈이 형이 마른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한번 고민해 볼게.”
“힘내, 형.”
그동안 나는 누나한테 연락해서 오랜만에 남매끼리 가족 여행이라도 갔다 오자고 해야겠다.
* * *
내가 아무리 쉬고 있다 할지라도 연예계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있다 보니 아예 마음 편히 며칠 동안 시간을 낼 수는 없었다.
이건 누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바다나 보고 오자고 계획을 세운 채 누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렸다.
처음에는 내가 내 마음대로 비싼 차 사 줬다고 구시렁구시렁하더니만.
‘지금은 잘 타고 다니네.’
역시 뭐든 직접 겪어 봐야 한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막상 경험해 보면 내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꽤 많다.
지금의 누나도 마찬가지다.
“누나도 자기를 위해서 돈 좀 쓰고 다녀.”
“난 충분히 많이 쓰고 있어.”
“거짓말. 버는 거에 비하면 택도 없잖아.”
“써야 할 때가 오면 그때 쓸게.”
“언제?”
“뭐…… 결혼이라든지.”
“내 결혼 말고, 누나 결혼 맞지?”
“둘 다.”
결혼이라.
그렇다면.
“곧 머지않아서 쓰게 되겠네.”
“무슨 소리야? 혹시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니?”
“누나 말이야, 누나.”
사랑의 큐피드 역할은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