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22화 (222/250)

제58장. 휴식 (1)

마지막 전국 투어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관객들은 우리 멤버들의 이름을 각각 연호하면서 격렬하게 환영 인사를 보냈다.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관객들에 외침에는 아쉬움이 제일 많이 깃들어 있었다.

아쉬운 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준서가 대기실에서 이거 끝나면 쉬게 해 줄 거냐고 묻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무대에 서니까 그 어떤 멤버들보다도 기뻐하는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가수는 결국 무대에 서야 한다.

한번 맛본 무대를 쉽게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결국은 무대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준서도 말만 쉬고 싶다고 할 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언제 컴백해요?’라고 물을 게 뻔했다.

내가 아는 준서의 성격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팬들의 환호성을 잠시 뒤로한 채.

우리들은 여태껏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면서 펼쳐 온 첫 번째 무대를 관객들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이제는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프로그램을 미리 입력해 두면,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기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안무 동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넘치고 자연스러웠다.

이것도 그간의 콘서트 경험으로 숙달시켜 온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이브 무대를 하도 많이 소화하니까 이제는 여기에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각 멤버들도 이전 콘서트 무대보다도 훨씬 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각자 맡은 파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도망칠 수 없는

너의 빛.

그 속에서 난

그림자에 숨어 때를 기다려.

오늘따라 고음이 잘 올라간다.

특별히 뭔가를 먹은 것도 아니고, 아이템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음과 성량으로 후렴구 파트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봐도 나 스스로가 멋져 보였다.

* * *

첫 무대를 시작으로 다음 무대까지 쉴 틈 없이 관객들에게 보여 줬다.

중간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받은 HTG가 무대를 꾸미고.

의상을 갈아입은 우리들이 다시 한번 무대를 이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곡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도 곡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외쳤다.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이 외침과 열기.

얼마 전에 마쳤던 특별 콘서트 때와 상당히 비슷했다.

관객들의 외침에 따라 나는 멤버들과 같이 다시 무대에 올라섰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저희들이 다시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관객들의 기뻐하는 감정들이 무대 위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여러분, 마지막 곡은 뭐 듣고 싶으세요?”

그러자 예상치 못한 곡이 튀어나왔다.

“‘나의 길’이요!”

“그거, 이미 특별 콘서트 때 한번 불렀던 건데, 괜찮아요?”

“네에-!”

생각해 보니까 여기 온 일반 관객들은 특별 콘서트 때 못 왔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헌터가 아닌 사람들이 대다수일 테니까.

우리가 특별 콘서트 앙코르 무대에서 ‘나의 길’을 불렀다는 게 벌써부터 입소문을 탄 모양인지 사람들은 다른 곡들을 제쳐 두고 내 솔로곡을 원하고 있었다.

솔로곡이다 보니 원래는 나 혼자 부르는 게 정석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곡인데, 나만 마이크를 차지한다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어차피 멤버들도 다 내 솔로 데뷔 타이틀곡 가사를 알고 있다.

갑자기 마이크를 넘겨도 알아서 잘 부를 정도였다.

심지어 데이브도 그렇다.

그렇게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우리는 마지막 앙코르곡 무대까지 모두 마쳤다.

대기실로 돌아온 우리들은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면서 여운을 즐겼다.

무대 뒤에 찾아오는 이 묘한 감정.

나중에 또 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

* * *

드디어 우리들 나름의 장기간 프로젝트였던 전국 투어, 그리고 특별 콘서트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많이 피곤했음을 뜻하기도 했다.

평소였더라면 내가 아침을 깨우는 역할을 자처했을 텐데.

‘오늘은 봐주지, 뭐.’

어제 다들 고생했으니까.

멤버들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냉장고 안에 있는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냈다.

이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뒤를 이어서 누가 오늘 같은 날에 부지런을 떠는 걸까 확인했다.

예상대로.

“일어났냐, 데이브.”

누가 봐도 막 일어난 사람 같은 몰골을 한 데이브가 내가 있는 부엌으로 다가왔다.

의자에 걸터앉은 데이브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물.”

“물 달라고?”

“……어.”

데이브가 목이 가는 날도 있구만.

같은 그룹 활동을 하다 보니까 녀석의 몰랐던 일면들을 하나하나씩 알아 가게 된다.

여기에 나름의 재미가 있긴 한데.

이런 말을 하면 데이브는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면서 화낼 게 뻔했기 때문에 일부러 말을 아꼈다.

“오늘부터 당분간 쭉 쉴 텐데, 뭐 하면서 지낼 거야?”

데이브한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데이브의 대답은 간단했다.

“집으로 가야지. 아이리스를 혼자 오랫동안 놔두니까 걱정도 되고.”

여전히 녀석은 착한 오빠였다.

아이리스를 걱정하는 마음은 아마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것 같다.

내가 준 물을 마신 데이브가 힐긋 나를 봤다.

“너는?”

“나?”

“나만 말하면 뭔가 억울하니까.”

나에 대한 라이벌 의식도 여동생 사랑만큼 오래갈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남은 방송 일정들 마무리하면서 지내야지. 박물관 개장도 있고.”

이것저것 은근히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여전히 박물관에는 안 올 생각이냐?”

“어.”

“아이리스가 같이 가자고 하면?”

“……그러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그만큼 아이리스가 많이 소중한가 보다.

나는 동생이 없는 입장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누나에 대입하고 나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긴 한다.

나에게 유일한 가족은 우리 누나뿐이니까.

데이브하고 아이리스가 우리 집안 사정과 같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족애가 여기에 따라서 비례하거나 반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짐은 언제 빼게?”

“짐은 놔둘 거다.”

“그래?”

“어차피 다음 앨범 작업하면 다시 숙소로 들어와야 하잖아. 내가 보기에는 조만간일 거 같은데.”

데이브의 예상에 나는 짧은 감탄을 흘렸다.

“정확하네.”

“네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분명 머지않아서 앨범 작업에 들어가자고 말할 거 같았거든.”

“그래도 이번에는 준비 기간을 좀 여유롭게 잡아 보려고. 준서한테 한 말도 있고.”

푹 쉬게 해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그걸 벌써부터 어길 생각은 없었다.

준서가 너무 쉬어서 지루해진 나머지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딱 들 때.

그때부터 다음 앨범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내가 보기엔 한 달은 너무 길고, 2주에서 3주 사이로 보고 있다.

“데이브, 너는 어때?”

“나 뭐?”

“앨범 작업 들어가는 거에 대해서. 너도 준서처럼 더 길게 쉬고 싶은 쪽이라면 말해 줘.”

“아니, 나는 바로 작업에 들어가도 상관없다. 쉬고 있어 봤자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니까. 그 시간 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을 더 하는 게 도움이 되겠지.”

이런 면에서 나와 데이브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부지런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서로 상극인 듯하면서도 이런 면들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신기하게 느껴진다.

“알았어. 그러면 니암하고 딜런한테도 한번 물어보고, 그다음에 구체적으로 앨범 작업 시기 정해 볼게.”

“알았다. 정해지고 나면 그때 연락해도 된다.”

“알았어.”

간단하게 물만 마신 데이브는 다시 자기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미리 챙겨 든 아침 메뉴들을 들고서 거실로 향했다.

TV를 틀자, 어제 우리가 펼쳤던 마지막 전국 투어 콘서트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예인의 콘서트 활동이 이런 식으로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우리가 그만큼 많이 유명해졌다는 뜻이겠지.’

기분 좋은 현상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 * *

콘서트 일정이 끝나고.

나는 그동안 미뤄 뒀던 내 개인 일정들을 소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박물관 개장이다.

데이브를 제외한 HTB 멤버들과 아이리스가 자리에 앉아서 박물관 개장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하는 소감 발표를 귀담아들었다.

“그동안 창고에 보관해 두기만 했던 제 컬렉션을 일반분들에게도 같이 보여 드리고, 어떤 아이템들을 얻었는지 알려 드리고자 이런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은 그 당시의 시대를 나타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수집해 온 아이템들을 보시고 인류 역사에 레이드 시대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늘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이드 시대를 기억하자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방심하지 말자라는 의미도 있고.

그리고 그 당시에 목숨을 잃은 헌터들의 숭고한 희생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취지도 담겨 있었다.

사람들도 내가 어떤 의도에서 방금과 같은 말은 했는지 아마 다 알 것이다.

그렇게 개장 행사를 마친 뒤.

처음으로 일반 사람들의 입장이 개시되었다.

나는 입구에 선 채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10분 정도 짧게 관람객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인사를 마친 뒤, 행사에 참여한 내빈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쭉 돌렸다.

HTB 멤버들과 아이리스도 빼놓을 수 없었다.

“와 줘서 고맙다. 근데 데이브는?”

“오빠는 스케줄이 따로 잡혀 있어서 못 왔어요. 만약에 일정이 없었더라면 제가 강제로 끌고 왔을 텐데. 아쉬워요.”

“신경 쓰지 마.”

데이브가 아이리스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스케줄을 잡은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살짝 들긴 했다.

정확한 내막은 데이브 본인만 알고 있겠지, 뭐.

애초에 데이브가 올 거라는 기대도 크게 안 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기는 게 나아 보였다.

준서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형! 저희도 들어가서 봐도 되는 거죠? 네?”

“원 없이 봐. 제한 시간 같은 건 없으니까?”

“네!”

준서가 니암하고 딜런을 데리고 박물관 안으로 향했다.

입장하는 관람객들 중에서 헌터들도 상당수 보였다.

헌터다 보니 아이템에 관심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일반인들보다 헌터들이 박물관 개장을 더 오랫동안 기대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아이리스도 그런 모양인지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오빠, 저희도 같이 구경하러 들어가요.”

“나는 구경할 필요가 없지 않나.”

애초에 내 아이템들인데.

나는 박물관을 개장하기 전부터 지겹도록 아이템들을 봐 왔었다.

설명문을 읽지 않아도 어느 아이템이 어떤 옵션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다 꿰차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리스의 고집은 쉽게 꺾을 수 없었다.

“자주 본 아이템이라도,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보다 박물관에 번듯하게 진열되어 있는 상태로 보면 더 새롭잖아요. 어서 가요, 오빠.”

“알았어. 갈게, 간다고.”

데이브가 왜 아이리스 앞에서 쩔쩔매는지.

나도 이제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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