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장. 특별 콘서트 (1)
얼마 전에 아이리스와 함께 촬영했던 ‘웨딩 라이프’가 방송을 타는 날.
아무리 바빠도 내가 출연한 작품들은 웬만하면 그 시간에 직접 시청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당시에는 녹화가 잘되었다고 생각해도, 막상 방송으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은근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와 아이리스가 출연하는 ‘웨딩 라이프’의 경우에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화제성이 굉장히 높았다.
사람들의 이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는지 어떤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물론 검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그래도 본방송은 또 의미가 많이 다르니까.
오늘을 위해서 저녁 스케줄을 비워 두길 잘했다.
TV 앞에 앉아서 ‘웨딩 라이프’ 채널에 고정시켜 두고 간단하게 심심한 입을 달래 줄 수 있는 간식거리 몇 개를 챙겼다.
나와 아이리스가 처음으로 집을 방문하는 장면부터 송출되었다.
잔잔한 BGM이 깔리면서, 밑에 ‘첫 신혼집을 찾은 새신랑, 새신부’라는 자막이 같이 달렸다.
나하고 아이리스가 신랑, 신부 소리를 들으니까 뭐라고 해야 좋을까.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영화 ‘사랑길’을 촬영하면서 아이리스와 이런 식으로 엮이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네.’
역시, 인간 관계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학문과도 같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방송이 끝나자마자 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원래는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영상에 달리는 댓글들 같은 거 웬만하면 잘 안 보는 편이 좋긴 하다.
좋은 댓글이 많더라도 악플 하나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HT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체적으로 계약하고 데뷔 준비를 하고 있는 가수 연습생들에게 늘 그렇게 말한다.
데뷔하고 나면, 인터넷에 너무 심취해 있지 말라고.
하지만 자신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반응이 어떤지 살필 때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다.
전문가들의 입장과 대중이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문가들이 아닌 대중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
결국 소비해 주는 사람은 팬들, 즉 대중이기 때문이다.
나도 꼭 시청자들의 반응은 살피는 편이다.
일단 내가 보기엔 방송은 잘 뽑힌 거 같은데.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qpeio24 : 와!!! 웬만한 연애 프로그램들보다 달달해서 죽을 지경이었어 ㅜㅜㅜㅜㅜㅜ]
[reio0403 : 이 커플 강력 지지합니다.]
[vncb381 : 또 이렇게 조합해서 웨딩 라이프 촬영 안 해 주려나? 개재미있는데. 오랜만에 몰입해서 봤네 ㅋㅋㅋㅋㅋ]
전체적으로 괜찮았다는 편이 압도적이었다.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웨딩 라이프’ 담당 PD한테서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태오 씨, 방송 보셨나요?
“예, 방금 봤습니다. 사람들도 재미있게 본 거 같더라고요.”
-네! 주변에서 막 연락 오고 난리도 아닙니다.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는 무조건 찍을 거 같던데요?
내일이 되면 전체적인 시청률이 나올 테니까.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인터넷에 아직도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PD도 사람들 반응 덕분에 벌써부터 설레 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오 씨하고 아이리스 씨 덕분에 당분간 제가 방송국에서 어깨 펴면서 다닐 수 있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PD님께서 잘 편집해 주신 덕분이죠, 뭘.”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편집을 잘 뽑아 줬다.
BGM도 그렇고. 달달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마다 이에 맞춰서 화면 효과도 적절하게 잘 사용했다.
PD가 예전부터 연애 관련 프로그램을 자주 기획하고 연출을 맡아 봐서 그런지 어느 타이밍에 어떤 효과를 넣으면 좋을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내가 출연한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나도 시청자가 된 것처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사실 연예인 본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나도 이번 ‘웨딩 라이프’를 통해서 정말로 오래간만에 이런 기분을 느꼈다.
뭐랄까.
“PD님하고 스태프분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내 솔직한 감상을 표현하자, PD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태오 씨. 만약 다음에 또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신다면, 제가 정말 잘해 드릴게요!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요!
매번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들마다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된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끔은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로 마무리가 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두 개씩은 꼭 있는 거 같다.
뭐, 세상 사는 사람들이 모두가 다 죽이 잘 맞는 건 아니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PD와 통화를 마치고 나니까 아이리스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빠, 방송 봤어요?
“어, 방금 챙겨 봤어.”
-너무 예쁘게 잘 나왔더라고요. 저, 이거 VOD로 다운받아서 소장하려고요.
아이리스가 본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소장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난생처음 들어 봤다.
“영상이 잘 만들어지긴 했지.”
-그것도 그건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아이리스가 다시 수줍어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빠하고 같이 출연한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더 소장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런 거라면 ‘던전탐험대’도 있잖아.”
-그건 저하고 오빠하고 둘이서만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아니잖아요.
하긴. 맞는 말이다.
그때는 나빈이도 있었고, 다른 연예인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웨딩 라이프’의 경우에는 온전히 나와 아이리스, 단둘에게만 포커싱이 맞춰져 있으니까.
아이리스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면 나도 따로 다운로드받아 둘까?”
-그렇게 해요, 오빠.
“알았어.”
이번 방송은 내게 있어서…… 아니, 나와 아이리스에게 있어서 정말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 * *
‘웨딩 라이프’ 열풍 덕분에 기세가 약간 꺾였던 영화 ‘사랑길’이 다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오게 만들기 시작했다.
‘웨딩 라이프’를 통해서 우리 두 사람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를 수박 겉핡기식으로 맛봤다면, 영화 ‘사랑길’은 본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연애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마케팅 효과를 누리게 된 영화 ‘사랑길’.
덕분에 오랜만에 오세평 감독과도 짧게 연락을 나누게 되었다.
승훈이 형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 줬다.
카페에서 주문했던 커피를 가져온 승훈이 형이 내게 뒤이어 물었다.
“오 감독님이 뭐라셨는데?”
“앞으로 ‘웨딩 라이프’처럼 아이리스하고 같이 가상의 커플로 엮일 수 있는 연애 프로그램 같은 거 있으면 자주자주 나가 달래요.”
“그 감독님도 참 솔직하신 분이네.”
“형도 솔직한 사람이 좋다면서요.”
“뭐, 그렇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봤자, ‘웨딩 라이프’ 출연 한 번의 효과보다 못 미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방송이 송출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면, 사람들한테 그 방송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오긴 했었나 보다.
배우로서의 나도 좋지만.
가수로서의 나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본업은 가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오랜만에 HTB 멤버들과 모여서 다음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HT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니까. 그래서 앨범 활동 기간이든 아니든 항상 회사에 나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다르다.
스케줄이 없을 때에는 굳이 회사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준서나 니암, 딜런. 이렇게 셋은 일정이 없어서 숙소에서 편히 쉬면서 어디 놀러 다니거나 이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데이브는 쉰다기보다는 나처럼 계속해서 방송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데이브, 그 녀석도 참 부지런한 녀석이란 말이지.’
회사 입장에서는 데이브 같은 인기 있는 방송인이 스스로 자처해서 스케줄을 소화하려고 하니까 당연히 좋긴 한데.
그래도 우리 회사가 돈이 아쉬운 회사는 절대로 아니니까.
그냥 데이브도 즐길 만큼 즐기면서 방송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아이리스 때문에 그런가. 요즘은 데이브 걱정까지 하게 되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내 속을 모를 정도니까.
“맞다. 형, 우리 누나랑 저번에 밥 같이 먹었을 때 뭐 추가로 약속 같은 거 안 잡았어?”
“약속?”
“애프터 말이야, 애프터. 누나가 밥 먹자고 먼저 형한테 연락했으니까. 이번에는 형이 먼저 누나한테 애프터 신청하고 그래야지. 언제까지 누나한테 다 맡길 수는 없잖아.”
“아니, 그래도 아송 씨도 많이 바쁠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시간 내게 만들면 좀 미안하지 않나…….”
“오히려 누나는 그걸 바라고 있을걸.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해. 아, 그리고 내가 이런 말 했다는 거 누나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고. 알았지?”
“뭐, 알았어.”
형은 내가 왜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나는 이 두 사람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거였다.
승훈이 형하고 우리 누나를 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왜 요즘 연애 프로그램을 보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내 연애보다 남의 연애 보는 게 더 재미있긴 해.’
우리 누나가 이런 내 말을 바로 근처에서 들었다면, 분명 한 소리 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재미있는 걸 어쩌라고.
승훈이 형하고 그렇게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 멤버들이 하나둘씩 회사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우리 최용하 프로듀서하고 A&R 담당인 양석정 팀장, 그리고 마케터와 비주얼 디렉터, 팬 매니저까지.
HTB 그룹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불렀다.
“이제 다음 앨범 방향성을 정할까 하는데요.”
회의를 주최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라고 물으려고 하기 전에.
팬 매니저가 먼저 손을 들었다.
“저기, 대표님,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네. 말해 보세요.”
우리 팬 카페를 비롯해서 HTB 팬덤 관리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는 팀의 대표이기에 우리가 모르는 팬들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의견이 중요하다.
팬 매니저가 머릿속에 교차하는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한 뒤, 굉장히 신경이 쓰일 만한 말을 꺼냈다.
“팬분들이 HTB 단독 콘서트는 계획이 없냐고 계속 문의를 주셔서요. 그거 말씀드리려고 한 겁니다.”
콘서트라.
그러고 보니 안 한 지 꽤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