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15화 (215/250)

제56장. 웨딩 라이프 (4)

아이리스와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난 뒤.

거의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무리 가상의 부부처럼 신혼생활을 하기 위해 이 집에 잠시 입주했다 할지라도 같은 침대, 같은 이불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방송이니까.

물론 요즘 예능 트렌드가 자연스러운 장면을 그려 내기 위해서 최대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연출을 자주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렇다 할지라도 진짜 부부처럼 한 방을 쓰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많은 이슈…… 아니,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잘 때에는 각방을 쓰기로 한 거였다.

자기 전에 카메라를 켜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붙이고 난 뒤.

아침에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비교적 몸이 가벼웠다.

‘잠자리가 낯설어서 많이 피곤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몸도 가벼웠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상태로 일어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지개를 켜고서 허리를 세운 뒤에 정좌를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늘 하는 의식 같은 거였다.

이렇게 자세를 잡고 주변에 떠도는 마나를 운용하면, 정신 집중도 잘되고. 그리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이 이후에는 10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다.

몸도, 마음도 이렇게 풀어 줘야 가벼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아주 잠깐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거치 카메라 쪽에 시선을 던졌다.

깜빡깜빡.

붉은색의 작은 불빛이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작동 잘되고 있나 보네.’

카메라를 자주 만진 편이 아니었기에 전원 버튼을 켜면서도 이게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건지 내심 걱정되긴 했었다.

뭐, 화면에 불이 안 들어오면 내가 스태프들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우리 집을 방문해서 알려 줬을 것이다.

내 방 쪽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방을 나와서 1층 거실로 향했다.

오전 7시.

비교적 이른 시간이다.

아직 계절이 계절이라서 그런 걸까. 7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시간이 조금 지나자, 출근 도장을 찍기 위해 태양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리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아침은 어제 사 둔 걸로 대충 만들면 되겠지?’

냉장고 안을 살폈다.

어제 먹다 남은 재료들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아니면 미니 햄버거라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고기도 아직 남았으니까.’

고기를 구워서 그 위에 어제 남긴 샐러드를 올리고, 계란 하나 구워서 소스와 함께 올리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조식이 될 것이다.

요리를 즐겨 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취를 하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간단하게 끼니 해결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

아이리스가 어제 늦은 시간까지 내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줬으니까.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오늘 아침은 내가 손수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고기를 구우면서 동시에 수프를 끓일 준비까지 서둘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계단 쪽에서 작게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 안에 있는 사람은 현재 나와 아이리스, 둘뿐이다.

내가 아니면 계단에서 저렇게 소리를 내면서 내려올 사람은 아이리스밖에 없다.

예상대로 아이리스가 졸린 눈동자를 억지로 위로 추켜올리면서 내게 늦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요, 오빠?”

잔뜩 잠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어, 너는?”

“전 잠 좀 설친 거 같아요.”

“왜?”

아이리스도 나와 마찬가지로 낯선 곳에서 잠이 잘 드는 편으로 기억한다.

아이리스뿐만 아니라 헌터들 대부분은 그렇다.

몬스터와 몇 날 며칠 전투를 펼쳐야 할 때가 있으면, 필요에 따라서 산속이든 해변가든, 어디서든 먹고 자고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싸우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휴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때문에 아이리스는 처음에 많은 고생을 했었다.

나중에 데이브한테 들은 거지만, 원래 아이리스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못 자는 타입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헌터로 각성하고 활동하면서부터 이 스타일이 거의 강제적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아이리스의 이런 스타일이 다시 복귀했나 보다.

아니면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잠을 잘 못 잤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카메라를 통해서 내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잠이 안 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졸리면 더 자도 되는데.”

“아니요. 괜찮아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잤어요. 오빠는 아침 만들고 계시는 거예요?”

“어.”

원래 귀찮으면 아침은 그냥 거르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방송이니까. 웬만하면 삼시세끼 다 챙겨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좋다.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다 방송 소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저도 도울게요, 오빠.”

“괜찮아. 앉아 있어.”

“저 혼자 앉아 있으라고 하면 오히려 더 불편해요. 간단한 거라도 돕게 해 주세요.”

아이리스의 고집을 쉽게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의 상황 자체가 방송으로 나갈 예정이니까.

아이리스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일거리를 주는 게 좋아 보였다.

그리고 요즘은 어느 일 하나를 하더라도 부부가 다 같이 합심해서 일궈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부부라는 느낌을 더 명확하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 그러면 수프 좀 끓여 줄래?”

“네, 잠시만요. 안에 들어갈 재료들은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아니, 나는 그냥 기본대로 먹으려고 했는데. 뭐 넣고 싶은 거 있으면 넣어도 돼.”

“그럼 제가 임의대로 할게요.”

아이리스도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다.

그래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요리를 잘한다고 보면 된다.

나야 뭐, 일찍 일어나서 미리 주방을 차지한 탓에 본의 아니게 메인 셰프가 된 거지만.

원래는 아이리스가 이 자리를 맡았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사이좋게 아침 식사를 차려 가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이 프로그램은 끝이 날 예정이다.

그래서일까.

숟가락을 든 아이리스의 손동작이 오늘따라 굉장히 느릿하게 보였다.

“계속해서 이런 나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아이리스의 혼잣말을 접수한 나는 농담조로 한마디를 던졌다.

“간접 프러포즈 하는 거야?”

아이리스의 얼굴이 급격하게 빨개지기 시작했다.

“놀리지 마세요, 오빠.”

“미안.”

토라진 아이리스의 모습도 귀엽다.

우리 둘 사이에 열애설이 하도 자주 나다 보니, 아주 가끔은 ‘내가 아이리스하고 정말 사귀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 중 일부는 실제로 우리 둘이 사귀는 줄 알기도 했고 말이다.

스캔들 기사가 지닌 여파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연예인들이 참…… 고충이 많아.’

역시 직접 그 입장이 되어 봐야 어떤 심정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 * *

‘웨딩 라이프’ 마지막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스태프들이 집에 설치해 둔 카메라들을 회수하는 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이 와중에 아이리스는 여전히 아쉬움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빠, 다음에도 이런 기회 있으면 같이 출연할래요?”

나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스와는 예전부터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같은 지붕 아래에 1박 2일 동안 함께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제대로 연애를 못 해 본 나에게 연애라는 설레는 감정을 오랜만에 심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아이리스도 이번의 경험을 좋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나도 마음이 편했다.

대신에 한 가지 큰 난관이 존재한다.

“데이브한테는 제대로 허락 받아 둬.”

“걱정 마세요. 오빠도 알잖아요? 저희 친오빠가 저한테 꼼짝 못 한다는 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주 가끔씩 데이브가 불쌍하게 느껴지곤 한다.

아무튼 이것으로 인해 이전부터 기획이 잡혀 있었던 ‘웨딩 라이프’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퇴근하기 전에 PD가 우리들을 찾아와서 고생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1박 2일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혹시 지내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나요? 저희가 녹화 끝날 때마다 출연자분들한테 항상 피드백을 받으려고 하거든요.”

문제가 있었다면, 다음 녹화 때 개선해서 좀 더 편안한 환경 속에서 출연자들이 방송에 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태도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딱히 없었습니다. 다음 커플은 어느 분들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만 해 주셔도 충분할 거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수고 많으셨고, 나중에 제가 따로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그때 뵙도록 하죠.”

“네, PD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PD를 비롯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촬영 장비를 들고 따라다녔던 스태프들과도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방송이 끝나는 때에 맞춰서 현장으로 돌아온 승훈이 형이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줬다.

“고생했다, 태오야.”

“고생이랄 것도 없었어. 오히려 쉬다가 온 느낌이던데?”

“그래? 아이리스하고 같이 지낸다고 하길래 나는 네가 긴장 많이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리스가 아니라 다른 여자 연예인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친한 오빠, 여동생 사이라는 게 이럴 때에는 또 큰 도움이 된다.

“형은, 하루 종일 뭐 했어?”

“나? 그게 말이다…….”

갑자기 승훈이 형이 말끝을 흐리기 시작했다.

말뿐만 아니라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려는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나에게 뭔가를 숨기려고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뭔데. 나 없는 사이에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잘못……이라고 해야 하나. 애매한데.”

끝까지 말을 아끼려고 했던 승훈이 형이었지만, 내 닦달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1박 2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토하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에 갑자기 아송 씨한테서 연락이 와서.”

“우리 누나 말하는 거야?”

“어. 마음에 드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혼자 가기에는 애매할 거 같아서 나한테 시간 괜찮냐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무조건 된다고 했지.”

역시 승훈이 형다운 대답이었다.

우리 누나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여자가 먼저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해 왔는데, ‘바쁩니다.’ 하고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승훈이 형이 굳이 여기에 1박 2일 동안 붙어 있어 봤자 특별히 처리해야 할 일도 없었고. 필요한 거 있으면 스태프들이 알아서 다 해 주니까.

그래서 승훈이 형은 잠시 시간이 나는 틈을 이용해서 우리 누나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왔다고 내게 실토했다.

“미안하다, 태오야. 너한테 말이라도 해 주고 갔어야 했는데.”

“미안할 게 뭐 있겠어. 그나저나 우리 누나가 먼저 연락했단 말이지?”

누나, 그렇게 안 봤는데.

남자한테 관심없는 척하더니만, 의외로 이런 건 적극적으로 하는구만.

아무래도 나하고 아이리스보다 우리 누나하고 승훈이 형이 ‘웨딩 라이프’ 다음 회차에 출연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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