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14화 (214/250)

제56장. 웨딩 라이프 (3)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힐링 방법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주로 먹는 것으로 힐링 타임을 보내는 때가 많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지만, 헌터 훈련소 시절부터 마지막 게이트가 닫히기 전까지 계속해서 몸을 놀리는 일을 해서 그런지 요즘은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신다.

드래곤을 때려잡고 거의 쉬는 기간 없이 바로 가수로 데뷔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쉴 때 쉬더라도 뭔가를 같이 진행하면서 쉬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이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까 카페에서도 그렇고.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 지나가는 거 보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마카세 집에서도 이와 비슷했다.

셰프가 직접 초밥을 만들어 주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아이리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가게를 나오고 나서 나한테 너무 재미있었다고 여러 차례 말을 했다.

“다음에는 촬영 없을 때 한 번 더 가요, 오빠.”

“그럴까?”

아이리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아서 나도 다행이었다.

카메라가 꺼져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한 거니까, 방송용 멘트로 한 말은 아니겠지.

나중에 둘이서 따로 가는 것도 좋긴 한데.

“데이브가 이거 가지고 뭐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밥 먹으러 가는 건데요, 뭘. 그걸로 뭐라고 화내면 제가 오히려 화낼 거예요.”

데이브는 아이리스한테 꼼짝도 못 하는 녀석이니까.

여동생이 화를 내면, 아마 찍소리도 못 할 것이다.

아니면 나중에 데이브하고 같이, 셋이서 먹으러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그건 데이브가 싫다고 할 거 같아서 그냥 아예 말을 안 꺼내기로 했다.

그렇게 점심 식사 촬영을 마친 우리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소화도 시킬 겸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서울을 벗어나서 인천 쪽으로 차를 쭉 몰아갔다.

항구 근처에 차를 댄 나는 아이리스와 함께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이렇게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치유받는 그런 느낌이다.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해상 던전 열렸을 때 진짜 힘들었는데…… 이런, 미안. 나도 모르게 그때 시절 이야기가 나왔네.”

“괜찮아요, 오빠. 그때는 저도 있었으니까요. 저도 그 해상 던전 생각만 하면 진짜 별의별 이야기가 다 튀어나와요.”

바다에서도 던전이 나타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려 준 케이스였다.

차라리 지상이었더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긴 한데, 바닷속이면 답도 없다.

그래서 우리도 한동안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몇 날 며칠 회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지금의 협회장이 참 고생을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난 다음에 바다를 보니까 기분이 굉장히 오묘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동시에 그때는 어떻게 그 위기를 헤쳐 나갔는지 내 자신이 참 대견스러워지기도 했다.

아이리스가 살짝 마이크를 가리면서 나한테 속삭였다.

“레이드 시대 때 이야기는 웨딩 라이프에 나오는 다른 커플들은 못 하는 거잖아요. 저희만 할 수 있는 토크니까 오히려 제작진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레이드 시대가 끝난 지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람들은 몬스터, 아이템,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매우 많은 편이었다.

여전히 그때에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제작될 정도니까.

이것만 봐도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아픈 기억이니까.

그 아픈 상처가 쉽게 아물 리가 없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그리고 아이리스도 일부러 의식한 것도 아닌데 먼저 던전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걸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기억들로 계속해서 덧씌워 나가야 하는데.’

그래야 나중에 할 말이 없을 때가 오더라도 지금처럼 바로 던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쯤 오게 될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 * *

바다도 보고.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어시장 구경도 하고.

의외로 볼거리가 꽤 되는 편이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까 딱 저녁 준비하면 될 만한 시간이 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미리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내가 고기를 굽고, 아이리스가 나머지 요리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날씨가 좀 괜찮았더라면 마당에서 식사를 했을 텐데.

아직 그러기에는 추위가 덜 풀렸다.

물론 밖에서 먹으라면 먹을 수는 있다. 헌터 시절에는 이것보다 더한 악조건 속에서 식사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음식이 금방 식을 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태프들이 고생한다.

내가 엄청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고생하는 스태프들 정도는 충분히 챙겨 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함께했었던 던전탐험대 제작진한테 단체로 패딩을 선물하기도 했고 말이다.

설마 이 일이 기사화가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덕분에 사람들한테서 인성도 SSS급이라면서 한동안 대인배 소리를 듣고 다녔었다.

이미지 메이킹도 하고, 돈 쓴 보람이 있었다.

반대로 스태프들에게 욕먹는 행동은 가급적 삼가는 편이 좋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내가 혹여나 나중에라도 무슨 구설수에 올랐다 싶으면 스태프들이 실드를 쳐 주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오히려 같이 협공하거나, 둘 중 하나로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태프들도 결국은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부터 잘 챙겨 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실내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빠, 이거 맛 한번 봐 주실 수 있어요?”

아이리스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샐러드를 아주 조금 덜어 낸 다음에 그것을 내게 직접 먹여 줬다.

“어때요?”

“괜찮네. 적당히 시큼하고.”

“그러면 소스는 이 이상 안 넣을게요.”

“어, 양도 그 정도면 괜찮아. 어차피 우리, 먹을 거 많이 있으니까.”

고기에 파스타에 빵에 양송이수프까지. 이걸 둘이서 다 먹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양이 꽤 된다.

푸드 파이터를 나가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이리스도 내 충고대로 할 생각인 모양인지 여기서 더 이상 양을 늘리진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우리들이 먹을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세팅되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내가 직접 스테이크를 썰어 아이리스의 접시 위에 올려 줬다.

“미디엄 레어로 구웠어.”

“오빠, 제가 이렇게 먹는다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고기를 굽기 전에 아이리스는 나한테 굽기 정도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없었다.

내가 임의로 구운 것이다.

정보 출처가 따로 있었다.

“데이브가 말해 줬지.”

“저희 오빠가요?”

“어, 멤버들끼리 숙소 생활 할 때 가끔씩 외식하곤 했었거든. 고기 먹으러 갔을 때 데이브가 말해 줬어. 자기 여동생은 미디엄 레어 아니면 안 먹는다고.”

“오빠가 별일이네요. 제 이야기를 다 하고.”

사실 ‘내 여동생이 그 정도로 까탈스러운 성격이다.’라는 뉘앙스로 말한 거였긴 했는데. 아이리스한테 굳이 이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일부러 말을 아꼈다.

내가 한번 살려 준 거다, 데이브. 나중에 은혜 갚아라.

* * *

저녁 식사까지 마무리를 지은 뒤에 우리들은 2층 테라스로 올라가서 가볍게 와인 잔을 부딪쳤다.

모처럼 이렇게 좋은 풍경을 지닌 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냥 자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이렇게나마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미 방송 분량은 충분히 뽑았고. 그래서인지 PD도 굳이 우리 둘이서 술 마시는 것까지 촬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줬다.

직역하자면, 녹화 고생하셨으니까 이후에는 스태프들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즐기시라는 뜻이었다.

“자기 전에 카메라 켜 두면 된다고 했었지?”

“네. 아침에 일어나는 거 찍고 싶다고 PD님이 그러셨으니까요.”

“너는 괜찮아? 생얼로 나갈 텐데.”

“괜찮아요. 생얼도 자신 있거든요.”

아이리스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나도 예전에 아이리스의 생얼을 자주 본 적 있었다.

어떻게 그런 걸 봤냐 묻는다면…… 헌터 활동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아까 잠시 언급되었던 해상 던전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화장을 해도 당연히 바닷물에 지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여성 헌터들 중에서 얼굴 화장에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말이다.

물론 몇몇은 있긴 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난 다음에 기자들 앞에서 어떤 과정으로 몬스터들을 제압했는지 설명해야 할 때, 그때 맨얼굴이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헌터들은 기초화장 정도는 하고 나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달랐다.

몬스터의 출몰로 인해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싶으면 그냥 나간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헌터들이 아이리스의 생얼을 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리스의 미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전장의 여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아이리스는 그 별명을 굉장히 싫어했다.

헌터로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지, 미모로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뭐, 헌터가 아니라 연예인으로 활동 중이니까. 미모도 중요한 스펙이라는 것을 아이리스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들,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닌데 진짜 산전수전 다 겪었네.”

“오빠는 헌터로 활동했던 거, 후회 안 해요?”

후회라.

사실 이런 질문들을 사람들에게 곧잘 듣는 편이었다.

사람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난다고 하는 20대 청춘을 고스란히 몬스터와 게이트에 바친 셈이니까.

만약에 내가 헌터로 각성하지 않았더라면, 남들처럼 평범함 삶을 살았더라면 그때의 시간이 좀 더 유의미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 번쯤은 해 본 적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후회는 안 해.”

만약 각성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언제 데뷔할지 모르는 연습생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손등에 새겨진 각성 문양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게 내 인생을 역전시켜 준 은인이지.”

전 세계 유일한 SSS랭크 헌터, 강태오.

그 시절을 기반으로 나는 다시 연예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톱스타로서의 인지도를 계속 굳혀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성 능력을 얻었을 때, 그때가 나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들이 찾아올 것이다.

성공으로 향하는 기회들.

나는 이번에도 그것을 강하게 움켜쥘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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