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웨딩 라이프 (2)
마트에 들르기 전에.
“카페부터 먼저 들를까?”
내가 아이리스에게 제안을 했다.
운전하다가 보니까 마트 옆에 눈에 띄는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서 커피 음료를 마시는 게 사람들한테는 일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일상이 아니었다.
헌터로 활동할 시기에는 언제든 긴급 출동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마음 편히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에는 연예인으로 활동하다 보니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탓에 제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러면 카메라 앞에서 커피를 마셔도 내가 바라는 여유와 거리가 먼 자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있으면 이런 장점이 있다.
‘사람들이 촬영이라는 걸 아니까 나한테 먼저 팬 서비스를 바라고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지.’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차라리 촬영 도중에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내가 노리는 게 바로 이거였다.
아이리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든 모양인지, 내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그러죠, 오빠.”
어차피 카페가 바로 마트 옆에 붙어 있으니까, 차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할 필요 없이 그냥 마트 주차장에 정차시키기로 했다.
차를 세우자마자 우리들을 뒤따라왔던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들고 같이 합류했다.
집에 있을 때에는 관찰 카메라가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니까 큰 문제가 없는데.
밖을 돌아다니는 순간까지 관찰 카메라에 의지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갈 동선에 일일이 다 카메라를 설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내가 아닌 야외의 경우에는 카메라를 설치할 장소가 별로 없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처럼 집이 아닌 밖을 돌아다닐 때에는 스태프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가게에 있던 손님들과 직원들이 우리를 보고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친근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러자 가게 사장이 바로 튀어나와서 내 인사를 받아 줬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들이 저희 카페에는 어쩐 일로…….”
카페에 오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커피 마시러 왔죠.”
“아, 아하! 그렇군요!”
잠시 촬영을 중단한 뒤에 스태프들이 따로 가게 사장과 촬영이 가능한지에 대해 합의를 보고 시작했다.
카페 사장은 ‘당연히 가능하죠!’라는 말로 흔쾌히 촬영을 허락했다.
대부분은 매장 홍보를 위해서라도 방송 촬영에 오케이를 하는 편이었지만, 간혹 자신의 가게가 방송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장님들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미리 의사를 물어보는 편이 좋다.
방송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프로그램의 입장만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허가를 구한 다음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구석 쪽에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 세팅이 끝나고.
나와 아이리스는 아까 카페에 들어왔을 때의 장면을 그대로 이어서 음료를 주문하는 모습까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를 펼쳤다.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딸기라떼요. 요즘 단게 땡기더라고요.”
아이리스는 예전부터 단 음식, 정확히는 디저트류를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나 몬스터하고 대판 전투를 벌이고 나서 복귀하면 부족한 당분을 채워야 한다고 혼자서 케이크 하나를 통째로 해치우는 모습도 보였다.
입은 작은데, 단 음식에 한해서는 오히려 대식가 수준으로 먹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여자들은 식사 배하고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아이리스는 디저트 배가 일반인의 2~3배 정도 되는 거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다른 여자들도 아이리스의 몸매 유지에 굉장히 많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심지어 같은 헌터들조차도 그렇다.
이번에도 아이리스는 케이크를 놓칠 수 없다면서 카페에서 파는 조각 케이크를 추가로 두 개 주문했다.
“오빠도 같이 먹어 볼래요?”
그렇게 말하더니, 포크로 조각 케이크 끄트머리를 살짝 잘라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아~ 하세요. 아~.”
“…….”
잊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동안, 우리들은 평소의 아는 오빠, 아는 여동생 관계가 아니라 가상의 부부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물론 굳이 카메라 앞이 아니더라도 아이리스의 성격상 이렇게 하긴 할 거 같지만.
그래도 뭐, 돈 받고 방송하는 거니까.
아이리스의 제안을 거절할 순 없었다.
“아…….”
입을 크게 벌리면서 아이리스가 직접 건네준 조각 케이크를 삼켰다.
한편,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들의 애정 행각(?)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아까보다 훨씬 더 반짝이고 있었다.
원래 남의 연애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연애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뜨고 있는 것이다.
스태프들도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이 방송의 PD가 가장 흡족해하는 중이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장면이 방금과 같은 장면일 테니까.
수요에 걸맞은 공급이 나왔다고 보면 된다.
케이크를 먹고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것도 좋네.’
매번 시끌벅적한 곳에만 있다가 이런 식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에 오게 되니까 시간 자체가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오늘에서야 말 그대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서 나의 이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아이리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빠, 여기 카페, 마음에 많이 들었나 보네요.”
“분위기도 좋고.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아. 너는?”
“저도 그래요.”
연예인들이라면 아마 한 번쯤 이런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방송 때문에 유명해져서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사라졌는데.
오히려 지금은 방송 때문에 이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니까 우스운 상황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늘 저녁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요리는 제가 할게요.”
점심은 예약해 둔 식당에 가서 먹기로 했고.
저녁은 우리가 직접 차려서 먹을 생각이었다.
저렇게 좋은 집을 빌렸는데, 외부에서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기 구워 먹을까?”
“그럼 스테이크 굽고, 파스타하고 샐러드 해서 코스 요리처럼 먹는 건 어때요?”
“그거 좋지. 그럼 고기는 내가 구울게.”
“네, 그렇게 해요!”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리스를 보고 있자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둘이 마주 보고 앉은 채로 오늘 저녁에 뭐 먹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정말로 부부 같네.’
‘웨딩 라이프’ 촬영하다가 실제로 눈이 맞아서 연인 사이로 발전한 커플도 있다고 예전에 기사로 봤었는데.
그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 * *
마트에서 장을 본 후에 우리들은 다시 집으로 복귀했다.
우선은 장을 본 것부터 먼저 상하지 않게 냉장고에 넣어 둔 뒤.
미리 예약을 잡아 둔 가게로 향했다.
점심은 아이리스가 먹고 싶다는 것으로 먹기로 했다.
“초밥이었지?”
“네, 맞아요. 초밥.”
아이리스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동양 음식이 상당히 입맛에 맞는 모양인지, 미국 현지에 있을 때에도 일식이나 한식, 그리고 중식 식당을 자주 찾곤 했다고 그랬다.
이런 이유에서 오늘 점심도 초밥으로 확정이 된 거였다.
마침 내가 잘 아는 오마카세 집이 있다.
“거기 셰프님하고 잘 아는 사이인데, 가서 점심 먹으면 되겠네.”
“비싼 곳 아니에요?”
“비싸도 너하고 같이 식사하는 자리인데, 그 정도 돈은 낼 수 있지.”
내 말에 진한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아이리스가 손을 모은 채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고마워요, 오빠.”
“천만에. 나중에 데이브한테 잘 전해 줘. 이 오빠가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고.”
“저는 잘 알죠. 근데 그 망할 오빠가…… 죄송해요. 저희 오빠 이야기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자꾸 입이 험해지네요.”
아이리스가 차에 붙어 있는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스태프들한테 알아서 적당하게 편집해 달라는 뜻으로 한 제스처였다.
스태프들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 아이리스의 이미지에 해가 될 것 같은 장면이 있으면, 알아서 적절하게 커트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편집 과정을 거치는 거니까.
설령 스태프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재차 검수 과정을 거칠 예정이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방송으로 나갈 재미있는 장면을 잘 뽑아내는 것 정도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오마카세 가게에 도착한 우리들.
예약을 해 둔 곳이었기 때문에 오전에 갔었던 카페처럼 따로 사장에게 촬영 협의를 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고, 심지어 우리가 앉을 곳에 카메라 세팅까지 다 끝난 상황이었다.
우리는 가서 맛있게 밥만 먹으면 된다.
나와 아이리스, 둘만을 위한 자리로 향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직접 초밥을 만들어 줄 셰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두 분을 위해서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셰프님.”
내가 먼저 반가운 마음을 드러내자, 셰프도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내 인사를 받아 줬다.
“지난번에는 한창 자주 오셨는데, 요즘 들어서 뜸하시길래 저는 또 ‘내 요리가 맛이 없어졌나?’ 하고 걱정했지 뭡니까.”
“에이, 그럴 리가요. 여기는 여전히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오마카세 가게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가게, 이번에 태오 씨 덕분에 많이 홍보되겠네요.”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볼 테니까.
셰프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야겠습니다.”
초밥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입가심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사이, 셰프가 미리 준비한 신선한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이윽고 손으로 밥을 뭉치기 시작했다.
샤리라고 불리는 동작이었다.
손길 하나하나가 전문적이다.
셰프가 직접 우리가 먹을 초밥을 만들어 주면서 동시에 설명을 이어 갔다.
“이렇게 먹기 좋게 모양을 잡아 주는 겁니다. 와사비는 두 분이 말씀해 주신 대로 적당한 양을 발라 넣었습니다. 혹여나 줄이고 싶거나 더 많이 넣고 싶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제가 조절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 점을 입안에 넣는 순간.
“역시, 맛있네요.”
입안 가득 행복이 번졌다.
아이리스도 매우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이네요. 오늘은 제가 풀코스로 모실 테니까, 여러분들은 마음껏 드시면 됩니다.”
“부탁할게요, 셰프님.”
“맡겨 주세요!”
행복이 뭐 별거 있겠나.
이런 게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