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11화 (211/250)

제55장. 경매 (3)

경매장 무대 전체를 가득 채우는 글라콥의 상아를 보면서 사람들은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희귀한 값어치는 둘째 치고.

어마어마한 크기 덕분에 시선을 사로잡기에 딱 좋은 물건이었다.

저것도 중간에 잘라서 저 정도지, 만약 상아를 그대로 드러내서 가져왔더라면 여기 경매장 무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경매사가 바로 경매 진행에 나섰다.

“자, 1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작부터 억 단위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놀라기는커녕 ‘저 정도면 오히려 싸네.’라는 반응들이 대다수였다.

저게 뭐가 좋은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단지 ‘희귀하다’라는 점 하나뿐인데.

‘나중에 드래곤 잡고 나온 아이템하고 부산물 가지고 나오면, 경매장이 아주 뒤집어지겠네.’

콜렉터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쳐주는 게 바로 드래곤에 관련된 물품이다.

레이드 시대를 열었던 원흉.

그리고 내 손에 의해 토벌당하면서 강제로 레이드 시대의 종막을 알린 몬스터이기도 했다.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존재이다 보니 콜렉터들의 구미를 안 당길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아이템들은 왜 인기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나였지만, 드래곤에 관련된 물품이 지닌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매우 잘 알고 있다.

내 창고에 몇 개 보관되어 있고, 나머지는 전부 다 세계 각국에 넘겼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당연히 챙겼다.

그렇다 보니 다시 가지고 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글라콥의 상아만으로도 벌써 5억을 돌파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돈이 아쉬울 일은 전혀 없다.

“자, 11억 나왔습니다!”

벌써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그럼에도 아직 경매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혼잣말을 흘렸다.

“집에 저걸 보관해 둘 만한 장소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자 옆에 앉은 대리인이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온 사람들 모두가 돈은 차고 넘치는 이들뿐이니까 공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 만들어 낼 겁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기 때문이다.

하기야, 돈이 썩어 넘쳐 나지 않는 이상, 몬스터의 상아 따위를 억이나 주고 사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11억이면 치킨이 몇 마리야?

평생 먹을 치킨을 다 사고도 남을 것 같다.

결국 글라콥의 상아는 25억에 미국에서 온 어느 한 참가자에 의해 낙찰되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대리인이 짧게 설명해 줬다.

“전기 차 배터리 관련 업체 창업자입니다.”

“최근에 돈 많이 벌었겠네요.”

이제 내연기관의 시대가 점점 하락세를 걷게 되고, 이와 반대로 전기 차 시장은 나날이 확대되어 가고 있었다.

덕분에 전기 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업체들의 주가가 요즘 많이 뛰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 있었다.

나야 지금 타고 다니는 차들이 전부 다 내연기관을 달고 있다 보니까 아직 전기 차에 대한 정보가 많진 않은데.

하여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

대리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곳 경매장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단골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오 님이 자주 쓰던 아이템들도 열심히 모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 팬인가 보네.”

“그럴 수도 있죠.”

대신에 가수 태오의 팬은 아니고, 헌터 태오의 팬인 것 같다.

가수로서의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층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양한 연령층들이 좋아한다.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다.

“괜찮다면 내 말 좀 여기 주최측에 전달해 줄 수 있어?”

“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대리인이 바로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속닥속닥.

접수를 완료한 대리인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선 곧장 경매 무대 뒤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뒤, 경매를 진행하던 경매사가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통해 뭔가를 접수했는지 잠시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짧은 통화를 마친 경매사가 글라콥의 상아를 낙찰받은 차량용 배터리 회사 대표를 찾았다.

“25번 손님, 글라콥의 상아에 태오 씨가 사인을 해서 드리고 싶다는데, 괜찮으십니까?”

사람들이 시선이 앞에 앉은 나에게 쏠렸다.

회사 대표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태오 씨!”

“천만에요. 제 물건을 아주 비싼 값에 사 주셨는데, 이 정도 서비스는 해 드려야죠.”

팬 서비스 차원에서는 맨날 해 줬던 사인이니까.

그리고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기에 나는 잠깐의 선의를 발휘하기로 했다.

‘드디어 저 커다란 상아 덩어리를 처분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어디 갖다가 버릴 수도 없고.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큰돈을 받고 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내게는 일석이조였다.

* * *

사실 경매장에 오기 전까지 큰 기대는 안 했었다.

그냥 앉아만 있다가 내가 내놓은 물건들이 얼마에 팔리는지나 확인하고. 그러고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막상 와서 직접 경매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일단 재미있다.

서로 얼마를 부를지, 치열하게 심리 싸움을 하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았다.

물론 당사자들한테 이런 말을 하면 쌍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싸우는 거 아니니까. 구경꾼 입장에서는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그리고 결국 이득을 취하는 건 나라는 점도 이 즐거움에 단단히 한몫을 차지했다.

게다가 경매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오늘 거래된 금액대가 자기네들이 주최했던 경매들 가운데에서 최고 액수를 자랑한다고 했다.

경매 주최측에서는 자신들의 행사를 좀 더 많은 사람들, 특히나 재벌들에게 홍보하고 알릴 수 있는 하루가 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말했다.

동시에 내게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까지 전했다.

나는 그냥 앉아 있다가 가기만 하는 건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나에 대한 찬양을 하니까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기 전에 나는 세련 씨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늘 세련 씨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또 이렇게 경매장에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야 그러면 좋긴 한데, 아이리스 씨한테 이래저래 미안할 거 같네요.”

“아이리스한테요? 왜요?”

“업계 내에서는 두 분을 거의 커플처럼 미는 듯한 분위기여서요. 그래서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세련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안다.

영화가 너무 흥행을 한 덕분에 우리 둘이 정말로 커플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스캔들 관련 기사가 몇 번 나간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마다 HT 엔터테인먼트가 입장문을 내면서 아니라고 여러 차례 못을 박아 두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지우지 못했다.

이쯤 되면 우리 둘의 등을 떠밀면서 대놓고 사귀라고 압박을 넣는 수준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나는 데이브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데이브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는 걸 잘 알기에 특별히 뭐라고 반응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여동생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로 계속 얽히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참…… 누구누구하고 엮는 걸 너무 좋아한단 말이지.’

혹시 눈앞에 있는 세련 씨도 그중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아주 살짝 들었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냥 문득 든 생각이다.

덩달아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조만간 아이리스하고 같이 웨딩 라이프 촬영도 하기로 했는데.’

가상의 신혼부부를 연기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그게 방영되는 순간, 나와 아이리스의 열애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도 데이브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진짜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까, 떳떳하게 나가면 된다.

물론.

‘아이리스는 진심이겠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세련 씨를 먼저 보낸 뒤에 나도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탔다.

평소에는 내가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오늘은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았기에 운전기사를 따로 불렀다.

쉬는 날에 불러서 미안하다고 하자, 내 운전기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밝게 웃었다.

공짜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오늘은 평소보다 더 높게 일당을 쳐준다고 했으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뒷좌석에 앉은 채로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더 와도 나쁘지 않겠어.’

경매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 * *

경매장에 대한 소식은 기사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여러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결국 내가 내놓은 물건들이 연달아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굉장히 비싸게 팔렸다는 내용들뿐이었다.

사실 이게 핵심 포인트니까.

기사 내용에 이것만 있다고 기자가 딱히 욕먹을 만한 짓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여기에 만족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경매가 끝나고, 나는 예전부터 아이리스와 함께 잡아 뒀던 웨딩 라이프 촬영을 위해 제작진이 미리 알려 준 장소로 향했다.

아이리스는 본인의 매니저와 함께 집에서 바로 현장으로 출발할 거라고 했고.

나는 오전에 밀렸던 업무를 소화하고 승훈이 형과 같이 차에 올라타 이동하고 있었다.

중간에 승훈이 형이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1박 2일이라고 했었지?”

“어, 맞아.”

“그래서 일부러 네 스케줄 비워 두게끔 조정했는데, 그러지 말 걸 그랬어.”

“왜?”

“웨딩 라이프 지난 편들 보니까, 거기 출연하면서 다른 프로그램 녹화하는 모습도 버젓이 방송으로 내보내곤 하더라고.”

나도 봤다.

그래도 나는 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기보다는, 1박 2일 동안 충실하게 아이리스와 같이 즐기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는 게 더 좋은 그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승훈이 형의 일 처리에 큰 불만은 없었다.

“아이리스도 일정 비워 뒀다고 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럼 둘이 1박 2일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그렇지.”

“그렇게 되면 방송으론 내보낼 만한 장면이 안 나올 거 아니야.”

집에 가만히 있으면, 방송거리가 안 된다.

소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밖을 돌아다니든가 하는 기획들을 짜야 한다.

그렇기에 승훈이 형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도 아무런 대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리스하고 이미 1박 2일 동안 뭐 할지 서로 계획 짜 뒀어.”

“그래? 언제?”

“그냥 회사나 아니면 다른 촬영 현장에서 얼굴 마주치거나 할 때.”

“그러면 다행이네.”

아이리스가 가고 싶어 하는 장소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얼굴이 워낙 알려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 집 밖에 나가도 어디 쉽게 나서지 못하니까.

대신에 방송이라면 당당하게 갈 수 있다.

이 점을 이용해서 그동안 못 가 본 곳들, 못 해 본 것들을 싹 다 몰아서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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