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장. 경매 (2)
지금까지 내가 수집한 아이템들이 잘 있나 한 번씩 쭉 둘러봤다.
우리 관리인이 아이템 관리를 잘한 덕분에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월급 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1구역 창고를 지나 2구역, 그리고 3구역 마지막 창고로 향했다.
승훈이 형이 창고 내부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여기, 조금만 증축하면 아까 관리인이 말했던 것처럼 박물관으로도 충분히 개조할 수 있겠는데.”
“그럴지도.”
건물 용도 변경이라든지 이런 잡다한 일들은 이쪽 관리 업체에 맡기면 되니까. 내가 복잡해질 만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케이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관리인의 제안이 굉장히 솔깃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하던 일에 마저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눈에 띄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승훈이 형이 3구역 창고 하나에 버젓이 걸려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건 뭐냐, 대체?”
입을 쩍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형의 리액션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승훈이 형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누가 와 있든간에 아마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승훈이 형이 보고 있는 물건은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상아. 거의 차 한 대 크기의 상아 하나가 창고 한쪽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도 아이템이야?”
“아니, 아이템이라기보다는 소재지.”
아이템을 제작할 때에는 몬스터를 통해 얻은 소재가 필요하다.
이 상아는 글라콥이라 불리던 몬스터의 것이다.
2족 보행을 하는 거대한 인간형 몬스터인데, 얼굴은 마치 멧돼지 같은 짐승형으로 되어 있는 괴물이다.
녀석은 존재 자체가 굉장히 희귀하다.
레이드 시대 역사를 통틀어 봐도 딱 세 번밖에 출몰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거대 인간형 몬스터답게 상대하기도 굉장히 힘든 편이다.
난이도가 상당했기에 글라콥을 잡을 수 있는 헌터들의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최소 S급 이상. 그 정도는 되어야 녀석을 사냥할 수 있다.
나야 뭐, 혼자서 해도 충분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희귀한 몬스터다 보니 놈의 사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소재 역시 비싼 가격에 거래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글라콥 상아는 아이템을 만드는 데에 이미 사용되었다.
현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상아가 아마 유일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템보다는 이것을 탐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거 경매장에 풀면 아주 난리 나겠는데.”
“안 그래도 그거 생각 중이었는데.”
“그거?”
“형이 방금 말한 거 말이야. 경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너무 많다.
마침 경매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어느 정도 정리할까 생각 중이다.
승훈이 형도 이에 대해 찬성했다.
“그래, 인마. 쓸모없는 거 있으면 웬만하면 팔아. 이거 다 돈이라고, 돈.”
나도 안다.
그래서 이번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생각이었다.
관리인을 따로 불러서 팔 만한 아이템이 있는지 명단을 정리해서 내게 보고해 달라고 말했다.
관리인은 아이템 감평사들을 불러서 정확하게 가치를 매긴 뒤에 검수를 해 보고, 그다음에 명단을 작성하겠다고 답했다.
‘얼마나 벌 수 있으려나?’
오랜만에 돈벌이 사냥에 나서기로 했다.
* * *
아이템은 일반 시장을 통해 유통되지 않는다.
워낙 위험한 물건인 데다 높은 가치를 지닌 보물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경매를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직접 경매장을 찾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획득한 아이템을 경매에 내놓고 대금을 수령하고, 이런 건 내 대리인에게 전부 다 맡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직접 경매 현장을 찾은 내 첫인상은 꽤나 신선했다.
“경매장이 아니라 연회장 같은 느낌인데.”
하나의 거대한 파티가 열리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비율도 꽤 된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많아 보였다.
“원래 이렇게 외국 사람들이 많이 와?”
오늘 나와 함께 경매에 참석한 내 대리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평소에는 20~30퍼센트 정도 비율밖에 안 됐는데, 오늘이 유독 많이 온 편입니다.”
“왜 그럴까?”
“아마 태오 님 덕분에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나?”
설마 했던 범인이 나일 줄은 몰랐다.
대리인은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예. 이번에 태오 님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의 대부분을 푼다는 소문이 전 세계에 거주하는 콜렉터들 사이에 쫙 퍼졌거든요. 그래서 더 몰려든 거 같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을 줄은 몰랐다.
나한테는 그냥 전리품 취급받는 물건이었는데.
콜렉터들에게는 상당한 가치를 지녔나 보다.
그래서일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내게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 경매를 꾸려 가는 주최측이었다.
내 덕분에 막대한 수수료를 얻게 되었으니. 이곳 대표가 와서 내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나는 물건을 사러 온 것도 아닌데, 본의 아니게 내가 이곳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경매장에 참가한 콜렉터들 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태오 씨!”
본격 낚시 예능 프로그램, ‘강태공들 나가신다!’에서 처음으로 연을 맺었던 유세련 씨가 고운 피부를 훤히 드러내는 드레스 차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 엄청 아름다우시네요.”
내 말에 유세련이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태공들 나가신다!’하고 ‘위대한 탈출’, 이렇게 두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마주한 적 있었는데.
둘 다 몸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유세련은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옷을 입고 나올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활동하기 좋은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 이런 걸 입고 나오곤 했었다.
그렇다 보니 오늘 유세련의 이런 모습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받은 칭찬이 있으면 주는 칭찬도 있는 법일까. 유세련도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태오 씨도 오늘 너무 멋있으세요. 평소에도 멋지시지만요.”
“감사합니다.”
원래는 집에 굴러다니는 옷가지 몇 개 대충 걸치고 나오고 싶었는데.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라고 들어서 어쩔 수 없이 턱시도를 차려입고 오전에 샵까지 들렀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그 장소에 맞는 차림은 해야 하니까. 이런 것도 매너의 일부다.
게다가 오늘은 내가 내놓은 물건들이 경매장에 많이 올라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그래서 외형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가볍게 와인 잔을 기울이면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과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격적인 경매 시간이 금세 다가오게 되었다.
내가 먼저 유세련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나와 손을 마주 잡은 유세련이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경매 현장으로 이동했다.
내 옆에 대리인이, 그리고 그 옆에는 유세련이 자리를 잡았다.
안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빈자리 없이 꽉 차 있는 자리들을 보면서 대리인이 내게 속삭였다.
“이 자리 하나당 수백에서 수천만 원은 될 겁니다.”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네.”
“다들 돈이 아쉬운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부자들의 미적 감각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딱히 없다.
내 물건들이 얼마나 팔릴지, 가만히 앉아서 이걸 구경하기만 하면 된다.
잠시 뒤.
‘강태오 콜렉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채로 경매 물품들이 하나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소개된 것은 알미냐라는 요정 타입 몬스터의 날개였다.
이 날개를 구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알미냐는 날개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놈이 곧 죽을 거 같다는 인식이 들면, 자신의 날개부터 쭉 찢어 버리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손으로 말이다.
그래서 온전한 알미냐의 날개를 보는 것은 아마 여기 있는 콜렉터들도 처음일 것이다.
유세련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무대를 바라봤다.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곧장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첫 가격부터 이미 2천만 원을 돌파했다.
억 단위에 들어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입찰 경쟁이 붙는 와중에 유세련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세련 씨는 저건 별로 탐이 안 나나 보네요.”
“탐이 나긴 하는데, 여기 있는 다른 콜렉터들처럼 저는 돈이 많지 않아서요. 그래서 필요한 것만 도전해 보려고요.”
“그래요?”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같이 동석한 대리인에게 물었다.
“알미냐 날개, 내가 몇 개 가지고 있었지?”
“저거를 제외하면 총 세 장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중에 하나, 여기 세련 씨한테 드려.”
“예?”
대리인뿐만 아니라 세련 씨도 깜짝 놀랐다.
“저한테요?”
“네, 제가 선물로 드리는 거니까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받으세요.”
“아, 아니에요! 저렇게 고가의 물건을 어떻게…….”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드릴 수 있어요.”
세련 씨의 눈빛이 반짝였다.
“고마워요, 태오 씨. 오늘 태오 씨 만난 일 자체가 행운이네요.”
내가 누군가의 행운의 요정이 될 수 있다면야. 알미냐 날개 한 장 값은 그걸로 충분히 받은 거 같다.
* * *
뒤이어 무기, 방어구류 아이템들이 등장했다.
이 중에서 사람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사로잡은 아이템은 바로 ‘그랑 소드’라고 불리는 롱소드 계열의 아이템이었다.
저 아이템이 콜렉터들 사이에서 유독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직접 사용한 아이템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랑 소드뿐만 아니라, 경매장에 올라온 아이템들 중에서 내가 한 번이라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 아이템은 적어도 값이 두 배로 뛰었다.
나는 내 손을 슬쩍 내려다봤다.
‘내가 무슨 미다스의 손도 아니고.’
손에 댔다 하면 금으로 바뀌는 것도 아닌데, 간접적으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유명인들의 손을 거쳐 가면, 그만큼 그 물건의 값어치가 오른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주인공이 내가 되니까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이다음 물건은 뭘까.
“자, 다음 물건입니다!”
물건의 정체가 공개되자마자 경매장 전체가 들썩였다.
글라콥의 상아.
원래는 저걸 팔 생각이 없었는데, 쓸데없이 내 창고 공간만 차지하는 거 같아서 그냥 경매장을 통해 팔아 버리기로 했다.
나는 콜렉터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아이템을 다 반드시 수집해야겠다는 그런 욕심은 없었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미련 없이 내가 가진 아이템을 팔 수 있었다.
글라콥의 상아를 보면서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환상 속의 존재를 만난 것처럼 황홀해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띄었다.
‘저게 그렇게 신기한가?’
나는 지겹도록 봐서 잘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