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09화 (209/250)

제55장. 경매 (1)

영화 ‘사랑길’이 해외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일정은 갑자기 바빠졌다.

영화가 잘나가니까,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을 원하는 프로그램도 꽤 많았다.

‘가수 활동할 때보다도 훨씬 더 바쁜 기분인데.’

착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일정표가 그렇게 짜여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집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노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계속 일을 이어서 하는 게 더 낫긴 했다.

원래 내가 이렇게까지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게 다 헌터 생활을 한 덕분이지.’

몬스터들은 헌터들을 쉬게 배려해 주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은 세월을 몇 년 동안 계속 보내다 보니, 이제는 몸이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정말 푹 쉬어도 되는데, 레이드 시대 때처럼 또 언제 어느 때에 긴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항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이게 내 휴식을 방해한다.

그래도 뭐, 아직까지는 이런 긴장감을 적당히 유지하고 있는 편이 좋아 보이긴 했다.

왜냐하면 레이드 시대가 끝났다 할지라도 아직 몬스터가 멸종한 건 아니니까.

최근에 오랜만에 크라겔 무리가 나타나면서 몬스터 공습 경보가 서울 전역에 퍼졌던 것처럼, 몰래 숨어 있는 놈들이 언제 지상으로 올라와 사람들을 해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당분간 이 습관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긴 했다.

이건 아마 나뿐만 아니라 헌터로 활동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다 동일할 것이다.

‘어디 보자. 오늘은 무슨 일정이 있더라?’

아이리스와 함께 부산에서 열리는 영화제 시상식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슬슬 연말이니까.’

이런 시상식 자리가 앞으로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비해서 나도 일찌감치 스케줄을 쭉 비워 뒀다.

어차피 HTB 그룹 활동이 다시 시작되려면 한참 멀었고.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솔로 앨범 안 낸 지가 좀 된 거 같은데.’

팬들이 내 솔로 앨범 언제 내냐고 많이 묻곤 했는데, 이에 대한 확답을 줄 수가 없어서 나도 참 미안했다.

솔로 활동이 재미있기는 한데, 요즘 그룹 활동 쪽에 더 재미를 붙이기도 했고.

그리고 배우 활동도 있다 보니까 솔로 앨범 준비가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솔로 앨범을 아예 안 낼 생각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여건이 되는 대로 솔로 앨범은 계속 낼 생각이다.

그 상황이 언제쯤 마련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승훈이 형이 우리 집으로 올 때까지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샵에 들렀다가 곧바로 방송국으로 넘어가면 된다고 했지.’

이제는 이런 일정이 익숙해진 덕분에 크게 귀찮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에 뭔가가 빠지면 불안하다.

시간이 좀 남은 거 같으니까.

‘아이템 정리라도 해 볼까.’

집 안 한쪽에 가득 진열해 둔 아이템들을 살폈다.

내가 현역 때 쓰던 아이템도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굉장히 고가로 거래되고 있는 아이템이지만, 정작 나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아이템도 꽤 여럿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경매장에 내놓거나 아니면 특별히 내가 소유하고 있는 아이템 중 어떤 것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넘기는 편이었다.

요즘은 게이트가 닫히고 새로운 아이템 수급처가 없어지다 보니까 아이템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아이템의 가치는 더 늘어날 게 분명하지만.

‘에이, 됐다. 가지고 있어 봤자 뭐 하냐.’

괜히 집 공간만 차지하고.

집이 더 어수선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아이템들을 정리해서 파는 게 차라리 더 좋을 것 같다.

경매장에 내다 팔 아이템들을 따로 정리하는 사이, 승훈이 형이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이템 정리하고 있었어?”

“나, 이 시간대면 웬만하면 깨어 있잖아. 형도 알면서.”

“아는데, 전화를 안 받으니까. 그래서 난 네가 나 기다리다가 잠들었구나 생각하고 있었지.”

“전화? 언제?”

“10분 전에. 준비됐으면 나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안 받더라.”

내가 왜 전화를 못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었네.”

“왜 무음으로 해 뒀어?”

“요즘 ‘사랑길’이 잘나가고 있잖아. 그래서 주변 지인들한테서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계속 날아오니까. 그거 때문에 일부러 무음으로 바꿔 뒀지.”

매번 메시지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아예 소리가 안 나도록 바꾸고, 시간 내서 한꺼번에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차례로 답장을 보낼 생각이었다.

“야, 그래도 내 전화는 받아야 할 거 아니냐. 그래도 매니저인데.”

“미안, 다시 바꿔 둘게.”

“그리고 톡 어플만 따로 무음으로 설정 바꿔 두면 되잖아. 그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텐데.”

“맞다, 그랬지.”

알고는 있었는데, 까먹었다.

요즘 내가 정신이 없긴 한가 보다.

“근데 내가 못 보던 아이템들도 있는 거 같은데.”

“이건 형도 못 봤을걸.”

한군데에 모아 둔 아이템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형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보였다.

“야! 이거…….”

“그거 뭐?”

형이 여러 개의 보석이 박혀 있는 작은 단검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칠링 나이프잖아!”

“어, 맞아.”

“올해 초에 이거 경매장에 올라온 적 있었는데, 여태껏 올라왔던 아이템들 중에서 최고가 갱신했다고 하던데.”

“그 아이템이 칠링 나이프였어?”

나날이 치솟는 아이템 가격들.

그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대를 기록한 아이템이 최근에 등장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그게 저거인 줄은 몰랐다.

“이거 하나 내다 팔면, 강남에 빌딩 몇 채는 살 수 있을 텐데…….”

형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모양인지 황급히 아이템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중에 형 결혼 선물로 줄게.”

“뭐? 이런 비싼 물건을?”

“괜찮아. 나, 그런 거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저 내다가 팔지 않았을 뿐이지,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은 상당히 많다.

만약 내가 여기에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 일부만 경매장에 가져가도 아마 큰 소란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던 희귀 아이템들 매물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면서 콜렉터들의 수집 욕구를 마구 자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템을 내다 팔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귀찮아서였다.

물론 대신해서 아이템을 팔아 주는 중개인이 있긴 하지만, 그 중개인들한테 팔 아이템을 정리해서 가져다주는 것도 귀찮았다.

그것조차 안 하니까 아이템은 쌓여만 가고, 덩달아 본의 아니게 아이템을 원하는 콜렉터들의 관심을 내가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쪽 경매 시장도 돌아가는 게 좋긴 하겠지.

아이템을 좀 풀어 주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야 다른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의 거래도 활발하게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집 안에 처분 못 한 아이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승훈이 형이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어 줬다.

“근데 너, 여기 말고 경기도 쪽에 있는 창고에도 아이템 엄청 많이 있잖아. 그건 언제 처분하려고? 아니면 계속 가지고 있을 거야?”

“아, 맞다.”

그쪽도 있었지.

뭔가 일을 하나 처리하면, 계속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추가되는 그런 느낌이다.

* * *

촬영을 마치자마자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내 명의로 되어 있는 개인 아이템 창고로 향했다.

워낙 고가에다가 위험한 물건들이 가득 보관되어 있다 보니 사설 경비 업체를 고용해서 주변을 24시간 감시하게끔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젊은 경비원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

나도 짧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아 줬다.

창고 관리인이 안에서 나오면서 우리를 안내했다.

“어디부터 들르시겠습니까?”

“1구역부터 가 볼까.”

“예, 알겠습니다.”

아이템을 보관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시설도 따로 만들어 뒀다.

땅 사고, 건물 짓고. 여기에 들어간 돈만 하더라도 수억 원은 될 거다.

단지 아이템을 보관하기 위해 이런 돈을 쓴 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헛돈을 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들이니까.

일반인들이야 상관없다. 도난을 당해도 어차피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끌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냥 고액의 손실만 보고 끝날 것이다.

문제는 헌터다.

다시 특수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만약에 헌터들이 이곳을 급습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다수 갈취했다고 치자.

그러면 말 그대로 대혼란의 시기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아이템 보관과 경비 쪽에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헌터들의 전투력은 본인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갈리지만, 아이템의 여부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1구역 창고로 향한 나는 외관부터 꽤나 관리가 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 온 지 3년 만인데, 마치 어제 온 것처럼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네.”

“태오 님께서는 3년 만이지만, 저희는 매일매일 이곳에 출퇴근하니까요.”

관리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려고 이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거니까.

창고 안으로 들어선 승훈이 형은 헛숨을 삼켰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아이템 가짓수가 더 늘어난 거 같은데? 여기, 몇 개나 보관되어 있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말끝을 흐리는 사이, 관리인이 나 대신에 승훈이 형의 궁금증을 풀어 줬다.

“1구역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의 종수는 총 153종입니다.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별로 따로 섹션을 나눠 뒀으며, 옵션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분류를 해 뒀으니까, 보기 편하실 겁니다.”

역시, 월급 주는 보람이 있었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으면서 나와 승훈이 형은 걸음을 옮겼다.

승훈이 형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창고가 아니라 개인 박물관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냐.”

“그러게 말이야.”

나도 마침 승훈이 형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관리인이 안 그래도 이에 관해서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내게 물었다.

“아이템을 이렇게 보관만 해 두는 것보다 차라리 일반인들에게 박물관 형태로 개방하는 편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태오 님한테는 얼마 안 되겠지만, 그래도 부수입으로는 나름 짭짤할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러면 더 관리하기 어렵지 않아?”

“그만큼 인력을 더 늘리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보여 줘야 하니까, 그만큼 물건을 더 깔끔하게 유지, 보수할 테니 관리 측면에서는 나름 이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리인이 추가로 말을 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결정은 태오 님이 하시면 됩니다.”

“생각해 볼게.”

나쁘지 않은 제안일지도 모르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