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03화 (203/250)

제52장. 대세 그룹 (3)

그렇게 나는 거짓말처럼 아이리스와 12번이나 입술을 마주치고 난 뒤에야 겨우 키스신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오 감독이 나하고 아이리스 사이에 세워져 있는 어색함이라는 이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일부러 장난식으로 NG 선언을 계속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게 일곱 번쯤으로 넘어갈 때, 나는 오 감독이 장난으로 NG 선언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니터링 덕분이었다.

잠시 촬영이 중단된 틈을 노려서 나는 아이리스와 같이 우리들의 키스신을 직접 모니터를 통해 확인했었다.

그 결과.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

나도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남주와 여주가 각각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꽤 자주 봤었다.

멜로 영화뿐만 아니라 스릴러, 액션, 심지어 공포 영화에서도 남주와 여주가 키스라는 수단을 통해 서로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흔히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틀어 봤을 때, 나와 아이리스의 키스신은 키스신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어색했었다.

오 감독이 나한테 어깨를 으쓱이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기가 일부러 의도해서 NG를 선언한 게 아니었다고.

이건 나와 아이리스가 배우로서 많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쯤 되니까 어색함은 사라지고, 어떻게든 오케이를 받아 내야겠다는 승부욕이 대신 그 빈자리를 채워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네, 좋습니다! 방금 그 장면이 제일 나았어요.”

오 감독한테서 마침내 통과 선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와 아이리스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고생해서 찍은 장면인 만큼, 보다 철저하게 방금의 장면을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모니터 한번 봐도 될까요?”

“네. 마침 저도 보려고 했는데, 같이 와서 보시죠. 아이리스 양도요.”

아이리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우리 둘이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이건 수도 없이 봤으니까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다음이 하이라이트였다.

서로 거리를 좁히다가.

이내 둘이 입술을 포갰다.

카메라가 절묘하게 각도를 틀면서 우리의 키스를 좀 더 진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차례 본 장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본 우리들조차 이런 반응이라고 한다면.

‘이 장면은 찐이네.’

이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오 감독이 괜히 오케이를 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 장면이 좋으니까.

그래서 오케이를 선언한 거였다.

오 감독이 살짝 장난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만약에 두 분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더 촬영할 의향도 있습니다만. 그게 아니더라도 더 하셔도 됩니다.”

첫 번째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째 말은 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나와 아이리스가 합법적으로 남들 앞에서 키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뜻인가.

우리가 진짜로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아이리스도 이 이상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남들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둘의 반응을 귀엽다는 듯이 지켜보던 오 감독이 알겠다고 하고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도록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다시 한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나는 깊은 한숨을 삼켰다.

‘키스신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몬스터들 때려잡는 일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새삼 배우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키스신을 잘 소화하는지.

나중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배우 게스트들과 만나는 일이 있다면 한번 조언이라도 구해 봐야겠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나중에 또 키스신을 찍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 * *

그렇게 배우로서의 가장 커다란 위기(?)를 넘긴 이후부터는 크랭크업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종방연을 위해서 우리들은 제작진이 마련해 뒀다고 하는 고깃집 매장에 들어섰다.

인원이 많아서 혹여나 가게 내부가 작으면 많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런 내 우려가 무색하리만치 매장은 너무나도 넓었다.

오히려 백 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한꺼번에 가게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꽤 보일 정도였다.

건배사를 외칠 준비를 하는 오 감독을 보면서 나는 옆에 앉은 아이리스에게 작게 속삭였다.

“감독님이 가게 잘 구하셨네.”

“맞아요. 작가님한테 종방연 어디서 할 거라고 장소 들었을 때 좀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넓더라고요.”

“우리 HT 엔터테인먼트 단체 회식 할 때에도 다른 곳 알아볼 필요 없이 여기로 하면 되겠어.”

“좋죠, 오빠.”

건물 자체가 신축이라서 상당히 깔끔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게 서비스도 굉장히 만족할 만했다.

때마침 오 감독이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명감독이 오 감독에게 시선을 모으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자! 우리 감독님이 건배사 한마디 하신다니까 다들 지방방송들 끄시고 주목!”

“네!”

배우들도 나름 많이 고생을 하긴 했지만, 역시 감독의 중책을 따라잡긴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야 이 영화가 필모그래피의 일부분일지 모르지만, 감독은 여기에 인생을 걸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대대적으로 투자도 많이 받기도 했고.

나와 아이리스가 나와서 각각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소식이 퍼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도 지나칠 정도로 높아졌다.

기대감은 때론 부담감으로 작용하곤 한다.

오 감독에게도 이건 예외 사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감독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훌륭하게 현장을 지휘했다.

감독, 배우 관계를 떠나서, 오 감독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잔 드셨죠?”

“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촬영 진행되는 동안 이 못난 감독을 따라 줘서 정말 고맙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편집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우리 영화, 무조건 잘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건배!”

“건배!”

흥행 대박.

감독뿐만 아니라 스태프, 그리고 우리 배우진까지.

모두가 다 한마음 한뜻으로 이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물론 멜로 영화가 천만을 달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업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기대감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애초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순차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기대를 걸어 봐도 될 것 같다.

여기저기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아이리스도, 서로가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뜻을 담은 건배를 나눴다.

오 감독이 이런 우리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 분 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우리 촬영하는 거 현장에 와서 봤으면, 아마 태오 씨하고 아이리스 양이 서로 진짜로 사귀는 관계가 아니냐고 오해했을지도 몰라요.”

“감독님, 벌써 취하신 거 아니죠?”

보니까 얼굴이 벌써 벌겋게 달아오른 거 같기도 하고.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 말에 오 감독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 가지곤 안 취합니다. 저, 술 잘 마신다는 거 태오 씨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 오 감독은 술 못 마신다.

본인 말로는 잘 마신다고 하지만, 실제로 같이 마셔 보면 주량이 소주 두 잔 정도 되던가. 아무튼 소위 말해서 ‘알쓰’라고 불릴 정도로 술에 굉장히 약하다.

그럼에도 오 감독이 왜 자신이 술이 강하다고 말을 하는지, 이에 대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허세다.

나도 예전에 이런 허세를 가끔 부릴 때가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큰 의미 없다.

그래도 뭐,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이번만큼은 오 감독 말에 적당히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겠지.’

오늘 하루만은 관대한 강태오가 되기로 했다.

* * *

영화 촬영이 끝난 덕분에 내 활동이 많이 여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니암이 Hip to the Hop에서 우승을 한 덕분에 우리를 찾는 프로그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니암 입장에서도 우승자 버프가 사라지기 전에 이번 기회에 인지도를 바짝 높이는 것이 좋고.

우리 그룹 입장에서 봐도 니암의 이 커리어를 이용해서 좀 더 강하게 홍보 활동을 밀어붙이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일정을 빡빡하게 채우기로 했다.

우리가 소화해야 할 스케줄이 가득 적힌 화이트보드 판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처음 데뷔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마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딜런이 옆에서 절묘하게 가로챘다.

같은 그룹이라서 그런가, 다들 생각하는 게 똑같은 모양인가 보다.

“어때, 이렇게 다시 바빠지니까?”

피곤하진 않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 일부러 이런 질문을 던져 본 거였다.

그러나 딜런은 어깨만 살짝 으쓱할 뿐,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가수로서 계속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렇다.

연예인이란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먹으면서 자라는 존재다.

그런데 자신을 알릴 기회가 없으면, 양분이 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연예인이라는 이름의 식물은 자라날 수가 없다.

앞으로도 무럭무럭 자라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릴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은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인기라는 건 결국 그렇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예정이 잡혀 있나 확인하기 위해 화이트보드 판에 시선을 좀 더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예능 관련 프로그램 일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또 ‘예능 전성시대’라는 말이 돌 정도로 프로그램이 많이 늘었으니까 말이다.

시청률도 잘 나오고.

그리고 우리 멤버들 중에서 예능 출연하는 거에 큰 거부감을 가진 멤버도 없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출연 방향성을 놓고 회의를 할 때 대부분은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 일정이 많이 잡히는 편이었다.

물론 음악 방송 출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의 본업이 어디까지나 가수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슬슬 승훈이 형 올 때 되지 않았나?”

“네. 1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

승훈이 형이 늦잠이라도 잤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승훈이 형은 약속을 굉장히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런 승훈이 형이 10분째 연락도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형한테 먼저 연락을 취하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긴급 호출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신호음이 상징하는 게 뭔지 나와 딜런은 잘 안다.

몬스터 출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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