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02화 (202/250)

제52장. 대세 그룹 (2)

우승자의 정체가 밝혀지자마자 사방에서 폭죽이 터졌다.

동시에 사람들 또한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을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면서 환호성을 보냈다.

니암의 우승 발표 현장을 보면서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멤버가 우승했다는 것도 기쁘지만.

다른 가수가 우승하기를 응원하던 팬들조차도 니암의 우승을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의미가 있었다.

니암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우승이라는 트로피가 값지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이벌을 응원하던 팬들조차도 박수를 보낼 정도니까. 그만큼 니암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암도 그걸 느끼는 모양인지 우승자가 발표되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표정으로 객석을 응시했다.

니암과 함께 오늘의 파이널 무대를 꾸몄던 가수들 역시 축하한다는 말을 보냈다.

한 번씩 서로 안아 주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스포츠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선의의 경쟁.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는 매너까지.

힙합이라는 게 단순히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하하고 디스하기만 하는 그런 장르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한편, 옆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준서였다.

“형……! 최고예요! 우승 축하드려요!”

거의 오열하는 수준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준서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자 준서가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놀리지 마세요, 형!”

“미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너무 서럽게 우는 거 같아서.”

그리고 따지고 보면 놀린 건 아니었다. 그냥 준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기만 했을 뿐이니까.

그만큼 니암의 우승에 많은 감동을 받았으니까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보이는 것이겠지.

같은 팀원으로서, 오히려 준서의 이런 반응에 더 진한 감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랫동안 고생했던 기나긴 마라톤도 끝났으니까.

이제는 쉴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바쁜 건 오히려 이 이후부터다.

‘여기저기서 섭외 요청 많이 들어오겠네.’

그 어렵다는 Hip to the Hop 우승자 출신이 속해 있는 HTB.

벌써부터 PD와 작가들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 * *

내 예상대로, 니암과 우리들에게 섭외 요청이 거의 쏟아지다시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결승 생방 무대가 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말 빠른 곳은 우승자 발표가 펼쳐지자마자 승훈이 형한테 연락을 했었다고 한다.

원래 섭외 전쟁이라는 것은 속도가 그 성패를 크게 좌우하는 법이다.

일단은 먼저 섭외 요청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는 모양인가 보다.

사실 Hip to the Hop의 화제성이 없어도 우리 HTB는 방송가에서 섭외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 보이 그룹으로 유명했다.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보니, 우리가 출연했다 하면 기본 시청률 이상은 무조건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게스트의 여부가 중요한 예능이나 토크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우리를 섭외하기 위해…… 아니, 모셔 가기 위해 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교통정리 해야 할까.

승훈이 형이 오늘은 회사가 아니라 기숙사로 우리들을 찾아와 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딜런이 승훈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원래는 오늘 회사에서 회의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어, 근데 너희 피곤할까 봐. 그래서 내가 일부러 온 거야.”

승훈이 형도 전화받으랴, 일정 관리하랴. 이래저래 피곤할 텐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우리들의 전속 매니저니까. 이에 관한 사명감이 완전히 뿌리를 내린 그런 모습을 보였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래서 내가 승훈이 형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니암은?”

“씻고 있으니까 곧 나올 거예요.”

딜런의 말이 끝나자마자 샤워를 마치고 나온 니암이 머리만 빠르게 말린 뒤에 우리가 있는 거실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회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 프로그램에 나갈지, 스케줄부터 짜자.”

지금 우리들은 컴백 당시 못지않을 정도로 많은 섭외 요청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 요청들을 전부 거절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그리고 아직 우리 앨범 활동 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기에 우승빨을 제대로 타려면 그만큼 시너지 효과가 잘 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우선시되는 게 있었다.

바로 우승자 특권이다.

내가 먼저 니암에게 이 특권을 선물하기로 했다.

“너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 있으면 골라 봐.”

“제가요?”

“네 덕분에 이렇게 다시 바빠지게 되었으니까, 결정 권한도 너한테 넘겨야지. 안 그래?”

다른 멤버들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멤버들 역시 내 생각과 같은 모양인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컴백하고 난 다음에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한 번씩 출연해 봤고.

그래서 멤버들은 프로그램 욕심을 크게 보이지 않았다.

니암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승훈이 형이 정리해 온 프로그램 명단을 보더니 난색을 드러냈다.

“정말 제 마음대로 정해도 되나요?”

“어, 어차피 네가 이거 저거 다 정해도 결국은 스케줄 조율에 따라서 다시 정해질 거니까.”

일단은 희망 사항만 먼저 받아 보자, 이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거 같다.

그리고 사실 어느 한 명이 총대를 메고서 정하는 게 훨씬 낫다.

이래저래 논의하기도 귀찮고 말이다.

중간에 니암이 뭔가 떠오른 모양인지 나를 보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형, 그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뭐가?”

“형 영화 촬영하시는 거요.”

“아, 오 감독님 거?”

아이리스하고 한창 열연 중인 영화 ‘사랑길’을 말하는 거였다.

“아마 다음 주가 마지막 촬영이 될 거 같은데.”

“진짜요? 얼마 안 남았네요?”

“우리 컴백하기 전부터 계속 촬영하고 있었으니까. 슬슬 크랭크업 할 때가 되었지.”

그동안 오래 쉬는 기간 없이 계속해서, 꾸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번에 개봉했던 최기호 감독의 ‘그날, 우리’처럼 준비 과정이 많이 필요한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CG 처리라든지 이런 것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 편이었기에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에 큰 번거로움은 없었다.

단지, 오세평 감독이 이래저래 요구하는 게 많기도 했고.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리테이크를 진행했기 때문에 그게 좀 힘들었다.

더 무서운 건.

‘촬영 중에 가장 힘들지도 모르는 순간이 아직도 안 찾아왔다는 거겠지.’

오세평 감독한테서 처음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날 크게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던 게 있었다.

바로 상대 여주인공 역할이 아이리스라는 점이다.

중간에 들어가 있는 키스신.

이걸 바로 다음 주에 촬영할 예정이었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서로 입맞춤을 하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을 찍게 될 텐데.

이거 때문에 영화 캐스팅 제의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아이리스도 이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지, 부담감이 아니라 기대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내 촬영은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 있으면 골라 봐. 나도 최대한 일정 조율해 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오 형.”

“감사는 무슨. 너 우승했으니까 이런 거라도 해야지.”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의 일종이다.

* * *

영화 ‘사랑길’ 촬영장을 방문한 나는 오늘 유독 긴장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짓는 표정이 눈앞에 있는 아이리스와 같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가 나를 보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긴장되네요, 오빠.”

“그러게.”

예전에 헌터 생활을 할 때에도 이렇게 긴장한 적은 없었는데.

심지어 마지막 일전이라 불렸던 드래곤과의 싸움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내가, 오늘은 아이리스와의 키스를 앞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어지면 안 될 거 같아서 일부러 농담을 건넸다.

“키스는 처음이야?”

“네, 맞아요.”

“……진짜로?”

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면서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내게 강조하듯 말했다.

“네, 오빠가 처음이에요.”

“…….”

괜히 물어봤네.

영화 촬영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첫 키스라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그 상대가 나라는 걸 알면, 당연히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잘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처음이 오빠라서 다행이에요.”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발언은 가급적이면 피해 줘.”

아이리스가 나를 보면서 작게 웃었다.

오히려 내가 아이리스에게 놀림을 받는 기분인 거 같은데.

이래저래 당황스러웠던 리딩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심판의 시간…… 아니, 본촬영의 시간이 다가오게 되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 카메라 앞에 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본을 볼 때에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이리스와 마주 보는 형태로 카메라 앞에 서니까 슬슬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는 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대사는 딱히 없다.

우리 둘이 서로 마주 보면서 짧게 입맞춤을 하면 된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했다.

슬레이트가 탁! 소리를 냈다.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리스와 연인처럼 연기를 하는 게 굉장히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리스는 나와 함께했었던 동료였으니까.

그리고 데이브의 여동생이기도 하고.

그래서 한 번도 여자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카메라 앞에 서 있을 때에는 아이리스를 여자로 보게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야 사소한 눈빛이나 행동에서부터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기도 결국은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리얼한 연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그걸 두 번째 영화 촬영에 들어서면서부터 깨닫게 되었다.

아이리스가 먼저 발끝을 들어 올리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

입술을 맞춰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

대본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만만치 않은 각오를 굳혀야 했다.

‘그래, 어차피 연기니까.’

한 번만 눈 딱 감고 하면 된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서서히 아이리스와 거리를 좁혔다.

잠시 뒤.

아이리스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느껴졌다.

아는 여동생과의 첫 키스.

그러나.

“컷!”

오세평 감독이 확성기를 들고서 약간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두 분, 지금 너무 얼어 있으신 거 같네요.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따라 NG가 너무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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