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장. 지원사격 (4)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다.
우리가 맨 마지막 무대니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게임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장시간 계속 접하고 있으면 당연히 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의 Hip to the Hop 경연 무대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지만, 과연 오늘 모인 청중평가단들이 끝까지 처음과 같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무대를 즐기려고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체력적인 한계도 있고. 그래서 여러모로 힘든 무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상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반면, 이미 무대에 올라서 청중평가단들의 기력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먼저 확인했던 니암과 준서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무대 한가운데로 빨리 넘어오라는 뜻이었다.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 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물론 그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냥 얌전히 걸어가기에는 너무 심심하고.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준 팬들을 위해서라도.
‘약간의 쇼맨십을 발휘해 볼까?’
내 각성 문양에 은은한 빛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마치 와이어 액션이라도 펼치는 듯이.
나는 그렇게 공중제비를 몇 바퀴 돌아 준 뒤에 니암, 준서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스테이지 한가운데로 쿵! 하고 착지했다.
무대가 혹시 무너지거나 그러진 않으려나 걱정이 좀 들긴 했는데.
‘다행히 튼튼하게 만들어졌나 보네.’
이건 여담이지만, 레이드 시대가 열린 이후부터 지어지는 건축물들은 새롭게 개정된 건축법의 영향으로 인해 보다 튼튼하게 짓도록 설계되었다.
몬스터들이 들이닥쳐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피난 시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덕을 설마 몬스터와 싸울 때도 아니고, 공연을 할 때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새롭게 지정된 법대로 무대를 튼튼하게 지어 준 사람들에게 잠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한편, 사람들은 내가 보여 준 쇼맨십에 크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무대는 다른 본선 진출 팀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
헌터들이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 줄 생각이었다.
물론 싸우는 거 빼고 말이다.
가수로서의 역량을 보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이크를 든 나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덤벼라, 세상아! 거친 파도가 몰아친다 해도 난 이 자리에 끝까지 버텨 낼 테니까!”
거의 샤우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레코딩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높여서 부르지 않았었는데.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더 크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 짙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모니터링을 해 본 결과.
청중평가단이 참가하는 경연 무대는 결국 분위기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왜냐하면 2차 본선 무대는 청중평가단이 직접 래퍼를 평가하는 자리니까.
그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지. 한발 더 나아가서 그들의 흥을 어떻게 돋울 수 있는지.
이런 요소들이 판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니암도 그렇고, 준서도 내가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계속해서 중간마다 추임새를 넣으며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들 손 머리 위로!”
“Put Your Hands Up!”
사람들이 우리의 외침에 따라 손을 들어 올렸다.
리듬에 맞춰서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서로 떨어져 있던 우리들은 점점 노래로 합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사 마지막 파트는 랩 담당, 서브보컬, 메인보컬 구분 지을 거 없이 모두가 다 같이 부르기로 합의했었다.
“Go for it! ! 우리는 계속 나아갈 거야!”
그 종착역이 우승이 될지.
아니면 중간 탈락이 될지.
그건 이제부터 지켜봐야 알 것이다.
* * *
시끌벅적했던 2차 본선 무대가 끝나고.
나와 준서는 대기실에 돌아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니암은 2차 본선 무대가 끝나고 추가 촬영을 위해 경연에 참가한 래퍼들과 같이 녹화 현장으로 향한 상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본선 결과가 좋게 나오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준서가 마른침을 삼키면서 내게 물었다.
“태오 형, 우리, 괜찮겠죠? 괜히 저희가 도와줬다가 니암 형이 탈락하고 그런 일은 없겠죠? 네?”
“나도 몰라.”
무대에 대한 자신감은 있지만, 모두가 알듯이 이 자신감이 내 모든 미래를 책임져 주진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나는 그것까지 다 머릿속으로 감안하고 있었다.
물론 니암이나 준서 앞에서는 절대로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과 통보를 받기 전까지, 괜히 불안감을 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긴 했는데.’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니까.
무대에서는 신났지만, 막상 평가를 내릴 때에는 생각보다 점수를 짜게 줄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고 들었다.
이때, 준서가 기다리다 못해 어떠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제가 가서 몰래 엿듣고 올까요?”
“어디 가서?”
“지금 촬영하고 있을 거잖아요. 출연자들은 결과 실시간으로 듣고 있을 텐데, 저희만 못 듣고 있으니까요. 가서 조용히 듣고만 올게요.”
이래 봬도 준서 역시 각성 능력자다.
일반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척을 완전히 지우는 일 정도는 쉬울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곳은 시끄러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녹화 현장이니까.
기척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었다.
나도 당연히 결과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준서처럼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다 알게 될 테니까.
그래서 굳이 위험 부담을 스스로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니암이 우리한테 와서 결과를 일주일 뒤에 알려 주겠다고 말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곧 있으면 결과 듣고, 녹화 끝나고. 그 상태로 니암이 다시 복귀할 테니까. 그때 원 없이 물어봐.”
참을성을 기르는 것도 하나의 좋은 습관이다.
준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얘는 참을성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뭐, 성격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니까.
준서에게는 더 참고 기다려 보라는 말만 전하고서 대기실에 앉아 계속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대기실 문이 열렸다.
니암이 한창 수척해진 얼굴로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결과 듣고 왔습니다.”
“어떻게 됐어?”
얼굴만 보면 일단 대답이 유추가 가능했다.
탈락.
왜냐하면, 합격했다고 좋아하는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준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불안감을 드러냈다.
“설마 형, 떨어진 거예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준서.
그러자 니암의 입꼬리 위치가 바뀌었다.
아래에서 위로.
미소를 짓던 니암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준서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합격이야.”
“아, 뭐예요! 왜 탈락 통보받은 사람처럼 암울해한 거예요!”
“작은 서프라이즈라고 할까.”
이 녀석.
여기 참가하는 래퍼들하고 자주 어울려서 그런지 없던 장난기가 생겼다.
합격은 합격이고.
나는 추가로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순위는 어떻게 됐는데?”
다음 라운드는 2차 본선 경연 무대의 순위에 따라서 미션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이번 2차 본선 무대가 굉장히 중요했다.
여기서 상위권을 차지해야 다음 본선 무대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미션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안정권은 3위까지.
니암이 알려 준 결과는…….
“우리가 1위입니다.”
내가 예상했던 범위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
“1위면 나쁘지 않네.”
내 말에 준서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형! 1위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최고의 결과잖아요!”
“그렇긴 하지.”
사실 우리 무대는 아쉬울 게 없었는데, 다른 쪽으로 좀 아쉬움이 있었다.
나와 니암, 준서는 무대를 많이 서 봐서 그런지 본선 무대 당시에는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유일하게 생각했던 불안 요소는 니암이 경연 프로그램 참가가 처음이라서 여기에서 오는 긴장감에 실수를 할까 봐, 이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오늘 무대를 소화하는 걸 보니까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연습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무대를 청중평가단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은 달랐다.
무대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팬들의 기대감, 사람들의 시선 기타 등등.
무대에 수도 없이 존재하는 요인들로 인해서 참가자들은 1차 본선 때 좋은 모습을 보여 줬음에도 불구하고 2차 미션 당시에는 다들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들을 보였다.
그 영향이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그래서 2차 본선 때 아슬아슬하게 패스를 했던 니암이 이렇게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것이고.
이래서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게 무섭다.
‘변수가 너무 많이 존재해.’
물론 이건 다시 말해서 우리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무대의 변수를 니암이 앞으로 얼마나 컨트롤하고 극복해 갈지.
여기에 따라 니암의 순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 * *
니암이 출연했던 Hip to the Hop 방송이 나간 뒤.
나는 개인 스케줄로 방송에 따로 출연하게 되었다.
HTB 그룹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솔로로 앨범을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가 아직 개봉한 것도 아니니까.
HTB 그룹의 일원이자 리더인 태오로 라디오에 출연했기에 이에 관련된 시청자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 질문입니다. 이걸 태오 씨한테도 해야 좋을지 애매하긴 한데요.”
“8731 님이 하신 질문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찰떡같이 맞히시네요?”
“제가 눈치가 꽤 빠른 편이거든요.”
웃자고 한 말이 아니고, 진짜로 그렇다.
눈치가 없으면 몬스터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덕분에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최근에 같은 그룹 멤버인 니암 씨하고 Hip to the Hop에서 공연을 펼치신 적이 있으셨잖아요.”
“네. 2차 본선 무대에서 저하고 준서가 피처링을 맡았습니다.”
“바로 어제 방송이었는데, 불렀던 곡이 꽤나 화제가 되고 있더라고요. 벌써 음원 순위에도 올라왔던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그룹 멤버가 무사히 3차 본선에 진출했고. 음원 순위도 잘 나오고.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니암도, 그리고 우리 HTB도.
모두에게 다 득이 된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기세를 이어받아서 니암이 우승까지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할 수 있겠지.’
내가 열심히 훈련시켰으니까.
헌터 정신으로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 믿고 있다.